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헬조선에서 랩퍼들이 살아남는 방법
- rhythmer | 2016-03-05 | 21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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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남성훈
한국의 청년층이 의지와 상관없이 생을 보내야만 하는 한국을 인식하며 만들어내는 신조어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쓴웃음을 짓게 한다. '88만원세대', '삼포세대' 등등, 청년들의 어려운 현실을 기성세대에게 알리려는 절박한 하소연에 가깝던 용어들은 금세 허무주의와 혐오에 가까운 신조어로 대체되었다.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이 불가능한 경제적 계급을 수저에 빗댄 '금수저', 흙수저'는 청년층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인 희망이 사라졌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절망과 분노를 넘어 대부분의 영역에서 불공정한 한국 사회 전체를 지옥으로 여긴다는 의미의 '헬조선'은 이런 경향을 보여주는 대표적 단어다.
대중음악은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현실 도피의 기능과 더불어 아티스트의 시선을 통해 현실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다. 가장 직접적이고 솔직한 화법을 고수하지만, 마치 현실과 반 보쯤 떨어져 사는 듯한 랩퍼 역시 결국 두 간극 사이에 서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 아티스트들도 결국은 '헬조선'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6년이 시작되자마자 1월과 2월 사이에 발표된 젊은 랩퍼 세 명의 완성도 탄탄한 앨범에서 이런 맥락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장유석의 [장유석], 넉살의 [작은 것들의 신], 그리고 화지의 [ZISSOU]가 그 작품들이다. 세 랩퍼 모두 직접적으로 사회문제를 거론하진 않지만, '헬조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 시대 젊은이의 이야기를 각자 다른 태도와 위치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담아냈다.
[장유석] - 안전망 없는 사회에서 안전하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것
[장유석]은 ‘짱유’로 활동한 장유석이 본명을 타이틀로 내세운 첫 솔로 앨범이다. 그는 일랍, 와비사비룸을 통해 랩 가요나 트렌드를 따르는 힙합은 물론, 이른바 ‘홍대 언더그라운드 힙합’과도 거리를 멀리 둔다. 랩 스타일, 프로덕션, 비디오와 활동 반경 모두 이를 분명히 보여줬다. 대안적 위치의 힙합 대부분이 과잉된 스탠스를 드러내는 데 급급해 큰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지만, 장유석은 자기 색이 녹아든 뛰어난 퍼포먼스로 주목받았다. 이런 그는 획일화된 전형성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짱유”로 이 같은 자신을 당차게 내세운 다음, “MVP”에서 '너와 나가 만든 우주 비행선 타고 날아가'라며 세상과 거리를 두고 행복해하는 모습은 딱 지금까지의 그것이다. 하지만 곧 그는 솔로 앨범의 절반 이상을 할애해 그 이면을 적나라하게 꺼내 보여준다.
‘친구들은 나의 음악이 돈이 안 된다네 있잖아 난 산이처럼 할 바에 일을 할래 이 노래가 벌어다 줄 저작권료는 얼마게’ - 바래머니
‘난 이기적인 놈 넌 나를 몰라 난 이기적인 놈 니가 내 곡’ - 솔지
‘난 돈을 벌지 않는 불효자 난 거지 씹쌔 내 음악은 비주류네 눈보라 속에 떨고 있는 날 봐 혼자 울고 있는 부랑자 5년 뒤 내 힘을 상상 울 아빠 돈을 모두 갚아’ - Bad Trip Moon
이상의 가사에 담긴 그의 토로는 획일화를 거부한 청년이 ‘헬조선’에서 감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최소한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너무나 빠른 시간 안에 내적 갈등을 겪는 현실을 보여준다.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위해 주변의 시선과 싸워야 하거나 돈에 대한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목적이 알고 보면 그저 이 시대의 동년배가 가지고 있는 평범하고 소박한 바람임을 보여주는 장면은 그래서 더 짙은 페이소스를 던진다. 전형적인 길을 걷는 삶이 성공을 결코 보장해 주지 않는 사회이기에 더 그렇다. 서로 다른 출발선을 전혀 고려하지 않지만, 같은 결과를 바라는 나라이기에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젊은이에게 그 나라의 부조리한 모습은 더 커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은 것들의 신] - 한국힙합 씬은 랩퍼들에게도 작은 헬조선
장유석과 다르게 넉살은 한국힙합 씬 안에서 전형적이라면 전형적인 행보를 걷고 있는 랩퍼다. 그리고 그는 첫 앨범 [작은 것들의 신]에서 한국힙합 씬이 얼마나 기괴한 상황에 빠져있는지를 웃기면서도 슬프게 펼쳐놓는다. 자신도 출연했던 [쇼미더머니]를 중심으로 경력을 쌓는 랩퍼가 얼마나 비루한 모습인지를 보여주는 "One Mic"는 대표적인 트랙이다. 멋 하나에 목숨을 거는 랩퍼들이 케이블 방송의 오디션 쇼에 나가 행사 섭외 인지도를 위해 몸을 던진다. 단체로 몰락하고 있지만, 동료나 팬은 오디션 쇼가 구린지 알고 있음에도 줄을 서서 오디션 보는 것을 응원한다. 전문가들은 어떻게든 수준 낮은 쇼를 부정하지는 못하고 긍정적 측면을 찾으려 애를 쓰다 모두가 행복해졌다는 ‘정신승리 행복론'까지 들먹인다. 다른 문화 필드에서는 좀체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야말로 랩퍼들에게 한국힙합 씬은 작은 ‘헬조선’이다.
‘팔지 않아 내 영혼은 절대 싸구려로 팔지 않아 살지 않아 목줄 단 개로는’ - 팔지 않아
‘what the fuck what the fuck D-O-G-G 저 사람이 저기에는 왜 있는 거지 정신 차렸을 땐 모세의 지팡이 같은 mic 하나가 저기 서 있더랬지 그리곤 펼쳐진 지옥도’ - One Mic
‘우린 참 비슷하네 담에 공연 보러 와 내가 숨쉬는 일터로 잠시 쉬러 와 넌 그럴 자격 있어 내가 오늘 공연으로 저녁 값을 벌었는지 그저 하루를 넘기기 위해서 입을 벌렸는지 말해줘’ – 밥값
‘세상은 불공평해 너도 알지 누군 수저가 금인데 누군 금니 팔지 앙다문 입 속에선 그래 칼을 갈지 / TV속 래퍼들은 차에다 금에다 뭐다 주렁주렁 달고 나와 과수원 같네’ - I Got Bills
"팔지 않아"에서 작가로서 자존심을 내세우다가 "One Mic"에서 우스꽝스러운 씬을 조롱하고는 결국 "밥값"은 해야하는 힙합 아티스트의 모습은 결코 녹록치 않아 보인다. 마지막 트랙 “작은 것들의 신”에서 '난 그중에 가사를 파는 일을 하고 누군 사무실 누군가는 밖 혹은 학교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그건 중요치 않아 열심히 사는 너와 난 하나'라며 씬 밖의 사람들에게 넉살이 건네는 말은 그래서 더 유효하다.
[ZISSOU] - 이미 망한 세상,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건 불구경뿐
화지는 그의 앨범 [ZISSOU]에서 '헬조선'에 사는 젊은이로서 아예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그렇다고 발전적 해결책을 찾은 것은 아니다. 기성세대가 이미 이 나라를 망쳐놨고, 화지는 앨범을 통해 그것에 책임이 없음에도 고스란히 피해를 보고 있는 청년층의 극단적 분노와 허무주의의 끝에 청자를 초대한다. 자기를 소개하고는 자신이 속한 한국힙합 씬을 맘껏 조롱하고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 전체의 절망적 상황을 냉소적으로 찔러대며 헛된 희망을 버리라고 권하는 첫 트랙 "상아탑"은 쓴 웃음이 절로 지어지는 '헬조선 관람가이드'다.
‘요즘 내 나이 애들 만나면 다 평온하게 말해 "이 나란 망해가, 나도 이민이나 가게" 다 살아남진 못해도 멸종은 공평해 / 꼼수 쓰지 말고 그냥 열심히 하라던 아부지도 퇴근길, 로또 하루 하나씩, 경제는 똥통, 생존 강박 드세’ - 상아탑
‘아무리 날고 기어도 우린 어차피 역사의 페이지 사이에 낀 책갈피 / 세상이 미친게 아니야 다들 솔직해지는 거뿐이야 내가 미친 게 아니야’ - 나르시시스트
"그건 그래"에서 음악가인 자신을 부러워하는 친구들에게 위로가 아닌 비아냥을 날리고 "히피카예"와 "안 급해"에서 '헬조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21세기의 스마트한 히피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가사는 통쾌하지만, 깊은 서글픔으로 다가온다. 결국, 그것이 해결책이 아닌 답 없는 위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을 떠야돼"에서 치열하기만 한 이 나라를 떠나야 한다고 말하지만, 목적지로 제시하는 곳은 관광팸플릿 속 사진 한 장에서 떠올린 듯한 환상과 같은 '바하마'다. "바하마에서 봐 2" 속 바하마는 마치 삶을 끝내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처럼 그려지는 곳일 뿐이다.
'헬조선'에서 랩퍼들이 살아남는 방법, 그리고 바라는 것
기성세대 중 많은 수는 자신의 처지와 사회를 비관하는 신조어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또다시 청년층을 나약하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극단적인 의미의 신조어까지 만들어가며 어려움을 토로하는 건 단순히 불만을 말하거나 기성세대와 싸우자는 게 아니다. 그들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화된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염원과도 같다. 물론, 공감과 이해의 시선도 함께 말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를 풀어낸 장유석, 넉살, 화지, 세 명의 랩퍼가 바라는 것도 결국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 가사는 깊은 여운과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공부도 못하고 여자도 못 사귀어 말 주변 없는 놈 보기에도 재미없는 놈 사회성 제로 모두 다 내 얘기 맞네 / 드럼 소리가 울리는 이 순간 난 니가 알던 그 놈이 아니라네 / 출렁이는 비트 위에 나의 감정을 풀어내는 순간 나의 앞에는 또 다른 내가 짠하고 나타나 뒤져가는 내 손을 딱 잡아 이 기분에 난 살아’ - 둥둥가 (장유석
‘행복으로 가는 길도 가지각색인 것을 난 기계가 아니고 피가 흐르는 인간이기에 내가 흘러 가는 곳에 고일 거야 늙다리들은 계속 지키려 해 조종하기 쉽게 지치게 해 우리의 영감을 시급으로 따지다니 그건 유감이군’ - Make It Slow (넉살)
‘하나같이 미쳐 가 죄다 입을 모아 이건 말세다 모든 게 거꾸로 돼 아닌 척 들어 세울 상아탑이 필요한 세상 사람 목숨이 숫자고 다 자기 수식을 찾았으면 할 때 난 그저 통계이길 거부하고 진짜 사람으로 살게 난 이 순간 속에 살고 그걸 너랑 나눌게 솔직하게 나도 없어 너랑 별반 다를 게 나도 사람 사람 사람’ - 이르바나 (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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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kka (2016-03-06 19:37:12, 39.7.53.***)
- 응애/ㅠㅜ 저도 힘들지만 어떻게든 살아냅시다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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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애 (2016-03-06 14:19:31, 218.148.162.**)
- 죽고싶어요 요즘 매일 매일 죽음에대해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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