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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CunninLynguists - Strange Journey Volume Three
    rhythmer | 2014-04-28 | 22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CunninLynguists
    Album: Strange Journey Volume Three
    Released: 2014-04-01
    Rating:
    Reviewer: 지준규









    언더그라운드 힙합은 물론이고 주류의 힙합 씬에서도 기존과 다른 음악적 접근과 실험들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이른바 대안적인 힙합의 혁신적인 사운드를 운운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드코어 힙합이 가진 극단적인 공격성과 비판적인 정치색 대신 아티스트들의 개별적인 의식과 철학을 강조하고, 힙합 음악이 가진 예술적 가능성의 확장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던 대안적인 힙합 뮤지션들의 정신만큼은 여전히 가치 있으며, 그 영향력 역시 유효하다. 최근 여섯 번째 정규 앨범을 발매한 커닐링기스츠(CunninLynguists) 역시 대안적인 힙합 그룹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대안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고유의 실험성과 독창성에 대한 끈은 완전히 놓지 않은 채 편안하고 차분한 감상용 힙합의 영역에도 속해있다.

     

    랩퍼인 디콘(Deacon the Villain)과 내티(Natti), 그리고 지금까지 거의 모든 곡의 프로듀싱을 담당해온 노(Kno) , 세 명의 멤버로 구성된 커닐링기스츠는 그 독창성은 물론이고 음악적 완성도에 있어서도 탁월함을 유지해왔다. 이들의 가사에선 돈, 명예, 폭력, 또는 여성 비하에 대한 집착은 찾아보기 어려우며, 사회적 이슈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나 개인적인 사색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그것들이 창의적인 라임들로 영리하게 구성되어 있어 그 가치를 더한다. 무엇보다 그룹을 빛나게 한 건 이와 합을 이루는 노의 비트다. 노는 소울, 재즈, EDM, 뉴 에이지까지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들을 수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로 완벽하게 탈바꿈시키는 방법을 통해 감상용 힙합의 새로운 모델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있다. 특히, 컨셉트 앨범으로 기획했던 전작 [Oneirology]에서 노는 다시 한 번 절정의 감각을 드러냈는데, 격정과 관능, 그리고 우아함을 동시에 담고 있는 매력적인 사운드와 멜로디의 연속은 실로 놀라움을 안겼다.

     

    2009년에 발표된 'Volume One''Volume Two'에 이어 약 5년 만에 ‘Strange Journey’ 시리즈를 잇는 커닐링기스츠의 이번 앨범은 그 타이트한 짜임이 여전하다. 다채로운 샘플 사운드와 유려한 멜로디로 포장된 풍성한 비트간의 환상적인 조화는 다시 한 번 빛을 발하고 있으며, 많은 피처링 진을 기용했음에도 랩퍼들의 적절한 조합과 곡의 슬기로운 운용을 통해 말초적인 여흥보다 진중한 울림을 중시하는 그룹의 노선이 엿보인다.   

                          

    앨범의 분위기를 암시하는 짧지만, 인상적인 인트로 “Ignition”을 지나면 앨범의 실질적인 첫 곡 “Strange Universe”가 시작되는데, 경쾌한 베이스라인과 거친 드럼비트, 그리고 적재적소의 신스 사운드가 결합되어 (곡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웅장한 사운드를 완성하고, 그와 동시에 내티와 델트론 3030(Deltron 3030)의 멤버이기도 한 델 더 펑키 호모사피엔(Del the Funky Homosapien)의 연륜 담긴 랩핑이 극적으로 맞물리며 장엄하게 포문을 연다. 그에 이어지는 곡인 “In the City” 역시 노의 전형적인 사운드 운용방식이 숨김없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어쿠스틱 기타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기반을 닦고 산뜻한 신스, 절제된 드럼, 아늑한 보컬이 차분하게 결합하여 꿈결 같은 공간감이 형성되고, 그 위에 도시의 차가운 냉정함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자이온 아이(Zion I)의 멤버 줌비(Zumbi)와 디콘의 나긋한 랩핑이 더해지며, 감성을 자극하는 레이드-(Laid-Back) 사운드가 완성됐다. 또한, 앨범의 중반부를 넘어서는 순간 등장하는 “Kings”는 단연 앨범의 백미. 둔탁한 드럼과 혼란스러운 신스, 그리고 디스토션 걸린 지저분한 기타 사운드 등등, 온갖 공격적인 음색들이 내티와 디콘의 절묘한 라임들과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교묘한 안정감은 그 비트만으로도 가히 매력적이다.

     

    이 외에도 불길한 느낌의 신스와 음산한 멜로디의 샘플 보컬이 극단적인 허무함을 표출하는 랩핑과 만나 매혹적인 사운드를 완성하는 “Makes You Wanna Cry”나 어딘가 불안하면서도 그 불안함이 빚어내는 쓸쓸함과 애잔함이 몰입을 유도하는 보컬 사운드가 인상적인 “The Morning” “Innerspace”, 더불어 중간중간 등장하여 자잘한 웃음을 주는 유머러스한 스킷(Skit)(“Miley 3000”, “Mission Assessment”)과 격동적인 사운드와 무자비한 랩핑으로 앨범을 마무리하는 도발적인 곡 “Urutora Kaiju”까지, 커닐링기스츠는 이번 앨범에 담긴 대부분의 곡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다만, 디콘과 내티를 비롯하여 앨범에 참여한 랩퍼들의 랩 톤이 간혹 곡의 분위기와 맞지 않아 거부감을 주기도 하고, 개별적인 곡들은 만족스럽다고 할지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감성적인 곡들이 지나치게 반복되는 감이 있지만, 커닐링기스츠의 이번 앨범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착실히 커리어를 쌓아온 그들과 그들의 음악은 여전히 누구나 쉽게 걷는 편한 길이 아닌,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는 정신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태도는 비단 사운드적인 변용에서뿐만 아니라 그룹만의 범상치 않은 철학과 메시지를 담고 있는 가사를 통해서도 끊임없이 드러난다. 그들의 음악에서는 언제나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끝없는 모색과진부함과 치열한 사투가 느껴지며, 이러한 정신은 이번 앨범에까지 고스란히 연장되어 있다. 커닐링기스츠는 이렇듯 탐미적인 감성과 진중한 메시지를 동시에 담고 있는 이번 앨범을 통해 입지를 다시 한 번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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