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프콘, 나도 X나 짱이라고 생각해
- Meth | 2010-03-25 | 10,789 Reads | 5 Thumb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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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은 데프콘 신보의 12번 트랙 '내가 X나 짱인 이유'를 참고 ※
'한국힙합은 가사가 70%다.'
나는 그렇게 말한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한국에서 힙합처럼 초보자가 손대기 쉬운 음악은 없지 않을까 싶다.
대학 힙합 동아리의 일원이 될 필요까지 필요도 없이 인터넷 서핑을 할 줄 아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중고딩 정도만 되도 웬만한 DAW 다운받고 샘플링 할 MP3 디깅하며
온라인 강좌 몇개 들으며 비트 몇개 만들고 랩해서 정글이나 힙플 자녹게에 올리는건
일도 아니니까.
다른 장르에선 이렇게 초보와 프로페셔널 뮤지션의 거리가 가까운 경우가 흔하지 않다.
록을 하려면 적어도 악기를 배우는데 꽤나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야 하고,
하물며 댄스음악을 하려고 해도 대형기획사에서 수년간의 연습생 생활을 해야 데뷔를 할까
말까.. 그런데 힙합은, 비트를 만들 필요도 없이 인터넷에 널린 inst. 다운받고 마이크만 있으면
누구든지 피타입이 말한 '동네 피씨방에선 최고의 emcee'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유독 힙합에선 유난히 인터넷 아마추어가 금방 프로가 되는 케이스가 흔하다.
xepy, san-e, swings, rimi 까지 나갈 필요도 없을 거다. 자녹게에서 준프로로 '데뷔'해 디지털싱글 내고 '언더그라운드 랩퍼'의 호칭을 사용하는 사람들 수만 매년 셀 수 없으니까.
이게 무슨 의미인가.
높은 접근성은 반적으로 그 장르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대충 샘플링하거나 대충 사우스 비트로 '들을 만 하게 찍는' 비트메이커가 정글/자녹게만 해도 넘쳐나고, 투포리듬의 '공식'에 의거해 무조건 라임을 스네어에 박아대는 랩이 난무하고, 라임은 돈처럼 다다익선이라는 '화나적' 철학에 기대 라임을 머신건처럼 뿜어내는 아마추어들이 이토록 넘쳐난다는 것은 - 그만큼 한국힙합이 <마음만 먹으면 개나 소나 만들 수 있는> 음악이 되어가고 있다는 현상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힙합을 논할때,
미국에서 요새 유행하는 트렌드를 잘 수용했느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려면 차라리 미국음악 듣지. 왜 오리지날 놔두고 이미테이션 듣는가. 이미테이션이라면 정글에도 쌓여있는데. 그럼 한국힙합에서 프로와 아마의 차이가 무엇인가. 어느 정도의 수준 차이? 그건 시간과 경험차이지 결코 실력 차이가 아니다. 어차피 믹싱, 사운드 - 그런 부분은 재능이나 실력보다는 돈빨이거든.
라임과 플로우도 분명 크고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이것도 한 뮤지션을 논할때 중점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4,5음절 라임 스네어에 딱딱 맞추는 아마추어 뮤지션들이 넘치는 지금 시대에서 10년전 모던라임즈 같은 랩은 의미가 없으니까. 플로우? 그것도 마찬가지다. 플로우를 라임과 동떨어진 서로 관계없는 개념으로 보지 않는 이상 - 전부 똑같이 라이밍을 하는데 플로우가 크게 달라질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가사를 제외한 '랩핑' 자체로만 평가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단 이야기다. (이게 내가 산이를 비판하는 논점이지만, 산이 얘기까지 하다보면 글이 너무 글어짐으로 -_-...)
...
제목은 데프콘인데 -_- 왜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가.
그건 위의 문제점들이, 곧 데프콘에 있어선 내가 그의 팬인 이유들이 되기 때문이다.
가사의 진정성..
이것을 빼놓으면 이제 힙합은 다른 음악과 경쟁을 할 수가 없다.
사운드 적인 측면에서 이미 가요는 힙합의 모든 것을 흡수했다. 랩도 어느 정도 한다.
내가 아직까지 힙합을 듣고, 애정을 갖고 있는 이유도 힙합은 다른 장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솔직함, 진정성 - 1:1, 인간대 인간으로 소통하는 그 특유의 장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데프콘의 <마초 뮤지엄>이 바로 그런 앨범이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데프콘은 늘 이랬다.
딱히 비트를 잘 찍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늘 평타 정도라고 생각했을뿐.
랩도 딱히 잘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다만 거슬리지 않게, 가사를 잘 살리며 라이밍 한다고 생각했을뿐..
얼마 전 리드머에서 YG와 지드래곤을 비판한 똑같은 논점, 시그니처 사운드가 없고 이것저것 유행하는 혹은 상업적 흥행할만한 사운드를 표방한다는 점에서 이 앨범을 똑같이 비판할 수도 있었지만 - 그러지 않는 이유는 데프콘이란 뮤지션의 강점이 (저들과 달리) 거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투포리듬을 얘기하기 전에
엄마 아빠한테 24만원을 갖다주고
효자 소리를 들어야 할때
힙합에 공식이 어딨냐 이 씨발놈아들아
형처럼 소신있게 랩해 다 알아준다"
- 독고다이 中
좋은 음악, 잘 만들어진 곡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mv는......
하지만 저 곡에서는 일렉트로니카, 록, 가요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지르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저게 없다면, 사운드와 화성으로 힙합이 다른 장르와 과연 경쟁할 수 있을까. 난 못한다고 본다.
담임샘과 교과서만 보다가 동네 형, 삼촌에게서 듣는 비속어적 rant와도 같은 쾌감.
유식하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지만 여과없이 살아있는 날 것, 生고기와 같은 솔직함. 'Raw'
이것은 저 한곡만이 아닌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요소다.
<형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는 더러운 힙합씬에 관해, <나는 못 떴어>에서는 명문대도 대형기획사도 아닌 자신의 신세한탄에 관해, <그녀는 낙태중>에서는 bj에 관해, <집에 가지마요>에서는 분명 경험에서 우러나온듯한 작업담에 관해, <sexmeifyoucan>에서는 역시-_- 리얼한 섹스리스 부부 이슈에 관해.....
'인생을 가사에 감는, 가식 떨지 말고 그냥 막 후려 갈기는' 그의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트랙, '내가 x나 짱인 이유'에서는 자뻑의 끝을 보여준다. 왜 자뻑의 끝인가.
틀린 말이 없으니까. 누구들처럼 나는 옷을 잘 입고(막상 패션 테러리스트에 가까우면서)
라임이 끊임없이 계속된다는 -_- 그런 자뻑의 수준이 아니다.
"한곡에 1000만원을 받아 처먹는 작곡가를 안만나도 곡 잘 나와줘,
sex drive 1,2, 소멸, 플루토늄, 동창회, 두근두근 레이싱, 기러기, 아버지,
many many more, 다 내가 만들었지
... 원없이 보여줘, 끝없는 얘기들, 세월이 흘러도 내 노랜 남겠지."
- 내가 x나 짱인 이유 中
듣고 보면 틀린 말이.. 없다.
'아버지'같은 힙합에 ㅎ자도 모르는 사람들까지 눈물 흘리게 만든 곡들,
떡랩의 끝을 보여준 섹스 드라이브 같은 곡들, jk와 간지나게 '발라버린' 플루토늄 같은 곡들,
그리고 'city life', '길'처럼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된, 자양강장제같은 곡들..
그걸 다~ 자기가 만들었다, 그래서 내가 존나 짱이다 - 라는데 -_- 무슨 말을 하리오..
-_-
............
"ok, 인정하겠지.."
- 내가 x나 짱인 이유 中
이번 앨범이 명반이라고도, 사실 데프콘의 디스코라피에서 특별히 뛰어난 평가를 받을 만한
작품이라고도 생각되지 않지만... 그래도, 앨범을 두세번 돌리고 역시 이래서 힙합을 듣는다..는
느낌을 준 앨범이었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주관적 취향이겠지만, 그래도,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데프콘이란 랩퍼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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