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드머
스크랩
  • [리드머 뷰] 음악 동기화 '그루비한 걸음걸이로 사는 법'
    rhythmer | 2013-03-16 | 15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얼마 전 자이언티(Zion.T)의 두 번째 싱글이 나왔다. 2011년 그의 첫 정규 싱글 “Click Me” 발매 이후 실로 오랜만의 결실이다. 이번엔 자이언티의 “Click Me”와 지나온 삶을 동기화해본다. 그루브 넘치는 음색과 창법으로 흑인음악 팬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그의 “Click Me”를 처음 들었을 때 두 줄의 가사가 인상적이었다.

     

    하나는

    “Hello 내 이름은 Zion.T 서울 City 강서구에 살아 그 이상은 Privacy”

    하는 부분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Groovy한 걸음걸이의 Skinny Red”

    였다.

     

    나에게 강서구는 운전면허 시험장을 찾을 때 외엔 별 인연이 없던 동네였다. 가끔 화곡동에서 놀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정말 가끔이었다. 2010년 결혼과 동시에 신혼집을 강서구 가양동에 잡으면서 이 동네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이듬해 신예 알앤비 보컬로 떠오르던 자이언티가 강서구를 노래하면서 왠지 모를 동네부심과 반가움이 공존했었다. 그 이상은 프라이버시라니 정확히 어느 하늘 아래 자이언티가 숨 쉬며 살아가는지는 모르지만, 우연히라도 길에서 그를 만난다면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이 들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 가사 그루비한 걸음걸이’. 이번 글의 핵심은 바로 이 그루비한 걸음걸이에 관한 얘기다. 그루비한 걸음걸이가 어떤 걸까? 궁금하다면 당장 이태원 거리를 활보해보자. 유독 팔다리가 길고 어깨를 들썩이며 느리게 엇박자로 춤추듯 걷는 흑인들의 걸음걸이는 그 자체에서 리듬감이 묻어 나온다.

    대략 이런 느낌이랄까?

     

    우리가 아는 많은 힙합 음악 애호가나 힙합 뮤지션들 역시 기성세대들이 볼 때 뭔가 불량스러워 보이는 걸음걸이를 볼 수 있다. 지금이야 옷들이 타이트해지고 바지 폭이 좁아졌지만, 90년대 시절 펑퍼짐한 옷가지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허리띠, 40사이즈의 바지를 입고 이렇게 걸으면 주변의 시선은 비단 못마땅하기 마련이었다. 그게 자연스러운 걸음인지 흑인을 흉내 내는 걸음인지는 모르지만, 문득 홍대의 한 클럽에서 힙합공연을 하던 랩퍼가 전혀 모르는 팬이 힙합 악수를 청해오면 공손하게 인사를 해야 할지, 똑같이 힙합 악수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던 멘트가 기억난다.

     

    일명 힙합 악수를 청하기 전의 자세랄까.

     

    필자 역시 어린 시절부터 그루브 넘치는 흑인음악을 귀에 꽂고 다녀서 그런지 걸음걸이가 특이하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이 걸음걸이에 대한 일화 몇 가지를 얘기해볼까 한다.

     

    전에도 얘기했듯이 필자는 군 신체검사에서 4급 판정을 받고 단 한 달간의 훈련소 생활을 했다. 20여 년을 살면서 외쳤던 이기자보다 한 달 만에 더 많이 이기자를 외칠 수 있었던 까닭은 훈련이 악명 높기로 유명했던 이기자 부대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기자에서 가 다 빠지고 이자만 남은 삶을 살고 있지만 말이다. 아 눈물 좀 닦고….

     

    나보다 나이 어린 기간병에게 혼나기, 한 소변기에 두세 명이 오줌 누기, 담배 못 피우기, 밥 빨리 먹기 같은 평범한 일상을 벗어난 한 달간의 생활은 정말 힘들었다. 더욱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19금 주의!) 군부대 앞에 밤꽃 나무가 있었다는 거다. 군부대 앞에 밤꽃 나무라니….  

     

    어쨌든 4주간의 훈련 중 마지막 야간 행군을 하던 때였다. 군장을 메고 모두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양말을 두 겹이나 신었지만, 물집이 잡혀 걸을 때마다 아픔이 전해졌다. 그렇게 한참을 걷는데 옆에서 소대장 한 명이 외쳤다.

     

    , 너 이 새끼 발 끌지 마!”

     

    누군가 발이 아파 발을 끄는 모양이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소대장이 계속 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야 이 X새끼 발 끌지 말라고!”

     

    그는 손가락을 가리키며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 손가락 끝이 누구를 향하는가 따라가 보니... ? 나네? 난 분명 정상적으로 걷는다고 느꼈는데,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 다른 훈련병의 걸음 소리를 나로 착각한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군 생활을 하기 전에도 사회에서 발 좀 끌지 말고 걸으라는 소리를 종종 들어왔던 터라 의심은 금세 접었다.

     

    나는 사실 흑인을 흉내 내며 걷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저 유전적으로 평발에 칼발이고 코르테즈 같은 단화를 신으면 한 달이 안 되어 밑창이 망가지는 바람에 집에서 구박과 타박을 받는 하체 부실 자였을 뿐이다. 당신이 혹시 리듬감 넘치는 걸음걸이의 소유자라면, 군 생활 할 때만큼은 유의하도록 하자.

     

    현재 신고 있는 신발. 코르테즈보다 굽이 높은 에어포스원도 6개월 신으면 이 지경이다. 항상 발바닥 부분만 저래 망가진다. 발바닥을 잘라야 하나

     

    그런데 이런 독특한 걸음걸이가 꼭 나쁜 것만도 아니었다. 방위산업체 시절 내가 있던 공장은 핸드폰을 제조하는 곳이었다. 방위산업체 자격으로 공장 생활을 하던 직원들은 법적으로 단순노동만을 할 수 있었다. 핸드폰에 LCD나 키패드를 끼운다거나 나사를 박는 것 같은…. 하지만 이런 재미없고 반복되는 생활을 하다 보면, 모두 생활의 달인이 되기 마련이다. 고개를 끄덕끄덕 졸면서도 나사를 박을 수 있게 되면서 불량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그 시절 밤늦게까지 음악을 듣고 늦잠을 자는 바람에 특히나 졸면서 불량을 많이 내곤 했다. 만약 당신이 썼던 팬택&큐리텔 핸드폰 중 나사가 어긋나 있는 핸드폰이 있었다면, 필자가 했다고 믿어도 된다.

     

    결국, 공장에서는 나를 단순조립이 아닌 자재 운반 일을 시키기에 이르렀다. 법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을 잘해서 진급된 평범한 경우가 아닌 졸다가 진급한 경우는 공장에서 내가 유일했다. 

     

    그렇게 나는 남은 방위산업체 시절 중 절반을 자재 담당으로 보냈다. 생산라인에 이런저런 자재를 옮겨 다 주면서 방학 시절 아르바이트 삼아 공장에 취업한 어린 또래 여성들과 친하게 지내며, 가끔 핑크빛 연애를 펼치기도 했다. 당시 연애를 하던 한 여성에게 연애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조립을 하다가 자재를 기다리면 발걸음 소리만으로도 나를 느낄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내 발걸음엔 왠지 모를 리듬감이 실려 있어 남들과는 조금 달랐다나 뭐라나. 그녀가 기인이었을까? 무거운 자재를 들고 걷느라 내가 뒤뚱뒤뚱한 걸까? 어쨌거나 자이언티의 노랫말을 듣고 있으면 여러 일화들이 떠오른다.

     

    어쩌면 힙합과 걸음걸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의 힙합, 알앤비 음악 속에서 언급된 몇몇 걸음과 관련된 곡들의 가사를 살펴보며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때로는 껄렁거리며 걷는 걸음에 대한 예찬과 때로는 비판 섞인 가사까지….

     


    빈지노 – Nike Shoes Feat. 다이나믹 듀오

    그녀의 걸음걸이 느낌 있게 춤추는 귀고리 너의 귀밑에

    이 도시는 너에 비해 시시해 넌 시멘트에 색감을 이식해

     

    소리헤다 한랑가 Feat. 화지

    내 다리에는 소금 안 쳐, 하루도 안 절여(저려)

    느리게, 느리게, 느리게 걸어

     

    더블케이 – Seoul Feat. 알리

    걸음걸이 말투 나의 색깔은 So (Seoul)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스타일

     

    슈프림팀 아리따움

    봄처럼 밝은 미소 또 여름같이 화려한 걸음걸이 넌 가을같이 예민하고

    여린 맘을 감추려고 해

     

    정인 철수와 미미 Feat. , 이센스

    취한 사람같이 내 걸음걸이가 삐뚤 때 날 봐주고 잡아주던 그 맘 무조건 믿을게

     

    G-드래곤 – But I Love You

    내 말투, 행동, 걸음걸이 하나까지 도배된 널 닮은 습관들이 날 괴롭혀

     

    사이먼디 혼자만 남은 오후

    안단테로 흐르는 내 걸음걸이는 멋진 한 장면의 오마주

     

    김진표 싸가지가 바가지

    내가 봐도 집 나간 내 모습이 너무 멋있었지 쇼윈도에 비친 모습에

    넋을 잃고 저랬었지 아 이 폼나는 걸음걸이에 빛나는 길거리

     

    제리케이 – We Made Us

    걸레처럼 바닥을 쓸고 다니는 그 넓은 바지통 삐딱한 모자

    좀 껄렁한 걸음걸이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하는 Check It Out, Wassup

     

    드렁큰 타이거 짝패 Feat. 팔로알토

    추한 추임새와 걸음걸이, 겉치장뿐인 니 텅 빈 머리

    15

    스크랩하기

    • Share this article
    • Twitter Facebook
    • Comments
      1. 고우경 (2013-07-12 13:16:31, 211.55.75.***)
      2.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
    « PREV LIST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