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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리뷰] 최엘비 - 독립음악
    rhythmer | 2021-12-01 | 60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최엘비(CHOILB)
    Album: 독립음악
    Released: 2021-11-07
    Rating:
    Reviewer: 이진석









    최엘비(CHOILB)는 스토리텔링에 능한 아티스트다. 앨범의 큰 주제를 설정하고, 경험을 토대로 누구나 공감할 법한 이야기를 이어 붙이며 극을 짜는 솜씨가 탁월하다. 디테일한 단어 선택과 탄탄한 발성을 무기로 한 랩 퍼포먼스 역시 감흥을 끌어올리는 요소다. 지난 두 작품, [오리엔테이션] [CC]는 이 같은 역량을 여지없이 보여준 뛰어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주목받은 것은 아니다. 최엘비가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낸 건 고등학교 시절 함께 음악을 시작했던 씨잼(C JAMM)과 비와이(BewhY)보다 늦은 시기다. 처음 발매했던 EP가 큰 반응 없이 지나가고 오디션에서 고배를 마시는 동안, 씨잼과 비와이는 유명 힙합 레이블과 계약하거나 [쇼미더머니]에서 우승하는 등 승승장구하며 유명세를 키워갔다. 성공 가도를 달리는 친구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그가 느낀 열등감은 [독립음악]을 관통하는 중요한 정서다.

     

    우선 첫 트랙아는 사람 얘기를 통해, 자연스레 극 안으로 끌어들인다. 앨범의 주제와 성격을 소개하는 동시에 몰입감을 끌어올리는 도입부다. 이어서 그는 돈이 부족해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고(“마마보이”), 남다른 재능을 펼쳐가는 친구들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평범함을 통감하며(“섹스”) 과거의 지질한 면면을 차례로 전시한다.

     

    이후, 비로소 본인의 작품을 통해 한 명의 뮤지션으로서 거듭나고자 다짐한 그는(“주인공”, “독립음악”) 과거의 모습까지 지금의 최엘비를 이루는 조각으로 받아들인다(“최엘비 유니버스”). 이처럼 전보다 개인적인 서사를 중심에 놓은 만큼, 랩 피처링을 기용하지 않은 것은 좋은 선택으로 보인다.

     

    견고한 기본기와 또렷한 전달력을 갖춘 최엘비의 랩 덕에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가사에서의 장점도 여전하다. 생전 나누었던 대화를 재구성해 죽은 친구를 추모하는살아가야해.”나 본인의 이름보다 앞에 내걸었던 두 크루를 의류 브랜드로 비교한 슈프림은 특유의 표현력이 돋보이는 곡이다. 

     

    프로덕션 역시 말끔하다. “섹스에선 재지한 피아노 라인이 중심을 잡는가 하면독립음악도망가!”에선 최엘비가 영향받은 밴드 음악의 기운이 풍기기도 한다. 모노캣(Monocat), 코아 화이트(Coa White), 피셔맨(Fisherman), 돈 싸인(Don Sign.) 등등, 다양한 이가 참여했음에도 주로 부드럽고 경쾌한 분위기로 일체감 있게 진행된다.

     

    다만, 아쉬운 부분 역시 존재한다. 최엘비가 느낀 열등감은 분명 앨범의 서사를 풀어가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비슷한 내용이 몇 개의 트랙에 걸쳐 반복되다 보니, 어느 시점부턴 동어반복으로 느껴진다. 이는 뒤로 갈수록 스토리의 흡입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다행히 마지막 트랙도망가!”에 이르러 다시 감흥이 살아난다. 전작 [CC]의 마지막 트랙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에서 그는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에 구원받은 경험을 털어내며 그들과 같이죽음마저 막는 음악가가 되고자 다짐했다. 이후, 크루와 친구들의 그늘을 벗어나 음악적으로 홀로 선 끝에 이뤄낸 브로콜리너마저와의 협연은 전작의 선언과 오버랩되며 뭉클한 느낌을 선사한다.

     

    최엘비가 [독립음악]을 이끌어가는 방식은 전작들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세심하고 친근한 단어 선택을 통해 몰입감을 높이고, 견고한 랩과 프로덕션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차이는 있다. [오리엔테이션] [CC]가 누구나 보편적으로 경험해봤을 법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반면, [독립음악]은 지극히 개인적인 고뇌와 극복의 과정으로 구성됐다. 그래서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든 건 아쉽지만,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여전히 사람을 끄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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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mments
      1. Pseudo (2022-11-30 13:32:40, 118.235.26.**)
      2. 최초의 3.5점 한대음 수상작..
      1. 코코 (2022-06-08 00:03:36, 59.5.189.***)
      2. 참 예술 평론이라는게 이래서 어려운가봅니다. 저는 오히려 동어반복이야말로 열등감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서 더 스토리에 몰입도를 높혀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열등감, 혹은 패배감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공감대를 느낄수 있는 범위가 줄어들었다고 느끼시면, 아마 이진석 평론가님의 인생이 평균보다 평탄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3.5점 아쉽지만 이게 예술 평론의 문제인가 봅니다.
      1. 70's Rockstar (2022-05-18 18:27:25, 1.245.96.**)
      2. 저도 이거 듣고 엄청 뭉클해지고 훌쩍했었는데 그거랑 별개로 전작 2개에 비해선 퀄리티가 조금 떨어지는 편인건 팩트가 맞아요 3.5점이 적당한 점수인데 밑에 대깨들 많네
      1. dol (2022-04-20 21:17:33, 211.49.101.**)
      2. " 20대의 에넥도트"
        에넥도트 나올때 이센스 나이 : 28
        ㅋㅋ
      1. koidz (2022-04-13 09:47:35, 106.245.7.***)
      2. 3.5 좀 아쉽고 개인적으로도 4점에 가깝다고 생각은 하지만 에넥도트에 갖다가 비비는건 뭐임 대체?ㅋㅋㅋㅋ 가사는 말할필요도 없고 사운드부터도 솔직히 에넥도트에 비견될 정도는 아닌데 올려치기가 넘 심한 앨범같음.. 그런건 빼고 생각하면 21년도 앨범중엔 하트코어와 함께 최고였던거같음
      1. ㅈ드머 (2022-04-02 15:02:30, 1.228.26.***)
      2. 진짜 ㅈ문가인 마냥 평점 짜게 평가하는거 보면 혐오스럽습니다 자라님. 혹시 뭐 되세요?
      1. 자라 (2022-02-28 07:02:15, 124.51.249.***)
      2. 3.5라는 점수가 부족한 완성도의 앨범에게 부여되는 점수인가요?
        리드머에서 3.5면 평작 이상이고 수작 턱걸이는 하는 점수라고 보는데요
        요즘 트렌드가 가사의 진중함과는 거리가 멀다보니
        자전적인 가사 좀 쓰면 에넥도트와 나란히 할 수준 같은가요?
        에넥도트가 단순히 자전적 가사 때문에 4.5짜리 앨범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그럼 프더비는요?
        제가 보기엔 이 리뷰 점수에 관심 가지고 열 올리는 분들은
        힙합보단 최엘비를 더 좋아하는거 같네요
      1. ripxxxtentacion (2022-02-20 18:48:51, 39.115.95.**)
      2. 자라님 그럼 이 앨범이 눈물 팍팍 짜내게 만드는 것 빼고는 영 부족한 완성도를 보여줬단 말인가요?
      1. 자라 (2022-02-14 12:19:27, 124.51.249.***)
      2. 3.5면 잘 줬는데 왜들 난리인지
        여러분이 눈물 흘리면서 들었다고 훌륭한 앨범 되는거 아니에요
        그럼 영화도 관객들 눈물 팍팍 짜내면 아카데미 휩쓸겠네요
      1. YJ (2022-02-13 03:35:23, 223.38.17.**)
      2. 감정없는 로봇이 리뷰한건가 싶을 정도의 리뷰네요..
      1. 포이아 (2022-02-10 16:20:54, 118.37.255.***)
      2. 솔직히 이 앨범 듣자마자 이거 내 얘긴데 함
        공감도 되고 집중도 잘 됐던 것 같음
      1. 김민서 (2022-02-03 13:26:37, 182.210.178.***)
      2. 사람이 열등감을 이라는 동일한 주제로 관통하다가 5번트랙에서 폭발하고 마지막트랙에서 그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방향을 말하고 있다.
      1. Guest (2022-01-27 03:53:14, 121.131.99.***)
      2. 나한테 하는 얘기 같아서 더 와닿았음
      1. ripxxxtentacion (2022-01-04 15:17:07, 39.115.95.**)
      2. 진석이형은 살면서 열등감이라는 감정을 느낀 적이 없나봐요?
      1. ifrita (2021-12-24 10:26:31, 39.7.24.***)
      2. 열등감, 패배감, 죄책감. 이런 감정들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느냐에 따라 평가가 갈릴 앨범.
        마치 자기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사람한테는 인생 최고의 앨범중 하나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한테는 그냥 볼만한 드라마 정도.
      1. 하태현 (2021-12-15 22:54:17, 221.144.207.***)
      2. 저에겐 이게 에넥입니다
      1. 양홍원 (2021-12-10 17:23:58, 221.150.227.***)
      2. 3.5면 적당한데
      1. ㅛㅅㄱ (2021-12-09 19:28:51, 220.79.132.***)
      2. 맨 처음엔 이 앨범이 3.5점이라는게 화가 났지만, 지금은 이 앨범을 3.5점정도로 밖에 못느낀게 불쌍하다 생각한다
      1. 민석 (2021-12-08 20:43:27, 182.226.10.***)
      2. 댓글 달려고 가입까지 햇습니다. 올해 정말 쟁쟁한 앨범들이 많이 나왔지만 이 정도로 마음을 관통하는 앨범은 정말 오랜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멋진 랩스킬이나 기교보다도 더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그런면에서 3.5점은 좀 아쉽습니다. 최소 4점은 되어야하는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올해의 앨범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트브에서 본 댓글이 아직도 기억나는군요.
        "20대의 에넥도트"
      1. 눈ㅁ눌바다 (2021-12-07 09:01:06, 220.92.152.**)
      2. 음.... 저는 별점 4개 정도 예상했는데 의외네요

        저는 이 앨범이 20대 중후반의 감성을 완전히 관통한다고 생각해요. 저스디스같은 랩 퍼포먼스나 창모같이 웅장한 음악은 아니지만

        그 담백한 음과 랩이 이상하게 감성을 자극하고 가사 하나하나에 눈물이 날 정도로 통감하게 됩니다.

        왜인지는 몰라도...... 이 앨범만큼 제 감성을 건드린 앨범이 없었어요. 동어반복도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 면에서 통일성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하고요....


        아마 30대가 되면 제가 예전에 10대 떄 소울컴퍼니를 좋아했지만 지금에 안 들었던 것처럼

        아마 이 앨범을 지금만큼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제 인생앨범이 된 것 같습니다.
      1. seungchul (2021-12-05 07:44:25, 121.166.127.***)
      2. 아쉽고 좋네요
      1. LIMBo (2021-12-04 13:22:55, 68.83.204.***)
      2. 이토록 진솔하고 담백한 느낌이 나는 앨범은 뱃사공 탕아 이후로 오랜만이었어요. 오리엔테이션, CC도 좋았지만 최엘비식의 스토리텔링이 무르익었달까. 본문 내용처럼 동어반복 같은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앨범의 주제의식인 "열등감"의 성질과 같이 그 부분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고, 곱씹어보는거 같아서 오히려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 때허 (2021-12-03 20:50:29, 114.207.221.**)
      2. 개인적으로는 CC보다 더 공감이 되는 이야기였어요. 쇼미더머니 8에 나와서 무개성이라고 비난받을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했는데 본인에게는 정말 큰 상처가 되었던 것 같네요
      1. 관느 (2021-12-02 22:11:47, 59.9.230.**)
      2. 자꾸 문득 가사 한 소절이 생각나서 다시 돌리게 되는 앨범
      1. 00 (2021-12-02 19:39:06, 221.145.104.**)
      2. 올해 최고의 앨범.
        사회나 경제뿐만 아니라, 음악에서도 ‘지속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모든 문화 콘텐츠는 ‘언젠가는 질린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다. 음악 또한 해당 특성에 발이 매여 있기는 마찬가지인데, 이를 피하려면 1. 사운드가 시대에 남을 정도로 혁신적이거나 2. 앨범을 관통하는 스토리가 청자의 폐부를 뚫고 들어와야 할 것이다.

        최엘비의 은 두 번째 경우이다. 사람에게 스며 공감이 되고 또 다른 상상이 된다. 그리하여 이름도 모르는 타인의 한 조각을 구성한다. 그런 이유로 음악에 점수라는 걸 매길 수 있다면 나는 이 지속성을 바탕에 둘 것이다.

        현재 힙합 씬에 팽배한 돈 자랑과 얄팍한 자기 연민, 어필, 변명들을 제치고 자신의 열등감 그 자체를 까뒤집어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이단이고, 자아 개척이며, ‘샤라웃’ 받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엘비의 인생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디스코그래피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 강렬한 역사를 청자로서 값싸게 사고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철없이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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