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한국힙합 페이문화를 말한다: Money & Respect
- rhythmer | 2011-04-15 | 28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
이번 월디페 ‘노 페이’ 사건을 보면서 난 그 원인의 출발점은 다르지만, 힙합 씬의 현실과도 연관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힙합 씬을 비롯하여 인디 씬에서 이루어지는 소규모 공연은 뮤지션끼리, 혹은 1인 기획자 시스템으로 준비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서로 ‘도와준다.’는 취지 아래 페이 없이 공연이 진행될 때가 많다. 입장 수익에서 대관료와 운영비 등을 제외하고 수익을 나누기도 하지만, 10,000원에서 20,000원 사이의 싼 입장료에 그나마 유료 관객의 수도 얼마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페이대신 뒤풀이 식사로 퉁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난 이 시점에서 우리도(뮤지션, 제작자, 공연기획자 등등) 뒤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직접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돈이든, ‘의리’나 ‘뮤지션쉽’을 제외한 다른 어떤 것이든 간에 말이다. 왜냐하면, 난 그것이 힙합 씬이 그토록 외치는 리스펙(Respect)의 중요한 모습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얼마 전 만났던 이 판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 있는 뮤지션 한 명은 외부 행사에 섭외가 됐을 때 겪은 웃지 못할 일화를 들려주었다.
“어떤 단체가 기획한 공연에서 섭외가 왔는데, 비용을 물어봤어요. 근데, 얼마를 불러야 할 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동안 공식적인 금액을 정하고 (공연을) 했던 적이 없었거든요.”
이건 하나의 예일뿐이다. 유독 돈과 창작의 거리를 멀게 둬야 한다는 강박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내부적으로 문화가 정립되지 못하다 보니 이런 씁쓸한 상황은 쉽게 연출된다. 한편, 공연도 공연이지만, 뮤지션들 간 작업 시에도 이와 관련하여 깊게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긴 마찬가지다. 씬에서 뮤지션들이 작업하는 방식은 일명 ‘품앗이 문화’로 대변할 수 있다. ‘내가 한 번 도와줄 테니, 다음 번에 너도 날 도와줘라.’식이다. 물론, 이 자체가 문제될 건 없다. 친분이 두텁거나 서로 상업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사이에서라면, 돈을 주고받는 것보다 이 편이 훨씬 값진 결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 발생한다. 한 베테랑 뮤지션은 이런 말을 했다.
“서로 교류도 없었던 뮤지션이 어느 날 비트를 받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서로 만나서 이야길 나누고 작업하게 됐죠. 근데 앨범이 나오고 나서는 연락이 끊기더군요. 한 두 달이 지나서야 앨범이 나왔다며 주더라고요. 그나마 이런 것도 없이 아예 잠수 타는 친구들도 있어요. 이럴 땐 참 허무하죠. 돈이요? 우리가 언제 그런 걸 정하고 작업하나요…. 서로 힘든 처지에.”
이렇듯 처음에는 인간적으로, 혹은 음악적으로 접근했다가 자신의 실속만 차리고 빠지는 경우가 허다한 게 지금까지 이어져온 현실이다.
물론, 이렇게 어두운 부분만 있는 건 아니다. 현재 피처링, 프로덕션, 공연게스트 등에 대해 꾸준히 소정의 금액을 지급하며 먼저 나서서 바람직한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노력하는 뮤지션과 레이블도 있다. 실제로 난 얼마 전 데뷔했던 신인 중 한 팀이 공연 게스트들의 페이를 책정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대다수가 그렇지 않다 보니 페이에 대한 인식이 있던 이들마저 금새 지치거나 ‘노 페이’ 분위기에 휩쓸려버릴까 우려된다.
사실 조금만 고민해본다면, 이러한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해결책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얼마의 페이를 주느냐?’보다 ‘페이를 주자.’라는 분위기 조성, 즉, 마인드의 변화가 먼저기 때문이다. 그 금액이 만원이든 십만 원이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란 얘기다. 자신의 활동과 음악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는다는 것이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퍼지는 게 먼저다. 간혹, 얼마 안 되는 적은 액수를 주기가 민망하거나 미안해서 그냥 넘겨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정말 지양해야 할 태도다. 어차피 이 판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느 정도의 자본이 굴러가고 있는지 대략 알 것이다. 같이 이 씬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끼리, 작정하고 뒤통수를 치려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가 큰돈을 바라겠는가?!
여러 사정상 정식 페이 책정 없이 공연을 열었다고 치자. 공연이 끝난 후, 대관료 및 기타 비용을 제외하고 남은 돈이 얼마든, 설령 1인당 단돈 천원이 돌아간다 해도 그걸 서로 나누는 것. 처음에는 서로 비용 없이 비트를 주고받고 피처링했다 해도 추후 앨범이 팔리고 정산을 받으면, 아주 적은 금액이라도 참여해준 뮤지션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 최소한 이런 분위기만 조성되어도 단지 식사 한 번, 술 한 잔으로 때우고는 하는 지금보다 훨씬 아름답고 바람직한 씬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건 마인드와 태도의 문제다. 그리고 이러한 작은 변화로부터 시작된 움직임이 이후, 더욱 크고 발전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리라 확신한다.
거듭 말하지만, 친분이 두터운 사이끼리 페이 없이 이루어지는 거래에 대해서까지 태클을 걸고 싶은 맘은 없다. 그건 우리만의 아름다운 브라더후드(Brotherhood) 문화니까. 다만, 페이를 지급하는 문화가 이 씬을 돌아가게 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이 될 수 있음을 상기했으면 좋겠다. 이건 ‘우정’과 ‘힙합정신’에서 빗나가는 ‘사무적’인 행동이 아니다. 서로간의 존중, 리스펙의 실질적인 표현 중 하나인 것이다. 더구나 이건 프로들의 세계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비즈니스적 자세이기도 하다. 이 판을 이루고 있는 뮤지션이나 기획자, 전문가들이 아마추어는 아니지 않는가?! 대중에게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기 전에 이 판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당한 대가가 오고 가는 게 먼저다.
여담으로 지난 2005년 ‘리드머 쇼’를 열었을 때 뮤지션 페이를 들은 주변인들의 반응은 대부분 ‘너희 바보냐?’와 ‘봉사 한 번 제대로 했네.’ 등이었다.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고 해야 할 일을 하면 바보가 되거나 자원봉사자로 우대(?)되는 이 웃지 못할 현실은 무려 6년이 지난 지금도 한편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가장 활발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한국힙합 씬이 그 선봉에 선다면, 매우 멋진 그림이 되지 않겠는가?!
-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 글: 강일권
모든 리드머 콘텐츠는 사전동의 없이 영리적으로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28
-
-
- Fukka (2011-04-19 15:32:53, 1.107.101.**)
- 요즘 리드머에서 시원한 칼럼이 자주 나오네요 앞으로도 부탁드립니다.
-
- Gerome (2011-04-17 19:42:41, 222.109.121.***)
- 개선되어야될 점 중에 하나죠. 뭐든지 돈 문제는 확실히 해야 되니까요.
-
- djyd (2011-04-15 14:48:02, 182.210.21.***)
- 많은 생각이 들게 하네요..적게 줄바엔 안주는게 낫지 않나? 주기도 민망하니..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일권님 인터뷰는 없나요?? ㅋ필진들이 해주세요 담백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토니 몬타나..멋집니다
-
- howhigh (2011-04-15 10:15:44, 124.54.125.**)
- 씬이 건너건너 아는 사이다 보고, 친분관계로 얽혀있는 사이도 많다보니까
공연이나 앨범참여의 개념에서 품앗이 개념으로 진행이 많이 된게 아닌가 싶은데...
자칫 힙합씬 외부에서도 이렇게 생각하고, 이것을 이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됨
연이나 음악작업 참여에 대한 적절한 페이에 대한 개념이나 실행이 좀 있어야 하는것 아닌가 싶네요....돈이 오고간다고 해서 뮤지션들간의 친분관계가 변질되거나 그
사이가 소원 해진다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뮤지션들간의 관계를 비지니스 관계로 만들다기 보다는 오히려 더 깔끔하게 작업을 할수 있게 해주지 않나 싶음...또 그런것들이 정립되어야 외부에서 곡참여나
공연활동 의뢰 할 때에도, 힙합 뮤지션들이 정당한 댓가를 얻어낼수 있지않나 싶고..
-
- 랩의진수 (2011-04-15 06:10:27, 68.193.77.***)
- 진짜일까 궁금하네...아무튼 강일권님 항상 좋은 글 감사요 ..
솔까말 정규앨범에 실리는 비트 받는데 아무런 페이나 대우도 안해주는건
아무리 친한사이라고 해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좀 허접해보임 시스템이..ㅋㅋ
-
- 랩의진수 (2011-04-15 06:08:07, 68.193.77.***)
- 페이하니까 떠오르는게
nikki minaj 는 "50k for a verse, no album ou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