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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묵은 떡밥, 샘플링을 말한다: About Sampling"에 대하여
    Scythian;D | 2014-02-09 | 9,731 Reads | 1 Thumb Up

      당신의 칼럼을 잘 읽었습니다. 이 글에서 당신이 말했던 상당 부분에 대하여 저도 같은 의견을 표합니다. 우선 샘플 클리어에 대해 좀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현 한국힙합계가 처한 위기에 적절한 대처방안 중에 하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또 당신의 이 씬에 대한 폭 넓고 해박한 지식에 매우 감명받았습니다. "핏롹이 이런 말도 했었구나" 싶더군요.

      그러나, 이 글을 읽으면서 약간의 우려가 생겼습니다. 이 몇 가지 안 되는 우려는 당신의 의견과 상반되게 받아들여질 수도, 귀하께서 약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먼저, 이러한 점에 대하여 양해를 구하고 본론을 말하겠습니다.

    요지는 과연 우리가(힙합음악과 인터넷음악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각자의 활동을 하는, 국경과 나이 〮지위 고하를 막론한, 유수의 아티스트들과 리스너들 전부) 샘플링에 대해서 잘 알고 있냐는 겁니다. 이 점이 명확하지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존경 받는 아티스트들 대부분이 그 기술적인 측면에서 샘플링의 이해도를 논하는 것 자체는 무의미합니다. 그들이 존경 받는 만큼 이 기술을 잘 이해하고 있고 발전 시킬 수 있다고 저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과 달리 그들조차도 자신이 무엇을 다루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과연 '샘플링의 오브제' , '샘플링의 대상'이 무엇이냐"는 문제를 명확히 다룬 논의가 없어 왔습니다. 걸 토크 정도가 리믹스 메니페스토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실재적(실제적이란 뜻이 아닌 존재론의 상위항목으로서의) 정의를 밝혔었지만 누구도 이 부분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브제라는 말을 굳이 쓴 것을 보면 대충 눈치 채셨겠지만, 단순히 샘플러를 이용하여 아날로그 자료로 표현되고 있는 저작물을 복호화 과정을 통해 디지털 자료로 디깅하고 이런 식의 기술적인 논의를 할 때의 관점에서 지칭하는 '대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연 이 '샘플링의 대상'이 근본적으로 어떤 성격과 속성을 가지며 실재적으로 무엇인지"가 문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화두는 물론 지적 재산권에 대한 오랜 논쟁, 카피 라이트와 카피 레프트간의 오래된 전쟁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오픈 소스 운동가들의 문제의식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다 충분하고 적절히 전달하려 하면 이 글이 논문집이 되어야 할 것이기에 그것은 포기하고 제 관점을 말해드리는 것으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제 요지를 유추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제 의견일 뿐인 제 관점은 당신이 말한 의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예술이라는 것은 다양하고 부수적인 미학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굉장히 실제적으로 묘사한다든지 아니면 어떤 아우라를 주는 미적 표현의 극치를 보여준다든지 하는 등등의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수준 높은 미학일지라도 결국에 '의도'의 수단일 뿐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예술에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은 사실 '의도'입니다.

      현대예술은 언어로 치면 메타언어적(언어 자체의 속성과 성격에 대해서 진술하는 언어)인 태도로, '의도' 자체를 문제 삼음으로써 다양한 미학적 수단들을 너무도 급속하고 빠르게 예시적으로 보여줬습니다. 분명 이는 혁신적이고 패러다임의 전환이었지만 결국에 극단적으로 대중과 예술을 분리시키는 부정적 효과도 같이 가져왔습니다.

      이런 와중에 기술의 발전은 우리를 예기치 못한 곳으로 끌고 갔습니다. 데이터 이론의 발전으로 말미암은 수많은 발전들이 우리를 경제적으로든 기술적으로든 또 산업적으로든 예기치 않은 사태를 만들어 냈습니다. 정보 공유 기술과 산업의 발달로 많은 사람들이 시퀀서와 음악장비들에 접근할 수 있게 됐고 이것이 근본적으로 이 업계를 크게 만든 이유였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단적으로 우리나라만 봐도 중고등학생 심지어 초등학생도 시퀀서를 가지고 놀고 있고 그 수준의 고저를 떠나서 창작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들만의 컴페티션도 가지고 있고 이러한 기반 속에 리드머와 힙합인사이드가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2008년도 즈음해서 2012년 정도까지, 저도 그 범주에 속하던 시절,는 그랬습니다.

      대중이 아티스트가 되고 이제는 수용하는 주체일 뿐만 아니라 공급하는 주체가 된 거고 하나의 생태를 만들어낸 겁니다. 블랙 유머로 '세계대전이 독일 길거리에 전봇대 수를 가지고 일어난 것'이라고 하듯이 전쟁이란 것은 충분한 재화적 가치의 보상이 예상되지 않을 때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생태가 결국에 큰 재화적 가치의 가능성이 된 것이고 여기에 여러 산업적 문제들이 끼어서 결국 카피 라이트 전쟁의 최전선에 샘플 클리어 문제가 대두되었다고 봅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태에 아무 사심도 없이 순진무구하게 열광하여 끼어들고 창작물을 쏟아냈지만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누구도요. 이후에 문제시되었기에 그 때마다 이루어진 국소적인 합의와 존경 받는 아티스틀의 권위에 의존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그 존경받는 아티스트들도 이 생태에 대해서는 우리들 만큼이나 처음이었고, 단지 좀 더 많은 것을 경험한 연장자로서 이 문제들을 다루었을 뿐입니다.

      존경 받는 아티스트 핏롹이 아니라 전설적인 제이딜라 아니 제이딜라 할아버지라 하더라도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우리는 순수한 열광으로 시작했지만 순수했던 만큼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특히 자신이 무엇을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서도요. 우리가 무엇을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 엄밀한 합의가 없다면 이 문제는 결국 경제적인 논쟁일 뿐입니다. 경제적인 논쟁에는 예술이 없습니다. 예술이라는 항목의 재화적 가치만이 있을 뿐이죠.(돈을 위해서 예술을 해서는 안 된다느니 그런 말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예술이라는 것이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된 이후에야 제의;제사의식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의견을 피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술의 원천을 재귀적으로 다루어야지 재화적 가치로 다루어 예술을 하위항목으로 다루어서는 안됩니다.

    게다가 재화적 가치인 지적재산권은 일정기간 동안은 사유재산이지만 일정기간 이후에는 공공재로 전환되는 특수한 것입니다. 이 법이 왜 이렇게 제정될 수 밖에 없었는지의 고찰이 이 오랜 논쟁의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귀결은 당신의 의견대로 샘플 클리어를 하되 건전한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 되리라는 것 또한 동의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가 건전한지가 문제가 되는 것이고 이 정도를 측정하고 파악하기 위해서는 결국 '샘플링의 오브제' 문제와 이 글에서 제시되고 암시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영원히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인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제가 주장하는 것은 '샘플링의 오브제', '샘플링의 대상이 무엇인가'라고 하는 화두를 비롯한 이 글에서 제시되었거나 암시하고 있는 모든 복잡한 문제에 대하여 근본적인 재검토와 연구 없이는 그 어떤 사태도 해결 될 수 없고 당신의 훌륭한 칼럼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마도 당신보다 한참 어린 사람일겁니다. 고백하건대, 불안했던 고등학생 시절의 랩 연습 기간을 지나 2008년 즈음해서는 시퀀서를 다루었습니다. 소위 인터넷 찌질이들의 대열에 합류해 있었습니다. 당시 음악을 같이 하던 친구들은 언더그라운드 유명 인사들과 작업도 같이 해보는 영광을 누린 바 있는 집단에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저의 재능 없음과 건강 상의 한계를 뼈 저리게 통감하고 2012년부터 정리하기 시작하여 2013년에야 완전히 청산했습니다.

      청산하기 이전에는 저도 많은 극단적인 의견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샘플링이 오도되는 현상에 대해 맹목적인 화만 내고 있었고, 내가 프로가 된다면 이 상황을 현실적으로는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아이디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것을 청산하고 나니 많은 아이디어가 찾아오더군요.

      러셀과 화이트 헤드가 산술의 토대를 마련하려 했다는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수학은 교육과정을 받았거나 받는 누구나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도대체 이 수학교육의 의미가 무엇이란 말이냐는 회의를 가져 봤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자체를 다루지 않고 결국에 수학을 하위 항목으로 취급하고 먹고 살기 위해라는 어수선한 신념을 설정해 더욱 자신을 혼란스럽게만 했습니다. 그런 경험에 대한 통감의 발로인지 저는 산술체계 자체의 정합성이나 무모순성에 대해서 문제시하고 산술 자체가 가지는 메타적 진술들이 참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것에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1+1=2라는 걸 증명하려 했다는 건 겉으로 볼 때는 참 무의미하고 현학적일 뿐만 아니라 사변적이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화이트헤드와 러셀이 이에 대한 연구성과인 '수학원리'가 없었다면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도 없었고 튜링의 계산문제의 해결도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오늘 날 산업에서 가장 중요하고 역동적인 컴퓨터 산업이 등장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컴퓨터 구성의 기초를 이루는 폰 노이만식 설계 자체가 앞서 말한 것들의 업적 아래에 이루어진 것일 뿐만 아니라 정보 이론의 창시자 클로드 셰넌의 업적 또한 그러한 토대에서 시작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것에 대한 무모순적이고 정합적인 규칙들을 설계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제 의견에 깔려있는 기저입니다.

      너무 글이 길어졌고 다소 관념적이거나 간결하게 쓰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이메일로 보내려 했으나 이메일로 보낼 수 있는 적당한 방법을 찾을 수 없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자유 게시판에 올립니다. 제발 지나치지 마시고 이 글의 요지를 파악하셔서 당신 나름대로 이 생태를 어떻게 발전시킬지에 대한 문제의식의 발전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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