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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산이의 ‘Wannabe Gambino’, 자기기만이 낳은 오마주 참사
    rhythmer | 2018-10-22 | 33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글: 남성훈


    신파 감성의 랩 가요싱글로 음원 시장의 새로운 강자가 됐던 산이(San E)는 힙합 아티스트로서의 자아를 강조하는 반대급부 곡으로 꾸준히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를 해왔다. 뿐만 아니라 2016년에 발표한나쁜X”을 포함하여 사회 비판을 담은 랩에도 욕심이 있는 듯하다. 최근 뮤직비디오와 함께 선보인 “Wannbe Rapper”도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Wannabe Rapper”는 나오자 마자 힙합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큰 화제가 됐다. 다만, 좋은 의미에서의 화제는 아니었다. 모종의 패러디 이벤트인지 정식 음원인지 궁금해질 정도로 차일디시 갬비노(Childish Gambino)“This is America”를 노골적으로 차용했기 때문이다. 영상의 마지막에선 아예 ‘Inspired by THIS IS AMERICA(THIS IS AMERICA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음)’라는 자막까지 띄워 놨다.

     

    그런데 이 짧은 한 줄로 인해 사람들의 반응 사이엔 다소 혼란스러운 기운이 맴돌았다. “Wannabe Rapper”를 카피로 봐야 하는지, 오마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인 것이다. 실제로 두 개념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려는 사람들이 꽤 많이 등장했다. 일단 산이 측은 싱글 소개 페이지를 통해 오마주임을 명확히 했다. 그러나 이것을 마치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명분처럼 대하는 일부 의견은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Wannbe Rapper”는 오마주인 동시에 카피품이기 때문이다.

     

    전자가 존경, 경배와 같은 정신적인 측면이 핵심이라면, 후자는 다양한 요소를 차용하고 흉내내는 행위다. 정리하자면, 이번에 산이는 카피라는 행위를 통해 오마주를 표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비디오에 영향을 받았다는 문구를 띄우고, 음원 소개에 오마주의 정의를 길게 설명한 것이 불필요한 오해를 막아보려는 의도였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확실한 건 그것들이 “Wannabe Rapper”의 평가에 오히려 악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Wannabe Rapper”는 실패한 카피품인 동시에 처참하게 실패한 오마주이다.

     

    우선 카피품으로서의 실패를 따져보자. “This is America”는 이물감이 진한 분위기로 묘한 긴장감을 끌어올리다가 충격적인 전개로 감정을 여러 번 뒤흔드는 연출이 돋보이는 비디오와 이러한 무드의 전개를 완성시키는 음악의 결합이다. 각종 메타포를 담은 수많은 요소들을 배치하여 재감상을 통한 해석의 재미를 주고, 앞서 말한 충격적인 연출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만들어 감탄을 자아낸다.

     

    특히, 온몸으로 기이함을 표현한 차일디시 갬비노와 등장인물들의 소름 돋는 연기, 그리고 빈틈없이 잘 짜인 롱테이크를 통해 재능 있는 크리에이터들이 모인 미국 미디어 산업의 현재를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카피하는 것에 도전한 산이 역시 영상과 음악의 시너지가 핵심임을 알기에 비디오와 함께 “Wannabe Rapper”를 공개했다. 사실 시도 자체가 가혹한 도전일 수 있겠지만, 결과는 충격적일만큼 좋지 못하다.

     

    “This is America”에 영향을 받은 유사한 공간과 카메라워킹 외에는 원작의 몰입감을 전혀 전달하지 못한다. 거기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뻔한 표정 연기와 원작의 아우라를 살리지 못한 안무 퍼포먼스는 성급함과 산만함만 가중시켜, 원작이 지닌 긴장감을 재현하는데 실패한다. 소품과 각종 장치 역시 일차원적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례로 자살율 1가사를 뱉을 때 목을 맨 곰인형들이 떨어지며 색조를 바꾸는 수준이니, 충격적인 연출과도 한참은 거리가 있다.

     

    , 완성도 이야기는 멈추고 다음 이야기를 해보자. 사실 “Wannabe Rapper”의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누구나 핫한 영상이나 음악의 카피는 할 수 있고, 실패한 카피 역시 넘쳐난다. 정작 제대로 짚어봐야 할 지점은 “Wannabe Rapper” “This is America”의 오마주라고 밝힌 것에서 기인한다.

     

    “This is America”는 미국 대중문화에서 파괴력 있는 블랙 엔터테인먼트와 흑인의 삶에 대한 정치, 문화적 장치들을 대비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잔인한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결국은 현 트럼프 정부와 사회 시스템을 향한 각성을 촉구하는 선동적 메세지를 치밀한 연출로 전달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여러 나라로부터 즉시 쏟아진 많은 패러디 중 호평받은 작들 역시 자신의 사는 국가의 잔인한 현실을 보여주고, 알리는데 집중했다. 이를 인지하고 봤을 때, 산이의 “Wannabe Rapper”는 오마주라기보다 차라리 안티 오마주에 가깝다. 그가 담으려고 한 메시지는 “This is America”의 핵심과 완전히 반대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초반 산이는 화려해 보이는 미디어 속의 랩퍼 이미지와 이면을 뒤섞어 조롱한다. 하지만 힙합 음악산업에 인종적, 사회계층적 맥락이 존재하지 않는 한국에서 이를 사회로 확장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게 멈추어 선다. 특히, 힙합이 대중에게 끼치는 사회적 영향력이 매우 미미한 상황에서 오디션 쇼 프로그램을 통해 대부분 소비되는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이처럼 미디어 속의 랩퍼 이미지를 끌어오는 것은 어떠한 비판지점도 갖추지 못한다.

     

    이후 산이가 한국사회의 이면을 짚어가는 부분은 흥미롭게도 차일디시 갬비노의 "This is America"와 완전히 반대의 스탠스를 취한다. 산이는 한국사회에 도사린 다양한 갈등코드를 펼쳐 놓고는 그 모든 것이 문제인양 비아냥대는데, 이는 사회비판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메시지나 마찬가지다. "This is America"가 명확한 자기 정체성을 바탕으로 온갖 요소를 배치하며 현재의 권력과 시스템, 정부를 향한 불편함을 증폭한 것과 반대로 산이는 사회의 갈등에 눈을 가리고 현실 권력 순응으로 귀결되는 입장을 드러내며, 사회비판적 이미지만 획득하려고 한다.

     

    당연히 그가 나열한 개별 사안에 대한 의미 있는 접근은 비디오와 랩 모두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나쁜X"에서도 이미 미디어와 시민사회에서 결론이 난 죽은 권력을 향한 이벤트성 음악으로 사회비판적 이미지를 획득하려 한 것을 생각해보면, 과연 산이가 사회문제를 랩으로 다룰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러워진다. 적어도 존경을 바치는 원작이 주목받은 핵심적인 부분 정도는 이해하고 이를 자신의 입장에서 잘 살려내려는 시도를 했어야 했다.

     

    차일디시 갬비노가 대중음악가로서 리스크를 떠 안고 급진적 메시지를 놀라운 재능으로 표현했다면, 이를오마주했다는 산이는 어떤 사회적 입장도 대변하지 못하는 무의미한 메시지의 나열을 안이한 카피로 표현했다. 결과물이 이러니 불필요한카피논쟁을 떠나 산이의 이번오마주가 자기기만으로 다가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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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mments
      1. 버기 (2018-10-23 22:03:28, 1.232.42.**)
      2. 허구헌날 오마주, 레퍼런스 핑계 대면서 겁나 오그라들게 감정과잉 되서 따라하는거 보고있으면 한숨만 나옴
      1. pusha (2018-10-23 20:49:34, 1.237.227.***)
      2. 메시의 환상적인 드리볼이 너무 따라하고 싶었던 동네 조기축구계 아재회원
      1. Kernel (2018-10-22 21:40:53, 24.238.13.***)
      2. 제가 생각하기엔 산이는 이거보다 한단계 더 꼬고 싶었던것 같아요. 그러니까 워너비 래퍼와 관련된 모든 것을 일부러 cheesy하고 멍청?하게 만들어서 이런 것들이 바로 많은 한국 힙합의 랩퍼들이 자행하는 짓이다, 본인이 그런 어설프게 카피하고 어설프게 conscious한 랩퍼를 연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자기 기만/오만인거는 변함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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