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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한국힙합 가사 논란, 진짜 문제는 대응 수준
    rhythmer | 2017-05-09 | 51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 남성훈

     


    최근 저스트뮤직 소속 랩퍼 블랙넛의 가사로 인해 한국힙합이 다시금 논란에 휩싸였다. 2016년의 “Indigo Child”에 이어 레이블 컴필레이션 앨범 [우리효과]에 수록한 "Too Real”에서 연이어 랩퍼 키디비(KittiB)를 적시한 성희롱 가사 때문이다. 보이스웨어를 사용한 랩 퍼포먼스로 이목을 끈 김콤비 시절이나, MC기형아 시절의 공개곡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블랙넛은 정식으로 데뷔한 이후 발표한 모든 싱글에서 여성혐오를 포함한 약자혐오 가사를 끊임없이 뱉어냈다. 그야말로 한국힙합계의 이벤트맨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섹스도 한번 못해본 남자로 캐릭터를 잡은 뒤, 여성을 모두 잠재적 성욕해소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그 눈물겨운 절실함을 분노와 지질함으로 분출했다. 그리고 이것은 한편으로 청자가 불편한 가사를 흡수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했다. 블랙넛이 가사 속에서 유일하게 비하하지 않는 여성은 어머니밖에 없다.

     

    어쨌든 이 같은 캐릭터 설정과 엮인 도발적인 가사는 블랙넛의 셀링포인트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그가 이를 쉽게 포기하긴 힘들 것이다. 다시 키디비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런 상황에서 불특정 다수, 가상의 인물이 아닌 자신을 적시한 성희롱을 두 번이나 당한 키디비는 인스타그램에 블랙넛을 해당 건으로 고소하겠다고 선언했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여기까지는 선후관계가 명확하고, 문제의 해결과정으로 받아들일만하다. 그러나 이후 터져 나온 여러 지점의 반응들, 특히, /힙합을 옹호하기 위해 내세운 일각의 주요 방어논리는 분명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최근 여성혐오를 포함한 약자혐오 단어가 난무하는 랩 가사가 심심찮게 이슈화 되고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수의 창작자와 힙합 팬, 그리고 평론가까지 이해는 하지만, 힙합은 원래 그런 것이다라고 수렴되는 -마치 철벽논리처럼 보이지만- 모호한 말로 대응하기 일쑤다. 문제는 이것이 20년 정도의 시차를 둔 시대착오적인 반응이라는 것이다. 정확히는 미국의 ‘80년대 후반과 ‘90년대 후반까지의 상황과 닮아있다. 물론, 미국힙합과 한국힙합의 가사 논쟁을 단순히 시차만 두고 비교하기엔 큰 무리가 있다. 그러나 논란만 터졌다 하면, 미국 힙합에서 끌어오는 대응논리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예를 들어보겠다.



     


    ‘80
    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갱스터 랩을 위시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랩퍼들은 당시에도 가사에 대한 많은 문제제기를 받았다. 하지만너는 내가 살아온 과정을 모른다”, “이건 우리 동네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나는 진실될 뿐이다라는 식으로 불편해하며 그런 반응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당시의 블랙 커뮤니티 상황을 반영한다는 맥락이 있었고, 약자배려에 대한 사회적 성숙도가 지금처럼 높지 않은 시대였으며, 힙합의 인기가 굉장했으니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문제로 생각한 것이다(미국힙합의 영향권 아래 있는 한국에선 이런 식의 논리가 최소한의 맥락조차 사라진 채, 아주 납작하게 평면화되어힙합은 원래 그렇다더라로 넘어와 통용되었다.). 문제는 이것이 창작논리로서는 문제없을지언정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입장으로는 적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분위기는 2000년대 초반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이 점차 달라지면서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랩퍼는 본인이 쓴 문제적 가사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는 사실 랩퍼들이 갑자기 각성했다기보다는 아티스트의 활동 지속을 위한 레코드사와 미디어의 계산이자 압박으로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심지어 과거 걸작 힙합앨범을 발표하여 이미 크게 성공한 이들도 계속 그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 당시에는 크게 문제시 되지 않았던 작품의 가사를 언급하며 사과하기도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부분은, 이 같은 일련의 사회적 흐름이 미국 힙합의 가사를 직접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여전히 미국 힙합에도 혐오표현이 만연하고, 그것이 셀링 포인트이며, 특유의 매력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물론, 단숨에 경력을 끝낼 수 있는 강간미화, 장애인비하, 소아성애 연상 가사는 밟지 말아야 할 지뢰 같은 것이 되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다면, ‘작품시민으로서의 입장을 철저히 분리하는 것이 힙합 내 기믹을 유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가사를 쓸 때 적어도 가사의 성격과 개인의 입장 정도는 분리해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하물며 그것은 이제 무대 위에서도 요구된다. 랩퍼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은 무대 위에서 곡의 가사가 아닌 멘트로 동성애 비하인 ‘Faggots’란 단어를 사용했다가 정식으로 사과하기도 했다.



     


    이런 주제가 나올 때 방어논리의 예로 항상 등장하는 에미넴을 이야기해보자. 그는 천재적인 라임 설계, 기막힌 스토리텔링, 전에 없던 캐릭터로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동시에 그가 사용한 여성비하, 동성애혐오 표현으로 누구보다 논란과 비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에미넴은 동성애혐오 단어 사용에 대한 비난이 끊이지 않자, 상식적인 시민으로서 동성애자를 혐오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동성애자인 엘튼존과 공연을 하고 손을 맞잡는다. 그 무대가 2006년 그래미 시상식의 무대였다. 하지만 최근에도 2013년작인 [The Marshall Mathers LP 2]에서 동성애 비하 단어인 ‘Faggot’을 사용하여 해명을 반복했다. 그는 롤링 스톤(Rolling Stone)지와의 인터뷰에서 배틀 래퍼로서 해오던 대로 자유롭게 나온 말이었으며,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걱정한다고 말했다. 그 다음 말이 사실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 앉아있는 진짜 나는 게이, 스트레이트, 트랜스젠더 등, 모두에게 아무런 불만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살고, 그들을 보여줄 수 있게 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 정말 기뻐(But the real me sitting here right now talking to you has no issues with gay, straight, transgender, at all. I’m glad we live in a time where it's really starting to feel like people can live their lives and express themselves)롤링 스톤 인터뷰 중

     

    에미넴은 여기서 예전과 다르게 해당 단어를 사용한 이유에 덧붙여 분명한 사회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는 데뷔 전 녹음한 인종차별 가사에 대해서도 정중하게 해명한 바 있다. 블랙넛-키디비 사례처럼 소송이 엮여 있어도 마찬가지다. 에미넴은 나름대로 판단해 사과하기도 했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으며, 무시하기도 했다. 얼마나 본인에게 영향을 줄 것인지를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것이지만, 어쨌든 사회적인 강력한 요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 다시 한국힙합 씬의 상황으로 돌아와보자. 물론, 한국힙합 곡에서도 절차적으로는 별 문제 없이 가사논쟁이 마무리 된 적 있다. [쇼 미 더 머니4]에서의 일명 산부인과가사와 촛불집회를 위해 만든 DJ DOC수취인불명의 여성혐오 논란이었다. 이들은 문제가 된 부분을 인정하고, 사과하거나 가사를 수정하며 합의를 도출했다. 여기서 정말 흥미로운 점은 이런 합의까지 오는 과정을 이끈 집단이 힙합과 별다른 상관이 없던 이들이었다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힘이 있는 산부인과협회의 강한 압박과 여성소비자를 무시할 수 없는 YG엔터테인먼트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덕에 발 빠른 대응이 가능했다. 후자는 모든 시민을 배려하는 민주주의 대의를 무시할 수 없는 거대 촛불집회의 성격과 시민단체의 힘이 굉장히 컸다.



     


    그러나 가사논란이 꾸준한 한국힙합 씬은 정작 별다른 변화 없이 시대착오적으로 고착화되고 있어서 문제다. 주요 소비층이나 이를 유통하는 레코드사, 공연기획사, 각종 방송미디어 모두 이런 목소리에 위기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한국힙합 창작자들과 이들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곳에서 앞서 말한 사례와 같이 힘 있는 집단으로부터 압박을 느껴 어떤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오히려 랩퍼의 기믹을 지켜주는 것이 제작자로서 할 일이라 생각하고, 힙합 자체를 방어막으로 적극 사용하기도 한다. 지금은 그런 논란이 인기를 가속화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블랙넛과 같은 랩퍼는 장애인과 여성을 향한 구체적인 서사가 담긴 비하 표현으로 그 수위를 점점 높여가고 있다. 이는 함의가 담긴 비하단어의 사용 자체에 주로 문제를 제기하는 미국힙합 씬의 상황보다 더욱 나아간 것이다. 그만큼 세계적인 흐름과는 멀어지고 있다.

     

    오독하지 마시라. 이런 흐름이 가사 창작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기보다는 작품에 대한 입장 표명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뿐이라는 얘기다. , 사회상식에 맞게 입장을 밝히고 대응하는 것이 당사자의 활동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자극적인 기믹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믹과 자신이 별개임을 적극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시대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중문화의 위악성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이들에게도 충분한 환기의 효과가 있다. 그런데 한국힙합 시장의 현실은 어떤가? 여성비하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랩퍼가 급기야 특정인을 지목해 성희롱 한 후, 고소를 당해도, 별 상관없다는 듯 이를 조롱하는 이미지를 올린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기믹을 강화해 더욱 돈벌이가 된다는 계산이 가능한 환경이다.

     

    여러 가사 논란과 이번 고소건을 불러일으킨 가사에 대해 한국의 가장 유명한 랩퍼 중 한 명인 블랙넛의 구체적이고 정중한 입장은 찾아볼 수 없다. 허망한 방어논리와 조롱만 유유히 흐를 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랩 가사의 수준이 아니라 당사자의 대응 수준이다. 그리고 그 수준을 높이는 것은 랩퍼 개인의 각성보다는 그가 속한 산업의 이해관계자와 집단이 얼마나 사회상식에 가까워지고 있느냐, 크게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숙해가고 있느냐에 달렸다.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고,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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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mments
      1. 187 (2017-05-11 19:46:12, 211.195.152.***)
      2. 음 한국힙합이 망해야
      1. 츠무기 (2017-05-10 19:29:33, 1.237.227.***)
      2. 블랙넛은 한국힙합계 영원한 암적인 존재..
        저런 백해무익한 쓰래기 랩퍼는 반드시 씬에서 사라져야 함.
      1. 로터스 (2017-05-10 01:43:04, 1.226.29.**)
      2. 저는 창작자의 작품과 창작자의 사회구성원으로서의 행동이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작품 또한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영향을 주니까요.
        표현의 자유는 존중받아 마땅한 권리이지만 행동에 따라 스스로 그 권리를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투 팍의 가사는 멋있는 내용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투 팍이 항상 옳은 행동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고 그건 사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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