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뻔뻔, 혹은 무지 “날개 잃은 천사”의 불편한 진실
- rhythmer | 2017-05-16 | 160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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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일권
‘90년대 가요계를 경험한 많은 이들 사이에서 이른바 대단했던 추억의 그룹으로 일컬어지는 룰라(Roo'Ra). 최초 이상민, 김지현, 고영욱, 신정환으로 라인업을 갖추고 레게와 랩의 접목을 앞세우며 등장했던 이들은, “100일째 만남”, “비밀은 없어” 등이 히트하면서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이듬해(1995)에 발표한 2집 [날개 잃은 천사] 또한 대성공을 거둔다. 무려 150만 장이 훌쩍 넘게 판매되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혼성그룹의 단일 앨범으로써 최다 판매량으로 기록된다. 그만큼 룰라는 ‘90년대 가요계의 슈퍼스타였다.그런 룰라의 추락은 순식간이었다. 2집이 나온 지 1년도 되기 전에 발표한 3집 [Reincanation Of The Legend]이 문제였다. 수록곡들이 대거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처음엔 타이틀곡 “天上有愛(천상유애)"가 일본 그룹 닌자(忍者)의 “お祭り忍者(오마츠리 닌자)”를 표절했다는 의혹만 불거졌으나 이후, “하얀새”가 미국 랩퍼 비즈 마키(Biz Markie)의 “Just A Friend”를, “사랑법”이 미국의 댄스 그룹 740 보이즈(740 Boyz)의 “Shimmy Shake”를 표절했다는 의혹까지 더해졌다. ‘90년대 역시 표절 판결에 대한 적법한 절차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고, 책임을 묻는 부분이 허술했지만, 대중과 미디어가 가하는 문책의 강도는 지금과 달리 매우 셌다. 결국, 누가 들어도 베낀 것이 확실한 이 곡들은 표절곡이 되었고, 룰라는 눈물의 기자회견과 리더 이상민의 자해 소동 끝에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그들의 앨범은 그야말로 ‘전설의 환생’이라는 거창한 제목과 달리 ‘표절의 환생’이었다.
자, 이상이 아마도 많은 이가 기억하는 룰라의 흥망성쇠 일화일 것이다. 더불어 여전히 ‘3집에서의 표절만 아니었어도…’란 말로 그들을 감싸는 일부가 알고 있는 룰라의 흑역사일 것이다. 그런데 이미 룰라는 3집 이전에도 (소송조차 진행되지 않아 표절이라고 공표할 순 없지만) 남의 곡을 노골적으로 베낀 곡이 있었다. 바로 “날개 잃은 천사”다.
작곡가 최준영이 만든 이 곡은 저 유명한 레게-퓨전 아티스트 섀기(Shaggy)의 “Oh Carolina”(1993)를 번안곡 수준으로 베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날개 잃은 천사”의 후렴구와 이상민, 고영욱의 랩 파트 전체가 “Oh Carolina”의 후렴구와 두 번째 벌스를 통째로 따라 불렀다(*아래 링크한 영상에서 0:47 ~ 1:16까지).
그러나 대중, 평론가, 미디어 할 것 없이 이 사실을 문제 삼는 이들이 없다시피 했고, 룰라는 표절 그룹이란 오명을 약 1년 가까이 미룰 수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당시, 난 부푼 기대감에 구입했다가 실소와 함께 던져버린 테잎 속의 그 곡이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기록하고 100만 장이 넘게 팔려나가는 걸 보며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 같은 제록스(Xerox) 트랙이 문제시되지 않았던 걸까? 답은 간단하다. 한국에서 섀기의 “Oh Carolina”를 아는 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Boombastic”이란 곡 이후, 이제 섀기는 국내에서도 유명한 레게 아티스트지만, 전작까지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도 않았던 데다가 미디어의 채널 또한 많지 않았기에 국외의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창구는 지극히 제한적이었고, 그래서 당대 한국의 많은 작곡가들이 작정하고 베껴대도 알아차릴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이후 “천상유애”가 레이더망에 걸린 건 그나마 일본의 대중음악(제이팝)을 찾아 듣는 마니아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때 “Oh Carolina”란 곡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 역시 영국에서 유학 중이던 아는 형이 싱글 CD를 보내주었던 덕이다.
이처럼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는 “Oh Carolina”의 다운그레이드된 불법 번안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고 돈을 쓸어 모았으니 이만큼 거대한 똥 덩어리도 드물다. 그런데 이 따위의 곡이 오늘날 미디어 이곳 저곳에서 ‘불후의 명곡’, 혹은 ‘전설의 노래’라며 다시 불리고 환호 받는다. 그것도 곡의 주인인 룰라에 의해서. 지난 2016년 8월엔 KBS [불후의 명곡]에서 무려 ‘전설을 노래하다’라며, “날개 잃은 천사”의 무대를 선보였고, 3개월 전 나온 위메프의 광고음악 “싸다송”에선 “날개 잃은 천사”의 문제시된 부분을 이상민이 그대로 부른다. 또한, 가장 최근인 지난 11일 방송된 엠넷(Mnet)의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4]에서는 출연자 이지혜와 룰라 멤버들이 ‘룰라의 전성기 무대를 24년 만에 재현한다’는 카피 아래 “날개 잃은 천사”를 불렀다.
특히, ‘너목보’의 무대는 비단 최근의 사례라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심각하다. 제작진이 지극정성으로 갖다 붙인 거창한 자막들 –‘이것이 바로 이상민표 명품 랩핑’, ‘이것이 바로 진정한 레전드의 무대!’, ‘힘든 시절을 이겨낸 그들이 함께해서 더욱 감동적인 무대’- 이 연속으로 작렬하는 가운데, 룰라의 멤버들은 (실질적으로 따지자면, 표절 커리어가 절반이나 다름 없는) 전성기의 추억에 도취되어 베낀 곡을 열정적으로 노래한다. 그리고 이것이 베낀 곡인지도 모르는 여러 패널들과 관객은 그들에게 열렬히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표절이라 낙인 찍어도 무방할 곡과 그걸 부른 이들을 위해 무려 3분여 동안 상찬의 시간을 가진 셈이다. 정말 괴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이것이 2017년 한국의 유력 음악 미디어에서 펼쳐지는 광경이다. 만약 섀기가 봤다면, 한국에서 본인의 곡을 커버한 버전이 인기인 줄 알고 흐뭇해했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다.
물론, 이상민과 룰라가 섀기의 “Oh Carolina”를 여전히 모를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면죄부가 될 순 없다. 무려 ‘레게의 뿌리(Roots of Reggae)’라는 의미를 이름으로 내세웠던 팀이 (이제는 어느 정도 국내에서도 알려진) 섀기의 히트곡조차 몰랐다는 점에서 오만하고 근본 없는 음악인이었다는 사실만 추가될 뿐이다. 반대로 해당 곡의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행보를 이어나가는 거라면, 더욱 할 말 없는 상황이고 말이다. 어느 쪽이든 “날개 잃은 천사”가 불법 번안곡 수준의 퇴출해야 할 곡이란 사실엔 변함없다.
더불어 룰라를 전설이라 칭하는 것도 당장 멈춰야 한다. 룰라와 그들이 남긴 “날개 잃은 천사”의 미화는 미디어가 시도하는 추억 보정과 오랫동안 진실이 알려지지 않았던 현실이 뒤섞여 빚어진 촌극이다. 지금도 “날개 잃은 천사”는 ‘90년대 가요계의 최고 히트곡 중 하나라는 평가와 함께 버젓이 정식 스트리밍되고 있고, 곡을 만들고 부른 이들은 음원, 예능, 광고 등을 통해 계속해서 명예와 이익을 얻어가고 있다. 현재진행형이란 얘기다. 매우 부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같은 사례는 한국대중음악계에서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으며, 우리가 직시해야 할 대표적인 치부다. 곡이 나온 지 22년이나 흐른 지금에 와서 “날개 잃은 천사”를 강력하게 규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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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승만 (2022-02-19 13:25:25, 223.62.173.***)
- 예전에 "날개 잃은 천사"의 작곡가 최준영이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표절에 관한 주제가 나왔는데, 최준영 작곡가가 부끄러워하면서 자신도 표절의혹를 받는 곡이 있는데 그것이 " 날개 잃은 천사"다.... 자신이 그 곡을 작곡할 때 "이상민 일행"이 찾아와서 외국곡의 랩 부분을 차용해서 쓰자고 했을때 (섀기의 "Oh Carolina"였겠죠?) 그걸 자신이 거절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했었습니다.
작곡가에게는 비겁한 변명이지만.....진상은 그렇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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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ice (2021-03-22 03:46:47, 124.58.67.***)
- 칼럼의 주제는 이해가 되지만 글중에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당시, 난 부푼 기대감에 구입했다가 실소와 함께 던져버린 테잎.' 은 글과 무슨 상관이 있나 싶네요. 본인이 그정도로 해박했다는걸 알려주는건가 싶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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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로윈1031 (2017-06-05 15:49:01, 125.139.11.*)
- 이미 전설을 넘어 음악의 신이 되버린 상태이니 뭐.. 무지막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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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예찬 (2017-05-31 17:51:10, 14.32.112.**)
- 자막 넣는 사람들 참수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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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jstyles (2017-05-26 05:59:05, 211.36.154.***)
- 서.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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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숭털 (2017-05-23 18:49:02, 218.152.158.**)
- SHAME ON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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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붕 (2017-05-22 13:50:17, 175.210.218.***)
- 일전에 편집장님이 말씀하신대로
결국 이런 문제는
표절에 대한 엄격하고 지속적인 심사와 미국이나 유럽처럼 강력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만들어져야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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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호 (2017-05-18 08:15:22, 61.32.22.***)
- 90년대는 가요계 황금기였기도 했고 좋은 작품이 쏟아져 나온시기 였습니다만, 표절 또한 많았습니다. 특히 카피에 대상을 일본에서 미국으로 옮기기 시작한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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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랩퍼엔 (2017-05-17 23:22:02, 180.224.166.**)
- 진짜 똑같네요 후지 제록스 신도 리코 ㅎㄷㄷ ...
어쩜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소위 '전설'이라는 사람들의 역사는 하나같이 표절과 카피의 역사인지 ㅠㅠ 지금이라도 많은 분들이 오 캐롤라이나 들어보고 바보같은 레전드 타령을 좀 멈추었으면 좋겠네요. 부끄럽습니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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