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뷰] 축제에서 혁명이 된 여름, ‘Summer of Soul’
- rhythmer | 2022-04-20 | 6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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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두하
지난 3월 28일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화제가 된 건 단연 윌 스미스(Will Smith)의 크리스 락(Chris Rock) 폭행 사건이다. 그런데 블랙뮤직 팬이라면 더 주목해야 할 순간이 있었다. 더 루츠(The Roots)의 드러머이자 프론트맨 퀘스트러브(Questlove)가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부문의 시상자가 크리스 락이었다.퀘스트러브가 감독한 다큐 [축제의 여름 (...혹은 중계될 수 없는 혁명), Summer of Soul (...Or, When the Revolution Could Not Be Televised)]는 지난 2021년 1월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첫 선을 보였다. 이후 같은 해 6월 미국에서 서비스 중인 OTT 훌루(Hulu)에서 대중에게도 공개됐고, 오스카상을 거머쥐었다. 뿐만 아니라 4월 4일에 열린 ‘제64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베스트 뮤직 필름(Best Music Film)’ 부문까지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축제의 여름 (...혹은 중계될 수 없는 혁명)]은 1969년 여름 뉴욕 할렘의 마운트 모리스 공원(*주: 현재는 마커스 가비 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에서 약 6주간 열린 ‘할렘 컬쳐 페스티벌(Harlem Culture Festival)’ 실황을 축제에 참여했던 관객, 아티스트 인터뷰와 교차해 담은 작품이다.당시 할렘의 흑인들은 ‘크랙(Crack)’으로 대표되는 마약과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아티스트, 공연 기획자, 그리고 사회 운동가로 활동하던 토니 로런스(Tony Lawrence)는 이들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사업 수완이 좋았던 그는 블랙 커뮤니티에 친근한 모습을 보였던 뉴욕 시장 존 린제이(John Lindsay)의 도움과 커피 회사 맥스웰 하우스의 후원에 힘입어 페스티벌을 개최할 수 있었다.
다큐는 6주 동안 출연했던 수많은 아티스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의 모습을 추려서 보여준다.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마할리아 잭슨(Mahalia Jackson), 메이비스 스테이플스(Mavis Staples), 니나 시몬(Nina Simone), 더 피프스 디멘션(The 5th Dimension), 글래디스 나이트 앤 더 핍스(Gladys Knight & The Pips),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Sly and the Family Stone), 더 체임버 브라더스(The Chamber Brothers) 등등, 전설적인 이름이 줄지어 등장한다.
할렘의 뜨거운 햇살 아래 몸을 사리지 않고 연주하며 노래하는 뮤지션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현장감을 느끼게 한다. 이들의 공연 실황을 고화질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큐는 충분히 가치 있다. 더욱 흥미로운 건 각 팀의 배경과 음악적 색깔까지도 살짝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예를 들어 직접 인터뷰이로 참여한 더 피프스 디멘션은 그룹을 출세하게 만든 히트곡 “Aquarius/Let The Sunshine In (The Flesh Failures)”가 탄생하게 된 계기와 ‘충분히 흑인답지 않다’는 이유로 핍박받았던 일화를 들려준다. 또한 당시 모타운 레코즈(Motown Records) 소속으로 19세의 스티비 원더는 안주와 도전이라는 두 가지 길 사이에서 고민하던 중이었다.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이제는 전설이 된 그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
알앤비, 소울뿐만 아니라 블루스, 재즈, 가스펠, 레게 등등,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는 아티스트들의 모습을 보면 블랙뮤직의 풍성한 뿌리를 체감할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인 공연은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니나 시몬이다. 그는 공연 전 인터뷰를 통해 ‘어떻게 예술가로서 자기 시대를 반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후 당대의 블랙 커뮤니티를 대변하고 백인들을 향해 일갈하는 “Backlash Blues”와 젊은 흑인들의 미래를 예찬하는 “To Be Young, Gifted & Black”을 열창한다.
백미는 마지막으로 시인 데이비드 넬슨(Daivd Nelson)이 쓴 시 “Are You Ready”를 스포큰 워드 형식으로 공연하는 순간이다. 그는 시를 통해 젊은 흑인들에게 백인중심사회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됐는지 묻는다. 공연 모습과 기득권에 맞서 할렘의 흑인 시민들이 시위하는 뉴스 장면이 교차하며 분위기가 고조된다. 최초 축제로 시작했지만, 혁명이 된 것이다.축제는 본래 CBS와 ABC를 통해 특집 방송으로 방영하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됐다. 그러나 방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같은 해 8월에 열린 우드스탁 페스티벌(Woodstock Festival)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가 버렸기 때문이다. 6주간의 축제가 끝나고, 마치 없었던 일처럼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 버렸다. 그리고 촬영 테이프는 그대로 방송국 지하에 보관된 채 약 40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한 영화 기록 보관사가 2004년 우연히 테이프의 존재를 발견했고,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려 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다. 또다시 10여년이 흘러 2016년경 테이프와 다큐멘터리 제작 소식이 퀘스트러브에게 흘러들어왔다. 축제에 직접 참여했던 그는 바로 제작에 착수했다. (*주: 퀘스트러브는 1971년 생이고, 축제는 1974년까지 지속됐다.) 그리고 2021년, 드디어 이 축제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축제에 참석했을 당시 어린아이였던 인터뷰이 무사 잭슨(Musa Jackson)은 다큐 말미에 영상을 다 보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때로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해진 그날의 기억을 영상을 통해 확인받는 기분이라고 말하면서. 퀘스트러브도 무사에게 ‘이 영상을 보는 당신을 보며 나도 감정이 북받친다. 그 일을 기억하는 건 나뿐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한다. 다큐멘터리가 1969년 여름 할렘 마운트 모리스 공원에 모였었던 이들을 넘어, 미국의 블랙 커뮤니티 일원들이 다시 한번 연대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한 것이다.다큐멘터리는 현재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블랙뮤직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감상해봐야 할 작품이다. 크게 관심이 없더라도 괜찮다. 공연 실황과 인터뷰, 당시 블랙 커뮤니티의 현실을 알 수 있는 자료 화면이 교차하는 감각적인 화면과 스토리 자체가 흥미롭다. 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 유쾌한 쿠키 영상도 놓치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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