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인디 오남용의 시대, 이제 그만
- rhythmer | 2016-09-05 | 30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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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일권
‘인디(Indie)’가 대중과 미디어 사이에서까지 주요 키워드로 부각하기 시작한 건 대략 2009년 즈음부터였다.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출발하여 이후, 십센치를 비롯한 일부 인디 아티스트들의 음악이 차트 상위권에 올랐고, 이때를 기점으로 공중파 방송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곤 했다. 그러나 긍정적인 현상 이면으로 인디라는 개념은 왜곡되었으며, 2011년, 난 이 같은 점을 한 차례 꼬집은 바 있다(‘인디’를 보는 잘못된 시선, http://bit.ly/2csXHph). 그로부터 약 6년이 흐른 현재는 과연 어떠할까? 안타깝지만 인디에 대한 왜곡은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욱 심하고 공식적으로 진행되는 중이다.최근 로엔 엔터테인먼트(이하 ‘로엔’)와 YG가 각각 공개한 신생 레이블들은 대표적인 예다. 지난 6월, 거대 기획사이자 유통사인 로엔이 인디 레이블 ‘문화인(Mun Hwa In)’을 설립한 데 이어, 9월 1일엔 싸이(Psy)가 YG 산하의 독립 레이블 ‘PSYG’를 설립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싸이, 오랜 꿈 이뤘다…독립 레이블 PSYG 설립, ’http://bit.ly/2c5br6n). 로엔 측은 “인디 음악 활성화를 통한 국내 음악시장의 균형 있는 발전을 주도하기 위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으며, 싸이 측은 ‘YG와 차별화된 독립적인 운영을 전제한다’는 점을 부각했다.
특히, YG는 이번 싸이의 레이블뿐만 아니라 타블로의 ‘하이그라운드’, 테디와 쿠시의 ‘더블랙레이블’ 등, 이미 두 개의 독립을 표방한 레이블을 론칭한 바 있다. 문제는 이들 모두 ‘인디’를 내세웠으나 ‘인디’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레이블에 따라 ‘독립’과 ‘인디’란 용어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데, 결국, 같은 뜻이다.). 애초에 조직체의 관할 아래를 의미하는 ‘산하’와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는 ‘독립/인디’란 단어가 같은 맥락에서 공존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즉, ‘메이저 레이블이 설립한 인디 레이블’이란 건 있을 수 없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인디 레이블의 구체적 개념과 범위부터 다시 한 번 되짚어봐야 한다. 인디 락(Indie Rock)이나 인디 팝(Indie Pop)처럼 간혹 음악 성향을 대변하며 서브 장르로서 의미를 뒷받침할 때의 ‘인디’와 달리 인디 레이블에서 ‘인디’는 철저하게 산업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기준에 의거한 분류다. 대표적으로 제작 및 홍보 등에 투입되는 평균 비용을 비롯하여 회사를 형성하고 있는 자본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가 중요하다(미국과 유럽의 경우, 독자적인 배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지 여부도 중요한 고려 요소다.). 그리고 인디 레이블은 거대 자본과 시스템으로부터 독립적인 레이블을 뜻하며, 이는 곧 음악적인 독립으로도 직결된다. 물론, 메이저와 인디를 나누는 비용의 기준이 법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닌 데다가 나라의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영화로 예를 들자면, 한국에선 100억대 제작비의 작품이 이른바 블록버스터급으로 분류되지만, 평균 제작비가 840억대에 이르는 미국 기준에서 보자면, 저예산 영화가 되는 이치와 비슷하다.이처럼 그 기준이 다소 모호하고 유동적인 건 사실이나 세계대중음악계의 보편적인 기준은 분명 존재한다. 앞서 ‘거대 자본’이란 표현을 썼듯이 보통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자본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 여러 투자자, 또는 대기업으로부터 투입된 안정적인 자본을 통해 운영되는 곳을 메이저로 분류한다. 그리고 주로 개인에 의해 소규모 자본으로 설립되어 외부의 투자 없이, 혹은 메이저 레이블과 관련 없이 운영되는 레이블을 인디 레이블이라 정의해왔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기준이 다소 느슨해지긴 했는데, 종종 인디 레이블과 메이저 레이블 간에 홍보 협력, 또는 금전적인 관계가 형성되곤 한 것이다. 아티스트 계약이 아닌, 앨범 단위의 매니지먼트 및 유통 계약을 맺는 게 대부분으로, 아무래도 메이저 회사가 매체 홍보와 배급 면에서 더욱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두고, 일부 음악 관계자와 대중은 “미국에서도 인디와 메이저가 손잡는 예가 많다.”라며, 한국의 경우를 합리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제대로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들의 경우와 한국의 경우는 명백히 다르다.
보다 원활하고 효과적인 홍보 및 유통을 위해 메이저 레이블의 힘을 빌리는 일이 오늘날 더는 인디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것이 아니게 되면서 사람들은 자본의 출처 자체보다 그 안에서 지분 구조가 어떠한가를 중요하게 따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영국의 주요 인디 레이블이 모여있는 인디 뮤직 협회 ‘AIM(Association of Independent Music)’가 내린 정의는 흥미롭다. 이들은 만약 메이저의 지분이 50% 이상일 경우 메이저 레이블에 소유되어 더 이상 인디가 아닌 것으로 본다. 여기서 혹자는 생각보다 큰 50%라는 비율에 당황하거나 놀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레이블의 운영과 창작물에 대한 주도권이 보장될 수 있는지 여부를 판가름하기 위한 상징적인 숫자로 볼 수 있다. 결국 인디의 근본적인 정체성을 규정하는 부분은 크게 달라진 바가 없는 셈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협력하되 어디까지나 종속이 아닌, 엄연히 독립적인 회사로서 존재한다. 겉으론 ‘독립’을 내세웠으나 실질적으론 ‘산하’인 ‘문화인’이나 ‘PSYG’, 그리고 그 외 YG 관련 레이블과 전혀 다른 상황이다.
아마도 많은 이가 메이저라고 생각하겠지만, 인디 레이블인 아델(Adele)과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각 소속사 엑스엘 레코딩스(XL Recordings/이하 ‘XL’)와 탑 독 엔터테인먼트(Top Dawg Entertainment/이하 ‘TDE’)의 상황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들 레이블은 각각 컬럼비아(Columbia)와 인터스코프(Interscope)/애프터매스(Aftermath)처럼 메이저 레이블과 선별적으로 협력 관계를 맺고 있지만, 설립부터 운영까지 완전히 분리된 상태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따라서 XL이나 TDE 모두 온전히 독자적인 행보를 고수할 수 있으며, 파트너를 택하는 부분에서도 자유롭다. 실제 레이블 측 역시 이 부분에 굉장히 민감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걸 볼 수 있다.XL이 아델의 앨범을 미국에서 발매할 때, 자국인 영국에서와 달리 컬럼비아에게 더 큰 권한을 일임한 바 있다. 그러자 일각에선 레이블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표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의식한 듯, XL의 책임자는 지난 2015년, 아델의 대성공을 다룬 미디어 디코더(Media Decoder)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에서 좀 더 큰 스케일의 홍보를 위한 선택이었을 뿐. 레이블의 정체성이 변한 건 없다.”라고 못박았다. 특히, 이보다 앞선 2012년에 TDE의 대표 앤서니 “탑 독” 티피스(Anthony “Top Dawg” Tiffith)가 했던 발언은 더욱 주목할만하다. 당시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를 필두로 스쿨보이 큐(Schoolboy Q), 앱-소울(Ab-Soul), 제이 락(Jay Rock) 등이 소속되어 급부상하던 TDE는 인터스코프/애프터매스와 매니지먼트 및 배급 계약을 성사한 뒤, 기존의 팬들을 의식한 듯 아래와 같은 트윗을 올렸다.
“TDE와 인터스코프/애프터매스 간의 합작 사업 계약을 체결했어. 켄드릭 라마, 제이 락, 앱-소울, 스쿨보이 큐 얘기가 아니야. 그들은 TDE 소속이지.”
“블랙 히피(Black Hippy/*필자 주: 켄드릭, 스쿨보이 큐, 제이 락, 앱-소울이 결성한 그룹)도 TDE 소속이고 말이야. 그들은 여기에 연관되지 않았어. 난 어디든 원하는 회사와, 혹은 독립적으로 결과물을 발표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애초에 메이저 레이블이 설립을 주도하고, ‘산하’라는 표현까지 명확히 한 문화인과 PSYG, 그리고 그 외 YG 산하 레이블들은 독립 레이블이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기사 등을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들 모두 로엔과 YG 측이 5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음악 관계자들과 언론이 나서서 인디 레이블이란 정체성을 남발하고 있다는 건 몹시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인디에 대한 정의를 맘대로 바꿔버리려 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경향신문의 지난 7월 19일자 기사 ‘SM·YG 이어 로엔까지… 저비용 고효율 인디뮤지션으로 눈돌린다, http://bit.ly/2bMemxY’는 이 같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였다.몰상식하고 개념 없는 제목과 내용 탓에 공분을 샀던 이 기사에선 음악평론가 임진모의 말을 빌어 “자본과의 제휴 여부를 따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의미하다. 아티스트의 창작 정신, 즉 원하는 것을 직접 만들고 표현하려는 태도가 견지되는지 여부가 핵심”이라고 인디를 설명했다. 정말 얄팍하고 무책임한 발언이다. 물론, 앞서 XL과 TDE의 예에서도 밝혔듯이 단순히 제휴 여부만을 논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이것이 임진모 평론가의 말처럼 자본은 문제가 아니라 아티스트의 정신과 태도를 봐야 한다는 식이 되면 곤란하다. 오늘날 세계대중음악계엔 메이저임에도 원하는 음악을 하려는 태도를 견지한 아티스트가 수두룩하며, 여전히 인디와 메이저를 가르는 데 자본을 따지는 건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결국, 태도보다도 그것을 얼마나 현실화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고, 이를 위해 자본과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게 곧 인디이기 때문이다.
아티스트든 레이블이든 인디라는 정체성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인디로 시작한 아티스트가 메이저 기획사와 계약하면, 그 순간부터 메이저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고(물론, 반대의 경우도 성립된다.), 인디 레이블 역시 국내의 경우처럼 메이저 레이블에게 인수를 당한다면, 그 순간 해당 레이블의 산하가 되는 것이다. 문화인과 PSYG처럼 처음부터 메이저 레이블에 의해 론칭되는 경우야 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무엇보다 산하 레이블이란 정체성은 절대 인디 레이블보다 열위에 놓이는 개념이 아니다. 실제 세계의 여러 레이블은 메이저와 인디 가릴 것 없이 새로운 음악적 시도, 또는 방향성 구축을 위해 산하 레이블을 설립하여 운영 중이다. 인디를 내세운 의도가 단지 마케팅을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진정으로 인디 씬의 발전을 위해서였는지는 별로 중요치 않다. 어느 쪽이든 결과적으론 인디를 심하게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이 핵심이니까. 그러니 이제라도 한국의 많은 메이저 레이블 관계자와 언론, 그리고 일부 전문가들은 인디에 대한 어긋난 집착과 해석을 멈춰야 한다. 이건 도의적이거나 대국적 차원에서 논할 사안도 아니다. 그냥 모두가 무지해서 벌어진 창피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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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승욱 (2016-09-09 10:56:56, 61.108.60.**)
-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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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호 (2016-09-05 21:47:07, 121.141.69.***)
- 그들에게 인디란 아이돌을 하지 않는다란 의미, 아이돌은 상업적이나 그 이외의 음악은 상업적이지 않기에 인디음악을 하겠다는 이분법적인 의미. 우리나라 대형기획사가 질낮은 음악을 배포함으로 인해 대중들은 다시 질이 낮아지고, 질 낮은 대중속에 음악 수준이 또 낮아진다. 즉, 대형기획사로 인해 우리나라 음악의 수준이 낮아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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