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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뷰] Vince Staples 'SXSW' 공연 후기: 잊지 못할 염세의 멋
    rhythmer | 2016-03-25 | 10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미국 텍사스에 있는 오스틴은 미국인들이 인정하는 통칭 ‘라이브의 도시’이다. ‘오스틴을 계속 이상하게 만들자(Keep Austin Weird)’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미국 보수의 본산인 텍사스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자랑한다. 히피들을 위한 난해한 컨셉트의 가게들을 들를 때나, 길을 걷다 십수 명의 노숙자들이 모여 일광욕을 즐기는 평화로운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금세 이 슬로건이 그저 허언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거리 곳곳에서 마주치는 건물을 뒤덮은 벽화들과 다양한 퍼포먼스를 펼치는 예술가들은 오스틴을 단순히 이상한 도시를 넘어 매력적인 장소로 변화시켜 준다. 이런 오스틴에서 1년마다 큰 ‘뮤직 페스티벌’이라고 부를만한 행사가 두 번 열리는데, 하나는 10월에 열리는 ‘오스틴 시티 리밋(Austin City Limit)’이고, 다른 하나가 지난 20일 막을 내린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이하 SXSW)’이다.


     

     

     

    SXSW는 음악뿐만 아니라, 많은 회사들의 컨퍼런스와 영화제까지 함께 열리는 종합적인 성격의 행사이다. 특히, 음악 부문은 전 세계에서 수천 명의 뮤지션들이 참가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며, 이를 보기 위해 매년 수만 명의 팬들이 오스틴을 찾는다. 한국 아티스트들 역시 꾸준히 라인업에 이름을 올려왔고, 올해도 딥플로우, , 자이언티 등이 참가했다. SXSW의 진짜 매력은 축제가 열리는 기간 동안 오스틴 어디에서든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다운타운, 이스트 오스틴, 텍사스 대학 근처에 위치한 수십 개의 클럽과 라운지뿐만 아니라, 공원이나 심지어 오스틴을 가로지르는 콜로라도 강 위의 유람선에서조차 하루 종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울려 퍼진다.

     

    SXSW 기간 내내 모든 공연을 볼 수 있는 손목 밴드의 가격은 한화로 약 100만 원 정도. 그러나 공연이 있는 거의 모든 클럽에서 2~30불 정도의 금액으로 입장시켜주기 때문에 대부분의 팬들은 아주 저렴한 가격에, 그것도 뮤지션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다. 특히, 평소 자주 보기 어려운 나스(Nas)나 루츠(The Legendary Roots Crew) 같은 아티스트들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에 상당수는 미리 밴드를 구입하지 않고서도 SXSW를 찾는다.

     

    올해 SXSW 역시 많은 블랙 뮤직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는데, 그중에서도 지난해 [Summertime 06]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빈스 스테이플스(Vince Staples)는 힙합 팬들이 가장 손꼽아 기다린 아티스트였다. 빈스가 가진 세 번의 무대 중 두 번을 놓친 뒤에야 부랴부랴 시간을 맞출 수 있었던 나는 만사 제쳐놓고 축제의 피크데이인 금요일 저녁에 그의 공연이 있는 씨더 스트릿 코트야드(Cedar Street Courtyard)를 찾았다.

     


    공연장으로 향하는 길, 재즈가 들려 주변을 둘러보니 누군가 2층에서 창문을 열어 놓고 예술혼을 불태우는 중이었다.


     

    공연이 열리는 클럽은 공연장이 있는 실외 공간을 중심으로 양 옆에 오픈된 바가 있어 공연 중간마다 목을 축이며 쉬기 용이했다. 오스틴은 겨울이 짧고, 그마저도 별로 춥지가 않아, 이런 오픈된 구조를 가진 가게들이 흔하다. 비용으로 20불을 내고 들어가자, 아직은 적은 수의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며 얘길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낮부터 한 방울씩 쏟아지던 빗방울이 어느새 폭우가 되어 쏟아붓기 시작했다. 빈스의 차례는 한참 뒤인 12시였지만, 오프닝이었던 알앤비 그룹 킹(King)의 공연은 갑작스런 비로 취소되었고, 바에 둘러앉아 공연을 기다리던 팬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연신 각자의 잔만 비워댔다.

     



    공연장 옆에 자리한 바

     


    비가 그칠 기미가 없자, 이러다 오늘은 아무 공연도 보지 못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스쳤다. 공연히 테이블만 괴롭히던 나는 손등에 스탬프를 받고 다른 실내 공연장을 둘러볼 요량으로 근처 클럽으로 향했다. 공연장에서 네 블록 정도 떨어진 한 클럽에서는 11시가 넘어서 고스트페이스 킬라(Ghostface Killah)의 무대가 예정되어 있었다. 차라리 몰랐다면 좋았을 것을…. 비가 그쳤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도 나는 남아서 고스트페이스 킬라의 공연을 볼까 한참 동안 망설이며 서 있었다. 그러나 두 번이나 놓친 빈스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컸었는지 결국, 11시가 되기도 전에 원래의 공연 장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고스트페이스 킬라가 공연하기로 되어 있던 클럽의 내부

     

    두 시간 정도가 지나 공연장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비가 그친 공연장 안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곧 음악을 틀던 DJ가 물러난 후, 11시에 예정되어 있던 신예 알앤비 아티스트 갤런트(Gallant)의 무대를 위해 여러 악기들이 세팅되기 시작했다. 2014년에 EP [Zebra]로 데뷔한 갤런트는 근래 공개한 싱글들의 인기로 상당한 마니아층을 확보했는데, 그래서인지 이미 무대 근처에 팬심 가득한 한 무리의 팬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갤런트의 넓은 음역대와 힘 있는 코러스를 활용한 첫 곡 "Skipping Stones"는 그가 단순한 PBR&B 아티스트를 넘어, 이미 장르 안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는 느낌을 받을 만했다.

     



     


    갤런트를 중심으로 드럼, 건반, 기타만으로 채워진 세션들은 단출했지만, 공연은 다채로운 구성을 자랑했다. 무대를 몽환적인 사운드로 채우는 데 한몫했던 기타 솔로에 이어, 그의 장기인 팔세토가 묵직한 드럼 비트를 뚫고 나오자 이미 취기가 오른 관객들은 그를 따라 하나둘 울부짖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Weight in Gold"는 떼창에 최적화된 곡이라고 생각하기에, 그가 언젠가 내한공연을 와서 한국 팬들의 떼창을 맛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갤런트가 예정된 공연 시간인 40분보다 짧은 6곡만 부르고 퇴장한 뒤엔 얼큰하게 취한 R&B팬들이 객석 뒤쪽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를 파이팅 넘치는 힙합 팬들이 빈틈없이 채워나갔다. 이내 밴드 세팅이 있던 자리에 빈스의 파트너인 디제이 타일러(DJ Tyler)가 자리 잡자 들뜬 표정의 사람들이 다시 무대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니 비로 인해 한적했던 공연장이 어느새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윽고 "Lift Me Up"의 시작을 알리는 음울한 멜로디가 울려 퍼지고 후드를 뒤집어쓴 빈스 스테이플스가 계단 위에서 천천히 무대로 걸어 내려왔다.

     

     


    이미 비에 젖고, 지친 터라 체력 안배를 생각했지만, 초반부터 "Lift Me Up", "Birds & Bee", "Jump Off The Roof"가 연달아 이어지는 분위기엔 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한공연 때와 비교하면, 이 날 관객들의 반응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지만, 적어도 요소 요소의 포인트만은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Hang N Bang"에선 한 소절마다 따라 붙는 'Thats true!'를 외치는가 하면, "Dopeman"의 도입부에선 빈스의 랩을 찰떡같이 따라했다. 무엇보다 빈스의 “Norf Norf"를 따라 다 같이 외친 'Norfside Long Beach'가 아마 이 날 나온 최고의 데시벨이었을 것이다.

     

    빈스는 시종일관 특유의 시니컬한 표정과 그에 어울리는 말본새를 보여줬다. 한 팬이 멘트 도중 계속 그의 이름을 부르자, ' X발 계속 내 이름을 불러대는 거야?(Why are you fxxkin calling my name?)”이라고 받아치는가 하면, 객석을 둘러본 후, “여기도 온통 백인이구만.”하는 뼈 있는 멘트도 빼놓지 않았다. 이어 객석 맨 앞의 남성에게 “당신도 백인이지?”라고 묻자 당황한 그는 어머니가 스패니쉬라며 갑자기 자신을 적극 변호(?)했다. 나에게도 한 번 물어봐 줄까 싶어 간절한 눈빛을 보냈지만, 그는 이미 척 봐도 알겠다는 듯한 제스쳐로 화답했다.

     

    이런 빈스도 공연 중에서도 딱 한 번 웃음을 보이는 헤프닝이 있었다. 첫 곡 "Lift Me Up"에서 계속되는 음 이탈에 괴로워하던 빈스는 다음 곡인 "Birds & Bee"를 부르는 도중 별안간 객석 앞쪽으로 나아가더니 한 팬의 대마초 파이프를 낚아채서 반대쪽으로 집어 던지고 노래를 계속했다. 곡이 끝난 후, 그는 관객들에게 자신이 천식을 앓고 있기 때문에 앞에서 대놓고 연기를 피우면 노래하기 매우 힘들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어 그는 파이프를 뺏긴 그 팬에게 그것을 돌려주며, “왜 자꾸 여기서 이걸 피는 거야, 당신 사람 아냐? 동물이야?”라고 물었지만, 이미 대마초에 흠뻑 취한 그가 연신 외쳐대는 “아이 러브 힙합!”에 냉소적인 빈스도 어이없는 웃음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공연 내내 환호와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팬들과 달리, 빈스의 말투와 표정은 [Summertime 06]을 이끌어가던 가사의 분위기처럼 냉소와 차가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빈스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시니컬함을 강요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웃고 즐기는 팬들을 위해 곡 중간마다 천식 환자용 흡입기를 들이키면서 한 곡, 한 곡 정성껏 불러 나가는 그를 한 시간 동안 보고 있자니 그 무덤덤한 표정에서 왠지 모를 정겨움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빈스는 역시 빈스였다. 공연 막바지 "Summertime"에 이어 "Norf Norf"가 끝나자 앙코르를 외치는 팬들에게 손을 들어준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장했다. 이렇게 쿨(?)할 수가. 공연은 한 시간 남짓해서 끝났지만, [Summertime 06]을 속성으로 복습한 탓인지,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흡사 빈스 스테이플스란 사람 자체를 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날 공연의 후유증 때문인지 SXSW 마지막 날인 토요일은 번개처럼 지나갔다. 빈스의 공연은 막을 내렸지만, 다시 그때의 감동을 되새기고자 그의 암울한 노래들을 듣고 있자면, 아직도 그날 밤 객석 앞을 가득 메운 백인 관객들을 바라보던 빈스의 염세적인 눈빛이 떠오른다. 그리고 아마도 그 눈빛을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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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아 (2016-03-31 22:32:21, 210.217.77.***)
      2. Vince Staples is not gang.
        OG=Gang ili G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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