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ll] 피드백이라는 것에 대한 우울한 결론
- euronymous | 2012-08-31 | 11,249 Reads | 7 Thumb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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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제 제기
너나 할 것 없이 피드백이라는 말을 쓰다 보니 말 자체의 뜻이 희미해져 버리고 있는 듯합니다. 피드백이 소통이 아닌 강요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건 아닌지, 정작 소통을 위한 장을 마련하기 위해 누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2. 피드백을 피드백이라 부를 수가 없다
피드백은 굳이 사전적 의미를 갖다붙일 필요도 없이, 그냥 '소통'이에요. 추상적인 것이든 구체적인 것이든 물리적인 것이든 서로 오고가는 것이 있어야 소통이 되는 거지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뮤지션들이 내놓은 결과물들에 대한 온갖 말잔치들은 넘쳐 나는데 정작 뮤지션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창구는 어디에도 없어요.
각 웹진에 가끔씩 올라오는 인터뷰? 그건 미리 작성된 질문에 대한 응답일 뿐이지 비평가들이나 리스너들의 행태에 대한 본인의 의견이라고는 하기 힘들지요. 그나마 자주 올라오지도 않아요. 트위터나 페이스북? 여기에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한방에 매장당하기 일쑤인데 정신 나가지 않고서야 뮤지션이 선뜻 민감한 내용의 글을 올릴 리가 없지요. 일반 게시판?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다를 게 없어요. 이미지 관리 하지 않으면 욕만 처먹고 앨범 판매량도 뚝 떨어지니까요.
그러고서는 뮤지션들이 자기 좋은 말만 들으려 한다는 볼멘 소리가 튀어 나옵니다. 물론 뮤지션들도 사람이니 자기 작품에 대해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을 수도 있겠죠. 그건 아마 뮤지션 본인들도 충분히 수긍을 할 거예요. 하지만 비평가들이나 리스너 역시 뮤지션들이 고분고분 모든 의견들을 수용해 주길 바라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 아니, 보일 때가 있는 게 아니라 대부분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요. 왜 그러는 걸까요? 피드백은 분명 소통이고 소통이란 분명 오고 감이 있어야 하는 건데...
3. 뮤지션들의 목소리가 없다
아무래도 대중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시장에 내놓은 자기 작품이 시중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궁금하겠지요.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기 위해서는 그들의 감상 소감을 듣고 다음 창작에 참고를 해야 할테니까요. 더 많이 팔고 싶고 더 많은 박수를 받고 싶은 건 대중 음악 뮤지션이라면 거의 다 비슷할 거예요. 그런데... 뮤지션들이 그런 입장이다 보니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뮤지션이라면 입 닥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비평가들은 원래 글쓰기로 모든 걸 물어 뜯는 인사들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음악을 듣는 리스너들은 자신을 창작자의 입장이 아니라 비평가의 입장에 두기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창작을 하는 건 아닌데 음악을 듣고서 나름대로 생각은 하니까 어떻게 보면 모든 리스너들은 아마추어 비평가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너도 나도 비평가 노릇을 하려고 하니, 또 그런 태도가 진정한 '리스너'의 태도라는 인식이 널리 공유되다 보니, 작품이 하나 나오면 다들 그걸 도마 위에 올려 놓고 해부하고 찢어발기고 등급을 매기려고만 하지 정작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고민하지 못합니다. 비평이라는 게 단순히 돼지고기에 도장 찍듯 별점을 매기거나 가치를 측정하는 것으로만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정말 진부하기 짝이 없지요. 뮤지션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은 어디에도 없으면서 오로지 뮤지션들을 향한 목소리들만 넘쳐 나고 있는 판국인 거예요.
이런 물음을 던져볼 수 있지요. 수많은 얼치기 리스너들은 게시판에든 댓글란에든 자기 맘에 들지 않는 뮤지션은 마구 조롱하고 헐뜯고 비판하는데, 왜 뮤지션들은 같잖은 리스너들한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까요? 생각해 보면 되게 웃겨요. 공인이니까? 작품을 시장에 내놓은 일개 뮤지션이니까? 이미 뮤지션의 손을 떠난 작품은 더 이상 뮤지션의 것이 아니니까? 다 개소리들이지요. 뮤지션들은 앨범 판매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경솔한 행동을 자제하고 있거나, 그런 시시껄렁한 잡소리들을 일부러 가까이 하고 있지 않을 뿐입니다. 멍청한 녀석들 몇몇한테 법적 조치라도 취해 봤자 결국 돌아오는 건 '뮤지션은 오직 음악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헛소리들이거든요. 판매량은 뚝뚝 떨어질 테고.
리스너들은 그렇다 쳐도, 뮤지션들은 비평가들의 글에 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요? 어떻게 보면 리스너들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비평가들이 무슨 소리를 하든 신경 쓰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너무 현학적인 글만 써 대는 비평가들의 말은 신경 쓰고 싶어도 도저히 알아 먹을 수가 없겠지요), 괜히 비평가들 잘못 건드렸다간 리스너들 몇몇 혼내주는 것과는 달리 엄청난 피해를 볼 수가 있으니 몸을 사리는 것일 수도 있어요.
음악 전문이라 내세우는 웹진에서 착착착 매기는 평점의 위력은 우리 생각보다 엄청납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음악들을 일일이 찾아 듣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샘플을 들어보든 앨범 정보를 읽어 보든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어떤 앨범에 먼저 시간을 투자할 것인지를 결정 짓는 조건들 중에는 음악 비평가들의 '전문적'인 조언이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평점 10점 만점에 9.7점을 받은 앨범과 6.4점을 받은 앨범이 있는데 지금 딱 한 장밖에 들을 시간이 없다면 사람들은 어떤 앨범을 먼저 들어볼까요? 대부분 9.7점짜리 앨범을 고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구요. 비평가들이 대놓고 세뇌 공작을 펼치는 일은 없지만 사실 그럴 필요도 없는 게 우리들이 스스로 비평가들의 의견을 어느 정도씩 좇고 있거든요. 사정이 그런데 뮤지션들이 공신력 있는 매체의 비평가들한테 함부로 들이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4.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뮤지션들이 비평가들의 글에 동의를 해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면, 결국 우리는 둘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할 겁니다.
뮤지션들이 비평가들에게 등을 돌리고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도록 놔두느냐,
아니면 비평가들이 뮤지션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장을 어떠한 형태로든 마련하느냐,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면 첫 번째 길로 가게 될 가능성이 크죠. 대부분의 대중 음악 비평가들은 음악에 대한 해석에만 몰두하며 오로지 그것만이 비평의 단초이자 핵심이라 생각하겠지만, 창작이 이루어지기까지 뮤지션의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고 거기에 어떻게 공명할 수 있는지를 무시하는 비평은 결국 현학이나 지적 속물주의로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그런 비평만 접해 온 사람들은 비평이란 이런 것이어야 한다는 틀 속에서 절대로 헤어나지 못해요.
뮤지션들이 힘을 모으든, 아니면 비평가들이 솔선수범해서 지면을 마련하든, 다양한 뮤지션들의 걸러지지 않은 생생한 목소리는 바깥으로 끄집어내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비평가든 리스너든 모두가 학교 선생님이 되어 뮤지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작 뮤지션들이 우리들에게 원하는 건 뭔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피드백이란 말은 걸핏하면 들먹이면서 뮤지션에게 겸허한 태도를 갖출 것을 강요하지요. 이건 불공평합니다. 상황이 이러니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은 뮤지션일수록 점점 오만해지는 거예요. 막강한 힘을 가진 대중이 자기 편이니 겁날 게 없지요. 그러다 보니 음악도 웬만큼 팔릴 만큼만 무난하게 만들고...
뮤지션들도 음악으로만 승부하겠다는 발상을 버리고 온갖 논쟁이 난무하는 속으로 걸어 나올 필요가 있습니다. 피드백이 뭔지도 모르는 것들이 피드백이 어쩌고 주절거리고 있다면 진짜 피드백이 뭔지 몸소 보여줄 필요가 있으니까요. 비평가의 동의할 수 없는 주장엔 치열하게 반박도 하고, 마음 맞는 리스너들과는 이모티콘 써 가면서 즐겁게 수다 떨고, 예의가 뭔지도 모른 채 설치고 다니는 악플러들은 법정에 세우기도 하는 거예요. 그래야 피드백이고 소통이죠. 그런데 비평가들과 리스너들이 한통 속이 되어 뮤지션의 작품에 값을 매기고 가치를 평가하는 걸 피드백이라 부른다면, UMC가 이런 말을 하겠지요. '내가 졌다 콘돔을 쓰면은 진정한 sex가 아니다.'
비평가들은 비평에 대한 비평, 즉 메타 비평 작업을 병행하는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거예요. 비평은 수없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이 모든 것에서 추출되는 진정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비평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할까? 비평가와 작품이라는 두 주체만을 이 세상 모든 것에서 따로 떨어트려 놓고 고민을 진행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결국 사변적인 쪽으로 흐르는 것은 아닐까? 작품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 창작자의 마음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들은 우리게에 무엇을 주려고 그 작품을 만들었을까? 이렇게 비평가가 자기 자신에게 던져 볼 수 있는 물음들은 많죠. 그리고 자신이 움켜쥐고 있는 모든 권위들, 필자라는 이름과 글쟁이라는 자존심과 비평가라는 자의식을 훌러덩 벗어 던질 수도 있어야 해요. 그렇게 된다면 글 하나 웹진 대문에 달랑 게시해 놓고서 무슨 댓글이 달리든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든 나 몰라라 뒷짐만 지고 있기 일쑤인 대부분의 비평가들의 태도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겠지요.
리스너들은? 딴 건 필요없습니다. 컴퓨터를 끄는 거예요. 컴퓨터를 끄고 MP3나 오디오를 켜세요. 컴퓨터로 음악을 들어야 한다면 딴 짓 하지 말고 그냥 음악만 듣는 겁니다. 그러고서 뭔가 음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생겼을 때 인터넷에 접속하면 되는 거구요. 어줍잖게 비평가 흉내를 내면서 온갖 비평문들을 게걸스럽게 찾아 읽으며 음악을 해석해 보려 노력하기 전에 이 음악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을지, 창작자는 어떤 마음으로 이 음악을 만들었을지 헤아려 보는 겁니다. 별점따위는 사실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매길 수 있어요. 자기만의 기준을 세우는 게 어렵지 기준 하나만 뚝딱 만들어 놓고 나면 그 어떤 음악이든 저울에 올려 놓은 것처럼 저절로 무게가 측정이 되지요. 그런 건 비평이라 불릴 자격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음악을 매개로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 볼 것인가이지, 자기 자신이 뛰어난 글쟁이인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리스너들은 그걸 잊지 말고서 비평문을 읽을 때마다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해요.
5. 우울한 결론
개나 소나 들먹이는 피드백이라는 말이 문득 너무도 짜증이 나서 오랜만에 각 잡고 글을 썼습니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어떤 사람들은 니가 그렇게 잘났느냐고, 모두의 머리 꼭대기에 앉은 것 같은 오만함은 집어 치우라고 이야기하겠지만 제가 진짜 오만하다면 애초에 이런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겁니다. 오만한 사람은 자기 눈에 거슬리는 건 조용히 무시해 버리는 법이거든요. 저는 피드백이라고 누구나 쉽게 지껄일 수 있으면서도 정작 뮤지션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공연장에 가면 들을 순 있겠죠?) 불편한 현실이 싫었을 뿐입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뮤지션의 한마디 한마디를 마치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정작 그 모든 발언과 잡담들은 개별적인 것으로 갈가리 쪼개져 사이버 공간을 떠돌고만 있습니다.
비평가들은 누가누가 더 똑똑하게 해석하나 경쟁이라도 하는 듯한 글만 써 대고, 리스너들은 겉으로는 주체적인 것처럼 굴지만 알고 보면 기존의 틀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뮤지션들은 아예 귀를 막고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들에 등을 돌리거나 혼자 속으로 끙끙 속앓이만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런 꼴이고 보니 남는 것은 결국 돈이지요. 벤츠 끌고 금목걸이 차고 연봉 억을 돌파하는 놈이 큰소리 치는 세상입니다. 음악이요? 뮤지션들도 돈맛에 젖다 보면 쉽게 내다버리는 게 음악인데 리스너들이야 어련하겠습니까. 이런 세상에서 음악을 가지고 미련하게 돈도 안 되는 글을 쓰고 있는 비평가들이 오히려 대단해 보일 때도 있습니다.
제가 쓴 이 글은 아마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자존심 하나로 버티고 있는 비평가들은 앞으로도 계속 지금과 별 다를 것이 없는 명판결 비평문을 쓸 것이고, 대부분의 리스너들 역시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하루 종일 시달리다가 남는 시간에 음악을 들으며 인터넷에 지금과 별 다를 것이 없는 분석적인 감상문을 쓰겠지요. 뮤지션들도 자기가 만드는 음악을 요새 트렌드에 얼마큼이나 맞춰야 할지 지긋지긋한 고민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고민의 결과에 따라 피드백을 원하는 뮤지션과 피드백을 원하지 않는 뮤지션이 갈라지겠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그랬듯 인터넷 상에서의 피드백이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뮤지션들은 인터넷에 올라오는 수많은 음악 감상문들과 비평문들이 자신을 위한 피드백이라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뮤지션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한, 그리고 뮤지션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없는 한, 피드백이든 소통이든 뭐든 죄다 꿈 같은 소리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뮤지션들은 비평가와 리스너가 주물럭거리는 대로 빚어지는 찰흙이 아니라는 것을 뮤지션들 본인이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어 보이는군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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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uronymous (2012-09-02 03:13:46, 183.102.139.**)
- 제가 이번 일로 알게 된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요.
첫번째는 적잖은 사람들이 자신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비평가의 입장에 놓고 생각하길 좋아한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rock 음악 중심으로 흘러온 기존의 국내 평단에서 숱하게 찾아볼 수 있었던 지독한 보수성이 국내 흑인음악 평단에도 버젓이 존재한다는 것이었어요.
이제 저도 이곳에 올라오는 칼럼들을 좀 가려 읽어야겠어요. 다 읽자니 괜히 시간만 버리는 것 같네요. 여기 안 들어오는 게 상책이긴 한데 그러기는 더 힘들고....
아마 이번 일도 가을이 오기 전에 금세 잊혀져 버릴 것이 뻔한데
제가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뮤지션들의 속내가 더 섬세하게 드러나는 기획을 뜻있는 비평가가 좀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프라이머리 말고도 비슷한 생각을 지닌 뮤지션들은 아마 알고 보면 더 많을 걸요?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글의 힘은 정말 무서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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