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급변하는 대중음악계, 창작과 유통 그리고 소비
- rhythmer | 2011-05-09 | 21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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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대중음악계가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얼마 전 고릴라즈(Gorillaz)의 새 앨범 [The Fall]을 들으며 정보를 뒤지던 중, 이것이 지난 크리스마스에 웹으로 공개했던 음악이며, 투어를 다니는 틈틈이 아이패드로 작업했다는(일부에 해당하지만) 말에 깜짝 놀랐다. 세상은 이처럼 급하게 변해가고 있었고, 이와 밀접하게 닿아 있는 대중음악도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대중음악의 창작과 유통, 그리고 소비방식은 어디까지 변화하게 될까?미디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음악을 음반이라는 물리적 미디어(자기테이프, 비닐 레코드, 컴팩트 디스크 등)를 통해 구입하고 재생했다. 하지만, MP3가 등장하고 네트워크 환경이 개선되자 이제 음악은 다운로드받는 것이 되었고, 나아가서 스트리밍하는 것이 되었다. 여기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일단 유형의 것이 무형의 것이 되었다. 이는 자연스레 음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닌 소비하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제 대중은 부피를 가진 음반(CD)을 물리적 공간(진열장)에 채워 넣는 대신 자신의 하드디스크나 휴대용 저장장치에 '임시적'으로 공간을 할당하고 거둬들이며, 음악을 '소비'하게 되었다. 물론, 대중음악은 원래부터 '소비'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것을 영구히 소장하려던 욕망이 점점 사그라지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개인이 한계를 가지고 소장하던 음악이 이제 커다란 아카이브에 누구나 접근 가능하도록 바뀐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제 원하는 음악을 원하는 때에 어디에서나 '열람'할 수 있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비용'이 부과되지만, 오히려 '열람' 기회는 더욱 평등하게 되었다. 과거였다면, 네잇 독(Nate Dogg)의 사망소식에 음악을 구하기 위해 원래 가격의 몇 배를 내고 열심히 음반판매장을 뒤져야 했겠지만, 지금은 아이튠스를 띄우고 클릭 몇 번이면 해결된다. 물론, 나와 같거나 이전의 세대라면 음반의 소장욕구가 여전히 저항하겠지만, 물리적 음반이 사라진 날의 대중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단위
음악의 단위도 변했다. 예전부터 미국에서는 싱글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었지만, 국내의 대중은 좋아하는 한 곡의 음악을 위해 10여 곡이 담긴 음반을 억지로 구매해야 한다는 불만이 있었다(MP3의 불법다운로드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을 때, 반론이 이것이기도 했다). 가끔 국내에서도 이에 착안하여 이현도의 [사랑해]처럼 싱글을 발매하곤 했지만, 아주 드문 일에 불과했고, 또한, 가격도 앨범을 구입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록, 표절 곡이긴 했지만) "날개 잃은 천사"를 들으려면, [룰라 2집]을 사는 수밖에.
하지만, 디지털 마켓은 이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제 무리하게 비용을 투자하며 앨범을 제작하는 대신, 디지털 싱글을 내놓고 반응을 보며 활동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아니 이미 자리잡았다. 때문에 무분별하다 싶을 정도의 작품이 나오는 부작용이 초래되기도 했지만, 많은 부분에서 제작자나 소비자 모두에게 윈윈이다. 물론, 아직 앨범이라는 단위가 사라지리라고 예상하긴 힘들다. 여기에는 싱글이 가지지 못하는 커다란 컨셉트와 맥락이 담겨 있기 때문인데, 창작자는 이것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자신의 음악을 발표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나스(Nas)가 "나는 이제 디지털 싱글만 발표하겠어"라고 선언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물론, 대중도 스눕 독(Snoop Dogg)의 "Superman"만 다운받고서 [Doggumentary]가 "컨트리 앨범이잖아"라는 오류를 범해선 안 된다.
한 가지 더. 대중음악에서 하나의 곡이 3~4분으로 유지되는 것은 순전히 싱글 레코드 시대의 관습 때문이고, 현재의 앨범이 74분 이내로 구성되는 것도(이것의 배수로는 가능하지만) CD의 용량 때문이다(정확히는 CD가 베토벤의 교향곡을 담기 적당한 용량으로 규격화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제한 사항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럼에도, 관습이라는 것은 무서워서 쉽게 변하진 않겠지만, 이미 10분이 넘어가는 긴 싱글은 수두룩하다. 한 예로 스윙스(Swings)는 지난해 25분여에 달하는 곡이 담긴 [500 Bombs] 디지털 싱글을 발매하지 않았나. 이제 창작자는 시간적 제한에서는 더욱 자유롭게 작업해도 되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반대로 조금 급진적인 발언을 하나 하자면, 나는 곡의 러닝타임이 1분 이내로 만들어지고, 이것이 익숙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미래의 일은 아니겠지만, 그 이유는 다음 단락에서 보충된다.
용도
초창기 대중음악은 정해진 자리에서 연주를 보며 즐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축음기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난감해했다. 직접 연주자와 무대를 보며 듣던 것이 조그만 기계에서 들려왔으니…. 음악이 레코드라는 기록매체에 담기면서 반복해 들을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점점 소형화되고 저렴하게 보급되면서 곧 많은 이는 음악을 어디에서나 듣고 '감상'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댄스 플로어에서 듣던지, 버스 안에서 이어폰으로 듣던지 상관없이 말이다. 하지만, 이제 음악은 단순히 '감상'의 대상으로만 소비되진 않는다. 이미 대중음악은 휴대전화의 '벨소리'나 소셜 네트워킹용 '배경음악'으로 막대하게 소비되고 있으며, 이는 개인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창작자는 이를 충분히 반영하여 곡에 강한 '후크(Hook)'를 집어넣거나, 인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등의 작업을 할 수도 있다. 나는 여기에 덧붙여 앞으로는 곡의 러닝타임이 1분이 넘어가지 않아도 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앞으로 그런 용도의 음악들이 제작되거나 혹은 기존의 인트로(Intro), 인터루드(Interlude) 등의 명칭으로 포함되던 짧은 트랙들의 지위가 향상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유통방식
대중음악은 음악가가 레이블에 소속되어 음반을 만들면 유통사를 거쳐 소비자에게 보급되는 형태를 띤다. 물론, 소속사나 유통사가 생략될 수는 있지만, 유통사를 거치지 않고 전국적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네트워크의 보급은 이런 시장을 온라인으로 옮겨왔다. 이 덕분에 생산자는 수량을 예상해 상품을 제조하고 물량과 물류를 관리해야 하는 걱정이 사라졌다. 반대로 소비자는 원하는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매장을 방문해야 하는 수고를 덜었으며(당연히 택배를 받을 필요도 없다), 물량이 소진되어 구매에 실패할 확률도 사라졌다.
하지만, 대중은 여전히 일방적으로 책정된 금액을 지불해야 하고, 음악가는 중간 상인들의 개입으로 적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에 대해 몇몇 음악가들은 대안적인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는데, 앞서 언급한 고릴라즈(Gorillaz)와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같은 밴드는 자신들의 음악을 웹 사이트를 통해 무료로 다운로드받게 했고,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는 신보 [Hot Sauce Committee Part Two]를 웹을 통해 무료 스트리밍할 수 있게 했다.
더 합리적으로는 라디오헤드(Radiohead)가 있다. 이들은 2007년 [In Rainbows] 앨범을 발표하면서 소비자가 직접 가격을 책정하고 다운로드받도록 했는데, 순식간에 서버가 마비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100~150만 정도의 다운로드 중 절반 정도가 무료로 받아갔지만, 나머지는 평균 5유로(약 8,000원)를 냈다(지불한 이들은 대부분 영국과 미국의 팬들이었는데, 이것은 문화에 따른 반응의 차이라서 국내시장에 적용하긴 힘들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판매액은 줄었다. 하지만, 그들이 기존의 질서대로 판매했을 때, 음반 1장당 1파운드(약 1,800원)을 받았다고 하니, 오히려 수익률은 훨씬 높은 셈이다. 물론, 이 같은 시도는 빅 네임을 가진 이들만의 여유일 수 있다. 이들은 이런 방식으로 프로모션할 수 있고, 다른 방식(공연)으로 수익을 낼 수 있으니까.
아무튼, 소비자의 입장에서 이 같은 시도는 무척 반갑다. 그것이 프로모션을 위한 것이든 기존 시장에 대한 쿠테타든지 간에 상관없이 말이다. 이미 많은 음악가가 이 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음악을 발표하고 있다. 무료 믹스테잎도 수시로 발표되고 있으며, 특정한 목적의 무료 음원도 쏟아지고 있다(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는 어린이들을 위해 동요앨범을 무료 공개했다.). 바야흐로 음악 소비의 민주화가 열리는 것이다. 앞으로도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은 계속될 것이다.
창작
과거에 음악가는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했다. 하나의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기 위해서 수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했고, 작곡하거나 소리를 조율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교육이 필요했다. 그래서 음악가가 된다는 것은 프로페셔널이 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지금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프로페셔널이 될 필요는 없다. 누구든 관심만 있다면, 취미로 해 볼 수 있고, 아마추어리즘으로 접근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하드웨어의 발달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과거에는 음악을 완성하기 위해 실연자가 필요했고, 전문 녹음실이 필수였다. 하지만, 개인용 PC에서 모든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지금은 누구에게나 가능성이 열려 있다. 훨씬 경제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덕분에 우리는 재능을 가진 수많은 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들은 프로페셔널이 되어 보답해주었다. 예를 들자면, PC통신에서 자신의 음악을 무료로 공개했던 (예전의) 조PD처럼.
그렇다면 전망은? 지금까지의 방식은 그래도 일정한 공간이 필요했다. 자신의 방이든 친구집 지하실이든. 그런데 이제는 하드웨어(결국, 이것이 악기이자 녹음실이다)가 더욱 소형화되어 랩탑과 모바일 장치에서 지금까지의 작업이 가능해지고 있다. 실제로 앞에 소개한 고릴라즈의 앨범에는 데이먼 알반(Damon Albarn)이 아이패드로 작업한 곡들이 담겨 있고, 많은 일렉트로니카 계열 디제이들은 아이북을 들고 다니며 즉석에서 곡을 만들어낸다. 이런 경향은 하드웨어가 새롭게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거리에서 휴대폰 마이크에 대고 녹음하는 것만으로 지금의 녹음실 정도의 품질을 얻어내는 시대가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
이상 살펴보았듯이 세상은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고, 당연한 것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기도 한다. 이런 변화에는 대중음악도 예외가 아니다. 창작자와 대중, 그리고 산업적으로 관련된 모든 이는 이런 변화에 당황하지 말고 새로운 시각으로 상황을 읽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살아남는 종(種)은 강한 종도 아니고, 똑똑한 종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다." 진화론의 찰스 다윈이 남긴 이 말을 대중음악계의 상황에 적용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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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eknd (2011-05-13 02:46:11, 121.147.166.**)
- 잘 읽었습니다. 요즘 아이튠즈로 구매한 음반에 따라오는 부클릿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참 묘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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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jyd (2011-05-12 12:48:38, 182.210.21.***)
- 모바일 시퀀서도 쭉쭉 출시되고 있죠..길가다 스튜디오급 녹음,,멀지 않은듯 합니다 하지만 lp가 주는 따스한 소리나 cd를 갈아 넣으며 재킷이라도 한번 더 보는 그 맛,그 향수는 변하지 않을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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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ZA (2011-05-11 09:55:10, 115.93.101.***)
- 객관적인 관점에서 분석하신글 잘 읽었습니다.
음반은 없어지지 않을것이고 없어져서도 안되겠죠.
아티스트들의 음반소비가 점점 줄고있는게 안타까울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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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랩퍼엔 (2011-05-10 22:29:12, 112.153.162.**)
- 이해가 잘 갑니다. 와우 멋진 글!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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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RE (2011-05-10 15:21:20, 121.169.57.**)
- 엄청나게 깔끔하고 정확한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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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rome (2011-05-09 21:36:44, 183.96.26.**)
- 잘 읽었습니다. 물리적인 음원은 이제 기념품처럼 변하겠죠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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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peye (2011-05-09 19:51:17, 168.120.97.**)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겨우 20살인저에겐 솔직히 미래의 음악시장이 한편으로는 두렵게 느껴지는게 사실이네요.
그래도 음반이라는 물리적인 음원은 꼭 지켜져야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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