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우린 언제까지 래퍼들의 개죽음을 봐야 하는가?!
- rhythmer | 2022-11-07 | 15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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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일권
투팍(2Pac)의 사망 소식을 접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1996년 9월이었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워크맨으로 몰래 듣던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선 총격을 당해 사경을 헤매던 투팍이 결국 깨어나지 못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중학생이 되어 힙합을 처음 접한 이래 투팍은 줄곧 내 맘 속 최고의 래퍼 중 하나였다. 팝 키드의 영웅이 소멸되는 순간이었다.총격에 의한 죽음이란 사실이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는 전에도 치명적인 총상으로부터 살아난 바 있었고, 그것은 투팍을 (절대 죽지 않는) 신화 속의 영웅처럼 느껴지게 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랩/힙합에 관한 많은 부분을 돌아보게 됐다.
갱스터 랩(Gangsta Rap)의 갱스터가 진짜 갱과 연관되었음을 처음 실감한 것도, ‘드라이브 바이 슈팅(Drive-By Shooting/*주: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가하는 총격)’이란 무자비한 살인 행위를 제대로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래퍼들은 가사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과대망상에 가까울 만큼 언급해왔다. 총격은 두려움의 근원이었다. 이는 래퍼 이전에 흑인들의 맘 속 깊은 곳에 내재된 것이기도 하다. 2017년 화제작이었던 조던 필(Jordan Peele) 감독의 [겟 아웃, Get Out]에서도 로드킬 시퀀스를 통해 이것이 은유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다만 랩 음악에서 두려움은 점점 엔터테인먼트화되어갔다. 갱스터 랩, 혹은 하드코어 랩을 표방한 많은 래퍼가 남자답고 거친 캐릭터를 과시하며 공고히 하기 위해, 더불어 그러한 가사의 쾌감을 극대화하고자 빈번하게 총격을 노래했다.
가하는 것은 불특정 헤이터(Hater)와 비프(Beef) 관계의 상대를 공격하는 클리셰가 됐고, 당하는 것은 슬럼가에서의 삶을 윤색하는 핵심요소가 되었다. 많은 래퍼가 총기 폭력을 반대하고 총기 규제 강화를 지지하지만, 많은 래퍼가 가사를 통해 총기 폭력을 미화한다. 이렇듯 힙합 안의 총기 폭력은 래퍼들의 양가적인 감정으로써 존재한다.
갱스터 랩의 시대가 저물고 2010년대부터 힙합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건 트랩 뮤직이다. 동부와 서부가 유행시킨 하드코어 랩을 남부가 전혀 다른 무드로 구현하여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더 강력한 수위의 가사와 위협적인 비트로 무장한 드릴 뮤직까지 가세하며 힙합의 폭력적인 일면이 더욱 확연해졌다.
지난 2020년 브루클린 드릴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팝 스모크(Pop Smoke)가 20세의 나이로 총격 살해당하여 충격을 안긴 이래 많은 젊은 래퍼가 죽었고, 죽어나가고 있다. 올초에는 22세의 래퍼 티닷 우(Tdott Woo)가 레코드 계약을 체결한 지 몇 시간 만에 자택 앞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고, 불과 며칠 뒤엔 18세의 래퍼 시아이 왓츠(CHII WVTTZ)가 녹음 스튜디오를 떠나던 중 드라이브 바이 슈팅으로 사망했다. 모두 드릴 뮤직(Drill Music)을 추구하며, 갱 집단과 연관되었다.
자연스레 힙합음악의 폭력성에 관한 비판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세졌다. 드릴 뮤직을 대표하는 지역이자 사망한 래퍼들의 고향 뉴욕의 시장 에릭 아담스(Eric Adams)는 드릴 뮤직의 폭력적인 콘텐츠에 대해 경고하는 한편, 소셜 미디어 회사들이 해당 플랫폼에서 아티스트의 음악 공유 행위를 제한하길 원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힙합 아티스트 연합을 구성하고자 "매우 유명한 몇몇 래퍼"와 만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가장 유명한 힙합 라디오 방송국 중 하나인 ‘HOT 97’의 디제이 드류스키(DJ Drewski)는 본인의 세트 동안 갱스터 음악이나 디스 트랙을 더는 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지금 일어나는 비극에 드릴 뮤직이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라디오 디제이들이 방송에서 폭력적인 음악을 플레이함으로써 이를 지원하고 음반사에서는 자금을 투입하여 그러한 음악을 양산해내며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다고 소신을 말했다. 우탱 클랜(Wu-Tang Clan)의 수장 르자(RZA) 또한 '힙합이 감옥 생활을 미화하고 갱스터와 살인자를 미화한다. 이해는 하지만, 지금 힙합은 너무 일방적이 됐다.'라며 드류스키의 선언에 지지를 표했다.
참담한 비극은 지난 11월 1일에도 벌어졌다. 트랩 뮤직의 새 지평을 열었으며, 2010년대 힙합 아이콘으로 등극한 그룹 미고스(Migos)의 테이크오프(Takeoff)가 총격 사망했다. 다른 멤버이자 그의 삼촌 퀘이보(Quavo)가 주축이 되어 돈이 걸린 주사위 게임을 하던 중 상대 집단과 다툼이 일어나 총격을 당했다. ‘(증언에 따르면) 그 장소에서 가장 조용했던’ 그가 원치 않았던 상황에 휘말려 누가 쏘았는지도 불분명한 총알에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과거 갱스터 랩과 연관된 실질적인 폭력은 투팍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The Notorious B.I.G.)라는 두 거성의 죽음 이후,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트랩, 드릴 뮤직 씬에서는 좀처럼 비극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총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우린 앞으로도 우리가 좋아하는 래퍼들의 개죽음을 계속 보게 될 것이다. 블랙 커뮤니티의 일원이 아니더라도, 미국에 살지 않더라도, 힙합을 사랑하고 즐기는 우리에겐 너무나도 슬프고 두려운 일이다.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무력감이 더욱 커진다.
얼마 전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는 “드릴 뮤직에선 엔터테인먼트적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 (중략) 드릴 뮤직 래퍼들이 가사에서 뱉는 것이 차라리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장르가 젊은 층에게 끼치는 악영향과 래퍼들이 (그들의 음악처럼) 폭력 사건에 종종 휘말리는 현실을 우려하여 뱉은 말이었다. 정말이지 작금의 상황이 전부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가장 최근 사망한 Takeoff를 비롯하여 총격 아래 떠나간 이들의 명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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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야방야방야 (2022-11-09 15:25:59, 211.106.25.***)
- 테꼽 기사보고 어이가 없어서 "뭐야 씨x"을 육성으로 내뱉음...
이렇게 유명한 슈퍼스타 래퍼도 총격 사건에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게 너무 충격적이네요.
부디 영면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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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rlee (2022-11-09 14:23:21, 116.126.28.***)
- 초등학교 총기난사도 못 막는데 래퍼의 죽음은 어찌 막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중간 선거랑 대선에서 미국 민주당이 이기길 비는 수밖에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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