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뷰] 싱그럽게 기록된 그날의 기록, ‘한여름밤의 재즈’
- rhythmer | 2022-09-07 | 17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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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준영
세상엔 여러 음악 페스티벌이 있다. 영국은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Glastonbury Festival), 미국은 코첼라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 독일은 록 엠 링/록 임 파크(Rock am Ring / Rock im Park)가 대표적이며, 벨기에에선 투모로우랜드(Tomorrowland)가 큰 사랑을 받는다.유명 재즈 페스티벌도 상당수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Montreux Jazz Festival),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New Orleans Jazz & Heritage Festival), 비엔나 재즈 페스티벌(Jazz Fest Wien),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Montreal International Jazz Festival), 자카르타 재즈 페스티벌(Jakarta International Java Jazz Festival) 등등, 내로라할 축제가 세계 곳곳에서 열린다.
그중 개최 규모와 관객 수는 다소 부족해 보일 수 있으나, 역사성과 노하우만큼은 그 어떤 경우보다 뛰어난 페스티벌이 있다.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Newport Jazz Festival)이다. 1954년부터 현재까지 개최되는 중인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은 로드아일랜드(Rhode Island)주의 작은 도시인 뉴포트에서 시작되었다.
오래된 페스티벌로서 명망도 높지만, 수많은 재즈 아티스트가 무대를 달구며 재즈 씬의 결정적인 순간을 여럿 만들어낸 공간이기도 하다. 오는 9월 8일 국내에서 최초 개봉되는 [한여름밤의 재즈, Jazz on a Summer’s Day]는 1958년의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을 담아낸 작품이다. 마를린 먼로(Marilyn Monroe)와의 작업으로도 유명한 사진작가 버트 스턴(Bert Stern)이 연출과 편집 감독으로 여러 할리우드 영화를 도맡았던 아람 아바키안(Aram Avakian)과 함께 완성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공연 실황이라는 목적에 맞게 구성되었다. 지미 쥐프리 트리오(Jimmy Giuffre Trio)의 “The Train and the River” 연주로 시작하여 마할리아 잭슨(Mahalia Jackson)이 “The Lord’s Prayer”를 끝마칠 때까지 대화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정황을 전달하기 위해 리포터의 목소리가 한두 번 들어갔을 뿐이며, 연주 전후로 아티스트가 내뱉는 말 정도가 전부다. 부차하고 쓸데없는 부분을 모두 거세하고 연주만이 작품을 가득 채운다.물론 모든 장면이 오롯이 아티스트의 퍼포먼스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시작 부분에서 항구에 정박한 많은 배와 출렁이는 물결을 담은 것처럼, 러닝타임 내내 공연 사이로 수많은 장면이 틈입한다. 마을 사람들이 요트를 타거나 수영하는 풍경, 아이들이 놀이터와 풀밭에서 뛰노는 순간, 파티에서 춤추고 술 마시며 사랑을 나누는 모습 등등, 뉴포트와 로드 아일랜드의 정경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담았다.
또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중간마다 페스티벌에 참가한 관객들을 꽤 적나라(?)하게 비췄다. 한껏 꾸미고 나와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다른 누군가는 간식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기도 하며, 한쪽에선 떠들고, 다른 한쪽에선 지루하게 무대를 쳐다보기도 한다. 종종 공연을 배경음악 삼아 책을 읽는 사람도 볼 수 있다.
평온하고 차분한 모습부터 흥겨우며 활기찬 순간까지, 관객들의 군상을 디테일하게 포착하여 스크린에 나열했다. 단순히 공연 장면만을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뉴포트와 페스티벌의 정경을 함께 담은 덕분에 도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동시에 페스티벌에 참여한 듯한 착각도 맛볼 수 있다. 1950년대 후반의 스타일과 패션을 엿볼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페스티벌을 감싸고 있는 여러 풍경도 중요하지만, 영화의 핵심이 되는 아티스트의 퍼포먼스가 백미다.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척 베리(Chuck Berry), 다이나 워싱턴(Dinah Washington),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 소니 스팃(Sonny Stitt), 살 살바도르(Sal Salvador) 등등, 재즈 역사에서 대표적인 인물의 라이브를 선명한 화질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슴이 벅찰 정도다.
아니타 오데이(Anita O’Day)는 “Tea for Two”로 특유의 재치 넘치는 스캣을 들려주고, 조지 시어링 퀸텟(The George Shearing Quintet)은 힘 있는 연주와 근사한 합으로 감탄을 자아내며, 빅 메이벨(Big Maybelle)은 뉴포트 블루스 밴드와 함께 “Let’s Roll It”을 불러 진한 블루스를 쏟아낸다.치코 해밀턴 퀸텟(Chico Hamilton Quintet)과 에릭 돌피(Eric Dolphy)의 몰입감 높은 라이브와 게리 멀리건 쿼텟(Gerry Mulligan Quartet)과 아트 파머(Art Farmer)의 50년대 당시의 협연도 연달아 볼 수 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루이 암스트롱과 마할리아 잭슨이 등장하는 마지막 20분이다. 투어 중 일화를 풀며 재치 있는 입담을 들려주다가도, 그의 올스타즈(All-Stars)와 함께 보컬리스트로서 그리고 트럼펫 연주자로서 탁월한 퍼포먼스를 선사한다. 잭 티가든(Jack Teagarden)과 함께 마치 만담하듯이 노래를 주고받는 "Rockin’ Chair"를 라이브로 볼 수 있는 기회도 무척 만족스럽다.
마할리아 잭슨은 앞에 공연을 펼친 이들과는 상대적으로 소규모 편성의 무대지만, 감동은 훨씬 진하다. 풍부하고 파워풀한 소리에 경이로운 흡인력을 품은 가창력이 별다른 악기와 조명 없이도 넓디넓은 공간을 압도적으로 채운다. “Walk Over God’s Heaven”과 “Didn’t It Rain”에서는 절정의 흥겨움이 이어지며, 마지막 곡 “The Lord’s Prayer”이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할 즈음에는 감격과 여운이 스며든다.[한여름밤의 재즈]는 페스티벌 다음 해인 1959년에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 출품되어 이미 세상에 공개된 작품이다. 당시에도 뛰어난 작품성과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인정 받았으며, 1999년에는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영구 보관 영화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4K 화질로 복원되면서 무려 공개 60년이 넘은 시점에서야 국내 관객을 찾게 되었다.
1950년대 뉴포트의 풍요롭고 아름다운 모습과 페스티벌의 활기, 그리고 재즈에서 느낄 수 있는 장르적 묘미를 대형 스크린에서 확인 가능하다. 국내 개봉이 인제야 이뤄진 것이 야속할 정도로 싱그러운 82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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