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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엠씨관련한 논쟁들을 읽다가 궁금해서 질문합니다
    손명환 | 2010-11-10 | 9,258 Reads | 3 Thumb Up

    전제로

    저는 유엠씨의 음악 (1집)을 정말 많이들었어요. 그사람만쓸수있는 가사가 분명 있고, 그 가사는 아주진솔하면서도 상투적이지도않음을 인정하며. 유엠씨는 분명 재능있는분이라고 생각하고 나름의 가치가있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그가치는 저에게 힙합으로써의 가치가아니고 음악,혹은 문학에서 이해되는 가치이구요)


    질문입니다.

     

    1.많은 한국의 흑인음악 리스너들이 해외 힙합의 가사를 100퍼센트 알아듣는다고 생각하진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라킴의 팬이있고, 에미넴의 팬이있고, 리드머가 존재할 수 있는, 근본적으로 우리 한국사람들이 가사와 분리된 랩자체에서 재미를 느낄수있는것은,

    랩이 랩 자체로 고유한 악기로써 위상을 가지고 있기때문입니다.

    저한테 미국 힙합은 조금 다를수있겠지만,
    제가 일본힙합, 독일힙합, 브라질힙합,심지어 친구가 사온 세네갈 힙합까지 즐길수있는건
    다름아닌 랩의 악기로써의 위상덕분이거든요.

    쉽게 이야기하자면

    우리조상들이 꽹과리 장구치면서 느꼇던 신명남? 얼쑤?? 의 흥취와
    우리가 말하는 랩이 그루부로써 기능함과 그 표면적 질료는 다르겠지만 본질적 형상은 같다는 것입니다.

    (저는 본토랩자체의 고유한 비유라던가 멋들어진 PUN들
    "I Anita Baker now she caught up in the rapture" 같은것들 ㅋㅋㅋㅋ
    은 분명 엄청난 재미를가지고있고, 그 가사적 요소를 완전히 이해하지못하면, 힙합을 더 본질적으로 이해하는데 어느정도는 장애가 될수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본질적인건  아니라고 봐요.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못한다고 외국힙합을 안듣는건, 너무나도 슬플수 있다고 생각하구요)

    A. 리드머에서도 (외국분들이 계시긴하지만) 아마 유저분들의 90퍼센트는 외국힙합의 가사를 다 이해하고 들으시는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걸 전제로 놓을께요.


    질문1.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저처럼 외국힙합을 즐기시는건, 랩이 악기로써 기능함이 본질적인 이유라는데에 동의하시나요?
    질문1.1- 질문 1에 부정적인 대답을하신분들께 여쪄보고 싶은건데요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비트라던가 멜로디혹은 해석된가사에서 감동을 느끼고 힙합을 좋아하시는게 맞나요?
    (예로들자면 투팍이 했던 랩자체보다, 투팍의 랩가사라던가, 그사람의 행적이라던가 이런것에서 감동을 더 느끼신분들이있겠죠)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기술적으로 훌륭한랩=하고싶은말이 잘되(기만하면되)는랩으로 이해하시는게 맞나요?
    (혹은 기술적으로 훌륭한랩은 존재할수없고, 단지 개인의 취향에 따라 그 음악의 좋고 나쁨이 결정된다 로 이해하시는게 맞나요???)

    질문2.
    랩을 악기자체로 인식하시는분들중에, 그리고 그 악기가 어떤식으로 연주되는지 이해하신분들중에
    (말은 어렵지만 무슨말이신지 아시죠? 대충 투포리듬이라던가, 씽코페이션이라던가 하는것들 사실 본질적으로는 재즈 드럼이 솔로퍼포먼스할때 리듬감을 형성하는것과 아주 아주 흡사한 측면이 있죠)


    유엠씨팬분들이 있으신가요?, 있으시다면 유엠씨에게서는 그런 리듬적 이해로 접근하시는게 아니라 다른, (더 본질적일수있는) 음악 자체에대한 매력으로 받아 드리시는게 맞나요???

    저는 질문2에서 긍정적인 대답을하신분들중 상당수는 힙합음악가 유엠씨의 팬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제생각에 동의하시는 분은 계시나요? (유엠씨의 음악적 위상을 인정함과 별개로-- 아까 아래 글에서는 김티페인님이 이쪽분이 아니셨나 합니다)

    혹은 랩을 악기로써 받아들이시면서도 유엠씨의 음악은 본질적으로 가사전개의 형태라던가, 비트라던가, 음반구성이라던가가 힙합의 구성을 띄고 있으며 나름의 음악적 가치도있는데, 힙합이 아니라고 볼 이유는없다. 라고 보시는 분들이있나요???

    질문3.--본질적인건데요.

    랩자체를 악기로써 받아들이고
    그러면서 유엠씨를 힙합으로 인정하는분들꼐 질문하고싶어요.

    사실 저는 그렇게 랩에대한 이해도도있으시면서 유엠씨를 힙합으로 바라보는분들은
    죄송하지만 상당히 모순된 분들이라고 생각하구요

    (잠깐, 여기서는 제발부탁인데, 유엠씨가 리듬적으로 훌륭한 래퍼라니,
    유엠씨는 라임없이도 훌륭한 랩을 만들어낸다느니하시는분들은
    이 질문에는 답하지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분들은 질문 1-1에 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엠씨가 그런 랩 방법론을 채택한 본질적인 이유가 뭐였죠????
    제가알기로는 혁신적인 리듬구조론을 세웠기때문도 아니며
    라임에대한 근거없는 불신도 아니며
    단지
    라임의 사용은 한국말랩에서 필연적으로 메세지전달의 제약조건이 된다는 이해때문이아니었나요??(본질적으로)

    라임이라는 제약조건이 자기의 랩의 메세지를 조금이라도 망치는게 유엠씨는 싫었던거고,(동의하시나요?)

    라임을쓰지않고도 (내재율에기반한) 최소한의 재미있는 리듬을 만들어 낼수있다는 자신감에

    (여기서 유엠씨의 랩은 메세지가 리듬보다 더 우선순위에 놓인다는걸 딱봐도 알수가있죠?)

    그렇다면 유엠씨는 한국말 랩은 악기이기이전에 메세지로의 기능을 우선시해야한다는 이해를 수반함이 따라오죠?

     (논리에 모순이있나요??? 없죠?단지말을 바꿔한것뿐이죠?)

    그렇기때문에 저는 랩에대한 이해도도있으시면서 유엠씨를 힙합으로 바라보는분들은 모순일수밖에없다 생각합니다


    어떤게 좋은 랩악기인지에 대한 기준을 잡으셨으면서, 유엠씨에게는 다른기준으로 평가해주시는 이유가 뭐죠???
    저는 여러분들이 이런생각을 하시는데에는 본질적으로 한국에서는 미국에서만큼 랩하는게 불가능하다라는
    근거있는(었던) 미국식랩에대한 사대주의, 혹은 한국식랩에대한 두려움이 깊숙한근간에 깔려있으신게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저는 싸움을 하고싶은게 아닙니다.

    랩자체를 악기로써 받아들이고
    그러면서 유엠씨를 힙합으로 인정하는분들중

    저 위의 모순을 제게 명쾌하게 설명해주신분이 단한분도 아직 안계셔서 이글을 올립니다.

    부탁드립니다.

     

    -추가로,

    미국음악은 라임이 제약조건으로 전혀 기능하지않나요?
    어떤분들은 미국말은 단어가 다 일정하게 끝나서 한국보다 라임하기 훨씬쉬운 언어다 라고 주장하시는데,
    어찌됬든 다 상대적인거구, 제가봤을땐 E-bonics같은 랩은 많은 한국래퍼들이 썻던가사보다 훨씬 제약조건이많았다고 생각하고,
    요세 기술적으로 라임구성하는 많은 래퍼들의 랩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에나 라임은 제약조건으로써 기능하고, 그 규칙이있기때문에, 랩이 빛날수가있는겁니다.
    저는 여기서 유엠씨의 라임방법론이 처음부터 안일함에 기반한 그이상도 이하라고 생각합니다
    (뭐 이부분은 반론이 충분이있을수있겠지만, 제가 이글에서 본질적으로 하고싶은말과는거리가있구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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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잠온다 (2010-11-15 14:42:13, 182.208.83.***)
      2. euronymous님이 본문의 질문들에 이미 답변하셨네요.

        저는 유형의 팬이기도 하지만 VJ의 팬이기도 한.

        한마디로 손명환님이 생각하는 모순된 존재죠.

        둘다 지지하는 이유는

        VJ의 경우 음악의 완성도와 음악적 스펙트럼이 다양하기 때문이고

        UMC의 경우 결과가 어찌되었든 시도하는 도전 정신 때문입니다.

        VJ가 힙합이 곧 자유라며 외쳤던 사이비들에 대항했다면

        UMC는 번뇌 우뇌 좌뇌 우뢰매와 같은 고민없는 라임을 쓰던 mc perg와

        같은 사이비들에게 대항했었다고 보고

        umc의 "힙합"이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는 아인슈타인을 예로 들 수 있겠죠.

        아인슈타인은 죽을때까지 양자역학을 거부했다고 하죠.

        양자역학은 오늘날 우리 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양자역학을 거부했다면 아인슈타인은 틀린 겁니다.

        그러면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자가 아니게 되는건가요?

        양자역학을 거부했다고 해서 아인슈타인이 물리학자가 아니라고 할 수 없는것처럼

        그의 시도가 실패했고 혼자만 동떨어진 길을 걷는다 해서 그가 힙합퍼가

        아니라는 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umc 역시 아주 오랫동안 힙합을 연구했는데 말이죠.
      1. 컴포나티 R (2010-11-11 21:49:00, 118.44.158.*)
      2. 쭉 논쟁글들을 훑어보았는데, euronymous 님의 리플들이 가장 공감이 많이 가는군요.
      1. euronymous (2010-11-11 09:52:35, 122.153.105.**)
      2. 뒷북...인 것 같지만 몇 자만 적어 보자면,

        사실 간밤에 위에 적힌 질문들에 대해 뭐라뭐라 댓글을 달기 위해 답변을 써 보다가... 그냥 확 지워 버렸는데... 도대체 위의 질문들에 나오는 대로 자신의 취향을 공식화시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하는 회의가 들었기 때문입니다.

        음악이라는 형태의 예술을 처음 접하기 이전에 미리 음악을 듣는 방식을 머릿속으로 체계화시키고 맘속으로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서 음악을 듣는다면, 그때는 정말 어떤 기준과 공식에 맞춰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그리고 그 기준과 공식을 음악에 적용하는 데에는 늘 예외가 없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즉 어릴 적부터 훈련을 쌓아야 한다는 얘기구요.

        혹은 그런 훈련 없이 마구잡이로 음악을 들으며 성장한 어른이라도, 역시 훈련을 쌓으면 자신의 음악 듣는 방식을 어느 정도는 공식화하고 체계화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음악 평론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 중 극소수는 정말 그런 식으로 음악을 듣는(아니, 오히려 음악을 '확인한다'는 표현이 더 알맞겠습니다)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훈련을 쌓지 않았다고 해서, 고정된 방법론 없이 음악을 즐기며 산다고 해서, 음악 듣는 방식에 있어 저열하다는 소리를 듣거나 음악 들을 줄 모른다는 말을 들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음악이란 그것을 듣는 사람의 기억이나, 살아온 환경이나, 그날 그날의 느낌에 따라 학문적 접근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순전히 개인적이면서도 무정형적인 심리 작용을 불러일으킵니다. 미학에서 말하는 아름다움이란 개념 역시 너무나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어서 연구자는 그것의 보편적인 한 측면만을 이야기할 수 있을 뿐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개별적으로 일어나는 작용에 대해서는 섣부르게 짐작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가끔 보면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개별적으로 일어나는 작용에 대해 섣부르게 짐작하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런 사람들의 성향을 가리키는 '지적 속물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식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의 문제보다 '지식을 현실에 어떻게 적용시켜야 하는가'가 더 중요할 때가 있는데 지적 속물주의란 바로 지식을 현실에 제대로 적용시킬 줄 모르고 단지 명분으로서의 지식을 과시하기만 하는 성향을 가리킵니다.

        저는 랩 음악을 듣는 모든 사람들을, 랩을 악기 소리처럼 듣는 A 유형, 음색보다는 가사의 내용 즉 메시지에 집중하는 B유형, 음색이나 메시지보다는 언어를 어떻게 조합해 라임을 이끌어냈는지에 더 집중하는 C유형 뭐 이런 식으로 유형별로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어느 한 유형에 자신을 포함시키고 그 어떤 랩 음악을 듣든 그 유형의 특성에 맞춰 음악을 듣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지 저는 의문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훈련을 쌓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서로 다른 수많은 곡들을 오로지 하나의 기준을 통해 받아들일 수 있는 (그것도 죽을 때까지!) 그런 기계 같은 인간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저 같은 경우만 해도, 어쩔 때는 가사 따위 신경쓰지 않은 채 랩을 악기 소리 정도로 인식하며 들을 때도 있고, 또 어쩔 때는 단어 하나하나에 잔뜩 집중해서 랩을 듣기도 합니다. 의도적으로 제 몸속에 있는 어떤 스위치를 조정한다기보다는, 음악을 듣는 감각이 그때 그때 자동으로 전환되는 느낌입니다. 한국 랩퍼의 랩을 듣는다고 해서 항상 가사의 내용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고, 외국 랩퍼의 알아듣지 못하는 랩을 듣는다고 해서 항상 랩을 악기 소리처럼 인식하는 것도 아닙니다.

        한마디로 그때 그때 다릅니다.

        MR과 랩이 한 덩어리가 되어 육박해 올 때도 있고, MR과 랩이 따로 노는 것처럼 들려올 때도 있습니다. 분명 랩이 실린 힙합 음악을 들었건만 다 듣고 나면 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비트만 생각날 때도 있습니다. 다양한 랩퍼들의 곡을 한꺼번에 듣든, 한 랩퍼의 곡을 열곡 스무곡 연달아 듣든, 그리고 똑같은 곡을 열번 스무번 듣든, 엄밀히 이야기하면 들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고 곡에서 호소하는 것이 다르게 인식됩니다.

        이는 음악을 듣는데 있어서 결코 단일하게 공식화할 수 없는 조건들, 즉 앞서 말한 인간의 기억이나 경험, 환경, 그때 그때의 기분 같은 것들이 음악 감상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라임을 '박자에 맞게 글자 맞추기'쯤으로 얘기할 수 있다면, 정말 귀를 쫑긋 세우고 라임에만 집중하며 랩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습관이 되지 않은 그런 긴장을 늘 달고 살 필요는 없습니다.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필요한 태도일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태도이니까요.

        '내가 힙합을 듣는다고 했을 때, 실제로 나는 뭘 듣는 걸까?' 그래서 이런 물음을 자기한테 던져보는 것도 한번쯤은 해볼 만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어하는 것만 듣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고, 자기가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실은 음악이 '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음악을 어떤 방식으로 들어왔고, 또 듣고 있는지는 자기 자신만이 (그것도 더듬거리며)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명환님의 질문들에 답을 써 내려가다가 (2번은 패스했지요) 문득 글이 막혀 버린 겁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랩을 듣는 방식은 질문 속에 제시된 것처럼 문장 몇 개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특출난 사람도 아닌 이상 다른 사람들 역시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러니까, 명환님이 던지신 질문들은 "너를 낳아준 부모가 누구니?" 혹은 "너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니?"와 같이 누구에게든 보편적인 뜻으로 다가오는 질문들이라기 보다는, 명환님이 사전에 설정해 놓은 논리의 틀 속에서만 유효한 질문들이라는 겁니다.

        외국 힙합을 좋아한다고 해서 랩의 악기적 측면에만 집중한다고 잘라 말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랩의 악기적 측면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사의 내용에 더 집중한다고 잘라 말할 수 없습니다. MR이 좋아서 랩이 더 좋게 들리는 경우도 있고, 여자친구 목소리를 닮은 여성 랩퍼의 랩이라 더 좋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들었던 노래를 샘플링한 곡이라 랩이 더 좋게 들릴 수도 있고, 스크래치 소리가 마음에 들어 랩 또한 멋지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같은 사람의 경우라도 그때 그때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실제로 음악 이론을 공부할 사람일지라도, 드럼을 배웠던 적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음악을 듣는 감각이 언제나 동일한 방식으로 긴장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듭니다. 하긴 질문2는 바로 그 지점을 묻는 질문이었으니 질문 세 개 가운데 가장 쓸 만한 질문이라는 생각은 드네요.

        나아가서, 질문3에서 말씀하신 그 모순, 즉 다른 랩퍼의 랩은 악기 소리처럼 들으면서 유엠씨의 랩에서 힙합의 리듬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람의 모순은, 저는 특별히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 하나 없는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순이라 부를 것도 없이 그저 하나의 지식의 틀로는 포착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마음의 작용이라 해도 되겠지요. 리듬감을 느끼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같은 사람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으니까요. 논리를 복잡다단한 현실에 무리하게 개입시키려고 하니 그 논리의 내부에서 모순이 파생되는 것이 아닐까요?

        아, 물론 유엠씨의 랩을 랩이라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의 메시지에만 집중하는 감상법도 있을 수 있습니다. 논리적인 상관 관계만 따져본다면 그 감상법은 아주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입니다. 하지만 그 논리의 틀에서 멀찍이 비껴선 채 자기 나름의 감상법으로 유엠씨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저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남들에게 그럴듯한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 다른 그 어느 분석틀보다 더 많이 자기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자기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저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답은 없죠. 각자가 자기 스타일대로 음악 들으며 살면 되는 겁니다. 어떠한 틀 속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똑같은 현상이 모순으로 보일 수도 있고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거지요.

        명환님의 질문에 명환님의 의도에 맞게 제대로 답변 댓글을 다는 사람이 아직까지 안 나오고 있는 이유는, 뭐 야밤에 장문의 글을 쓰는 일이 귀찮아서일 수도 있겠지만, 명환님이 설정해놓으신 지식의 틀 혹은 논리의 틀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이, 물론 많다고 잘라 말할 순 없겠지만서도, 적어도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을까요?

        명환님의 틀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솝우화에 그런 얘기가 있잖아요. 얘기 아시죠? 여우가 두루미를 집에 초대했는데 여우가 먹는 넓적한 접시에 음식을 담아주는 바람에 부리가 긴 두루미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고, 나중에 두루미는 복수를 위해 자기 집에 여우를 초대해서 자기가 쓰는 긴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대접했다는... 그냥 그런 상황인 것 같아요. 자기 자신에게만 최적화된 논리의 틀을 서로에게 들이대느라 전혀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상황.

        윤광은님께서 다른 댓글에서도 말씀하셨지만, 명환님의 글을 보다 보면 분명 논의가 더 필요하고 실제로 단일한 결론으로 수렴되지 않은 상태의 명제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떤 주장의 전제로 깔아 버리시는 경우를 많이 보게됩니다. (하긴 그건 라임이라는 것을 무기로 유엠씨를 공박하는 사람들 모두에게서 볼 수 있는 경향이긴 합니다.) 논의의 답이 안 나오는 건 '명환님과 명환님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귀를 막고 있어서도 아니고 이해력이 모자라서도 아닙니다. 음악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감상하고 고민하고 즐기는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도 아니고, 누가 우월하고 누가 저열한 것도 아니며, 그저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그러는 순간 그 모든 부질없는 논란은 끝장이 나는데, 그게 10여 년째 안 되네요.

        허락없이 다른 분의 댓글을 빌려와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 밑 어딘가의 글에 이런 댓글이 하나 달려 있었죠.



        이 짤막한 댓글에 이 논란의 핵심이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듣는 재미'라는 것을 오로지 한 가지 방식으로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듣는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은 외계인처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내가 이상한 건지 아니면 라임의 재미를 아직 모르시는 건지'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거구요. '듣는 재미'라는 것에 좀 더 마음을 열고 다가서지 않는 한 라는 의문은 아마 죽을 때까지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이 문제입니다. '랩을 듣는 재미 혹은 랩을 고민하는 방식에 있어서 서로 다른 논리의 틀 혹은 감상의 틀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가?' 제가 보기엔 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잊을 만하면 라임 논란이 불거지는 것 같습니다. 답이 안 나오는 것도 당연하지요. 애초에 답이 없는데요. 십년이 지나든 이십년이 지나든 아마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정답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나올 필요도 없고 나와서도 안 되겠지만요.

        명환님께서 성의 있게 질문을 써 주셔서 저도 성의 있게 써 봅니다.
      1. 손명환 (2010-11-11 00:35:55, 59.21.190.***)
      2. 저도 위의 적힌 댓글들과는 관련없이, 그냥 euronymous님의 이해에대해 궁금해서 물어본거였습니다
      1. euronymous (2010-11-11 00:32:05, 183.102.139.***)
      2. 위에 적힌 질문과는 관련이 없구요.

        댓글에 인용된 글에서 랩과 라임의 관계를 유추해내는 과정에 논리적 비약이 있는 것 같아서 댓글을 썼습니다.
      1. 손명환 (2010-11-11 00:29:34, 59.21.190.***)
      2. euronymous님
        euronymous님은 제가 위에 적은 질문에서 어떤 질문에 대답하시는 포지션이신가요?
        무슨말인가하면, 랩의 악기적성질에대한 인정, 유엠씨에대한인정등을 포함한...
      1. euronymous (2010-11-11 00:28:55, 183.102.139.***)
      2. 이미 태어날 때부터 입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개인의 힘으로는 바꾸기 힘든 구강 구조, 거기서부터 인간의 랩은 출발하지 않았나요? 무엇이든 내고 싶은 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처음부터 낼 수 있는 소리가 한정되어 있는 구조 그 자체도 제약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 경우엔 태생적인 제약이 되겠지요.

        하지만 인간은 그런 태생적인 제약에 굴하지 않고 언어를 만들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고, 그 언어를 바탕으로 랩이 나온 거잖아요. 인간의 구강 구조가 인간이 원하는 어떤 소리도 낼 수 있는 구조였다면 아마 랩 음악은 지금보다 훨씬 더 풍성해졌겠지요. 플로우도 지금과는 달라졌겠구요. 하지만 어찌 되었든 인간은 랩이란 걸 만들었고, 나름의 고민을 통해 다양한 방법론들을 채택하고선 지금껏 즐겨 오고 있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하는 겁니다.

        저는 오히려 영화 프레임과 거기에 따르는 기술적 제약을, 랩과 라임의 관계로 치환한 것이 더 어색하다고 생각합니다. 기계적 기술적 제약은 말 그대로 피할 수 없는 물리적인 제약이 되어야 해요. 여러가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라임에 대한 비유로는 맞지 않아 보입니다.
      1. 부담보이 (2010-11-11 00:14:53, 175.211.26.**)
      2. 그러니까 그러한 인간의 구강구조가 도대체 랩에 있어서 어떠한 점을 제약하냐는 것입니다. 구강구조가 달랐다면 존재할지도 모를 그런 알지못하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구강구조가 랩에 있어서 제약입니까? 그렇다면 랩은 어떤의미에서 그러한 제약을 극복한 것인지요?
        저 비유에 '제약조건'이라는 단서 하나만으로 구강구조를 들이 되신다면, 제가 보기에는 너무 같다붙인거 같습니다.
      1. euronymous (2010-11-11 00:02:04, 183.102.139.***)
      2. 아니죠. 우리는 지금까지 인간의 입으로 낼 수 있는 소리들에 익숙해져서 못 느끼는 것일 수도 있는데, 만일 인간의 구강 구조가 지금과는 달랐다면 랩을 하는 데 있어서도 여러가지 다른 소리를 낼 수 있었으리라고 봅니다.

        제약 당한다고 해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발음들을 제약 당한다는 게 아니라, 애초에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낼 수 없었던 발음들, 즉 우리가 당연하게도 절대로 낼 수 없는 소리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소리를 우리는 이미 모르는 사이에 제약 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인종을 막론하고 인간의 구강 구조는 규격화된 형식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비슷비슷해요. 하지만 그런 한계에 굴하지 않고, 인간은 랩을 비롯한 다양한 목소리 예술을 만들어왔죠. 구강 구조는 비슷하지만 다행히도 목소리는 저마다 조금씩 달랐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1. 부담보이 (2010-11-10 23:52:17, 175.211.26.**)
      2. euronymous/전혀 아니죠. 일단 구강구조라는게 제약조건이라고 하셨는데 구강구조가 랩의 무엇을 제약하고 있는지가 의문입니다. 랩을 함에 있어 슈퍼맨이나 돌고래 같이 초음파를 발사해야 할 필요가 있는것도 아니고요, 특별히 장애가 있는 분이 아니라면 보통 인간의 구강구조로 랩을 함에 있어 아무 제약이 없죠. 더군다나 님께서 따온신 한 줄에 나온것처럼 구강구조에 규격화된 형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요.
      1. euronymous (2010-11-10 23:14:50, 183.102.139.***)
      2. 영화 프레임에서 말하는 제약 조건이 글에도 언급된 것처럼

        '필름이나 극장 영사막의 규격화된 형식을 이용해야 하는 영화의 기계적, 기술적 조건'

        때문이라고 한다면

        랩에 있어서의 제약 조건은 라임이 아니라 오히려 랩이라는 걸 입 속에서 입 밖으로 내보내는 구강 구조 혹은 조음 기관과 관련시키는 게 맞지 않나요? 인간의 임의대로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 처음부터 감당하고 가야 하는 '기계적 기술적' 조건이니까요.

        인간의 입이라는 제약 조건은 인간이 낼 수 없는 무수한 다른 소리들을 전제하지만, 그 대신 인간은 오히려 다양한 조음 방법으로 여러가지 소리를 낼 수 있고, 아무래도 인간의 목소리 즉 보컬이 중시되는 '음악' 분야에 있어 그 소리의 다양성을 통해 정말 다채로운 성과를 거둘 수 있었으니까요.
      1. 부담보이 (2010-11-10 22:57:33, 175.211.26.**)
      2. 손명환/적절한 비유네요
      1. 손명환 (2010-11-10 22:52:44, 59.21.190.***)
      2. 그러나 영화 프레임이 갖는 이러한 제약성 때문에 영화의 매력이 감소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러한 형식의 제약성으로 인해 오히려 영화의 다양한 기법들이 개발되고 작품의 예술성이 더욱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라임론도 이와 별반다를것없음도 말할필요가없다고 생각합니다
      1. 윤광은 (2010-11-10 22:52:02, 59.22.59.***)
      2. 글을 쓰신 내용이 장문인데다 다소 복잡한 구조를 취하고 있기에
        제가 질문의 요지를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랩을 감상할 때

        첫번째 플로우

        두번째 가사

        세번째 라임..

        이런 정도의 우선순위를 두고 감상하고 평가를 합니다.

        님께서 말씀하신 악기로서의 성격과 텍스트로서의 기능 둘 다를 중요하게 본다고

        할 수가 있겠네요.

        하지만, 텍스트로서 아무리 가사가 훌륭하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청각적으로 만족을 주지 못한다면 좋은 랩이 되지는 못한다고 봐요.

        개인적으로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은 없다고 보지만

        좋은 음악과 그렇지 않은 음악은 있다고 보거든요.


        하지만, 유엠씨의 그것이 힙합이 아닌가.. 하고 본다면

        그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악기로서 청각적 만족을 주는게 사실 플로우라고 볼 수가 있는데..

        이 플로우를 구성하는 건 여러가지 요소가 있다고 봅니다.

        보컬톤, 음색, 발음,발성,다이나믹함 그리고 그루브.


        이런 여러가지 요소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플로우를 형성하는 것이고

        그 플로우에 그루브를 부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게 바로 라임이죠.

        (하지만.. 그루브란 것도 여러가지 다른 요소들에 의해서 형성될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개코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다소 빈약한 라임을 구사하지만

        랩 자체는 굉장히 다이나믹하고 리듬감이 분명 굉장하거든요 )

        만약 라임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건 분명 리듬감이 부족한 음악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따라서 라임을 사용하지 않고 랩을 하는 유엠씨는..

        리듬감이 많이 부족한 랩을 구사하는 엠시라고 봅니다.

        실제로 저는 유엠시의 랩이 그루브하단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단지 그것 뿐이라고 봐요.

        어떤 분이 이런 비유를 해주셨더군요.

        "축구란 기본적으로 발로 공을 차는 게임인데 라임을 사용하지 않는건
        규칙을 무시하고 손을 써서 축구를 하려는 것과도 같다."

        전 이 비유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축구를 한단건 기본적으로 발로 공을 찬단 행위자체를 아우르는 개념인데

        랩을 한단것도 기본적으로 멜로디없는 단어들을 박자에 맞춰서 발성하는 걸

        말하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라임이라고 하는 건 그 랩을 한다는 행위에서 구현가능한 하나의 방법 내지는

        스킬이라고 봤을 때 오히려 랩을 하면서 라임을 쓴다는 건 축구에서

        전략과 전술과 상통하는 개념이라고 봐요.

        따라서 차라리 이런 비유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축구는 기본적으로 수비수,미드필더,공격수로 이뤄지는 게임인데..

        누군가 이런 아주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수준에서 당연하다고 인지되는

        전술개념을 무시하고 미드필더와 공격수로만 짜여진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습니다.

        당연히 기본개념에 비춰봤을 때 말도 안되는 전술이겠죠.

        이게 효과적으로 실제 위력을 발휘한다면 크루이프의 토탈사커와 같은

        혁명이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저 기발함과 유니크한 특성만을

        강조한 아무런 효용성이 없는 전술로 조롱받으며 폐기될 겁니다.


        헌데, 그렇다고 수비수가 없는 이 포메이션으로 축구를 한다고 해서

        그게 축구가 아닌건가요?

        그건 아니죠.

        엄연히 축구를 하는 것이지만 단지 굉장히 독특하고 드문 방법으로 축구를 하는

        거잖아요.

        물론, 그 효용성에 대해서는 여러말이 있을 수 있겠지만..

        글이 좀 길어졌는데..



        같은 의미에서 본다면 저는 기본적으로 유엠씨가 힙합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리듬감이 결여된

        악기로서의 수준이 높다고 볼 수 없는

        어떤 의미에서는 조악한 힙합을 하고 있을 뿐이죠.


        힙합비트 위에 랩 가사의 개념적 특성을 갖춘 글자들로 플로우로 구성해

        리듬을 타며 "랩이란 행위"를 한다.


        이것외에 힙합이라고 규정 지을 수 있는 어떤 무언가가 더 필요한지 모르겠네요.


        다시한번 제 생각을 정리해 말씀드리면..


        유엠씨는 힙합입니다.

        다만 개념적으로 훌륭한 힙합뮤지션은 아니라고 봅니다.
      1. 손명환 (2010-11-10 22:50:17, 59.21.190.***)
      2. 라임론과 관련해서 읽기 쉬운 글하나를 퍼왔습니다 과거 수능제시문이니까 쉽게 쓰여진 글입니다

        영화의 기본적인 단위는 프레임이다. 테두리 혹은 틀을 뜻하는 프레임은 영화가 만들어져 상영되는 단계마다 서로 다르게 정의된다. 촬영 과정에서는 카메라를 통해 들여다보는 장면의 구도로, 편집 과정에서는 필름에 현상된 낱낱의 정지 사진으로, 그리고 상영 과정에서는 극장의 어둠과 화면을 가르는 경계선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정의되든 간에 이 개념은 영화가 프레임을 통해 비추어진 세계이며 프레임을 경계로 어두운 객석의 현실 세계와 구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회화나 사진이 하나의 프레임만을 가지는 것과는 달리, 영화는 연속적으로 교체되는 많은 수의 프레임들을 가진다. 그리고 이 프레임들은 통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프레임일지라도 그 시간과 동작의 원래 맥락에서 분리되지 않으며, 그 자체가 독립적으로 완결된 의미를 지니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래서 관객은 눈앞에서 계속해서 이것에서 저것으로 바뀌며 재구성되는 프레임들을 그것의 극적이고 시간적인 맥락을 참작하여 이해하게 된다.
        또한 회화나 사진이 소재나 구성에 프레임을 맞추는 것과는 달리, 영화는 가로 세로의 비율이 언제나 일정한, 같은 크기의 프레임에 맞추어 내용물을 배치하게 된다. 이렇게 프레임이 고정되는 것은 그것이 필름이나 극장 영사막의 규격화된 형식을 이용해야 하는 영화의 기계적, 기술적 조건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영화 프레임에서는 수직적 구성에 매우 큰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초고층 빌딩들이 들어선 거리를 한 번에 효과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수직적 프레임을 거의 볼 수 없는 것이다.
        프레임의 완고한 형식성으로 인해 영화가 상영되는 조건에 따라서는 원래의 프레임이 변형되고 결과적으로 감독이 의도했던 화면 구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 와이드 스크린의 장점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극장용 영화가 TV를 통해 방영될 때 이러한 문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35mm의 영화가 16mm로 축소된다는 것은 원래 프레임에서 화면의 3분의 1 정도가 잘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화면을 자르면, 원래 프레임의 가장자리에 있던 등장 인물이 변형된 화면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혹은 등장 인물이 시청자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것에 깜짝 놀라거나 공포에 찬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 프레임이 갖는 이러한 제약성 때문에 영화의 매력이 감소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러한 형식의 제약성으로 인해 오히려 영화의 다양한 기법들이 개발되고 작품의 예술성이 더욱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 영화 감독은, 소네트*가 요구하는 형식적 요건에 오히려 구미가 당겨서 그 엄격한 형식을 택하는 소네트 작자에 견줄 수 있다. 우 리가 소네트를 읽어서 얻는 즐거움은 대체로 형식과 내용간의
        긴장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기법과 소재가 이런 식으로 완벽히 융합할 때, 우리의 심미적인 즐거움은 고조된다. 이와 동일한 원칙이 영화의 프레임에 적용될 수 있다.



        위에서 보실수있듯이, 영화또한 제약조건이 있습니다.
        제가봤을때, 그어떤 예술이든 제약조건이있고,
        파격은 그 제약조건을 파괴했을때가아니라, 제약조건내에서 여러 암묵적 인식들을 바꾸는게 파격인것입니다. 라임의 파괴는 파격으로 이해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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