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지금 한국 힙합은 무엇에 열광하고 있는가?
- rhythmer | 2015-02-14 | 51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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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퍼 키스 에이프(Kieth Ape)의 무료 공개곡인 "잊지마(It G Ma)"가 유튜브 100만 뷰를 훌쩍 넘어서 200만 뷰를 향해가며 또 하나의 화제 비디오로 떠올랐다. 잘 알려졌다시피 "잊지마"는 저예산 비디오임에도 마치 경련을 일으키려는 듯한 과감한 아이디어의 연출로 시선을 잡아 끈 오쥐 마코(OG Maco)의 "U Guessed It" 비디오와 곡 자체에 큰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걸 숨기지 않았다. 2014년 가장 핫했던 비디오 중 하나를 한국의 랩퍼들이 적극 차용하여 새로운 느낌으로 만들어 냈기 때문에 "잊지마"가 공개된 후 그 반응은 당연하게도 민망한 따라 하기에 불과하다는 폄하의 의견과 "U Guessed It"을 토대로 새로운 느낌을 선사했다는 긍정적인 의견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이는 "잊지마" 비디오의 태생적 한계를 생각했을 때 어쩔 수 없이 나올 법한 당연한 두 반응이다. 조회수 증가를 촉발시킨 국외 매체 컴플렉스(Complex) 페이스북 계정 등이 큰 웃음을 말하는 'CRYING'과 부정적인 뉘앙스로 읽히지는 않지만, ‘모작 급 아류’를 지칭하는 'rip-off' 같은 말을 사용하면서 '재미난 비디오 하나 보라.'는 식의 소개를 한 것도 이런 기본 성격 안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결과적으로 큰 시선을 끄는 데 성공한 "잊지마"를 둘러싼 한국 힙합 커뮤니티의 반응이나 평가는 이런 비디오에 따라오는 반응을 넘어선, 불필요한 에너지 가득한 뜨악함을 보여주고 있다. DCT(디씨트라이브)와 힙합엘이 게시판을 중심으로 폄하, 조롱 일색의 모습과 반대로 한국 힙합사적으로 대단한 업적이라도 이룬 양 찬양하는 상반된 반응 사이의 온도 차도 더 뚜렷해졌으며, 이는 "U Guessed It"의 오쥐 마코가 직접 트위터를 통해 "잊지마"를 강한 어조로 폄하하면서 더 심해졌다. 어떤 식으로든 그 의도에 걸맞은 수준으로 가볍게 즐기면 될 분위기와 한국 힙합 게시판의 반응 사이의 거리가 한참은 멀어진 것이다. 특정한 곡/비디오를 노골적으로 차용해 접근성을 높이면서도 특유의 감각을 성공적으로 섞어 낸 "잊지마"가 키스 에이프나 크루 코홀트의 감각을 드러낸 재미난 소품 수준을 넘어 다양한 언급과 화제성을 불러일으킨 건 주목할만하다. 그러나 이를 마치 한국 힙합의 최전선이자 열광해야만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꽤 많아지고 있다는 점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는 마치 [레미제라블]을 공군에서 패러디하여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레밀리테리블'을 뮤지컬 팬들이 한국 뮤지컬의 최전선으로 여기며, 자부심을 느끼고 열광하는 것만큼 민망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게다가 이미 고전으로 유명한 작품을 패러디한 것과 달리 비슷한 시기에 나온 같은 신인의 작품을 패러디했다는 점에서 석연치 않은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논란과 화제를 몰고 온 키스 에이프와 오쥐 마코의 뮤직비디오.
더구나 그러한 열광과 환상이 때론 과한 해석을 낳기도 한다. 일례로 "잊지마"에 호의적인 팬들이 국외에서 인정했다는 예로 든 '페이더(The Fader)'지의 기사(http://bit.ly/1zTrE4s)를 보자. 'This Guy In South Korea Is Taking His Obsession With American Rap To The Next Level(한국의 이 친구는 미국 랩에 대한 애착을 다음 레벨로 가져갔다)'이라는 제목부터 해당 기사는 지난 바비 쉬머다(Bobby Shmurda)의 "Hot Nigga"를 리믹스한 "Hot Ninja"의 예를 더해 키스 에이프 측이 스스로를 부각하기 위해 미국 랩을 커버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는 걸 핵심으로 한다. 특히, 'keith-ape-is-the-south-korean-king-of-rap-covers(키스 에이프는 한국 랩 커버 계의 왕)'이라는 인터넷 주소창 속의 제목은 기사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더욱 잘 드러내 주는데, 곡에 대한 칭찬('certified banger')이 있는 건 맞지만, 어디까지나 패러디, 혹은 커버의 관점에서 호의적인 것이지, 이것을 '미국에서도 인정해주는 한국 힙합'식으로 이해하는 건 잘못된 해석이다. 이른바 케이팝(K-Pop) 붐이 일어난 근 몇 년 사이 다른 나라의 누군가가 그럴듯하게 케이팝을 커버하거나 패러디했을 때 국내 매체와 팬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반응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즉, 음악적인 면을 우선 따지기보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자국의 음악을 커버, 혹은 패러디한 결과물을 대했을 때 느끼게 되는 재미와 흥미로움에 기반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를 짚고 넘어가는 것은 괜한 트집 잡기가 아니라 사실 관계를 확실히 하자는 뜻에서다. 날 포함하여 힙합 팬을 자처하는 이들 중 한국 힙합이 세계에서 인정받았을 때 싫어할 이가 과연 누가 있겠는가? 어쨌든 이런 갸우뚱한 열광의 현상을 이해하려면, 조금 시선을 넓혀 “과연 지금 한국 힙합은 무엇에 열광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다.
*미 유명 음악 매체 '페이더'와 '컴플렉스' 매거진의 반응
잠깐 다른 듯 같은 이야기를 해보자. 2014년은 물론, 최근 몇 년간 한국 힙합 씬의 가장 큰 히트곡은 “연결고리”였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리네어 레코드 멤버와 MC메타가 함께한 "연결고리"는 초반의 부정적 반응을 넘어 예상을 뛰어넘는 큰 히트를 쳤다. 그리고 "연결고리"의 성공은 한국 힙합을 면밀히 살피며 지지하는 이들에게 어떤 상징과도 같이 떠올랐다. 대중적 접점을 억지로 찾기 위한 노림수가 뻔히 보이거나, 애초에 힙합과는 거리가 먼 기획 랩 가요를 하는 랩퍼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힙합’을 놓지 못하는 때, “연결고리”는 장르적 ‘멋’과 ‘태도’를 지켜내면서 선풍적 인기를 얻은 선봉으로 수용된 것이다. 하지만 “연결고리”의 음악적 완성도에 대한 힙합 팬들의 반응은 그런 인식과 이를 향한 열광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다. 이는 메이박 뮤직(Maybach Music) 소속 트레이시 티(Tracy T)의 “16”을 비롯하여 퓨쳐(Future), 믹 밀(Meek Mill) 등등, 오늘날 트랩 뮤직을 주무기로 하는 뮤지션들의 것을 노골적으로 레퍼런스 삼았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노파심에 얘기하지만, 창작에 있어서 레퍼런스의 과정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그 활용 수준이 어떠하느냐에 따라 문제가 되느냐 아니냐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장르 씬 내에서도 유명 프로듀서는 물론, 신진 세력 역시 고유한 영역을 차지하여 지지를 얻은 스타일에 영향을 받고 수용하는 긍정적 기운의 레퍼런스 활용을 통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러나 창작자 개인이 꽂힌 특정 곡을 노골적으로 흉내 내는 수준의 차용은 당연히 그 궤를 달리한다. 특히, 이러한 작법은 한국의 메이저 가요 기획사 대부분에서 행해지는 가장 수준 낮은 작법 중 하나로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서태지가 싸이프레스 힐(Cypress Hill)의 랩핑을 카피한 "컴백홈"을 포함하여 다양한 장르 스타일의 구현을 과한 레퍼런스 트랙의 차용으로 이뤄냈던 초기 경력을 보여 준지 꽤 긴 시간이 지났지만, 이제는 코어한 장르 음악가로 인식되는 이들마저 노골적인 레퍼런스를 통해 곡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 보니 이에 열광하는 장르 팬의 모습은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연결고리”의 중심이기도 했던 도끼(Dok2)가 뒤이어 발표한 “치키차카초코초” 역시 미국 랩퍼 쥐-이지(G-Eazy)의 “Lotta That”을 흉내 낸 수준임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기획 랩 가요에 투신한 힙합 랩퍼들의 고군분투와 성공에 마냥 응원을 보내기엔 어려워진 이들에게 쾌감을 전달한 반대급부의 작품 역시 마냥 열광하기엔 적어도 그 대상의 음악적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과한 레퍼런스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일리네어 레코즈와 트레이시 티의 뮤직비디오.
자, 다시 키스 에이프의 “잊지마”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우선 언급해야 할 부분은 “잊지마”를 두고 레퍼런스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조금 더 유연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잊지마”는 한국 힙합 히트곡의 레퍼런스 논쟁과는 상당 부분 거리가 있다고 봐야 한다. 애초에 의도 자체가 대상이 뚜렷한 모방을 토대로 감각적 음악인으로서 재미를 더하는 것이 목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곡과 영상 연출의 합을 훼손시키지 않은 무료 공개 비디오로 그 존재를 성공적으로 드러낸 것 역시 이런 맥락을 보여준다. 물론, 사실이 그러므로 따라 한 것 자체를 두고 조롱하는 반응 역시 끌어안고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컴플렉스의 페이지인 ‘Piegeons & Planes’에서 “연결고리”를 ‘And is this “Karate Chop” by Future?’로 연이어 소개하기는 했지만, 아마도 이러한 구분은 하지 않은 채 나열한 듯하다). 어쨌든 그럼에도 “연결고리”로 대표되는 한국 힙합 히트곡과 “잊지마”를 여기서 연이어 이야기한 것은 레퍼런스 논쟁의 또 다른 예시라기보다는 한국에서 힙합을 적극적으로 찾아 듣는 층이 가진 ‘열광’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의 그 경향을 살펴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며, 그 열광이 사실 힙합 음악 자체의 가치 판단과는 큰 상관이 없어 보인다는 점을 흥미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짧은 기간이지만, 시기별로 크게 세 단계로 살펴보자. 힙합 랩퍼로 명성을 얻던 이들이 랩이 담긴 기획가요를 ‘잘하는’ 랩이 담긴 그것으로 교체시키며 이름을 알리는 것을 응원하던 이들은 장르적 쾌감보다는 자신이 지지하던 랩퍼의 성공에 일단 큰 의미를 두었었다. 그리고 그 경향은 불과 몇 년 사이 ‘가요 하지 않고 이룬 성공’을 내세우는 힙합 아티스트의 히트곡에 큰 지지를 보내게 되며 한 단계 나아간다. 하지만 히트한 힙합 곡의 수준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꿈꾸던 모양의 성공에 집중하는 듯했다. 그리고 이제 “잊지마”를 향한 열광은 여기서 조금 방향과 성격을 달리하기 시작한다. 그 ‘열광’의 시작이 미국 유명 매체의 농담조의 언급에서 시작되었지만, 유명인을 포함해 인터넷을 통한 국외의 긍정적 반응에 다시금 반응하면서 촉발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한국 힙합의 신예가 드디어 (힙합) 본토에서 인정받고 성공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은 성급한 반응이다. 앞서 말했듯 “잊지마”가 무엇에 기대어 어떤 성격으로 만들어졌는지 생각해보면 결국 한국 힙합의 주요 관심 층이 힙합 음악으로 어떤 상황을 꿈꿔왔는지 다시금 확인하는 수준의 꺼림칙함만 보여준다. 핵심적인 부분이 없어서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효과적으로 존재감을 뽐낸 키스 에이프가 이후 국외 레코드사의 러브콜을 받아 성공적인 행보를 보인다면 나왔을 반응을 미리 보는 느낌이 든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나의 질문을 가지고 편의상 세 가지 경향과 단계로 나누어 살펴봤지만, 힙합 음악에 주로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소비층이 그 흐름이 뚜렷할 정도로 열광하는 순간에 꽤 자주 음악적 가치와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이, ‘인정욕구’나 이른바 한류문화의 성공에 반응하는 대중의 하위 스케일 정도로 그 모습이 드러나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더불어 힙합 커뮤니티 밖의 대중이 가질법한 미숙한 반응까지 전부 껴안은 것 같아 허무함이 드는 것은 이런 층의 모습이 결국, 한국 힙합의 전체적 기운과 나아가는 방향의 수준을 드러내고 실제로 영향을 주고받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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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쥬엘즈 (2015-04-06 23:17:51, 218.48.66.***)
- 순간 어렵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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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mgomi (2015-02-18 11:45:55, 121.137.116.**)
- "더불어 힙합 커뮤니티 밖의 대중이 가질법한 미숙한 반응까지 전부 껴안은 것 같아 허무함이 드는 것"이란 멘트는 좀 뭔가 선민의식같이 느껴져서 오글거리는데 암튼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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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생 (2015-02-17 20:34:53, 61.84.231.**)
- 김도현님 요샌 버벌진트 극쉴드 안치시나요??
저도 앨범 다 가지고 있고 그의 팬이지만
10년동안의 오독 같은건 정말 듣다 말 정도였는데...
틀린건 틀리고 맞는건 맞다고 하는게 맞죠
레퍼런스의 탈을 쓴 카피 음악들을 인정할수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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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ereols (2015-02-17 12:53:58, 183.110.19.***)
- 정말 시원하고 좋은 칼럼입니다~!!! 너무 흥미롭게 읽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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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kka (2015-02-16 17:54:39, 118.33.62.***)
- 아랫분 참 꾸준허시다. 안타까울 정도..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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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현 (2015-02-16 13:46:32, 14.63.72.*)
- 역시 리드머 한국힙합 수호자님들
완전 한국힙합판을 뒤집어놓으셨다!
다 읽고 눈물이 그렁그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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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boy (2015-02-15 22:11:16, 175.200.66.***)
- 정말 좋은 칼럼입니다. 굉장히 공감하고 좋네요...
제 생각엔 수십년이 지난 후에도, 대세에 끊임없이 휘청이는 좁은 한국음악시장, 비주류 음악들에 대한 지원이 없는 시장 구조 상, 한국 힙합이 지금보다 큰 발전이 있을 거라 예상하진 않습니다.
시장 규모가 워낙 작아, 좋은 음반을 만들어냈다고, 대중음악상을 탔다고 해서, 성공가도에 들어서는 것도 절대 아니고, 장르 고유의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서포트도 워낙 없고,,, 그러니 언프리티 랩스타같은... 차마 눈뜨고 못 볼 똥덩어리가 튀어나오는.. 하.. 한국힙합은 이미 첫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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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kka (2015-02-15 00:30:43, 175.223.49.***)
- 사실 전 이번 잊지마 논란만큼은 곡의 퀄리티를 떠나 사람들이 너무 박한 게 반응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글을 읽어보니 여러모로 다시 생각해보게 되네요. 무료냐 아니냐가 중요한 거도 아니고 레퍼런스 곡들과 그 반응들 보면 참 씁쓸하긴하네요. 칼럼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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