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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iphop] 한국힙합은 10년 전에 있는 게 아니다! (대중성을 비난하는 분들에게)
    김도현 | 2010-12-08 | 11,951 Reads | 9 Thumb Up
    10년 전,
    힙합이 부글부글 끓었던 그 시기를 경험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죠.
    저도 그 뜨거운 열기에 동참했었고 흥분하고 설쳤었던 사람들 중 하나고요.
    하지만 부글부글 끊었던 건 열정만은 아니었다고 생각도 합니다.
    분명히 거품도 있었어요, 그것도 꽤 많이.

    힙합은 대중들에게는 생소했던 문화였고,
    당시 특유의 열기로 주목받았던 홍대 펑크(punk)의 열기,
    그게 식어가기 시작할 때쯤 적절하게 한국힙합의 움직임이 주목을 받았었죠.

    (‘댄스 or 발라드’로 일관하는 대중음악의 패턴에 록이든 힙합이든 별종은 필요했을 테니까)



    _

    90년대 말 당시 한국의 힙합음악,
    넓게는 흑인음악에 대한 이해도는 상당히 낮은 상태였고
    정착 또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으며,
    창작방법이나 특유의 표현력에 대한 이해도도 걸음마 수준이었죠.

    다만, 힙합이 대중들을 움직였던 점이라면,
    자유분방한 느낌과 거침없는 표현력과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비주얼 등이 있었고요.
    투박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사운드도 매력적이었겠죠. 신선했으니까요.

    제 생각에 한국에서의 힙합음악은,
    더 제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연구했던 뮤지션들을 통해 발전했습니다.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수요가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오히려 지금이 진짜 매니아들만 남은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거품이 빠진 상태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고요.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들은 한국힙합은 90년대 말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저는 반대합니다.

    거품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거품이 있던 시절은 이미 지나왔고,
    지금은 이미 힙합음악에 대해 좀 더 제대로 알아가기 시작했고 만들어가는 과정이니까요.

    옛날의 뜨거운 온도는 기분 좋은 느낌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건 음반을 듣고 공연장에 가면 여전히 느낄 수 있는 온도입니다.
    꼭 10년 전의 것만 고집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말이죠.

    그때의 호기심과 애정은 기억해야겠지만.



    _

    시퀀싱이든 샘플링이든 비트를 찍는 것부터,
    비트를 타고 라임을 통해 랩의 리듬을 만드는 것까지,
    10년 전의 한국힙합은 아직 포장을 뜯지도 않은 지점토였다고 생각합니다.

    (눈부시게 하얀, 좋게 말하면 순수함, 반대로 말하면 열정만 있는 무지함)


    대중들이 힙합을 자세히 알아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아직도 대중들에게는 힙합은 단순하고 쉽고,
    배우지 않은 사람들도 막 만들 수 있는 그런 음악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비트를 쾅쾅 찍고 자유롭게 중얼거리면 랩이 된다는 생각, 그게 대중들의 인식이죠.

    랩을 라임 없이 빨리만 하고 정신 사납고 요란하게 하면 주목을 받죠.
    지하철에서도 공중도덕을 지키는 사람보다는 안 지키는 사람이 더 주목 받듯이.

    주목을 받는 자체가 가치 있는 게 아니라,
    무엇으로 주목을 받는지가 관건이라는 말입니다.
    힙합이 주목 받아야 할 가치는 그런 껍데기가 아니니까요.

    힙합은,
    대중들의 인식보다 훨씬 더 지조가 있고 규칙이 있고 떳떳한 음악이고 문화잖아요.

    그 안에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내용을 담아낼 수 있는 거고요.



    _

    조pd, 이현도, YG, 휘성, Dynamic Duo, Epik High, Masta Wu,
    DJ Soulscape, 용감한 형제, Sean2slow, Tiger JK, Verbal Jint,
    Psy, Big Bang, Soul Company, 양동근, P-Type, Swings, Mighty Mouth...등등,

    언더와 오버 구분 없이
    힙합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한국적으로 잘 풀어내려는 움직임들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힙합다운 힙합, 힙합을 베이스로 한 색다른 음악,
    랩다운 랩 (라임과 메시지 둘 다 놓치지 않는 리듬도 훌륭한 랩), 랩퍼의 다양한 캐릭터도 이미 풍성하고요.


    '얼마를 벌었냐', '몇 위를 했느냐',
    '예능에서 얼마나 활약하느냐' ...... 같은 기준들도 무시할 수는 없겠죠.

    다만, 힙합의 대중화를 위한 시도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너희들 노력의 결과는 딱 이거다!!!' 라고 단언할 수 있는 단계는 결코 아니라는 거죠.


    어중간한 힙합, 어중간한 가요, 어중간한 시도를 했었던-
    음악적으로 보나 상업성으로 보나 실패작인 결과물을 내놓았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반면에,
    힙합음악의 베이스를 지키고 자신의 작가적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대중성까지 잘 가미한, 매니아와 대중들을 전부 아우르는 결과물을 내놓은 뮤지션도 있었고요.



    이렇게 두 부류의 정확한 구분은 매니아들의 몫인데...

    제가 보는 요즘의 힙합매니아들의 인식은,
    '오버로 가면 돈을 벌기 위한 음악' 으로 단정 짓는 것 같더라고요.



    _

    공식적으로 대중성을 표방한 결과물을 내놓는 힙합뮤지션들 중,

    힙합도 아니고 자신의 색깔까지 다 잃어버린,
    음원값이 아까운 음악을 내놓는 뮤지션들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그런 뮤지션은 분명히 있었고,
    지금도 그런 결과물을 내놓는 한심한 상황이죠. (거론은 하지 않겠습니다)


    비난이든 비판이든 애정을 바탕으로 한 건 공통점일 수 있겠지만,
    애정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힙합음악에 대한 이해와 판단의 정확한 기준은 필수라는 겁니다.

    그런데 스스로 힙합매니아라는 사람들에게도,
    힙합음악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와 기본상식의 숙지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거죠.


    오직 감성이나 감정만을 기준으로 한
    '맘에 들어, 맘에 안 들어' 수준의 단순한 판단이 아니라,
    여러가지를 다 포함한 좀 더 폭넓은 비평과 감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는 게 있다면 알아보고 배워가면 되니까요.



    _

    다양한 앨범과 결과물들이 계속 나오는 요즘인데,
    일단 시도와 움직임에는 응원을 보내주되 정확한 기준과 애정으로 평가하는 움직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힙합도 아니고, 랩도 아니고,
    훌륭한 대중음악도 아니고, 자신의 색깔도 없는 건 가차 없이 비판해야겠고요.


    한국힙합은 1999년에 진리가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고,
    10년이 넘는 과정을 통해서 엉터리규칙들은 외면당했고 올바른 것들이 남아 그것을 바탕으로 발전했습니다.


    아직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대중음악계에 제대로 된 힙합의 자리는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법이나 사운드로 보나,
    노랫말과 랩가사의 형태도 분명히 더 '제대로 된 힙합다워지고' 있고요.


    앨범을 못 팔았다고,
    언더그라운드에서 보여줬던 거랑 다르다고 무조건 비판하는 것보다,
    한 뮤지션이 탄탄한 힙합을 베이스로 어떤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지 지켜보는 게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구린 건 확실한 기준으로 까고,
    호응이 적었더라도 설득력있는 시도를 하는 뮤지션들은 더 열심히 서포트하자고요.


    과거의 감정이나 열기에만 머무르지 말고.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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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mments
      1. 힙합전도사 (2012-01-16 14:57:18, 112.152.129.**)
      2. Meth님글에 공감합니다.
      1. 누에군 (2010-12-11 22:21:01, 121.138.212.***)
      2. euronymous 님 글이 진리인듯
      1. 잠온다 (2010-12-10 16:17:41, 61.33.104.**)
      2. 참 생각이 없는 녀석이다.
      1. 사도 (2010-12-09 17:23:04, 173.60.166.***)
      2. 정말 좋은 글과 리플들 잘 읽었습니다.
      1. 온정약국 (2010-12-09 11:14:51, 211.234.225.*)
      2. euronymous님 말씀에서 정말 배우고 갑니다.
      1. 김도현 (2010-12-09 11:00:49, 210.204.173.**)
      2. 거품이 필요하다라... 흠.. 더 생각해봐야겠네요.
      1. 온정약국 (2010-12-09 10:55:09, 211.234.225.*)
      2. 십년 전에 거품이 있었을지언정 1999 대한민국 같은 앨범을 내고 지금보다는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그 때가 지금보다 덜 풍성하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무엇이 지금 더 풍성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양적 팽창(이를테면 판매량 등) 없는 (김도현님께서 말씀하신) 질적 성장은 결코 한국음악판에서 힙합씬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지금 그나마 한국힙합씬이 이 정도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다 십년 전 그 열정과 거품 덕이고 지금 한국힙합씬에 가장 필요한 것도 그 당시의 그 거품과 열정이라 봅니다.
      1. Meth (2010-12-09 09:38:26, 99.237.208.**)
      2. 80년대 팝메탈 시절 겉으론 화려했지만 60, 70년대의 록스피릿은 죽었다는 말 많았죠.
        지금 봐도 80년대는 70년대에 비하면 비교도 안됩니다, 힙합도 같은 길을 가고 있고요.
        영혼이 없는 껍데기는 아무리 화려해봐야 껍데기일 뿐..
      1. 김도현 (2010-12-08 23:35:55, 180.66.18.***)
      2. 10년 전을 까고자 쓴 글이 아니라 현재가 풍성함을 강조하고자 쓴 글입니다. ^^;;
      1. Meth (2010-12-08 23:22:53, 99.237.208.**)
      2. 90년대말이라고 하기엔 좀 이르고 2000년대 초반.. 분명 거품이 많았죠. 어중이 떠중이들이 난무하는, 그야말로 본문에 쓰여있듯이 열정만 있는 무지함. 그때는 지금보다도 더 똥이 된장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그냥 '힙합은 자유'라는 분위기에 휩쓸려서 것멑으로 문화를 위시하는 인간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하지만 거품이 있었을지언정 그 순수함, 뜨거움, 감정, 열정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이고 생명입니다. 그것이 없는 테크니컬함이 무슨 소용인가요. 거품이 있었다고 그것을 무슨 젖은 쓰레기 마냥 취급할수는 없죠. 그게 없었으면 1세대부터 지금까지 무슨 힘으로 맨땅에 헤딩하며 힙합씬이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2000년대 초를 진정성이란 면에서 평가해보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 음악엔 논리적으론 설명하기 힘든 그 어떤 '분위기'가 있었고 그것은 진정성이라고 밖에 말할수가 없는데, 지금 들어보면 촌스러운 랩이고 사운드지만 곡 하나하나를 들어보면 가사적인 측면에서 요새보다 훨씬 공을 들인게 보이거든요.

        순수함이란 예술의 모든것입니다. 기술을 뛰어넘는 것이죠.

        많은 리스너들이 그럴겁니다. 어른이 된 지금, 10년전과는 비교할수도 없는 좋은 장비로 음악을 듣고 있을것이고 그 어느때보다도 많은 장르의 음악들을 깊은 이해를 할수 있는 성숙된 어른으로서 행복할겁니다. 그러나 난생 처음 투팍을 듣고 가슴이 터질것만 같았던, 힙합만이 최고의 음악이고 힙합만이 자유다라고 외치던 그 치기어린 소년의 순수함과 열정은 그 어떤 기술의 발전과 세련됨으로 대체될수 없는 것이죠.

        1999년에 힙합이 남아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현재를 치켜세우려고 그 시절을 까는 것은 무지한 일입니다.

        취직해서 자가용도 있고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있고 좋은 수트입은 어른이 결혼을 전제로한 성숙된 사랑을 한다고 해서, 10년전 부모님에게 용돈받고 자전거타고 학교다니며 2분단 셋재쭐 그녀를 짝사랑하던 그 시절을 찌질하고 보잘것없고 초라한 것으로 만들수 있습니까.

        그 어떤 기술적인 발전보다 순수함과 열정은 우월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과거에만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있다는 것이죠. 가끔 그것을 잊고 살뿐이지..
      1. 황야이리 (2010-12-08 19:52:33, 113.30.94.**)
      2. Euronymous님 얘기 주옥같네요.
      1. euronymous (2010-12-08 17:16:01, 183.102.139.***)
      2. 저는 힙합 음악을 좋아하지만 힙합 문화는 잘 모릅니다. 제 마음에 드는 음반이 많이 나오면 좋긴 하지만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음반도 꾸역꾸역 나오는 현실에는 그닥 관심이 없습니다. 흑인음악 커뮤니티 들락거리면서 좋은 음악 얻어 걸리면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음반을 사고, 게시판에서 재미난 주제로 싸움이 붙으면 끼어들어 입씨름을 벌이고, 가끔 뭔가 쓰고 싶으면 흥밋거리 하나 붙들고 앉아 게시판에 글을 올립니다. 먹고 사는 건 바쁘고 음악 들을 시간은 갈수록 줄어듭니다. 그러다보니 음반 하나를 수십 번 들으며 진득하게 고민해볼 기회도 함께 줄어듭니다. 제가 관심이 가는 음악 말고 다른 음악에 대해서 고민해 보는 일은 어느덧 사서 고생하는 일이 되어 버렸고, 어차피 난 음악비평가가 아니니 굳이 쓸데없는 고민을 하며 시간을 버릴 필요는 없다는 생각만 듭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게는 인터넷상에서 힙합 음악을 두고 벌어지는 숱한 입씨름들은 왠지 한국힙합씬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홀로 존재하는 딴 세상처럼 보여집니다. 다들 글발이 세고 저마다 내세우는 기준이 다릅니다. 다들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리는 댓글들을 통해 한국 힙합씬이 발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글쎄요. 저는 회의적입니다. 수많은 누리꾼들의 힘을 못 믿겠다는 것이 아니라, 뮤지션들의 피땀 어린 노력과 팬들의 뜨거운 성원을 통해 '현장'에서 점점 풍부해져야 할 힙합씬이 자꾸만 '키보드질'에 의존하게 되는 것 같아서입니다.

        저는 사실 예술에 있어서 '발전'을 논하는 것은 자칫하다간 엘리트주의나 지적속물주의로 빠질 위험이 크다고 보는 편입니다. 힙합보다 더 역사가 긴 다른 음악 장르들을 봐도 단선적인 '발전'이라는 틀보다는 차라리 '정립-해체-재정립'이라는 변증법적인 틀로 이해할 때가 현실과 더 잘 들어맞습니다. 발전을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도대체 무엇이 발전일까요? 무슨 기준으로 발전을 논할까요? 발전을 논하는 것이 필요하긴 할까요? 사실 이 부분부터 짚고 넘어가야 하겠지요.

        예술에서 '발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있다면 두 가지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가가 창작 활동을 하면서 먹고사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사회간접자본이 제대로 확충되어 갈수록, 그리고 예술가에게 보장되는 '창작의 자유'의 범위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갈수록 예술은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예술의 발전이란 예술가의 상상력을 과연 어느 정도나 뒷받침해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예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주장이 사실 예술을 억압하는 쪽으로 작용한 사례는 예술사를 보면 굉장히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친숙하지 않은 새로운 것들에 거부감을 느끼게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비평가도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어떤 작품을 선택해 비평을 한다고 했을 때 바로 그 '선택'에서부터 벌써 '주관'은 개입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따라서 비평가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어느 한쪽의 입장을 옹호하게 되고,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은 그냥 하나마나 한 얘기나 늘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평의 '기준'이란 결코 합의되지 않는 성질의 것이니까요.

        예술의 발전이란 것이 운동선수의 체력이 늘어가는 것처럼 계량화가 가능하게끔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평의 '기준'은 반드시 하나일 필요는 없습니다. 비평도 창작의 한 분야이니 만큼 결국 비평에서도 비평가의 상상력이 가장 중요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의 기준만을 내세우는 사람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차츰 변하게 되는 예술을, 그리고 그런 예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생각의 변화를 잘 따라잡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힙합'이라는 음악이 어느 일정한 스타일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는 때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가 버렸습니다. 90년대라는 무수한 크로스오버의 시대를 거쳐 오며 힙합은 (그 태생부터가 잡종 음악이었습니다만) 이것저것 다른 음악들과 무수히 섞여 왔습니다. 더리사우스라 일컬어지는 미국 커머셜 힙합 음악을 옛날에 처음 들었을 때 제가 한 생각은 '아니 이게 무슨 힙합이야?'였습니다. 요새도 게시판에서 보면 90년대 힙합은 구닥다리라 하며 최근의 트렌디한 힙합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가끔 튀어나옵니다. 이것저것 두루두루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특정 스타일만 고집하며 듣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고 그 기준이란 사실 자신의 취향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을 가르는 작업은 사실 개인적으로 이루어져도 상관이 없습니다. 좋으면 듣고 싫으면 안 듣는 거죠. (먹고살기에 바쁜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만 골라 들으며 살기에도 시간이 모자랍니다.) 그런데 그 작업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면 우선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을 가르는 '기준' 자체를 여럿이서 합의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게 됩니다. 제대로 된 비평을 하려면 어느 하나의 기준만을 우격다짐으로 들이대는 것보다는 다양한 기준들을 저마다의 정당성에 따라 살펴 가면서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음악에서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인터넷 공간에서 그런 담론을 기대하기란 힘든 일입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저를 포함해) 음악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비평가 또는 비평가 흉내를 내는 사람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아마 후자 쪽에 속하겠지요. 저도 음악을 듣는 제 나름의 기준이 있고, 그 기준이 절대적이라고는 믿지 않으며,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거지 같다고 생각하는 음악을 누군가는 좋게 들을 수도 있고, 사실 그것만으로도 게임은 끝나는 거거든요. 제가 어떤 뮤지션의 음악을 온갖 논리와 이론을 동원해 비판하고 폄하한다고 해도 그 음악에 감동을 받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제 논리와 이론은 말짱 헛것이 되어 버립니다. 듣는이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는 건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을 가르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 아닌가요?

        그렇다면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을 가르려고 하는 시도는 말짱 헛수고라는 걸까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음악에 접근하는 태도라 할 수 있겠지요.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하나의 기준을 통해 두부 자르듯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을 가를 필요는 없습니다. 기준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새롭게 만들어갈 수도 있으니까요. 숱하게 존재하는 기준들을 하나하나 찾아 저마다의 정당성을 갱신해가면서 예술 창작에 있어서의 방법론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고, 더불어 예술 감상에 있어서의 방법론도 다채롭게 만들어가다 보면, 결국 누구나 예술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심미안을 지닐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어느 하나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작품들이 나올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런 것이 곧 '발전'이 아닐까요?

        음반 한 장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 리스너들 각자의 즐거움은 오로지 하나의 정답에서 나오는 건 아니라는 것. 예술 창작의 방법론은 끊임없이 갱신되고 재구축되어야 한다는 것. 그 정도만 합의한 채로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냥 편하게 노가리 까는 거죠. 그 어떤 고담준론이 오고간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예술의 '발전'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예술은 창작자의 상상력만큼이나 수용자들의 상상력 또한 중요합니다. 힙합 역시 예외가 아니겠지요? 자신의 취향을 그럴듯한 우월감이나 책에서 베낀 듯한 사이비 이론으로 포장하는 사람들은 좀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키보드질로 승부하려는 사람들보다는 차라리 음반을 한 장이라도 더 사거나 좋은 음악을 친구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권하거나 공연장에 한 번이라도 더 찾아가거나 하는 사람들, 무언가 한국 힙합씬을 생각하는 소박한 실천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게시판에 글 따위 올리지 않고서도 서포트는 얼마든지 가능하니까요.
      1. 김도현 (2010-12-08 16:42:56, 210.204.173.**)
      2. 덧붙이자면,
        언론에서는 한 문화나 분야에 대해 전문가나 매니아들만큼 다뤄주지는 않는다는 거죠.

        음악프로그램의 진행자들도 랩퍼들의 랩을 듣고
        묘기를 보는 듯한 반응 따위나 하지, 음악적으로 어떤 게 훌륭한지 모르거든요.
        (이건 아마 유희열도 모를 듯)

        창작자나 매니아들이나 기본을 지키되,
        좋은 음악과 건강한 서포트로 꾸준히, 지구력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ㅎ
      1. 김도현 (2010-12-08 16:25:33, 210.204.173.**)
      2. 네. ㅎ
      1. CloudPark (2010-12-08 16:13:48, 175.221.147.**)
      2. 좋은 글이네요
        씬에 대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진심으로 랩스타를 꿈꿨던 99년 2000년... 매스터플랜 CD를 상아레코드에서 싸인CD로 예약 구매하지않으면 변절하는거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죠 ㅋ 밀림닷컴에서 MC한새와 BCR Crew트랙을 다운받아 백번도 넘게들었던 시기고요. 저에게도 애뜻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추억은 추억이고 음악은 음악이겠죠ㅋ 그때의 열정이 따뜻한건 사실이지만ㅋ 지금은 지금의 뜨거움이 있는겁니다 ㅋ
      1. Popeye (2010-12-08 15:33:05, 202.28.78.**)
      2. 이 글을 동감할 세대는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글쓴이님 글을 읽으니까 제가 그때
        세대였다면 충분히 공감가는 글일듯합니다..
        특히 열정만 있는 무지함..이 문장이 참 와닿네요.

        저도 옛날세대 한국힙합 앨범을 들어봤고 분명한건 지금 한국힙합은 엄청나게
        발전했다는 겁니다.

        특별히 음악적으로의 이펙트보다
        미디어 시장 트랜드에 힙합이 점점 상업적으로 부각되고 변함에 따라
        힙합이 많이 발전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싶습니다.

        요즘 티비틀면 다 나오잖아요? 힙합 뮤지션들.
        중요한건 그들이 어떻게 오버에서 언더를 지지해주는지,
        언론에서 얼마나 이 문화를 '제대로' 알려주는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같은 일명 '매니아'들은 분명 그들의 음악을 듣고 평가를 할 자격이있고
        자격이 있는만큼 책임감도 따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 책임감에 걸맞는 전문성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무턱대고 '아 나 이 앨범 정말 좋다'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왜 좋은지
        나쁜지 지적이 필요한데 가끔씩 타사이트에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앨범평들을 보면 1~2줄 정도더군요...(참...어이가 없어서..)

        솔직히 제가 바라보는 한국힙합은 단계에 있어서 중학생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지금 한국힙합은 성숙하지않다고 봅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혹은 대부분) 생각인데 한국힙합이 발전되려면
        언더든 오버든 시장자체가 커져야해요.
        이건 언더,오버를 구분을 하지말자가 아니라 오버에서 잘되는 사람은 오버에서
        언더를 부각시켜줘야함으로서 문화적가치,상업적가치가 점점
        커지게 만들어줘야한다고 생각해요.
        (진짜 음악하는 순수한 뮤지션들이 지금
        필요한건 대중성이니까요.단순히 돈을 떠나서.)

        요즘 언더에서 잘되서 오버진출한 뮤지션들 보기 좋잖아요?

        커뮤니티의 활성화, 대중들이 인식하는 힙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한국에서 힙합을 정말 제대로 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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