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뷰] 새로운 힙합 'Afro Trap', 축구를 통해 성장하다
- rhythmer | 2018-11-13 | 12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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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정용 풋볼리스트 기자(Contributor)
파리에서 발생한 힙합의 한 장르가 유럽 전체로 번져나가려면? 가장 빠른 지름길은 축구를 타고 퍼지는 것이다. 유럽 전체는 UEFA 챔피언스리그라는 축구 대회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아프로 트랩의 선구자 엠아슈디(MHD)가 “챔피언스리그(Afro Trap, Part. 3 - Champions League)”라는 노래로 스타덤에 오른 건 영리한 선택이었다.
아프로 트랩은 아직 국내에서 생소한 장르다. 주로 불어권 및 유럽에서 유행하는 장르이고, 태동한지 고작 3년 정도 지났기 때문에 유럽 바깥으로는 그리 퍼지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힙합의 하위 장르로 자리 잡은 상태다. 엠아슈디는 영어권 아티스트들과 활발한 콜라보를 하고 미국 투어를 가지며 힙합의 본토까지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최근에는 은퇴 의사를 밝혔다. 제이지, 릴 웨인이 그랬듯 은퇴 예고는 랩스타들의 전유물 같은 행위다. 엠아슈디는 틀림없이 유럽 최고의 랩스타고, 진심이건 아니건 은퇴 선언을 할 자격이 있다.
파리생제르맹과 챔피언스리그에 대한 라임으로 스타가 되다엠아슈디는 세네갈 출신 아버지와 기니 출신 어머니 아래서 태어났고, 파리 19구역에서 성장했다. 서아프리카 출신 친척들에게 둘러싸여 자라는 동안 자연스럽게 아프리카의 음악과 프랑스 래퍼들의 음악, 미국에서 건너온 트랩을 모두 즐겨 듣게 됐다. 이런 배경의 화합물이 엠아슈디의 음악이었다.
아프로 트랩은 흔히 아프로비트와 트랩의 결합으로 분석된다. 1970년대 시작된 아프로비트는 나이지리아 등 서아프리카의 음악이 서양의 밴드 음악과 결합된 양식이다. 엠아슈디와 동료 프로듀서들은 아프로비트 특유의 리듬과 시끌벅적한 정서를 TR-808 드럼머신으로 재현했다. 그리고 2015년부터 유튜브를 통해 작업물을 발표하면서 브랜드를 만들었다. 바로 아프로 트랩 시리즈다.
파리 시민답게 그의 랩은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곤 한다. 엠아슈디는 ‘오케이아프리카’와 가진 인터뷰에서 “언제나 축구 선수가 되길 꿈꿨고, 지금도 꾸고 있다. 축구공이 근처에 있으면 언제나 차고 싶다. 축구는 내 두 번째 아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한 바 있다. 엠아슈디는 모든 성공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라는 말을 할 때 “지단이 은퇴했던 것처럼 말이다”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특히, 세 번째로 발표된 “Afro Trap, Part. 3 (Champions League)”는 축구를 통해 유명해 진 엠아슈디의 대표적인 곡이다. 후렴 전체가 ‘c'est la Champions League(그건 챔피언스리그야)’라는 말과 총소리를 흉내 낸 추임새로 가득하다. 당시 파리생제르맹(PSG)의 대표적인 스타였던 마르코 베라티와 티아구 모타를 거론하며 ‘나는 베라티와 모타처럼 무적이지. 나는 필드(rrain-tee. 축구 경기장과 마약이 거래되는 장소를 동시에 지칭한 언어유희)에 있고, 너희들은 벤치에 있지’라는 라인을 선보였다.
또한 엠아슈디의 동네 친구인 셰이크 케이타라는 선수가 등장하는데, 당시 별 볼 일 없는 하부리그 선수였던 케이타는 엠아슈디 덕분에 프랑스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곡은 뮤직비디오도 축구와 관련된 소재로 가득 차 있다. PSG와 바이에른뮌헨 등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하는 팀의 옷이 잔뜩 등장한다.
성공으로 가는 두 번째 지름길은 춤이었다. 유행하는 춤을 만들면 곧 명성을 얻는다는 오늘날 미국 힙합계의 공식은 유럽에서도 똑같이 적용됐다. 엠아슈디는 “Afro Trap, Pt. 4 (Fais le mouv)”을 통해 일명 ‘르 무(le mouv) 댄스’를 유행시켰다. 파리생제르맹 선수들과 폴 포그바 등이 이 춤을 추면서, 선수들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들에게 엠아슈디의 존재가 빠르게 각인됐다.
‘르 무 댄스’에 이어 ‘로저 밀러 댄스’엠아슈디는 2016년 아프로 트랩 시리즈 6곡과 신곡 9곡을 더한 첫 정규 앨범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이때 싱글로 발표했던 곡 중 하나가 “Roger Milla”다. 카메룬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 로저 밀러의 이름을 땄다.
이 곡은 제목만 축구 선수를 따지 않았다. 로저 밀러는 1990 이탈리아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뒤 아프리카 특유의 흥겨운 춤으로 골 세리머니를 해 유명해졌다. 아프리카의 리듬을 전세계로 생중계한 상징적 장면이다. “Roger Milla”의 뮤직비디오는 이 골 장면으로 시작한다. 후렴 가사는 ‘로저 밀러처럼 춤을 춰’라는 뜻이다. 비디오 속에서 엠아슈디도 로저 밀러의 춤을 따라 춘다.
엠아슈디의 축구 마케팅은 유럽에서, 로저 밀러 마케팅은 아프리카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곧 엠아슈디는 유럽의 각 도시, 캐나다의 불어권 도시뿐 아니라 코트디부아르, 카메룬 등 아프리카 곳곳으로 투어를 다니는 스타가 됐다.
코트디부아르의 아비장에서 공연할 때의 영상은 특히 인상적이다. 관중들이 “Roger Milla”를 따라 부르다가 ‘디디에, 드로그바, 디디에 드로그바처럼 춤을 춰’라고 가사를 바꿔 떼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로저 밀러는 아프리카 전체에서 일종의 차범근 같은 존재다. 엠아슈디의 노래는 사랑받는 것이 당연했다.
포그바, 발로텔리, 베예린...
엠아슈디는 한동안 아디다스와 친밀한 관계였다. 아디다스가 후원하는 선수 중 특히 힙합을 좋아하는 포그바는 엠아슈디의 음악에 큰 관심을 가졌다. 둘 사이에는 긴밀한 유대관계가 생겼고, 친구 사이로 발전했다.
2017년 2월 나온 “Afro Trap, Part. 8 (never)”를 보면 축구가 엠아슈디의 음악 형식에까지 영향을 미친 걸 볼 수 있다. 이때는 포그바가 맨체스터유나이티드로 이적한 뒤다. 그래서 “never”에선 포그바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내가 댑을 하면, 너희는 좋아하지’, ‘난 포그바처럼 필드 위에 섰지’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뮤직비디오는 맨체스터에서 찍었고, 엠아슈디는 포그바 유니폼을 입고 있다. 이 곡은 아프로 트랩 시리즈 중 유일하게 부제가 영어(never)다. 영국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흥미로운 건 이 곡의 비트가 앞선 7개의 아프로 트랩 시리즈와 달리 그라임에 가깝다는 것이다. 엠아슈디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영국을 자주 오가다보니 현지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한 바 있다. 포그바를 따라 맨체스터를 자주 찾다가 음악 세계까지 변한 것이다.
엠아슈디는 2017년 4월 푸마의 홍보대사로 계약했다. 이후 나온 아프로 트랩 9와 10은 푸마가 전면에 등장한다. 특히, 올해 1월 발표된 “Afro Trap, Part 10 (Moula Gang)”은 아예 푸마의 광고 음악에 가깝다. 푸마의 간판 스타인 마리오 발로텔리와 엑토르 베예린이 등장하며, 역시 푸마가 후원하는 유명 프리스타일러 리사까지 나와 축구공으로 묘기를 부린다. 여기에 농구, 미식축구, 크로스핏 등 푸마의 다양한 종목이 총출동했다.
런던에서, 나아가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래퍼아프로 트랩은 트랩과 그라임에 이어 가장 최근에 등장한 유행 장르다. 아직 미국 힙합계에 본격적으로 퍼진 건 아니지만, 아프로 트랩을 차용하는 뮤지션들이 등장하고 있다. 탑독 엔터테인먼트 소속 싱어 자카리(Zacari)가 [Black Panther : The Album]에 수록한 “Redemption”이 대표적이다.
축구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흑인 선수들이 골 세리머니를 할 때 독특한 리듬을 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힙합 비트와는 어울리지 않는 춤인데, 이 춤 역시 아프로 트랩을 통해 유행했다. 이처럼 유럽 흑인들의 삶에는 아프로 트랩이 깊이 침투해 있다. 엠아슈디의 영향력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올해 1월 런던에서 열린 푸마의 새 축구화 발표 행사를 취재했다. 이 행사에는 축구선수가 한 명도 초청되지 않았고(나중에 깜짝 게스트로 발로텔리가 등장했다) 영국의 많은 래퍼들이 등장해 작은 콘서트를 가졌다. 그 중에서 헤드라이너 격인 뮤지션이 엠아슈디였다. 영국에서 열린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불어를 쓰는 래퍼가 가장 큰 인기를 끈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아프로 트랩의 리듬으로 언어의 벽을 허문 래퍼(‘AXS’ 기사 제목)”라는 수식어 그대로였다.
대부분 영국인인 관중들은 엠아슈디의 랩을 곧잘 따라 불렀고, 특히 후렴은 떼창 분위기도 났다. 불어를 거의 할 줄 모르는 한국인인 나 역시 몇몇 후렴구가 강하게 각인됐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흥얼거릴 수도 있었다. 아프로 트랩이 얼마나 중독성 강한 장르인지 한 번에 느낀 날이었다. 이날 엠아슈디의 무대에 발로텔리가 함께 올라 존재감을 보여줬다.
스타가 된 뒤 엠아슈디와 축구 선수들의 교류는 더 강해졌다. 파리생제르맹 전/현 선수인 아드리앙 라비오, 세르주 오리에, 알렉상드르 라카제트, 사뮈엘 윔티티 등은 모두 엠아슈디를 좋아한다는 것이 잘 알려진 선수들이다.엠아슈디는 엄청난 속도로 성공을 거뒀다. 영국 ‘가디언’지의 묘사대로 피자를 배달하던 소년이 6만 5천 명 앞에서 공연하는 랩스타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8개월에 불과했다. 그만큼 정체기도 빨리 찾아왔다. 엠아슈디는 지난해 말부터 아프로 트랩을 벗어나 다양한 음악 장르로 발을 넓히려는 시도를 했으나 오히려 개성이 없어지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결국 올해 9월 발표한 새 앨범 [19]가 은퇴작이라는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19]의 동명 타이틀곡 “XIX”는 파리생제르맹의 19번 유니폼 사진을 커버로 썼다. 현재 토트넘홋스퍼에서 손흥민과 함께 뛰는 오리에가 파리생제르맹 시절 입었던 유니폼이다. 오리에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엠아슈디에 대한 감사를 밝혔다. 엠아슈디는 축구스타들의 랩스타고, 이를 통해 미국을 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래퍼 중 한 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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