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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뷰] 2020 미대선과 힙합이 만났을 때
    rhythmer | 2020-11-06 | 9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글: 남성훈


    힙합의 가장 큰 매력은 사회저항적이고 정치적인 움직임으로부터 비롯됐다. 적어도 미국 내에서는 그 어떤 장르보다 블랙뮤직의 테두리가 견고하기에 당연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화자의 정체성이 반영되어 많은 가사가 사회, 정치적으로 해석되곤 한다.

     

    그런데 2020년은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힙합 씬 자체가 거대한 정치적 움직임이 되었다. 오바마와 트럼프라는 양 극단에 있는 대통령을 겪고, 코로나로 인한 경제 양극화현상, 그리고 흑인인권운동 폭발로 정치권을 향한 힙합 아티스트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2020년 대선은 그 정점이 아닐까 싶다. 미국힙합 씬은 대통령 선거에 매우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여기서 새삼 대선과 관련한 미 힙합 아티스트들의 정치적 목소리와 움직임을 전달하고 싶진 않다. 그보다는 대선 전후로 벌어진 미 힙합 씬의 천태만상을 몇 가지 소개하려 한다. 이 편이 미국 대선과 힙합과의 관계를 더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을 듯하다.  



    칸예 웨스트는 칸예 웨스트에 투표한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온갖 비난과 조롱을 받았던 칸예 웨스트(Kanye West)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신념을 밝혀왔다. 그리고 정말로 2020년 대선에 출마선언을 하며 선거캠페인에 나섰다. 그는 "Creating a Culture of Life(삶의 문화를 창조한다)"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진보와 보수, 기독교가 뒤섞인 공약을 내세웠다.

     

    결과적으로 12개 주에서 칸예 웨스트는 정식 후보였으며, 무려 6만명 이상이 그에게 표를 던졌다고 한다. 특히, 칸예 웨스트가 찍어서 올린 생애 첫 투표의 순간을 담은 영상도 화제를 모았다. 그는 과연 트럼프에게 투표했을까?

     

    그럴리가…. 당연히 칸예 웨스트에게 표를 행사했다. 그리고 트럼프는 칸예 웨스트를 언팔로우했다.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저는 릴 펌프였습니다.


     

    2017년 싱글 “Gucci Gang”으로 단숨에 슈퍼스타가 된 릴 펌프(Lil Pump)는 대통령 선거 유세 막판, “MAGA!”를 외치며 도널드 트럼프 지지 선언을 했다. 그는 트럼프가 좋은 사람이고, 뭐든지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게 좋아서 지지한다고 밝혔다.

     

    별다른 정치적 영향력은 없어 보이지만, 트럼프는 힙합 아티스트 대부분이 본인을 악마화하는 마당에 유세장까지 직접 찾아온 릴 펌프가 정말 고마웠을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가 유세장에서 그를 언급하며, 슈퍼스타가 찾아왔다고 말하는 장면은 매우 훈훈했다. 그의 이름을 "리틀 핌프(Little Pimp)"라고 부르기 전까지는....

     




    비욘씨.......

     


    트럼프는 마지막 유세현장에서 지지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레이디 가가(Lady Gaga), 본조비(Bon Jovi) 등등, 본인을 싫어하는 셀레브리티 뒷담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2016년 대선 때 힐러리 지원 유세장에서 공연한 비욘세(Beyonce)와 제이지(Jay-Z)를 언급하며 놀렸다. 그런데 아무래도 놀림감은 트럼프였다.

     

    비욘세를 "비욘씨…"라고 불렀기 때문에...

     



    현재 가장 정치적인 래퍼는 카디비?



     

    2020년을 뒤흔든 랩/힙합 트랙 "WAP"의 주인공 카디비(Cardi B)는 틈나는대로 인스타 라이브를 통해 정치적인 이슈에 대한 의견을 밝혀왔다. 그러다가 조 바이든(Joe Biden) 후보까지 일대일로 인터뷰하는 이 시대 가장 정치적인 힙합 아티스트로 떠올랐다.

     

    이런 그녀가 역대급으로 박빙의 승부를 펼친 개표방송 와중에 인스타그램에 영상을 하나 올렸다. 과연 어떤 정치적 발언을 했을까?

     

    말이 필요 없다. 선거방송에서 여러 주가 빨간색(트럼프 승리)으로 변하는 것이 짜증 난다며 담배 세 개비를 한꺼번에 피는 모습이었다. 하루 만에 천오백 만 조회수를 넘겼다. 역시 뭘 하던지 가장 정치적이다.

     

     



    랩스타, 투표 독려 일일봉사단 되다.


     

    최근 아내 카디비와의 이혼 위기를 재차 가까스로 넘긴 미고스(Migos)의 오프셋(Offset)은 일찌감치 애틀랜타에서 투표를 마쳤다. 이후, 조지아주의 몇 투표소를 돌면서 투표를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며 응원했다. 그의 이런 봉사는 트럼프의 재선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 더 링컨 프로젝트(The Lincoln Project)와의 협업이었는데, 오프셋의 이런 노력 덕분일까? 초반 트럼프가 우세였던 조지아주에서 바이든이 막판 역전극을 펼치고 있다.

     

    여담으로 로이스 다 파이브나인(Royce Da 5'9)은 미시건 주의 투표소에서 장시간 줄을 서는 시민들을 위해 무료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에미넴의 곡을 선거캠페인에 사용한 후보가 있다?



    에미넴(Eminem) 2017‘BET 싸이퍼에서 맹렬하게 트럼프 정부를 공격하는 등, 정치적인 입장을 드러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힙합 아티스트다. 그런데 그는 정치인에게 자신의 곡을 사용하도록 허락한 적은 없다. 이번 2020년 미국 대선까지는 말이다.

     

    바이든 캠프에서는 선거 전날 깜짝 광고를 하나 더 공개했는데, 에미넴의 "Lose Yourself"가 사용됐고, 역대 선거광고 중 가장 유권자의 피를 끓게 한다는 평을 얻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인트로 부분이 사용됐으니 말이다.

     

    "Look, if you had one shot, or one opportunity to seize everything you ever wanted in one moment, Would you capture it or just let it slip(이봐, 만약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얻을 수 있는 오직 한 방, 오직 한 번의 기회가 있을 때 너는 그걸 잡을 거야? 아니면 그냥 흘려보낼 거야?)"

     

    그리고 영화 [8마일, 8 Mile]의 배경인 웨인 카운티는 바이든의 미시건주 역전 승리를 견인한 지역이 됐다.

     

     



    당과 후보에 끌리지 않는 초당적 냉혈 정치 빌런 아이스 큐브




    가장 위험한 그룹으로 불리던 N.W.A의 멤버 출신 아이스 큐브(Ice Cube)는 과격한 정치적 입장을 내놓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음악 활동보다 사회 활동가적인 면모를 더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 핵심은 바로 흑인의 인권에 방점이 찍혀있다. 많은 흑인들은 이번 대선에서 당연히 그가 트럼프의 재선을 막는데 큰 역할을 해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는 선거운동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시점에 트럼프 편에 섰다.

     

    트럼프 개인이 아니라 트럼프의 흑인 지원정책을 초당적으로 판단해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바로 트럼프의 아들 에릭 트럼프는 신나서 ‘TRUMP’가 새겨진 모자를 합성한 아이스 큐브의 사진을 올렸는데, 이를 본 아이스 큐브의 답변은 "Ni##a Please(, 제발 좀)"였다.

     

    -트럼프 성향의 코미디 쇼 SNL에서는 MAGA 모자를 쓴 아이스 큐브 대역을 내보내 조롱했는데, 이걸 본 아이스 큐브의 대답은 "Fu#k you SNL(뻐큐 SNL)"이었다. 과연 편향 없는 초당적인 진정성이다.

     

     



    자넬 모네, ‘너무 나갔나…?’


     

    자넬 모네(Janelle Monae)는 개표가 한창일 때 가운데 손가락을 든 사진과 함께 "Fuck Donald Trump and every American citizen, celebrity, white woman, black man, ETC who supported him burnnnnnnnnnn(도널드 트럼프,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모든 미국시민, 셀러브리티, 백인여자, 흑인남자 등등 X까고, 불타 버려ㅕㅕㅕㅕㅕㅕㅕㅕ"라는 광역 디스 트윗을 날렸다가 너무 나갔다고 느꼈는지 삭제했다. 너무 화끈했다….

     

     



    나 세금내면 50센트가 아니라 20센트 되는 거?


     

    음악 활동은 많이 줄었지만, 여전한 영향력을 지닌 힙합 아티스트 피프티 센트(50 Cent)는 바이든의 세금 정책에 분노하며, ‘50센트에서 ‘20센트가 될 수 없다면서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를 진지하게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피프티 센트는 늘 그런 장난을 뻔뻔하게 쳤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 그의 전 여자친구인 코미디언 첼시 핸들러(Chelsea Handler)가 공개적으로 이 상황을 두고 놀리자, 피프티 센트는 역시나 트럼프를 좋아한 적 없다면서 "Fu#k Trump"를 외쳤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면 감옥에 갈 것이라고 말했으며, 유세현장 영상을 올리면서 조롱하고, 트럼프를 진지하게 지지하는 릴 웨인(Lil Wayne)을 놀리는 등, 유쾌한(?) SNS생활에 집중했다.

     

     



    트럼프 지지 래퍼들아, 슈퍼그룹이나 만들어라!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로 꼽혀 가정 내 논란을 일으켰던 존 레전드(John Legend)는 존 바이든의 선거 유세에서 공연을 할 정도로 분명한 바이든 지지자다. 그는 선거 전날 유세장에서 아이스 큐브, 릴 웨인, 코닥 블랙(Kodak Black), 릴 펌프 등등, 트럼프를 지지하는 힙합 아티스트들에게 한 방을 날렸다.

     

    "여러분이 가장 좋아했던 몇몇 아티스트들은 이런 거짓말에 당한 것 같아. 내 생각에 그들은 슈퍼그룹 하나를 결성한 것 같은데, 그룹 이름은 더 썬큰 플레이스(The Sunken Place)’일거야"

     

    ‘The Sunken Place’는 영화 [겟 아웃, GET OUT]에서 주인공이 최면에 걸려 정신적으로 침몰하던 공간이다.

     

     



    릴 웨인의 이별은 정치적 갈등 때문?


     

    릴 웨인은 선거운동 막바지에 트럼프 정부의 플래티넘 플랜(Platinum Plan)’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동시에 트럼프와 찍은 사진까지 올렸다. 그래서 역풍도 있었지만, 릴 웨인이 어디 그런 걸 신경이나 쓰는 사람이던가?!

     

    하지만 진짜 후폭풍은 다른 곳으로부터 왔다. 트럼프 지지 선언 직후 여자친구와 헤어진 정황이 나온 것이다. 릴 웨인이 여자친구가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아서 차버렸다는 소문과 그 반대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리고 릴 웨인은 곧 트위터에 장문의 입장을 발표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방식대로 살고, 내가 사는 방식을 사랑해. 나는 사랑꾼이지, 불타버리는 라이터가 아냐. 나는 영원한 불이고, 타오르는 사랑이야. 그을리거나, 3도 화상을 입어서 떠나거나, 머물러서 내 사랑 안에서 죽어. 너는 땀 흘리고 있지. 진심으로, 파이어맨이…."

     

    부끄러움은 팬들의 몫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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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ike (2020-11-07 06:33:35, 1.242.35.***)
      2. 71년 돼지띠 스눕 선생이 이번에 처음 투표를 한다고 하는기사보고 깜짝 놀랐네요
        본인이 범죄자여서 투표권이 없었던걸로 알고살아왔다고 대충 얼버무리면서
        이번에 투표 한다고 ..하던데..
        그의 그동안의 트럼프를 반대한 행보를 봤을때
        참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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