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인디(Indie)를 보는 잘못된 시선
- rhythmer | 2011-08-24 | 30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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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몇 년 사이 ‘인디(Indie)’는 대중음악계의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인디라는 정체성을 지닌 뮤지션들의 음악이 음원 차트 상위권을 장식하고, 비록, 일부지만, 공중파 방송에서도 심심치 않게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그만큼 이제 인디 뮤지션과 그들의 음악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있다. 대형기획사 출신의 가수들이 대부분 홍보 루트를 장악하고, 방송가는 좋은 음악과 뮤지션을 소개할 의지를 잃어버린 지 오래인 이 땅에서 지금의 상황은 기적에 가깝다. 그리고 매우 바람직하다. 이것이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지언정, 음악팬들이라면, 그런 걱정은 잠시 접고 이 순간을 만끽해볼 만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과연, 우리는 ‘인디’에 대해 올바르게 인지하고 있는가? 애석하게도 별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요즘 인디라는 단어가 국내에서는 하나의 장르로 인식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인디음악을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과 몇몇 매체의 방송이나 글에서 록이나 힙합 등의 장르와 동일 선상에서 별도로 인디 음악을 언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사실이 그 대표적인 근거다. 최근에 인디음악의 팬이 되었다는 사람들, 인디를 주제로 방송이나 공연을 꾸리는 사람들, 그리고 언론인들 일부의 머릿속에 그려져 있는 획일화된 음악의 형태(이를테면, 어쿠스틱 기타와 어우러지는 달달한 멜로디의 노래내지는 밴드들의 음악) 자체에 대한 아쉬움은 차치하더라도, 그러한 음악들이 인디라는 하나의 장르로 정의되는 현실은 좀 우습다. 더구나 특정한 스타일의 음악이 인디 음악이라는 장르로 잘못 인지되면서, 같은 씬 안에 있는 몇몇 장르의 음악(특히, 알앤비, 힙합)은 인디 음악과도 별도로 분리되어 차별받는 경우까지 생기니 정말 문제다. 인디를 구분 짓는 건 음악의 스타일이나 형식이 아니라 음악을 만들고 그걸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행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이나 기획사의 마음가짐도 포함된다. 한 마디로 발라드, 록, 재즈, 힙합, 알앤비, 일렉트로니카, 댄스, 포크 등등 모든 장르의 음악이 인디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인디는 간단하게 말해서 거대 자본이나 시스템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음악을 하고자 하는 뮤지션, 혹은 레이블을 뜻한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나온 음악이 바로 인디음악이다. 우린 여기서 ‘독립한다’라는 말에 담긴 의미를 곱씹어봐야 한다. 그리고 ‘거대 자본’은 단순히 돈이 많다라는 뜻보다도 흔히 ‘메이저’ 혹은 ‘주류’라고 부르는 메인스트림 음악계를 대변하는 말이라고 보면 된다. 혹자들은 이 말 때문에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뮤지션이나 레이블은 무조건 인디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명백한 오해이다. 메인스트림 음악계에서는 한 가수의 음악을 프로모션하는데 매우 큰 돈이 들어간다. 투자한 돈을 회수하고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대중의 기호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 보니 이른바 ‘돈이 되는’ 음악(그런 음악이 완성도가 낮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을 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투자는 음악이 완성되는데 작게든 크게든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를 ‘거대 자본’이라는 말로 메인스트림 음악 씬을 표현한 것이고, 바로 이러한 자그마한 간섭조차도 받지 않고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게 진정한 인디의 정체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레 독립 노선을 걷는 뮤지션과 레이블은 자본과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운 덕에 메인스트림의 흐름과 전혀 무관한 음악을 주조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프로모션한다. 대중의 기호를 우선 순위에 두고 음악이 탄생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인디냐 아니냐가 정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중요한 건 주류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지는 대부분 음악은 철저하게 대중을 찾아가지만, 인디 음악은 트렌드와 무관한 스타일을 통해 사람들이 찾아오게 한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원래 형편이 풍요로운 뮤지션이라도 메이저 시장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고 프로모션한다면, 그는 인디다. '인디 (뮤지션/레이블)는 돈 버는 걸 염두에 두지 않아야 한다.'라거나 '돈을 멀리해야 한다.'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그렇다면, 인디 뮤지션은 메인스트림에서 유행하는 음악을 하면 안 되는 것인가? 물론, 세상에 그러란 법은 없다. 하지만 차별화되는 포인트 -예를 들어 노랫말이라도 메인스트림에서 구사하기 어려운 주제를 담는다든지- 하나 없이 그런 음악을 했을 때 앞서 언급한 ‘인디로서 정체성’이 빛을 바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100% 진실하게 자신은 메인스트림에서 유행하는 음악이 좋아서 고스란히 재현하고 싶지만, 어딘가에 소속되긴 싫어서 독립 노선을 걷는다고 해도, 억울하겠지만, ‘돈이 없어서, 혹은 메이저로 가지 못해서’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흑백논리에 가깝다고 비판하는 혹자들도 있겠지만, 이러한 구분이 인디 씬을 지키고 발전시킨 원동력이었음은 분명하다. 실제로 세계의 많은 인디 뮤지션은 의식적으로라도 트렌드를 무시하거나 역행하며 정체성을 표현해왔고, 이러한 분위기가 인디 씬을 탄탄하게 만든 것이 사실이다.
최근의 인디 바람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인디가 특정한 형태의 음악 장르로 굳어지는 건 절대 안 될 일이다. 이런 때일수록 인디의 정의와 의미에 대해 확실하게 인식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시류에 편승해서 얄팍한 상술로 대중의 주머니를 후리려는 ‘말만’ 인디 뮤지션들도 걸러낼 수 있지 않겠는가?! 사실 대형 기획사처럼 거대 자본은 아니더라도, 음원사이트나 유통사로부터 일부 제작 비용 지원, 또는 일명 ‘마이킹(선급금을 일컫는 속어)’을 댕길 수밖에 없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우리나라 현실상 온전한 의미에서 인디라 부를 수 있는 뮤지션이나 레이블은 드물다. 하지만 그러한 돈에 음악이 완전히 지배당하지만 않는다면, 그들의 음악을 고수하고 발전시키려는 방편으로서 문제될 건 없다.
중요한 건 인디는 또 하나의 ‘돈 되는 장르 음악’이 아닌, 트렌드와 상관없이 한국대중음악 씬을 풍성하게 하는 ‘돈도 되는’ 멋진 음악을 배출하는 공간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디 씬을 지키는 건 좋은 음악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적극적으로 피드백하는 음악팬들의 직접적인 지지라는 것도 잊어선 안 되겠다.
※본 칼럼은 국민일보-쿠키뉴스에 기고한 칼럼을 일부 수정 및 보완하여 게재하는 바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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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 (2011-09-25 16:18:41, 175.124.234.*)
- 새로운것을 받아들일때 새로운것의 기준을 존중하며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보단 그저 익숙한대로 받아들인다는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것이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익숙하지 않은걸 익숙하게 느끼게끔 하게 만드는것에 야속할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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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두리 (2011-08-29 20:28:38, 119.203.122.***)
- 와 정말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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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beratorz (2011-08-27 23:52:37, 112.159.27.**)
- 크... 역시 리드머 좋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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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듬을 타는 렉스 (2011-08-26 01:24:03, 211.246.70.**)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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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rome (2011-08-25 10:51:26, 175.193.60.**)
- 잘 읽었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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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peye (2011-08-24 21:13:15, 168.120.97.**)
- 1 ㅋㅋㅋㅋ
'돈벌이도 안되는 인디음악이지만 음악이 너무좋다'라고 말한
제 친구에게 꼭 보여줘야할 것 같습니다.
칼럼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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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호 (2011-08-24 20:19:32, 175.210.75.***)
- 10년전에 엠넷 뮤비 시상식에서 노브레인에게 인디부분 시상할때 왜이렇게 웃기던지 ㅋㅋ
그냥 록 부분에 올리면 될것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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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준 (2011-08-24 17:43:31, 59.9.11.**)
- 잘 읽었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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