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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토픽] 2021 상반기 놓치면 아쉬울 블랙뮤직 앨범
    rhythmer | 2021-08-10 | 14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2021
    년의 반이 훌쩍 지났다. 작년 초, 우리의 일상에 침투한 팬데믹은 벌써 1년 반이 지나 삶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아 버렸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외출은 어색해졌고, 4인 이상의 모임이나 대면 공연은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됐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조금씩 일상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겼지만, 7월이 시작되자마자 다시 확진자가 폭증하기 시작했다. 결국,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또다시 최대한 움츠러든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됐다.

     

    많은 아티스트가 팬데믹을 창작 활동에 집중하는 기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직접 만날 수 없는 대신, 음악을 통해 대중을 만나고 있다. 꾸준히 활동하던 아티스트는 물론, 오랫동안 소식이 뜸했던 이름들도 작품을 발표했다. 모두가 직접적으로 이 시기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각자의 방식으로 코로나 블루에 지친 우리를 위로해주었다.

     

    리드머에서 올해 발표된 모든 앨범을 리뷰하지는 못했다. 그중에서도 인력과 시간의 한계 탓에 정말 좋은 앨범임에도 소개하지 못한 작품이 있다. 그래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리드머 필진들이 상반기에 나온 작품 중 모르고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쉬운 앨범을 엄선해보았다. 정식 리뷰를 했다면, R4 이상은 받았을 만한 완성도 높은 앨범들이다.

     

     

     

    Rhye - Home (2021.01.22)

     

    코로나19 창궐 이후 많은 아티스트가 몸을 흔들게 만드는 음악으로 희망찬 메시지를 전달했다. 직관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겨낼 수 있고, 희망은 머지 않다고. 그들은 시각의 초점을 현재에 두고 이 시기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에 집중했다. 라이(Rhye)의 태도는 조금 다르다. 혼란스러움 속에서 희망을 찾거나 사랑을 되돌아보는 대신 새로운 시공간으로 안내한다. 초록빛이 울창한 수풀 속으로, 안개에 가려진 오두막집으로.

     

    [Home]은 덴마크 국립 소녀 합창단(Danish National Girls' Choir) “Intro”로 시작한다. 그들의 신성한 화음은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안내한다. 본작의 무드의 토대가 되는 것은 현악 요소다. 얼터너티브 알앤비를 기반으로 거의 모든 트랙에 배치된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등 현악 사운드가 밀로쉬(Mike Milosh)의 중성적인 목소리와 맞물려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통일성 있는 구성이 트랙 각각의 여운을 길게 즐기도록 돕는다. 이는 장르에 변화를 준 지점에서 강점으로 작용한다. 예컨대 “Hold You Down”에서 “Need A Lover”로 넘어가는 지점이 그러하다. “Hold You Down”은 펑키한 그루브를 갖고 있어 흥취를 일으키지만, 합창단의 목소리로 차분히 마무리 된다. 덕분에 고요한 “Need A Lover”로 넘어가는 데에 어색함 없다. 끝을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 [Home]은 단단한 안정감을 선사한다. (김효진)

     

     

    Judith Hill - Baby, Im Hollywood! (2021.03.05)

     

    2013년 개봉작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 20 Feet From Stardom]은 백업 보컬을 조명한 다큐멘터리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에서 기라성 같은 선배 사이로 후배 아티스트 한 명이 비중있게 등장하여 화제를 모았다. 그의 이름은 주디스 힐(Judith Hill). 조시 그로반(Josh Groban),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 등 여러 아티스트의 앨범 및 투어에 백업 보컬로 참여했고, 2009년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This Is It] 투어, 그리고 추모 공연에서 ‘마이클 잭슨이 선택한 보컬’로 주목받으며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가 지금까지 발표한 두 장의 앨범은 레트로 소울에 초점을 맞춘 인상이 강했다. 새 앨범 [Baby, Im Hollywood!]에서도 이 같은 기조가 이어진다. 프로덕션은 1960년대 이후에 인기를 끌었던 음악에 뿌리를 두었다. 펑크(Funk), 블루스, 소울, 록 등 다양한 장르를 포용하는 장점은 유지하면서도, 이전보다 더욱 치밀하고 짜임새 있는 완성도가 돋보인다.

     

    Baby, I'm Hollywood"에선 60년대 사이키델릭 록 느낌을 물씬 풍기며, 펑키한 리프와 끈적한 신스를 쏟아내는 “You Got the Right Thang”에서는 프린스(Prince)의 향수가 느껴질 정도로 근사하다. 감각적인 기타 연주가 블루지한 보컬과 만나 쾌감을 전하는 “Burn It All", 현악 세션과 브라스 및 퍼커션 사용이 돋보이는 소울 넘버 “Wanderer" 등 장르별 묘미를 살란 프로덕션이 듣는 내내 즐겁다. 보컬 역시 감흥을 높인다. 어느 순간에는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이 연상될 정도로 거칠고 파워풀한 가창을 들려주다가도, 다른 곡에서는 샤카 칸(Chaka Khan)처럼 능숙하게 리듬을 타며 강약을 조절한다. 그중 “Give Your Love to Someone Else”는 하이라이트다. 후반부에 폭발하는 고음은 여러 소울 디바가 떠오를 정도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다큐멘터리 종결부에 스티비 원더는 주디스의 재능을 칭찬하면서도, “이 일이 아무리 좋더라도 꿈을 잃지는 말라”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거의 10년이 지난 현재, 다행히도 주디스 힐은 자신만의 음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짜릿한 성장 서사가 더없이 반갑다. (장준영)

     

     

    Vic Mensa – I Tape (2021.03.26)

     

    빅 멘사(Vic Mensa) 2020년에 발표한 [V Tape]의 후속작 [I Tape]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7곡의 짧은 볼륨으로 완성되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던진다. 그는 코로나 창궐 이후, 팬데믹이 블랙 커뮤니티에 미친 영향과 미국 사회의 과범죄화, 흑인을 향한 부당한 박해, 그로 인한 투옥과 더욱 늘어나는 범죄 등 거미줄처럼 엮여 있는 문제를 하나씩 파고든다. 시원스레 터지는 저스트 블레이즈(Just Blaze)표 붐뱁 프로덕션 위로 귀환을 알리는 “Victory”나 감미로운 소울 샘플로 가슴 벅찬 분위기를 자아내는 “MILLIONAIRES”도 매력적이지만, 앨범의 진가는 이후에 드러난다.

     

    KWAKU”에서 그의 아버지 에드워드 멘사(Edward Mensa)는 가나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당시 위험한 장소였던 시카고에 정착해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했던 때를 회상하며, 시카고를미국의 진실을 배울 수 있는 도시로 이야기한다. 미국 사회의 부조리를 파고들며 생생하게 그려내는 빅 멘사의 뿌리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총기 범죄로 수감된 무사(Moosa)가 가석방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스토리텔링 트랙 “MOOSA”에에 이어, 와이클레프 장(Wyclef Jean)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앨범의 주제를 포괄하는 “Shelter”는 그야말로 하이라이트다. 이미 나름의 커리어를 구축한 빅 멘사의 음악은 새로운 방향으로 가지를 뻗는 중이다. 그는 이번 시리즈를 통해, 더욱 전위적인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이진석)

     

     

    Whatitdo Archive Group - The Black Stone Affair (2021.04.09)

     

    2020, 라스베이거스의 한 사창가에서 47년 전 잃어버렸던 영화의 OST 마스터 테이프가 발견되었다. 바로 1970년대 이탈리아의 거장이었던 스테파노 파리디시(Stefano Paradisi) [The Black Stone Affair] OST. 영화의 테이프는 1974년 칸 영화제에서 초연되기 전날 밤 화재로 소실되었고, 사건의 충격으로 그는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이듬해에는 의문의 암살자들에게 습격당해 명을 달리했다. OST의 마스터 테이프가 어떻게 라스베이거스에서 발견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최초 발견자도 익명을 요구했다. 그리고 1년 후, OST는 밀라노의 음반 레이블 레코드 킥스(Record Kicks)를 통해 드디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OST는 이탈리아 영화음악의 거장 고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가 이끌던 창작집단에서 떨어져 나온 왓잇두 아카이브 그룹(Whatitdo Archive Group)이 작곡과 연주를 담당했다. 펑크(Funk), 재즈, 보사노바가 한데 어우러져 스파게티 웨스턴(*필자 주: 1960~70년대 이탈리아 서부 영화) 음악의 진수를 보여준다. 날카로운 하프시코드 멜로디와 펑키한 베이스라인이 어우러지는 첫 곡 “The Black Stone Affair (Main Theme)”은 대표적. 이 밖에도 혼 연주가 긴장감을 조성하는 “Ethiopian Airlines”, 햇살 가득한 지중해가 떠오르는 라운지 보사노바풍의 “Italian Love Triangle”, 여름밤의 로맨스를 기대하게 만드는 소울 넘버 “Farewell Lola” 등등, 상상 속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곡들이 이어진다. 영화는 불길 속으로 사라졌지만, OST의 감동은 47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 우리에게 전해졌다. (황두하)

     

     

    Dawn Richard - Second Line (2021.04.30)

     

    던 리차드(Dawn Richard)의 여섯 번째 정규 앨범 [Second Line]은 뿌리에 대한 헌사다. ‘세컨드 라인(Second Line)’은 그의 고향인 뉴올리언스의 전통 거리 축제에서 앞장서서 가는 브라스 밴드 뒤를 따라가며 춤을 추는 행렬을 뜻한다. 이에 맞게 전반부는 춤을 추기 좋은 곡들이 죽 이어진다.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기반으로 디스코, 고고 뮤직(Go-go Music), 풋워크(Footwork), 댄스홀, 바운스 등등, 온갖 댄서블한 장르가 어우러져 한바탕 춤판을 펼친다. 뉴올리언스의 축제를 미래지향적인 사운드로 재현한 “Bussitfame”와 풋워크, 고고 뮤직, 드럼 앤 베이스의 요소가 섞여서 내달리다가 후반부에서는 힙합 리듬으로 전환되는 “Pressure”는 그가 지향하는 바를 가장 잘 표현한 곡들이다. 감각적인 사운드와 중독적인 멜로디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몸을 흔들 수밖에 없다.

     

    Voodoo (Intermission)” 이후 이어지는 후반부에서는 열정을 쏟았던 음악 산업에 대한 회의감과 독립 음악가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마음을 담았다. “Perfect Storm”에서는 카트리안(Katrina)가 지나간 뒤 도시를 재건했던 뉴올리언스에 빗대어 자신의 상황과 심경을 표현해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는 2005년 걸그룹 대니티 케인(Danity Kane)부터 시작하여 듀오 더티 머니(Dirty Money)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2013년부터는 솔로 아티스트로서 앨범을 발표했지만,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Second Line]은 긴 커리어의 변곡점이 되어줄 만한 작품이다. 그는 과거와 미래의 사운드를 한 데 모아 2021년에 걸맞은 알앤비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했다. (황두하)

     

     

    Rochelle Jordan - Play With the Changes (2021.04.30)

     

    영국 태생이면서 캐나다와 LA에서 활동하는 로첼 조던(Rochelle Jordan)의 보컬 스타일은 종종 알리야(Aaliyah)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몇 차례 인터뷰에서 그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는데, 여리면서도 유려한 가창이 알리야처럼 귀를 사로잡는다. 그가 무려 7년 간의 공백을 깨고 발표한 새 앨범 [Play With the Changes]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프로덕션이다. 일렉트로 소울이 중심에 놓였다. 일례로 “Got Em”에서는 레이브의 정취를 머금은 UK 개러지를 들을 수 있고, “Love You Good”를 통해서는 근사한 드럼 앤 베이스를 선사한다.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딥 하우스 “Already”나 탁월한 트랙 구성과 그루브를 담은 “Dancing Elephants”도 인상적이다. 이전 결과물에선 90년대 사운드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번에는 아예 90년대 전후로 흥했던 영국 일렉트로닉 씬의 대표 장르를 완벽하게 재현한다. 더욱이 얼터너티브 알앤비가 여전히 알앤비 시장의 큰 축을 담당하는 상황에서 트렌드와 동떨어진 방향성은 오히려 신선하게 들린다.

     

    탄탄한 프로덕션 아래 앨범을 통일성 있게 꿰는 것은 보컬이다. 가늘고 여린 톤에 능숙한 호흡과 리듬감을 강조하는 보컬 기술이 돋보인다. 트랩을 활용한 얼터너티브 알앤비 “Count It”에서는 중독적인 후렴구 주조와 적절한 완급 조절이 두드러진다. 가사도 흥미롭다. 대부분 사랑 혹은 쾌락에 대해 평이한 내용으로 채우지만, 몇몇 곡에서는 신선한 소재와 표현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Broken Steel”에서는 고정관념을 다룬다. 흑인이라면 응당 거칠어야 하고 강한 이미지만 보여야 한다는 편견 때문에 고통받는 모습을 그린다. “Lay”에서는 불안과 슬픔 등 감정을 녹여냈다. 연인을 걱정하는 내용에 흑인이 겪는 위협과 다층적 감정을 표현한다. 두 트랙 모두 흑인 여성으로서 경험한 내용을 풀어내어 다른 가사보다 훨씬 강렬하고 깊은 메시지를 전한다. 로첼 조던은 10년이 넘는 활동에도 무명에 가까운 아티스트다. 커리어 도중에 맞이한 7년이라는 공백은 희미한 인지도마저 지워버릴 만큼 길었다. 그럼에도 긴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훌륭하게 마감된 작품을 들고 돌아왔다. (장준영)

     

     

    Czarface & MF DOOM - Super What? (2021.05.07)

     

    차르페이스(Czarface)는 듀오 세븐엘 앤 에소테릭((7L & Esoteric)과 우탱클랜(Wu-tang Clan)의 멤버 인스펙타 덱(Inspectah Deck)이 함께하는 프로젝트다. 2013년 결성 이후 왕성하게 결과물을 발표하고 있는 몇 안 되는 힙합 그룹이기도 하다. 그들은 코믹북 레퍼런스를 적극적으로 차용한 콘텐츠와 아트워크로 힙합과 코믹북 마니아들을 자극하며 독보적인 영역을 차지했다. [Super What?]은 마블 코믹스의 닥터둠을 연상시키는 마스크를 항상 착용하는 엠에프둠(MF Doom)과의 두 번째 합작이다. 2020 10월 엠에프둠이 사망했기 때문에 2018년의 첫 합작 [Czarface Meets Metalface]의 미공개 트랙 모음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컸지만, 2020 4월 이미 작업이 완료된 프로젝트임을 에소테릭이 밝혔다.

     

    [Super What?]은 차르페이스와 엠에프둠의 강점인 철저한 기획력에 기반한 만족스러운 힙합 앨범이다. 프로덕션 팀 차르-(The Czar-Keys)가 전담한 붐뱁 비트는 고전 범죄 누아르 영화를 연상시키는 사운드와 빈티지하고 둔탁한 질감의 드럼 루프가 어우러지며 몰입감을 높인다. 미국의 대중문화를 흡수하고 재창조해내는 코믹스와 힙합 음악의 접점에 가장 어울리는 프로덕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믹스는 물론 컬트 영화와 현실 속 문화 코드를 따와 구성한 가사도 발견의 재미가 있다. 첫 트랙에서 직접 코믹스 출판사를 운영하는 디엠씨(DMC)가 참여한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고, 예상하기 힘든 라이밍을 구사하는 엠에프둠의 참여가 차르페이스의 물릴법한 음악을 다시금 신선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엠에프둠의 어떤 사후 결과물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Super What?]은 그 컨셉 덕분에 마치 차르페이스가 엠에프둠이라는 슈퍼빌런(Supervillain)을 부활 시켜 데려온 듯한 묘한 끝 맛을 주는 앨범이다. (남성훈)

     

     

    L Orange, Namir Blade – Imaginary Everything (2021.05.07)

     

    나미르 블레이드(Namir Blade)는 아직 작품이 많지 않지만, 이미 범상치 않은 재능을 드러낸 바 있다. 멜로 뮤직 그룹(Mello Music Group)에 입단한 그는 [Aphelion's Traveling Circus]를 발매하며 공상과학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아프로 퓨처리즘(Afro Futureism)을 흥미롭게 연출했다. 이외에도 초현실주의, 너드 컬쳐 등 다양한 문화에 관심을 둔 그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아티스트다. 나미르는 스스로도 뛰어난 프로듀서지만, 이번 작품에선 파트너를 기용했다. 레이블의 동료이자 굴지의 프로듀서 엘 오렌지(L’Orange).

     

    엘 오렌지는 붐뱁 비트를 바탕으로 기타, 혼 등 여러 악기 소스를 다층적으로 쌓아 올려 폭 넓은 사운드 스케이프를 만들어낸다. 브라스와 기타로 비장미 넘치는 무드가 연출된 첫 트랙 “Imaginary Everything”으로 시작해, 강렬한 트랙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빈티지한 기타 사운드로 매력적인 루프를 만든 “Lyra” “Nihilism”, 힘차게 울려 퍼지는 브라스가 돋보이는 “Somebody’s Anthem”와 짧게 컷팅한 보컬 샘플을 교차해 메인 멜로디로 주조한 “Late Nights Early Mornings”까지, 어느 한 곡 빠짐없이 빼어나다. 여기에 따라붙는 나미르의 랩 역시 탁월하다. 특유의 차진 톤으로 비트에 끈적하게 달라붙다가도, 멜로딕한 퍼포먼스를 섞어 직선적인 진행을 피한다. 견고하고 뻔하지 않은 붐뱁 사운드, 뛰어난 랩과 범상치 않은 사유를 고루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이진석)

     

     

    Mereba - AZEB (2021.05.26)

     

    [AZEB]에서 미레바(Mereba)는 사랑의 역할을 내세운다. 역병과 갈등이 난무하는 이 세계는 마치 전쟁마냥 혼란스럽다. 그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삶의 균형감각을 맞추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한 의미의 애정이 아니다. 마땅한 권리를 위해 저항하고 자신의 뿌리를 기억하는 마음과 같다. 에티오피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자신의 기원을 잊지 않는다. 이는 노랫말이 내포한 비유 표현들에서도 드러난다. ‘DNA속 용감한 자들의 피(the blood of the brave in our DNA)’ (“Beretta”)를 강조하고, 희망을 얻기 위해 고난한 과정을 지나는 모습을 달과 게자리*(“My Moon”)에 비유한다. 후자는 애니미즘을 숭배한 아프리카 부족 문화를 연상시켜 정신적 토대의 기원을 각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필자 주: 게자리는 4등성 이하의 별들로만 이루어져 있어 달 없는 밤에만 겨우 볼 수 있다.).

     

    통일감 있는 프로덕션도 특징적이다. 타악기 중심으로 구성된 리듬이 신비로우면서도 민속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와 잘 어우러지는 핑거 스냅 소리(“Aye”)와 박수 소리(“Beretta”, “Another Kin”, “Go(l)d”)까지 드넓은 아프리카 초원을 연상시키는 공간감을 연출한다. 느긋하면서도 보드라운 그의 목소리 또한 앨범의 완성도를 높인다. 미레바는 본작을 통해 스토리텔링 능력과 음악가로서의 자질을 자명히 보여준다. (김효진)

     

     

    Lloyd Banks - The Course of the Inevitable (2021.06.04)

     

    지유닛(G-Unit)의 멤버로 이름을 날렸던 로이드 뱅스(Lloyd Banks) 2010년에 발표한 [H.F.M. 2]의 상업적 실패와 지유닛의 몰락 이후 씬을 떠난 것처럼 보였다. 간간이 믹스테입을 발표했지만, 반응은 미미했다. 뛰어난 리리시스트(Lyricist)로 인정받았기에 아쉬움은 커졌지만, 10년 이상 흐른 시점에서 그의 화려한 컴백을 기대한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2021 4월 짧은 티져를 공개하고 6월 정규앨범이자 그의 첫 인디펜던트 앨범인 [The Course of the Inevitable]을 깜짝 발표한다. 앨범은 그의 오랜 팬은 물론 힙합 마니아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하다. 우선 그간의 메이저 배급 앨범에서 보였던 커머셜한 트랙과 하드코어 힙합 간의 균형은 찾아볼 수 없다.

     

    로이드 뱅스는 그간의 한이라도 풀려는 듯 무려 70분에 달하는 분량에 단 한 번의 늘어짐 없이 하드코어 랩을 쏟아낸다. 금방이라도 불이 붙을듯한 건조한 붐뱀 비트가 뒤를 받쳤다. 가장 놀라운 점은 전혀 녹슬지 않고 더욱 농익은 랩 실력이다. 이번 앨범을 불과 몇 주에 걸쳐 만들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마치 칩거하며 내공을 쌓았다가 등장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뻔하지 않은 단어들로 촘촘하게 심은 라이밍을 특유의 거친 목소리로 속도감 있게 이어가는 랩은 전혀 지루함 없이 앨범을 꽉 채운다. 이 시대의 갱스터 랩을 이끄는 프레디 깁스(Freddie Gibbs), 베니 더 부처(Benny the Butcher)와 같은 피쳐링 진도 앨범의 성격에 잘 부합한다. 별다른 컨셉이나 화려한 치장 없이 견고한 랩 하나에 온전히 집중해 하드코어한 스트리트 힙합의 정수를 즐길 수 있는 보기 드문 앨범이다. (남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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