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orean] UMC 공감.
- crave4you | 2010-11-26 | 11,937 Reads | 8 Thumb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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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탓던 시외버스
한시간 반을 달려 너를 만나러 갔어
20분 늦었다며 웃으며 팔짱끼던
어설픈 눈화장의 너는 지금 잘있니?"
UMC - 매지리 가는 버스
"나와 너의 부모님을 생각해.
그래도 네가 하는일이 중요하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
우리는 헤어졌다.
그녀는 부모님과 나보다
그녀가 하는 일이
더 소중했었나 보다.
어제는 친구 하나가 메신저로
내게 물어봤었다.
"너 군대 어디 갔다 왔어?"
"응 나 구로공단 주식회사 XX 휴대폰 자재공급사단"
내가 그녀를 본 곳은
내가 군복무 대신 재직하던
휴대폰 생산 라인이었고
내가 자재를 가져다 주면
그녀는 조립을 하는 일을 했다.
그녀는 경주에 있는 대학을 다녔고
방학기간 알바를 하러
구로공단에 와서 일을 했다
지금은 구로디지털단지라는
어색한 이름으로 변했고
굴뚝에서 연기를 내뿜던 공장은
아파트형 공장으로 변했지만
그곳은 아직도 여전히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뭉쳐
매일같이 '수출의 다리' 를 건너고 있다.
당시 노동자들 대부분은
40대 이상의 아주머니나
중국,필리핀에서 건너온 처녀들이었고
그녀와 마찬가지로
방학 기간을 이용해
알바를 하러 온 학생들도 있었다.
그 아이가 다른 노동자와 다른 모습이었던건
당시 홍대에서나 볼만한
'레게머리' 를 하고 있었고
나는 자연스레 그 아이에게
음악을 좋아하냐고 물을 수 밖에 없었다.
몇번의 대화와 몇번의 식사.
몇번의 이메일을 통해
우리는 만남을 가졌고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할때
그녀는 개강을 하여
경주로 내려갔다.
말로만 듣던 장거리연애가 시작 된것이다.
요즘같이 주5일제가 시행된것도 아니고
핸드폰의 수요가 폭발적이던 시기.
공장은 지옥같은 스케쥴을 소화해야 했다.
이틀내내 집에 못들어가는 경우도 있었고
거기에 대항 할 수 있는 노조도 없었다.
그아이를 못본지 3개월 정도 지나고
딱 한번.
딱 한번만 경주행 버스만 탈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할때
그녀가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단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경주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
한총련에 가입하여
여러 활동을 하며 지냈고
수배 직전까지 갔다는 소식을 내게 말해 주었다
"나와 너의 부모님을 생각해.
그래도 네가 하는일이 중요하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사실 umc 의 매지리 가는 버스와
내 이런시절이 맞물리는 공감은 크게 없다.
다만 umc 가 나와 비슷한 어린 시절에
탓을 시외버스를
나도 단 한번이라도 탈 수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어
그의 음악은 아프다.
그 아이는 내게 즐겨듣던 음악들을
씨디로 구워 준적이 있다
'청계천8가 , 전화카드한장' 등이 실린 ..
그 씨디는 아직 내 씨디 서랍장에서
20대 추억의 향기를 뿜어가며
먼지가 쌓여 가고 있다.
"너는 지금 잘 있니?"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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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현 (2010-11-26 14:40:30, 210.204.173.**)
- 좋네요.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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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정약국 (2010-11-26 14:02:48, 203.226.218.*)
- 좋은 글 감사.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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