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ll] 씬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두서없는 글.
- 엄동영 | 2011-04-14 | 10,710 Reads | 3 Thumb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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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글을 쓰는거 같습니다. 최근 꽤 오랫동안 눈팅만 하면서 덧글 한두개 쓰는 선에서 활동 했는데, 이렇게 직접 글을 쓰려니 많이 떨리네요. 모자란 부분이 있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름대로 힙합키드로 이것저것 두서없이 주워들으면서 드디어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생각은 어리지만, 갑자기 늘어나 버린 책임탓에 부쩍 어른이 된 기분입니다. 아직 애든 이제 어른이든 어찌됐든 여전히 힙합을 듣고 있고,오늘은 그에 관해서 한마디 써 보고자 합니다.씬은 항상 뮤지션들과 리스너들이 서로에게 자신의 생각을 - 그게 어떤 형태가 되었든 - 전달하면서 성장합니다. 가끔 그게 지나칠 경우에는 오히려 '퇴보한다'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씬이라는 집단에 있어서 퇴보는 없습니다. 우리는 두번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제자리에 머무느냐 진일보 할것이냐의 차이가 존재할 뿐입니다. 가령 꽤나 오래전 힙합은 무조건 먹통에 하드코어가 최고였던 시절이 있습니다.그 이외의 사운드는 모두 '잡종 힙합'으로 불리우며 '계집애들이나 듣는 가요'로 취급 당하며 씬의 흐름은 정체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그러한 생각들은 바뀌기 시작합니다. 시절이 변하면서 사람들의 의식도 자연스레 변했고, 그에 따라 추세도 변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힙합을 한다'라는 표현만큼이나 '음악을 한다'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현재 우리는 가요같은 힙합, 힙합 비슷한 가요를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도저도 아니게 섞인 것이지만 정반합에 따르자면 이것은 합에 해당하는 발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즉, 진일보 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힙합을 포함한 모든 문화는 다양한 문화간의 충돌을 통해서 합에 해당하는 결론을 어떤 식으로든 도출하게 됩니다. 너무 길게 흘러가는거 같은데 딱 잘라 요점만 말하자면, 이전에 투쟁의 대상이 되었던 어떤 문화가 다시 돌아온다면 (그것이 또 논란이 된다면) 그것은 퇴보의 개념이 아니라 집단적인 회상의 개념이 되는 것입니다. 즉 현재 씬에 몸을 담고 있지만 이전의 씬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추억을 다시 한번 재현해보고자 작품에 그것을 투영하는 작은 과정들이 존재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작은 흐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큰 흐름은 묵묵히 흘러갈 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유행에 민감하고 현재 씬에 자신을 전적으로 투영하고 있는 사람들은 일부가 만들어내는 작은 흐름조차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보수꼴통',혹은 육두문자를 섞어서 그들을 비난하곤 합니다. 그들의 상식선에서는 유행(혹은 자신의 취향)과 관련없는 그 어떤 형태의 시도도 옳지 않음으로 규정됩니다. 심지어는 그 약간의 과정조차도 감히 퇴보라고 표현합니다. 과연 이게 씬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학창시절 모두 한번쯤은 문화와 관련된 수업을 들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어느 문화수업이나 꼭 '상대주의와 다양성'에 관련된 내용이 나옵니다. 문화는 시공간에 따라서 변화할 수 있기때문에 절대불변적인 것은 없으며 1:1로 비교 할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또한 문화수업에서는 인류의 보편적인 어떤 것이 존재하기에 어떠어떠한 상황에서의 특정 행동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자, 여기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씬을 대입해봅시다. 집단적 회상의 형태로 나타나는 과거에 대한 오마주와 그 시도가 퇴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과연 유행의 흐름이 절대적이고 인류 보편의 가치라는 것에 동의할 수 있을까요? 아마 그렇지 못할 겁니다. 그들 역시 상대주의와 보편적 가치를 혼용하고 모순에 빠진 것입니다. 취향은 다를 수 있다고 말하면서 절대적인 가치가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이미 모순을 범한것이지요. 그들의 생각은 그 어떤 쪽의 이론으로도 만족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유행을 좇는 사람들 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집단적 회상자들 중 일부도 과거의 가치를 절대시 여기며 현 시류를 비아냥거리고 '자본에 지독히 영합하는 매춘행위'라고 비난을 퍼부으며 과격한 언행을 보입니다. 이것도 역시 모순을 범한 셈이 됩니다. 문화는,좁혀서 음악은 음악적 가치관의 무게중심이 어느쪽으로 향해있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성향을 가지는 분야이기에 자신의 취향이 어느 쪽에 있든 이미 그 자체로서 모순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치우친 사고 방식을 가져서는 안된다라고 배우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모순을 줄이고 서로다른 의견의 접점을 찾을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도출할수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단순히 '우리는 취향이 다르니까 따로 듣고 신경을 끄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발전이 아니라 정체에 해당하는 태도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우리는 서로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순간 접점이 보이기 시작하고 우리는 그것을 향해 무한히 수렴하는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태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문화파트 어딜가나 단골로 등장하는 개고기 문제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제시를 하면 '지들이 안 먹으니까 그러지.','우리는 신경끄고 그냥 먹으면 된다.' 심지어는 '니들은 숲속을 거니는 우리의 친구 달팽이를 먹으면서 왜 개고기 가지고만 뭐라고 하냐'는 식의 반응을 보입니다.
언젠가 로버트 할리씨와 이다도시씨가 이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이 : 오우, 강아지를 드신다고요?
로 : 개고기예? 맛있기만 하든데예?
이 : 오우 끔찍해요. 그걸 어떻게 먹어요?
로 : 지들은 달팽이에 거위간 꺼내 묵으민서 뭐라꼬 합니꺼.
이 : 오우 강아지는 우리의 친구잖아요!
로 : 달팽이도 우리의 친구지예~우리에게 이런 평행성을 긋는 태도 필요없습니다. 우리가 개고기를 먹는 이유와 도축방식을 합당하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 그들이 달팽이와 강제로 부풀린 거위간을 먹는 이유를 합당하게 설명받고 이해하는 것이 발전을 위한 태도입니다.
쓰다보니 이야기가 산으로 간듯 하네요. 정리하자면 더 이상의 신구, 퇴보와 진보에 관련된 논의는 무의미 하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진보를 위해서 나아가고 있고 씬 또한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서로를 물어뜯는 어금니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밥을 떠먹여 줄 수 있는 숟가락을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길고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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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훈 (2011-04-15 22:07:26, 58.143.27.***)
- 잘 읽었습니다. 핵심은, 퇴보란게 존재하느냐 인 것 같은데, 생각해볼만한 개념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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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F (2011-04-14 22:46:03, 211.209.208.***)
- 힙합과 가요의 나름의 장점들을 모두 수용함으로써 '발전'을 일궈냈다고 써놓으셨는데, 그 발전이라 함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대중과 소위 힙합 뮤지션이라 불리는 작자들의 힙합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했나요? 힙합음악의 퀄리티가 올라갔나요? 가요의 퀄리티가 올라갔나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반합을 거론하셨는데, 요즘 아무리 퓨전요리, 퓨전한복, 퓨전주점이다 뭐다 하면서 합체의 욕구가 하늘을 찌른다지만, 합칠 껄 합쳐야 퓨전이고 발전이죠. 힙합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터무니없이 부족한데 그걸 배우기도 전에 다른거랑 함부로 마구 섞어놓고선 무슨 하이브리드다, 발전이다 라는 거창한 말들을 늘어놓으시는 건지요. 대한민국이 해야될 것은 힙합 문화 발전시키고 힙합음악 질좀 높이고, 가요씬에서 실력없는 광대들 다 폐기처분 시키는 것입니다. 독립적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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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rome (2011-04-14 18:22:38, 222.109.121.***)
- 무슨 말인지 잘 읽었습니다.
논지와는 관계없는 말일 수도 있지만 요즘은 씬이 퇴보했다는 말이 씬의 퀄리티가 떨어졌다기 보다는 씬에 속한 사람들이 순수성을 잃어간다고 전 받아들여지네요.
이런 부분에서 많은 해석이 존재하는데 그것부터 명확히 하신 점은 잘 하신 거라고 판단되네요. 어쨌든 저의 해석은 저렇다는게 두서없는 댓글의 결론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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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동영 (2011-04-14 14:55:34, 165.229.56.***)
- MH님//허섭한 글인데도 좋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나 글재주가 없다보니 주장에 허점이 많이 보였군요.
빈약할지 모르겠지만 진보를 향하고 있다라는 것의 근거를 들어보자면
글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저희에게는 딱 두가지 길만이 존재합니다. 정체와 진보. 예전의 흐름과 떡밥을 가지고 싸움을 하든 진지한 토론을 하든 제 주장에 따르면 퇴보란 없고 언제나 정체나 진보 둘 중 하나라는 겁니다. 고로 아무리 더뎌도 우리는 끝없는 정체상태에서 언젠가 한발짝을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있고, 그를 씬은 항상 각종 의견과 피드백을 공급받으면서 '꿈틀거린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가요같은 힙합, 힙합 비슷한 가요란 것은 우리가 과거 한가지 흐름만을 힙합, 나머지는 가요라고 이분법 적으로 바라보던 시각에서 벗어나서 힙합과 가요의 나름의 장점들을 모두 수용하며 글에서 밝혔듯이 '힙합함이 아닌 음악함을 이야기'하는 시대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즉 의식의 성장이 가져온 장르간 하이브리드가 서로가 가진 배타성을 허물고 서로가 가진 장점들을 수용해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합'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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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H (2011-04-14 13:28:19, 59.16.120.***)
- 잘 읽었습니다ㅎㅎ 그런데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진보를 위해서 나아가고 있고.." 이와 관련된 근거를 제시해주시면 더 좋았을텐데요. "가요같은 힙합, 힙합 비슷한 가요" 가 왜 '합'인지 솔직히 잘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글쓴분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겠지만, 이 글은 자칫 '좋은게 좋은거..' 류의 주장으로 읽힐 소지가 있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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