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드머
스크랩
  • 진짜 너무 식상하고, 부끄러운 질문이지만
    ATP | 2011-04-20 | 6,608 Reads | 0 Thumb Up
    너무 궁금해서 물어봅니다.

    '랩을 잘한다'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어떠한 구체적인 기준에 입각하여 랩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시나요?

    힙합을 5년 넘게 들었지만, 모든 이들이 추켜세우는 랩을 들었을 떄 그 정도의 감탄이 필요한건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고, 많은 이들이 깎아내리는 랩을 들었을 때에도 잘 이해가 안될때가 있기도 하구요.

    실례로 리드머 지난 글에서 tyga 관련 글을 봤거든요. tyga라는 신예가 랩하는 영상인데, 모두들 그의

    랩 실력을 치켜세우시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그 랩을 들으면서 잘한다 라는 느낌이 한번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저에게 있어 잘한다라는 것은 언어로 표현 할 수 있는 어떤 기준이 있는게 아니라 이거 좋다 나쁘다의 막연한 느낌일 뿐입니다.

    잘하고 못하고에 기준이 어딨냐. 니가 좋다고 느끼는게 잘하는 랩이다. 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제가 보기에 음악을 정말 좋아하시고 많이 들으신 분들은 그 나름의 준거틀이 확고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틀은 좋다 나쁘다라는 개인적인 감정에 기초한 준거틀이 아닌, 리듬감,그루브가 쩐다/라임,플로우가

    쩐다 라는 등의 명확한 기준인 것 같거든요. (이러한 기준들은 너무 추상적이고 막연하여서 궁금증 해결

    에 별 도움이 안됩니다. 약간 순환적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저는 어떤 활동이든지 그것의 규칙 혹은 기준을 명확하게 숙지했을때, 그 활동으로 얻는 즐거움이
    극대화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접 mma를 배워보기전까지, UFC를 보는 재미를 몰랐습니다. mma를

    배우게 되어서 기초적인 기술들을 습득하고 mma의 어려움을 실감하고, 이 운동을 잘한다는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때야 비로소 UFC의 재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랩을 판단하는 기준을 명확히

    세워놓고 감상하면 훨씬 더 풍요로운 음악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으로 랩을 하고 있는데, 랩을 해도 뭐가 잘하는 건지를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불현듯 알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정말 모르겠습니다.

    오늘 지하철에서 J.Cole을 들으면서는, 곡 전체의 리듬을 맛깔나게 잘 구성해내는게 랩을 잘하는건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좀 추상적이더군요.


    아 참, 그리고 제가 재미있게 읽은 '뇌의 왈츠' 란 책에서는

    좋은 음악은 이거다라고 하더군요. '기대감의 충족과 배신이 적절한 음악'

    음, 이것이 적절한 기준이 될 수 있을까나... 이조차도 좀 막연하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아 시바 왤케 길어지지ㅡㅡ 미쳤나


    암튼 이거 한줄만 읽어주세요. 님들이 생각하는 잘하는 랩의 , 최대한 구체적인 기준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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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TP (2011-04-21 11:59:55, 219.250.24.**)
      2. 6분 모두 너무 감사합니다!!!

        두서없는 질문글에 너무 과분한 댓글들이 달렸네요 ㅎㅎ

        도움 많이 되었어요~ 이래서 리드머 오는듯

        특히 유로니모스님의 장문의 설득력 강하고 명확한 댓글, 도움 정말 많이 되었습니다^^

        모두 즐거운 음악생활 하시길~ㅎㅎ
      1. ITsou (2011-04-20 19:30:13, 211.197.97.**)
      2. '저는 어떤 활동이든지 그것의 규칙 혹은 기준을 명확하게 숙지했을때, 그 활동으로 얻는 즐거움이 극대화 된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말에 미치듯이 공감합니다 ㅎㅎ

        갠적으로 전 랙원이나 탈립처럼 플로우가 엄청 지멋대로인 그런 랩을 좋아하는데
        모든것이 상황에따라 달라지듯 이것도 절대적이진 않고 싸이같은 정박의 랩은
        정말 싫어하는데 jadakiss나 bun b는 좋아하고요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을때 히트곡이 되는거고 이 역시도 각각의 주관적 기준에 맞아 떨어졌으떄의 일이고요 근데 모두가 인정하는 명곡과 모두가 인정하는 졸작이 있는걸 보면 아주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거 같습니다
      1. Popeye (2011-04-20 18:38:31, 168.120.97.**)
      2. 랩은 듣는만큼 들린다고 생각해요..

        유로니모스님이 댓글 잘 달아주셨네요..
        제 기준은 랩을 그 비트에 맞게,주제에 맞게,그리고 라임에 맞게 재치있는 라이밍을
        하는 엠씨가 랩을 잘하는 엠씨라고 생각합니다.
      1. PROBE (2011-04-20 13:51:43, 110.9.134.**)
      2. '기대감의 충족과 배신이 적절한 음악'

        거의 정답 아닙니까?

        이것이 맬로디를 중시하는 음악에 들어간다면, 그 맬로디의 흐름에 대한 얘기가 되겠고

        랩이란 라임과 리듬의 음악이니 그 라임이 박히는 리듬과 라임을 풀어가는 방식(메세지도 포함되고..) 에서 기대감(패턴)을 충족시키다가도 배신하는 랩이 좋은 랩이 될 수 있겠다.. 라고 할 수 있겠죠


        남의 생각 빌려서 깝치는 거 같지만 음.. '기대감의 충족과 배신이 적절한 음악'이라는 말 듣자마자 그게 맞는말이다 싶어서요
      1. euronymous (2011-04-20 13:15:10, 183.102.139.***)
      2.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을 가르는 기준이란 과연 존재할까요, 존재하지 않을까요? 이 물음에 답이 안 나오는 이유는 물음 자체가 너무나도 추상적이기 때문이지요.

        일단 음악에 대한 기준이든 다른 것에 대한 기준이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준들 가운데, 지구와 인류의 탄생과 함께 인간을 위해 처음부터 필연적으로 존재했던 기준은 단 하나도 없다는 걸 짚어야 합니다. 지금껏 인간이 인간에게 혹은 인간이 아닌 것에 들이대 온 기준은 결국 어느 것이나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졌고,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곧 그 '기준'이라는 것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준이란 것이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요. 일단 집단 구성원들이 어느 한 기준에 따르자고 (법으로든 구두로든 암묵적으로든) 약속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 그 기준이란 어마어마한 구속력과 지배력을 지니게 되어 그 집단 구성원들의 몸과 마음에 두루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즉 기준 자체로서는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하지만, 기준은 그 기준을 믿고 따르며 수호하는 사람들 때문에 끊임없이 견고해지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재구축된다는 것입니다. 기준의 힘이란 곧 다수의 힘(혹은 다수의 힘을 등에 업은 권력자의 힘)일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한 얘기지요. 소수의 발언이 집단 전체에 작용하는 기준이 되려면 물리적인 힘(국가 원수)이나 정신적 파급력(종교 지도자)이 있어야 할 테니까요. 근데 둘 다 일상적인 힘은 아니지요.

        얘기가 좀 거창하게 흘러갔지만, 음악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음악이 아직까지도 사랑을 받는 이유는 뭘까요? 비틀즈가 영미권 최고의 밴드로 손꼽히는 이유는? 나스와 제이지가 랩의 달인이라 불리는 이유는? 물론 이 모든 물음들에 대해 멋들어지게 분석할 수도 있을 테고, 분석까지는 아니더라도 애호가들끼리 수다를 떨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떤 '기준'이 자연스럽게 정립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어떤 과정을 통해 도출된 기준이든 결국엔 다수의 취향에 맞고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기준일 뿐입니다. 그 자체로서는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아닙니다. 혈연이나 지연이 아닌 특정 음악 애호가라는 식으로 다소 느슨하게 묶인 집단이라고 해도 그 집단을 구성하는 다수의 의견에 따라 어떤 분위기나 흐름이 조성된다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결과니까요. 그건 그 자체로서 '현상'일 뿐입니다.

        문제는 다수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만들어낸 그 기준이라는 것을 그 기준에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동의하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억지로 강요하려고 할 때 생겨납니다. 이는 굳이 음악에만 한정해서 이야기할 것도 없이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지요. 하지만 음악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보자면,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을 이런 식으로 깔아뭉개고 무시하는 꼴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치켜세우는 그 음악은 하나도 좋지 않다. 쓰레기다.'

        '당신은 음악을 들을 줄 아는 귀가 없다.'

        '당신은 음악 속에서 체계적으로 작동하는 논리와 규범을 전혀 모른다.'

        이런 주장들 속에 담겨 있는 전제는 뭘까요? 바로 '음악에 적용할 수 있는 고정불변의 기준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준이란 애초부터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 위에서 제가 이야기했지요. 중요한 것은, 고정불변의 '기준'이란 없지만 다수에 의해 조직되면서 정론이 되다시피한 '기준'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수에 의해 조직된다'는 단서가 붙기 때문에 그 '기준'은 고정불변의 것이 될 수 없고, 따라서 그 기준이 시공을 초월하는 진리인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무척이나 단순하면서도 심각한 오류가 되는 겁니다.

        결국 그런 오류를 입밖으로 내미는 행위는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을 갈라 보겠다는 의도 말고 다른 미심쩍은 의도가 뒤섞여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지요.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을 가르는 보편타당하고 불편부당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어떤 기준을 들이대는 것보다는 차라리 다수의 기준과 소수의 기준을 비교해 가면서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끌어내려 할 겁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저 자신의 의견이 다수가 만들어낸 '기준'과 잘 들어맞는다는 사실에 취해 우쭐한 나머지 자신의 의견에 제멋대로 다수의 권위를 부여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소수의 기준 따위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불순한 의견이라 생각하게 될 수도 있지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저 그런 사람들 많이 봤거든요.

        기준이라는 것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이 어리석은 물음에 대한 현명한 대답은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인류의 탄생 이전부터 마치 신의 목소리인 것처럼 존재해 온 불변의 기준이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자기들끼리 만들어낸 기준은 분명 존재하고, 그 기준은 '사회적 약속'이라 해도 될 겁니다. 잊어선 안 될 것은 아무리 '약속'이라 부른다 해도 집단 구성원 모두가 그 약속에 동의할 필요는 없고 모두가 동의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각자의 마음에 서로 다르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음악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구요.

        그럼 제가 맨 처음에 던졌던 물음ㅡ'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을 가르는 기준은 존재하는가?'ㅡ은 이렇게 바꿔야 할 것입니다.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을 가르는 사람들은 누구이고 그들은 어떤 기준으로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을 가르는가? 나는 그 기준에 동의할 것인가?'

        음악을 들으며 사는 사람들은 참으로 많지요. 그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을(혹은 저마다 신봉하고 있을) 기준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쉽지 않은 작업을 대신 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음악 평론가들입니다. 좋은 음악이 무엇이고 나쁜 음악이 무엇인지에 대해 음악 평론가들이 웹진에 내거는 숱한 글들은 결국 음악에 대한 어떤 기준이 남한이라는 집단 내에서 지지 받고 옹호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청사진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음악 평론가라는 직함의 무게감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안전하게 가고 싶은 건지 평론가들 대부분은 큰 논란을 빚어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상식'적인 글을 써 내는 편이고, 여기서 말하는 그 '상식'이란 것이 바로 지금 이 시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혹은 이 시대 사람들이 구축해 온) 음악의 '기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음악에 대한 기준ㅡ그중에서도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다수의 기준'이라는 것에 대해 폭넓게 파악하고 싶으시다면 많은 사람들의 댓글을 읽어 보는 것도 괜찮지만 음악 평론가들이 지금껏 생산해 내 온 결과물들을 쭉 훑어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리드머 칼럼들을 비롯해 인터넷 상에 널려 있는 음악 평론들을 한번 정독해 보세요.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나 취향과 비교해 보고는 이 시대 사람들 대다수가 따르는 기준에 동의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면 됩니다.

        참고로 어떤 랩이 잘하는 랩인지에 대한 제 기준을 말씀 드리자면, 엠씨 자신이 표현하려고 하는 느낌에 가장 잘 어울리게 하는 랩이 잘하는 랩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이 엠씨가 나에게 전달하려는 정서는 뭘까?'라는 물음에서부터 시작하는 편이지요. 지금껏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얼마큼이나 하려고 하느냐도 따지는 편이지만 그 얘기까지 여기서 길게 하기엔 좀 그러네요. 제 의견이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1. killakim (2011-04-20 12:14:23, 219.252.184.***)
      2. 랩을 잘하는 사람들은 요즘 엄청 많지요
        최근에 officially missing you 리메이크한 긱스도 그렇고
        요즘 웬만한 언더 래퍼들 다들 랩은 잘합니다.
        다만 그런 혀 잘 굴리고 롸임을 때려박는 그런 테크닉 적인 면에 비해
        감성적인 혹인 진심이 와닿는 다던지 하는 면이 좀 떨어지지 않나 싶어요.
        리스너가 들었을 때, 아 정말 쟤한테 잘 어울리는 랩을 구사하는구나, 정말 저건 쟤 얘기가 맞는거 같구나 싶은 느낌을 줘야지
        되도 않는 어울리지도 않는 허세라던지 그런걸 어필하려고 애쓰는거보면 재능이 되려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1. Cres (2011-04-20 03:33:56, 122.35.109.***)
      2. 달릴 댓글들이 기대되는군요.
        저또한 정확한 기준이 없고 듣고나서 '와! 정말 잘한다!' 라는 생각이 들고 나서 주위 반응을 지켜보면 다들 느끼시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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