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뷰] Janelle Monae의 노래와 연기는 아름답게 공명한다
- rhythmer | 2017-04-26 | 19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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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정용 풋볼리스트 기자(Contributor)
영화 [히든 피겨스, Hidden Figures]의 캐릭터 매리 잭슨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뮤지션이자 배우 자넬 모네(Janelle Monae)를 고스란히 닮았다. 모네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을 ‘예술가. 타자. 젊은 제다이. 반동분자(Rebelutionary). 아크안드로이드. 커버걸(CoverGurl). 아프로 퓨처리스트. 르네상스 우먼. 원더랜드 레코드의 CEO’라고 소개해 뒀다. 하나같이 모네를 잘 보여주는 정체성이다.뮤지션으로서 모네의 작업은 늘 블랙 페미니즘(흑인 여성들에게 주목한 페미니즘의 한 종류. 인종과 젠더에 따른 이중 차별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음)의 한 갈래였다. 모네가 대중 앞에서 발표한 앨범 세 장(EP 하나, LP 둘)은 총 7부작으로 구성된 SF 연작 드라마 중 1부에서 5부까지를 다루고 있다. 프리츠 랑(Fritz Lang)의 고전 SF 영화 [메트로폴리스, Metropolis]에서 따온 암울한 미래 세계에서 모험이 벌어진다. 락스타의 재능과 영혼을 갖게 된 신디 메이웨더(Cindi Mayweather)라는 이름의 안드로이드가 인간을 사랑한 죄로 쫓기다, 결국 체제를 전복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뛰어난 판타지나 SF가 늘 그렇듯이 모네의 이야기는 먼 미래를 다루면서도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메이웨더의 모험담은 기본적으로 흑인 여성 작가 옥타비아 버틀러(Octavia Butler)가 주도한 하위 장르 아프로퓨처리즘을 따르고 있다. 미래 사회라는 배경과 안드로이드라는 출신 성분은 21세기 흑인 여성이 겪는 태생적 억압과 이를 둘러싼 사회적 현실에 대한 은유다. 우회법을 택한 모네는 자유분방하게 다양한 서사를 전개해 나간다.
세 장의 앨범을 통해 모네의 음악 세계도, 주제의식을 다루는 방식도 점차 발전해왔다. EP로 발매된 [Metropolis: Suite I (The Chase)]는 신디의 모험담을 다루는데 집중한다. 정규 앨범으로 나온 [The ArchAndroid (Suites II and III)]를 거쳐 [The Electric Lady]에 이르면, 모네의 음악 세계는 더 절묘한 경지로 발전한다. 각 노래는 독립된 메시지와 완결성을 가진 훌륭한 싱글로 들리기도 하지만, 사이사이에 배치된 스킷과 몇몇 중의적인 표현들을 통해 앨범 전체는 신디의 이야기가 된다. 싱글 "Q.U.E.E.N"이 시작되기 직전 증기기관에서 김이 빠지는 듯한 소리가 잠깐 삽입됐는데, 이 효과음 하나만으로도 노래에 스팀펑크의 장르적 아우라가 생긴다.
여성 팝 뮤지션의 이미지메이킹은 늘 고정관념과 벌이는 게임이다. 모네는 일각에서 규정한 ‘여성스런 스타일’을 정면으로 배반하는 전략을 통해 성별에 얽매이지 않는 독특한 지위를 차지했다. 노출이 없는 바지 차림,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를 연상시키는 ‘뽕’ 머리,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개다리춤, 여기에 프린스(Prince)와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를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복고 정서가 모여 모네의 음악을 구성한다. 모네의 이미지에서 섹시, 귀여움, 우아함, 감성적 등 여성 뮤지션이 갖춰야 한다고 여겨져 온 속성은 대부분 배제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에리카 바두(Erykah Badu), 솔란지 놀스(Solange Knowles), 에스페란자 스팔딩(Esperanza Spalding) 등 흑인 여성 뮤지션들과의 꾸준한 협업을 통해 연대의 제스처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모네의 음악이 페미니즘을 직접 다루는 건 아니지만, 페미니즘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 음악 속에 차고 넘친다.
다만, 모네는 동시대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을 만한 앨범들을 잇달아 발표한 뒤 2014년부터는 앨범 작업이 뜸했다. 대신 모네가 택한 건 연기였다. 작품을 고르는 눈이 탁월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개봉한 [문라이트, Moonlight]와 [히든 피겨스]를 통해 모네는 배우로 본격 데뷔하자마자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 2편에 출연한 배우가 됐다. 그리고 모네는 영화로 진출한 어떤 흑인 뮤지션보다도 영리한 행보를 밟기 시작했다. 모네의 음악과 영화는 비슷한 정서와 사상을 공유하며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문라이트]는 후드 스토리와 갱스터 신화를 뒤엎는 게이 마약상의 이야기다. 대중문화 속 흑인 남성의 고정관념을 적극적으로, 그러면서도 메시지에 함몰되지 않고 사적인 예술로써 뒤집었다는 점에서 모네의 작업과 비슷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있다.
[히든 피겨스]는 시놉시스와 예고편만 봐도 모네를 위한 영화처럼 보인다. 나사(NASA)에서 업적을 남겼으나 인종차별적 분위기 때문에 그동안 잊혀져 왔던(hidden figures) 흑인 여성 과학자들의 이야기는 모네의 음악 세계와 강하게 공명한다. 모네가 연기한 엔지니어 메리 잭슨은 거의 자연인 모네를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놓은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특히, 모네의 싱글 중에는 미국 최초 여성 우주비행사에게 헌정한 "Sally Ride", 흑인 여성 최초로 오스카 후보에 오른 선배 배우에게 바친 "Dorothy Dandridge Eyes"가 있다. 모네가 실존 인물의 이름을 제목에 올린 둘 뿐인 경우다. 이 노래들을 발표한지 약 3년 뒤, 모네는 샐리 라이드와 비슷한 인물을 연기해 도로시 댄드리지처럼 오스카 레드카펫을 밟았다. 자신의 미래를 예언한 듯한 노래들이었다.모네는 과학과 우주비행에 대한 이야기를 가사 속에서 꾸준히 다뤘다. [히든 피겨스]의 실존 인물인 캐서린 존슨, 메리 잭슨 등을 모네가 미리 알고 있었다면, "Sally Ride" 대신 "Merry Jackson"이라는 노래가 앨범에 실렸을지도 모른다. 모네는 [히든 피겨스]의 캐스팅 제안을 받기 전까지 실존 인물들의 사연을 모르고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흑인 뮤지션들은 음악계에서 아무리 확고한 지위를 갖췄더라도 영화 속에선 그 이미지를 쉽게 소비하거나, 별 개성 없는 조연/단역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확고한 개성을 인정받은 니키 미나즈(Nicki Minaj)와 키드 커디(Kid Cudi)는 모두 상업영화의 주인공 비서역으로 출연하며 큰 의미 없는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야신 베이(yasiin Bey aka Mos Def)와 커먼(Common) 등 진지하고 계몽적인 랩을 했던 배우들조차도 영화 속에서 평범한 대중 영화의 조연으로 소모되곤 한다. 특히, 커먼은 최근 계봉한 [존 윅: 리로드, John Wick Chapter Two] 등, 여러 영화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으며 액션 영화의 악역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듯하다. 아이스 큐브(Ice Cube)도 개성 있는 액션 배우로 자리매김하는데 성공했다. 이들에게 랩과 연기는 완전히 동떨어진 작업이다.
래퍼를 비롯한 흑인음악 뮤지션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배우는 늘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야 하는 직업이다. 두 직업의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건 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모네는 음악과 연기 세계를 같은 트랙 위에서 굴리는 묘기에 성공했다. 처음 출연한 두 영화 모두 진보적인 의제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들이었다. 메리 잭슨과 [문라이트]의 테레사 모두 모네의 예술관과 같은 결을 지녔기에 더 훌륭하게 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배우조합상 시상식에서 ‘단체 연기상’을 수상한 뒤, 타라지 피. 헨슨(Taraji P. Henson)은 흑인 여성들의 인권에 대한 강렬한 연설로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이때 옆에 서 있던 모네는 투쟁에서 승리한 투사처럼 하늘을 바라보며, ‘세리머니’를 했다. 잭슨을 연기한다는 건 모네에게 대중예술 이상의 의미가 있는 작업이었다.뮤지션 모네와 배우 모네는 사운드트랙을 통해 만나기도 한다. 모네는 [문라이트] OST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자신의 레이블 소속 가수인 지데나(Jidenna)의 "Classic Man"을 삽입하는데 그쳤다. 대신 [히든 피겨스] OST에서는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의 전체적인 조율 위에서 2곡에 참여해 노래를 불렀다. 또한, 모네는 스튜디오 앨범을 내지 않는 가운데서도 원더랜드 레코드(Wondaland Records) 아티스트들과 함께 일종의 ‘시위용 민중가요’인 "Hell You Talmbout"를 무료 배포하고, 페미니즘 운동 ‘Fem The Future’에서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해 왔다. 한편, 지데나 등 동료 뮤지션들을 지원하는 활동도 이어 왔다. 배우로서 성공적으로 데뷔한 모네는 다음 스튜디오 앨범 작업에 복귀했다고 말했다. 어떤 앨범이 될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신디 메이웨더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건 힌트가 될 것이다.
2016년 미국 대중문화계의 흐름 중 하나는 블랙 페미니즘이 주류 대중문화 속으로 성큼 들어왔다는 것이다. 지난해 비욘세(Beyonce)와 솔란지는 각각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오른 작품을 발표했다. 자매가 같은 해 1위에 오른 건 이번이 사상 최초였다. 둘의 음악은 여러모로 다르지만, 각자 다른 길을 통해 블랙 페미니즘이라는 소재에서 만났다. 한때 블랙 페미니즘은 미셸 은디지오첼로(Meshell Ndegeocello)처럼 인디 성향의 뮤지션이 다루는 소재였다. 이젠 주류 대중예술의 소재가 됐다. 비욘세가 '쎈 언니' 이미지를 유지하며 가정사를 음악 속에 녹여낼 때도, 솔란지가 관조적이고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 때도 블랙 페미니즘 성향이 적극적으로 드러난다.모네도 같은 계열로 분류할 수 있는 뮤지션이다. 모네는 지난해 빌보드의 블랙 페미니즘 흐름에 동참하는 대신, 박스오피스에서 두 작품에 참여했다. [히든 피겨스]는 주인공들이 인종과 성별로 이중 차별받는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줘서 관련 학술 세미나의 자료로 상영되기도 했다. 블랙 페미니즘은 지난 수년간 가장 흥미로운 작품이 사상적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으며, 그 주인공들은 사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이기도 하다.* 그들의 성취는 연대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자넬 모네의 노래와 연기는 아름답게 공명한다.
*모네의 음악 세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뮤직비디오인데, "Q.U.E.E.N"을 비롯한 주요 비디오를 감독한 앨런 퍼거슨은 솔란지의 남편이다. 모네가 둘 사이를 이어줬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인연으로 솔란지의 결혼식 당시 비욘세 등 가족들과 모네가 함께 기념사진을 찍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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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다영 (2017-06-13 00:36:12, 121.131.201.**)
- 상반기 두 영화에 출연해서 주목하던 배우였는데 가수로는 앨범 몇 장으로 유명하다는 것만 들었지, 앨범이 가진 의미에 대해서는 처음 알게 되었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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