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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뷰] 리드머 첨삭지도 4강: '걸 그룹과 갱스터 힙합'? 기자님들 알고 씁시다
    rhythmer | 2012-08-17 | 23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리드머 첨삭지도’는 각종 매체(온•오프 잡지, 신문, 방송 등)에서 흑인음악, 또는 관련 대중문화의 기본적 이해가 부족한 상태로 작성되어 잘못된 정보나 왜곡된 내용을 전파할 우려가 있는 공식적인 글을 콕 찍어내어 대놓고 태클을 거는, 장르 문화와 흑인음악 바로 세우기를 위해 리드머가 기획한 도발적인 프로젝트입니다. 단, 글과 말의 출처가 된 매체는 밝히되 실명은 거론하지 않는다는 걸 규칙으로 합니다.


    "XXX, 걸그룹 외모에 갱스터 힙합… “이게 바로 XXX 스타일!” 데뷔곡을 통해 중성적인 매력을 뽐내는 XXX은 스스로 “외모는 걸그룹이지만 음악과 퍼포먼스는 갱스터 힙합”이라 소개할 만큼 격렬하고 과격하다. 하지만 ‘아프리카 빨래춤’ ‘가슴앓이춤’이라 이름 붙여진 동작은 쉽게 따라 할 수 있어…

    위 문장은 한 주류 연예 신문의 대중음악 담당 기자에 의해 작성된, 최근 데뷔 앨범을 발표하고 활동을 시작한 3인조 걸 그룹의 홍보 기사 중 일부이다. 기획사가 만든 보도자료 일부인지, 정말 기사처럼 멤버의 창조적(?) 답변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철저한 이미지 메이킹을 추구하는 한국형 걸 그룹의 특성상 차별화를 위한 컨셉트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편이 편하겠다. 그 차별화의 방향성은 쉽게 말해 '2NE1'이 이뤄낸 것과 방향을 같이 하는 듯하다. 기존의 정형화된 귀여움, 혹은 섹시함으로 어필하던 걸 그룹의 반대쪽에 자신들을 위치시켜서 역으로 쉽게 대중에게 접근하고 특정 장르를 굳이 끌어와 음악적으로도 타당성을 획득하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표방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문제는 주요 포탈사이트 뉴스에 노출되는 기사를 작성하는 대중음악 담당 전문기자가 기본적으로 음악을 바라보는 소양도 갖추지 못하고 일을 함으로써 이런 얄팍한 문구들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리드머 첨삭지도 에서는 이 걸 그룹의 홍보 기사에 쓰인 ‘갱스터 힙합’의 정확한 의미부터 짚어보고, 과연 그들의 음악이 해당 장르 범주에 들어가는 부분이 존재하는지를 따져보도록 하겠다. 더 나아가 한국 가요계의 홍보성 기사에서 자신의 필드에 대해 공부하는 것에 게으른 기자들에 의해 별다른 고심 없이 남용되는 장르명이 만드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여기서 잠깐, 이런 뻔한 홍보 기사의 단어 하나에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겠지만, 꼭 이번 경우가 아니더라도 이런 식으로 만연한 한국가요계의 장르파괴 홍보 기사에 장르 팬과 아티스트들이 느끼는 기분은 허탈함을 넘어 무심함으로 변한 지 오래 아닌가?

    자, 그럼 강의 시작. '갱스터 힙합'은 '갱스터 랩(Gangsta Rap)'과 같은 의미로 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한국 주류 대중음악 시장에 '갱스터 랩'이란 단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아마도 서태지와 아이들이 “컴백홈”으로 대한민국을 뒤흔들 때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촌극도 그런 촌극이 없지만, 당시 언론과 평론가들이 서태지가 어떤 생소한 장르를 들고 왔는지 분석하다 내린 결론이 황당하게도 '갱스터 랩'이었고, 서태지 역시 별다른 이견을 표하지 않았다. 아마도 서태지가 대놓고 스타일-카피한 싸이프레스 힐(Cypress Hill)을 급하게 찾아본 결과가 아니었을까? ‘방황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라는 “컴백홈”을 차라리 '안티-갱스터랩'이라고 말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어쨌든 그 덕분에 대학교수들마저 논문에 ‘서태지의 갱스터 랩 도입’이란 표현을 쓰고, 대중은 그렇게 힙합의 가장 중요한 서브 장르를 기형적으로 만났다. 물론, 이마저도 일회성이었지만 말이다.


    모 연예 신문의 '서태지 데뷔 20주년' 기사 중. 우리나라 연예 매체의 심각한 무지의 수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갱스터 랩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혹은 누군가가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갱스터 랩이 진짜 (건달 혹은 깡패를 뜻하는) 갱스터가 랩을 해야 유효한가? (혹은 유효하다.)" 이다. 답부터 이야기하자면, 묘하게 틀린 말이다. '갱스터 랩'이란 제도권에 의해 통제되기 어려운 슬럼화된 도시의 빈번한 범죄와 그 배경인 특정지역을 큰 틀로 하여 이를 구성하는 범죄집단, 총격, 구타, 마약거래, 섹스, 갱 사인과 패션, 대 경찰 등의 특정 소재/코드가 중심이 되어 만드는 특유의 무드와 캐릭터 안에서 랩을 하는 것을 뜻한다. 물론, 그 내용이나 방향성은 그 무드 안에서 다양하게 확장될 수 있고, 실제로도 그 범위와 대중적 허용치, 그리고 갱스터 랩/힙합이라는 용어의 폭은 굉장히 넓어진 것이 사실이다. 특정 지역 안에서, 혹은 밖에서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그 자체를 그려내거나, 하나의 판타지를 선사하거나 아니면 그저 갱스터 무드가 만들어낸 생활방식을 즐기는 것을 찬양하는 등, 그 스펙트럼은 상업적 성공과 함께 커졌다. '갱스터' 자체도 법은 신경 안 쓰고 언제든 일탈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기운을 가진 캐릭터도 포함하면서 (어떤 경우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 정의가 유연해지기도 했다. ‘갱스터 랩/힙합’의 대세적인 편곡 스타일은 고유의 무드와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자리 잡은 것이지,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님도 알아야겠다. 어쨌든 1980년대 인종적 구분이 확연히 드러나는 사회에서, 의도적으로 숨겨졌던 특정 지역의 문제와 생활상이 장르음악을 도구로 직접 드러낸 새로운 표현법이라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자, 이제 짧은 설명은 뒤로하고 본론으로 돌아오자. 과연, 이 걸 그룹의 음악은 ‘갱스터 랩/힙합’의 통상적인, 혹은 확장된 정의에 얼마나 들어맞는가? 충분히 한국적으로 변주되는 것을 유연하게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들의 음악엔 ‘갱스터 랩/힙합’에 들어맞는 어떤 요소도 전혀 찾을 수 없다. 물론, 태생적 기획가수에게서 범죄 무드가 조건인 ‘갱스터 랩/힙합’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유연한 자세로 용어를 분리해서 현대적 의미로 사용되는 ‘갱스터’를 앨범에서 찾아보고, 다음에 ‘힙합’을 찾아보자. 일부 곡에서 당돌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지만, 대부분 곡에서 사랑과 이별의 표면적인 감정에 비중을 할애한다. 걸 그룹 퍼포먼스 진행을 위한 것이지, 멤버들의 캐릭터가 곡 안에서 드러났다고는 보기 어렵다. 편곡 방향은 더욱 그렇다. 이 그룹의 음악 수준을 평가하는 글은 아니니 짧게 이야기하자면, 힙합 장르 고유의 진행과 바이브를 빌려 온 곡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갱스터’, ‘힙합’과 같은 용어를 끌어다가 홍보하는 목적은 서두에 밝혔듯 단순히 다른 걸 그룹과 차별화를 이뤄내기 위한 장치라 생각할 수 있다. 남성적인 과격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거나, 다른 걸 그룹과 달리 가식 없는 솔직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그 수식어로 별다른 관련도 없는 장르명을 끌어와 홍보나 이미지 메이킹에 고심 없이 사용하는 것은 왜곡된 시선을 한 번 더 비트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런 시도는 당연히 주류 언론에서 대중음악을 담당하는 기자의 시선에 의해 걸러지고 독자에게 정정되어 전달되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이 다루는 음악을 들어는 봤는지, 들어보고도 판단할 능력이 없는지, 아니면 그저 단순히 홍보를 해주는 것만이 목적인지 궁금하다. 이러나저러나 사회에서 가장 쉬우면서 또 전문적으로 대중음악의 정보를 전달해주어야 할 주류 언론의 음악 전문 기자 중 많은 수가 기본적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것마저 무리수로 보일 만큼 우리는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기자들의 장르명 남용은 조금만 검색해보면, 그 경우와 수에 놀라게 된다. 최소한의 힙합 작법을 활용했다면 모르겠는데, 전혀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당장만 검색해봐도 데뷔를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4인조 걸 그룹의 컨셉트가 바로 ‘갱스터’라는 기사도 찾을 수 있다. 과연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된다. 물론, 홍보영상을 보면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을 듯하지만 말이다. 홍보 문구를 정하는 과정에서 무작정 ‘힙합’을 끌어다가 쓰는 것은 기이한 장르명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최근 본 황당한 경우는 유명 트로트 가수의 싱글 기사에 쓰인 ‘힙합발라드’다. 두 장르의 제대로된 조합은 언제나 환영할 일이고, 낭만과 감성을 극대화하는 가사진행을 바탕으로 하는 ‘발라드’는 타 장르 편곡과 쉽게 결합할 수 있겠지만, 그 가수의 노래에서는 ‘트로트’ 외엔 전혀 ‘힙합’을 찾을 수 없었다. 기존 곡보다 조금 더 강한 비트가 그 이유라면, 단순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남용과 별다를 것 없을 것이다.

    주요 언론의 대중음악 담당 기자들이 그저 제작자들의 보도자료만 옮겨 적는 식물기자가 아닌, 자신의 전문분야에 책임을 지고 다양한 장르음악을 소화함으로써 그 기반 위에서 음악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된다면,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기사의 가치를 높여간다면 적어도 장르음악의 가치를 기형적으로 인식시키는 상황은 덜해질 것이다. 어쩌면 불특정 대중과 가장 먼저, 그리고 가까운 접점이 포탈사이트 뉴스 난의 기사들이기에 이는 더욱 중요하다.

    오늘의 첨삭지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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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잠온다 (2012-08-29 15:22:01, 61.42.150.***)
      2. 저런 여자애들 허슬러 비디오에 가끔씩 출연함. 갱스터 인정해주죠.
      1. doh! nuts (2012-08-20 09:17:59, 164.124.106.***)
      2. 유치뽕짝이 따로없죠. 본토사람들이 보면 뭐라생각할까.
      1. 뮤직쿤 (2012-08-20 05:20:20, 36.39.208.***)
      2. 같은 회사에 갱키즈라는 그룹도 있던데요. 아예 팀이름에 갱이.. ㅋㅋㅋ
      1. 이븐시나 (2012-08-19 14:47:25, 113.199.57.**)
      2. 갱스타 티아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 끌리는대로 (2012-08-18 02:48:55, 210.94.96.***)
      2. 저 걸그룹들 뮤비보면 freddie gibbs의 thuggin'같은 느낌 받을수 있나요? ㅎㅎ
      1. JAYDAY (2012-08-17 23:17:55, 221.155.155.**)
      2. 디유닛 기획하고 만든 사람이 Digital Masta 인데
        그 분이 저런거 모를 분은 아닐텐데 홍보자료 만들다보니 급하셨나...
      1. SamplerP (2012-08-17 21:25:22, 14.55.28.**)
      2. Red Nation은 대단히 판타지화된 형태의 갱스터 뮤비라고 생각하는데..

        N.W.A나 Bloods & Crips 성님들이 진짜 갱랩이죠. 뮤비도 그렇고.
      1. 엄동영 (2012-08-17 20:32:39, 121.151.45.**)
      2. 진짜 막말로, 서태지의 컴백홈이 갱스터랩이 되려면 '길거리를 쓸어담고 엄마를 쏴버려'가 되야겠죠? 기자놈이 뮤비보고 '오 존나 어둡다 갱스터삘 쩌네'하고 쓴 느낌. 저렇게 건전가요삘나는 노래가 단지 약간의 law한 분위기만 있다고 갱스터랩으로 둔갑하는 기자놈 수준보소 ^-^
      1. 장경일 (2012-08-17 19:46:24, 175.114.188.***)
      2. 뭣도 모르고 갱스터니 갱스터 랩이니 하기 전에 더 게임의 'Red Nation' 뮤비라도 보고 기자들이 글 썼으면 좋겠네요.(어떻게 보면 가장 갱스터 랩 다운 갱스터 랩 뮤비니.)
      1. Messlit (2012-08-17 17:39:11, 118.33.55.**)
      2. 정말이지 아직까지 한국에서 힙합이라는 장르는 제대로 이해 받지 못하는것같아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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