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심의 석기시대, 이제는 끝내야 한다.
- rhythmer | 2017-09-28 | 20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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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일권한국의 심의제도는 오랫동안 대중음악의 생명력을 갉아먹어 왔다. 음반 사전심의제도가 오래전에 폐지되었지만, 근본적인 문제까지 해결한 건 아니다. 여전히 청소년 보호라는 미명 아래 사실상 사후검열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정부 부처가 담당하고 그 기준마저 시대착오적인 생각들로 점철된 현실은 케이팝 전성기의 어두운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방송국 심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 부처의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보다 강제성이 덜하고 조금 유연할 뿐이다. 그렇게 매년 많은 곡에 허황한 19금, 혹은 방송불가 낙인이 찍힌다.
최근 MBC로부터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은 이승환의 “돈의 신”도 이 같은 현실이 낳은 피해 사례다. 방송사 심의는 청소년보호위원회(여성가족부 산하)의 ‘청소년 유해매체물‘과 달리 법적인 제재가 없으며, 자율적으로 행해진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렇다고 해서 마냥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동안의 사례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돈의 신”은 이 융통성의 범주에서 충분히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럼에도 MBC 심의실이 기어코 잡아낸 건 ‘오, 나의 개돼지’란 부분. 파면된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현실로 옮겨왔던 영화 [내부자들]의 명대사를 패러디한 것이다. 결국, 이승환이 봉헌한 곡의 주인공, 이명박 ‘가카(각하)’와 추종 세력들의 눈치를 보며, 알아서 꼬리를 내린 셈이다. 한국의 대중음악 심의가 엉망진창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씁쓸한 사건이다. 이번엔 오로지 MBC만 불가 판정을 내려 타깃이 되었지만, 지금까지 한국의 방송사들이 보여온 심의 행태 수준은 어느 한쪽만 탓할 상황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많은 이가 누누이 외쳐왔듯이) 기준이 너무 추상적이고 시대착오적이며, 뒤죽박죽이라는 점이다. 일례로 건전한 내용의 곡임에도 ‘술’이란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19금, 혹은 방송불가 판정을 받는가 하면, 적나라하게 원나잇을 얘기한 곡임에도 문제시되는 단어가 없다는 이유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필자 주: ‘원나잇’ 이야기를 했으니 19금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몇몇 전문가는 맥락 살피기의 필요성마저 역설하는데, 오히려 이것은 “돈의 신”의 경우처럼 위험한 결과로 이어질 확률만 높일 것이다. 개개인의 해석에 따라 파악하는 바는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난 아주 오래 전부터 미국을 비롯한 세계대중음악의 흐름을 주도하는 몇몇 유럽의 방식이 가장 타당하고 명료하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다른 요소 일체를 배제한 채, 욕설과 총기, 마약, 남녀 성기 등을 일컫는 비속어처럼 여과없이 노출되었을 때, 아직 성인이 아닌 연령대에게 유해할 여지가 있고, 보편적인 기준에서 일부 성인이 불쾌함을 느낄만한 단어만을 특정하여 판단하는 것이다. '범죄를 미화하는 것', '성행위를 지나치게 묘사한 것', '불건전한 교제를 조장할 우려가 있는 것' 등과 같이 모호하게 세운 작금의 한국 기준은 설득력이 떨어질뿐더러 예술계 전체의 가장 큰 화두인 표현의 자유를 수시로 침범하는 결과를 낳는다.
언급한 나라들의 경우, 유해하다고 판단할만한 단어를 묵음 처리한 일명 클린 버전만 있다면, 주제와 소재가 무엇이든, 방송을 탈 수 있다. 무엇보다 이처럼 기준이 명확하다 보니 아티스트와 레이블 측 스스로 방송에 적합한 버전을 만들어 제공한다. 방송국은 사실상 공감할 수 있는 틀만 세워놓았을 뿐이다. 일전에 칼럼을 통해서도 언급했지만(‘Parental Advisory’는 ‘19금’과 격이 다르다!, http://bit.ly/2yl1WZy), 미국 대중음악계에선 애초에 정부가 개입하는 심의 자체가 없다. 전부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여기에도 구멍은 있다. 사회적으로 정말 좋지않은 영향을 끼칠만한 곡들(ex: 강간 미화, 사회적 약자 비하)이 무분별하게 침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 지점에 대한 판단과 규제는 정부나 방송국이 아닌, 대중 사이에서 행해져야 옳다. 대중이 주체가 된 이상 이것은 검열이 아니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실제로 한국보다 훨씬 심한 유해단어들이 난무하는 미국대중음악계에선 대중에 의한 보이콧이 적잖게 일어난다.
약 2년 전, 데이트 폭력을 암시하는 가사를 쓴 래퍼가 대중으로부터 지탄받은 뒤, 공식 사과한 일화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같은 일을 두고 그들이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았다고 비난하진 않는다. 관건은 외압이 있었는지와 공감의 여부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 힙합 방송들은 시간대 별로 청취자 층을 고려하여 선곡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한창 유아와 부모가 함께 활동하는 시간대에는 최대한 자극적인 가사의 랩을 지양하는 식이다.
한국에서도 일부 방송국만큼은 나름 구체적인 유해 단어의 기준을 세워놓고 국외 방식을 따른다. 하지만 그런 곳조차 지정된 금지 단어 중에 여전히 터무니없는 것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술, 담배, 상품, 섹스와 관련한 단어들. 수십 년간 지리멸렬하게 이어져 온 심의 문제를 해결하고 문화선진국에 한 발 더 다가서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다음 사항을 반드시 개선해야한다.
첫째, 정부 부처의 심의가 반드시 사라져야 하며, 둘째, 방송국들은 유해 단어 선정의 수위를 낮추고 대부분이 공감할만한 선에서 명확한 기준을 세우는 것이 절실하다.
매년 정부에서 전문가, 혹은 업계인들을 초청하여 보여주기식 간담회 정도로 일을 마무리해선 곤란하다. 정부부터 심의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 이후 방송국의 심의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 전직이든 현직이든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19금을 받거나 방송을 타지 못하는 일이 또 다시 벌어져선 안 된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다. 욕설과 비속어를 삭제한 클린 버전만 있다면,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했다 하더라도 성역 없이 방송에서 울려 퍼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끝으로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대중과 언론은 끊임없이 이 사안을 공론화하고 비판해야 한다. ‘한국이 그렇지’라며, 하나둘 무감각해지고 외면하는 순간, 심의 석기시대는 계속될 것이다. 이제는 끝내야 한다.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을 보완, 확장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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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두리 (2017-09-28 13:11:56, 223.33.153.***)
- 강일권님께
저는 제조업에서 일하며 힙합을 좋아합니다.
제조업의 규정 같은 경우는 대부분 30년 전
규정이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태반인데
이것들 때문에 골치아픈 일이 많지요.
기후가 바뀌고 설비가 바뀌고 회사, 사람들이
바뀌는 시기에 규정이나 법은 그대롭니다.
현실은 달라 졌으나 규정은 따라야 하니
현실과 맞지않다는 소비자들의 불만과 수입품들
과의 과리감은 상당합니다.
문제는 규정을 제정하고 개정하는 공공집단이
강화하는 것은 6개월 안에 승인된다고 치면,
완하하는 것은 2년이 걸립니다. 예)
그것도 되면 그렇다는 거죠.
방송쪽 심의도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 업종에서의 완하되는 규정이 빨리 승인되는
경우를 대입해 보자면 우선 전문가와 시민이
유사한 여론이 현상되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꾸준하게 규정을 제개정하는 집단에 민원을
넣는겁니다. 이 경우 승인이 빨라 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빠쁜 나라에 맨날 공부만
하고 알바하고 야근하고 육아하는 사람들,
하루 한시간 여우도 갖기 힘들사람들의 참여는
방송쪽에서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러면 전문가들이 없애자와 함께 없어지면
좋아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강조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이 좋은 노래가 심의
때문에 방송이 안됐다. 많이 들으면 얼마나
좋은 노래인가. 이런 것 처럼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거 같네요.
말도 안되는 심의
무까끼하이가 방송불가를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사투리때문이라고 했을때 절망했습니다.
들어는 본걸까?
싸이 신곡에 "씨발라먹어" 라는 거는
들어는 봤을까?
마트나 길에서 꼬맹이 들이 계속 씨발씨발
하길래 뭔지 했고 지나가는 어르신이 왜 욕을
하냐고 물어보니까 꼬맹이들은 욕이 아니라
노래라고 합니다. 또 낄낄거라면서 온동네 크게
씨발라 씨발라먹어 하더군요.
이 곡은 청소년유해매체 같은 걸로 구분 안됐을
겁니다. 안들어보고 글만 봤을테니.
심사원들의 수준도 높아져야 되겠지요.
잘 아는 다수의 사람들이 들어보고 의견을
취합하는 방안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방법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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