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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뷰] Kendrick Lamar VS Drake, 쟁점은 ‘문화적 정체성’
    rhythmer | 2024-05-08 | 16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글: 황두하


    힙합 팬이라면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는 시기일 것이다.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와 드레이크(Drake)의 디스전 때문이다. 시작은 지난 3 22, 퓨쳐(Future)와 메트로 부민(Metro Boomin)의 합작 앨범 [We Don’t Trust You] 수록곡 “Like That”이었다. 곡에 참여한 켄드릭 라마는 드레이크와 제이 콜(J. Cole)을 향해 직접적인 공격의 화살을 날렸다. 주된 타깃은 드레이크. 그뿐만 아니라 앨범의 주인공인 퓨쳐도 드레이크를 디스하는 듯한 뉘앙스를 곳곳에서 풍겼다. 연이어 발표한 [We Still Don’t Trust You]에서는 에이샙 라키(A$AP Rocky), 위켄드(The Weeknd), 릭 로스(Rick Ross) 등이 참여해 드레이크를 향한 릴레이(?) 디스를 이어갔다.

     

    드레이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4 13, “Push Ups”라는 노래가 온라인을 통해 유출됐다. 그에게 도전장을 내민 래퍼들을 향한 반격이 담긴 곡이었다. 주요 대상은 켄드릭 라마. 이후 드레이크를 디스했던 인물 중 하나인 릭 로스가 “Champagne Moments”라는 디스 곡을 즉각 공개하며 화답(?)했다. “Push Ups” 4 19일 음원 사이트에 정식으로 등록한 드레이크는 같은 날 투팍(2Pac)과 스눕 독(Snoop Dogg)의 목소리를 AI로 재현해 켄드릭을 도발한 “Taylor Made Freestyle” SNS로 공개했다. 그러나 곡은 투팍 유가족의 항의로 인해 내려간 상태이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일련의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4 30, 켄드릭이 긴 침묵을 깨고 “euphoria”라는 이름의 디스 곡을 기습 공개했다. 그는 약 6 30초에 달하는 재생 시간 동안 드레이크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며 문화적 정체성을 공격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5 3일에는 “6:16 In LA”란 디스 곡을 연이어 공개했다.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의 파트너 프로듀서 잭 안토노프(Jack Antonoff)가 프로듀싱한 이 곡에서 그는 드레이크의 크루 내에 심어둔 첩자에 관해 언급하며 경고사격을 날렸다.

     

    같은 날, 드레이크는 “Family Matters”라는 곡을 공개하며 반격을 시작하는 듯했다. 그는 켄드릭이 가정폭력범이라는 점과 아이 중 한 명이 비즈니스 파트너 데이브 프리(Dave Free)의 아이라는 점을 언급한다. 그러나 “Family Matters”가 공개된 지 약 20분 만에 켄드릭은 “Meet The Grahams”를 발표했다. 알케미스트(The Alchemist)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비트 위로 드레이크의 가족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을 빌려와 치부를 낱낱이 까발린다. 특히 드레이크가 소아성애자이며, 숨겨놓은 딸이 있다는 폭로는 가히 충격적이다. 이미 푸샤 티(Pusha T)와의 디스전을 통해 숨겨놓은 아들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드레이크였기에 그 여파는 더욱 컸다.



     


    켄드릭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바로 다음 날인 5 4, 또 다른 디스 곡 “Not Like Us”를 공개한다. 머스타드(Mustard)가 프로듀싱한 웨스트 코스트의 향이 진하게 나는 비트 위로 드레이크가 소아성애자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흑인들의 문화를 편의에 따라 이용하는식민지 개척자(Colonizer)’라며 문화적 정체성을 다시 한번 공격했다. 이어 5 5, 드레이크 역시 반격 곡 “The Heart Part 6”를 공개했다. 그는 켄드릭이 말하는첩자는 사실 가짜 정보를 흘린 것이라며소아성애자라는 공격에 대해 반박했다.

     

    연휴 동안 빠르게 진행된 디스전 이후, 여론은 켄드릭 쪽으로 기우는 듯하다. 롤링 스톤(Rolling Stone)이나 피치포크(Pitchfork) 같은 저명한 매거진도 켄드릭의 손을 드는 중이다. 4개의 디스 곡을 연이어 발표하며 맹렬한 기세로 드레이크를 몰아붙이고, “Not Like Us”라는 뱅어까지 탄생시킨 켄드릭보다 드레이크는 방어하기에 급급한 모양새였다. 특히 마지막 곡 “The Heart Part 6”에서자신이 유명하기 때문에 소아성애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못한다라는 빈약한 논리와 켄드릭의 “Mother I Sober”에 대한 잘못된 이해 등, 급조된 것 같은 가사 탓에 여론이 안 좋아졌다.



     


    켄드릭과 드레이크는 왜 이토록 상처가 큰 싸움을 강행하는 것일까? 두 랩 슈퍼스타의 역사는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둘은 당시 “Buried Alive Intrude”, “Fuckin’ Problem”, “Poetic Justice” 등의 곡으로 교류를 이어갔다. 그러던 2013, 켄드릭이 악명 높은 “Control”의 벌스로 드레이크를 포함한 많은 래퍼를 향해 광역 디스를 시전한 이후, 둘의 관계가 묘해지기 시작했다. 드레이크는 이후 몇몇 인터뷰를 통해 불편한 감정을 조금씩 드러냈다. 또한 [Nothing Was The Same](2013)의 수록곡 “The Language”에서 켄드릭을 디스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켄드릭 또한 제이 락(Jay Rock) “Pay For It” “The Heart Part 4”에서 드레이크를 디스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사람들은 디스전이 촉발된 계기를 “First Person Shooter”로 보고 있다. 드레이크는 ‘Big 3’의 그림을 만들기 위해 제이 콜과 함께 켄드릭에게도 피처링 제안을 했으나 켄드릭은 이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아 디스를 하게 됐다는 루머도 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실제로 “Like That”에서 “First Person Shooter”를 언급한 것을 보면, 제이 콜이 ‘Big 3’를 언급한 가사가 켄드릭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추측할 수 있다.



     


    숨겨놓은 딸, 가정폭력 등등, 이번 디스전에서 화제가 된 주제 중 대부분은 가십거리이다. ‘소아성애같은 민감한 주제도 있지만, 확실한 증거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가십으로만 소비될 가능성이 크다. 가십을 제외하고, 가장 주목할 만한 주제는 바로문화적 정체성이다. 켄드릭은 “euphoria”부터 “Not Like Us”까지 집요하게 드레이크의 문화적 정체성을 공격했다. 단순히 그가 백인 혼혈이거나 캐나다 출신이라서가 아니다. 드레이크는 초창기 인터뷰에서도 직접 언급한 것처럼 유대인 문화권 안에서 자랐고, 최초 래퍼가 아닌 아역 배우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발을 들였다.

     

    We don't wanna hear you say nigga no more / 우린 더 이상 네가 N워드 쓰는 걸 듣고 싶지 않아 (“euphoria”)

     

    You run to Atlanta when you need a few dollars No, you not a colleague, you a fuckin' colonizer / 넌 돈이 필요할 때만 애틀랜타에 가잖아. 넌 동료가 아냐, 넌 빌어먹을 식민지 개척자야(“Not Like Us”)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가드레이크라는 페르소나를연기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는 갱스터도 아니고, 게토 출신도 아니다. 그래서 슬랭을 쓰거나 위협적인 가사를 내뱉을 때 이를 연기력으로 소화한다고 볼 수도 있다. 커리어 내내 그를 따라다니는 대필 논란도정체성을 훔쳐서 흉내 낸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에 놓인 문제다. 믹스테입 [So Far Gone](2009)부터 쌓아온 특유의 음악 스타일을 바탕으로 폭발적인 상업적 성과를 이룬 덕분에 이러한연기를 대수로이 여기지 않는 이도 많다. 그러나 푸샤 티나 켄드릭처럼 아니꼽게 보는 시선도 분명 존재했다.



     


    드레이크가 “Family Matters”에서 쓴 ‘Always rappin' like you 'bout to get the slaves freed / 언제나 노예를 해방시키려는 것처럼 랩을 하지라는 가사는 가장 지탄받는 라인 중 하나다. 켄드릭의 진지함을 비꼬는 의도였던 듯하지만, 노예 제도를 가볍게 다룬다는 점에서 그가 흑인 문화와 단절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로 보는 여론이 많다. 덩달아 [For The Dogs] “Slime You Out”에서 ‘Whipped and chained you like American slaves / 넌 미국 노예처럼 묶이고 채찍질 당하지라는 가사를 썼던 사실도 주목받고 있다. 켄드릭 역시 “Not Like Us”에서 ‘Once upon a time, all of us was in chains Homie still doubled down callin' us some slaves / 옛날 옛적에 우린 사슬에 묶여 있었어 이 친구는 여전히 노예를 언급하는 실수를 저지르네란 가사로 이 부분을 꼬집었다.

     

    한창 뜨거웠던 세기의 디스전은 “The Heart Part 6”를 끝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벌써 힙합 팬들은 투팍과 비기(Biggie), 혹은 제이지(Jay-Z)와 나스(Nas)에 비견할 만한 디스전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훗날 두 아티스트의 커리어에 이번 사건이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근래 힙합 씬에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인 점은 자명하다. 훗날 2020년대를 돌아봤을 때, 이번 디스전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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