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토픽] JAZ의 DIMENSIONS & EXTENSIONS: Meet The Parent 1부
- rhythmer | 2009-11-12 | 0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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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돌며 힙합에 대한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뮤지션 JAZ가 리드머에 전하는 생생한 현지 기행문입니다. JAZ가 직접 찍은 풍부한 사진과 영상 자료들이 함께할 예정입니다!
적어도 필자가 힙합을 시작했을 당시에 우리 ‘Hip-Hop Head’들은 세상물정 모르는 ‘순수한 반항아들’이었다. 여기서 'Hip-Hop Head'는 필자의 나이 한두 살 위아래의 레이더망에 걸린 '힙합에 삶의 뿌리를 둔 친구’들을 일컫는다. 우린 특정한 목적달성을 위한 반항이라기보다는 제임스 딘의 ‘이유 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과 동일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회의 흐름과 뒤섞이고 싶지 않은, '개인의지'와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는 ‘나 좀 내버려둬요’ 형식의 마인드 셋을 추구하는 '반항아들'이었다.이젠 문호개방이라는 말이 우습게 들릴 정도로 우린 이미 글로벌 시대의 구성원으로서, 마이스페이스/유튜브/트위터와 같은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곳곳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현상과 사건, 재미난 TV 시리즈, 혹은 쇼를 보며, 다문화 속에서 자신만의 돌연변이적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만큼 세계로 진입하는 엑서스는 매우 편리해졌고, 우리가 원하는 정보 또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최첨단 시설의 빠른 보급 덕에 이젠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신속하게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빠르게 습득하고 빠르게 얻는 만큼, 그 본질에 대한 가치 또한, 빠르게 낙후되고 있음을 느낀다. 빛의 속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MP3의 무분별한 불법 다운로드 전염병으로 인해 대부분 뮤지션들이 끝없는 불평불만을 토로하고 있지만, 필자는 그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들의 자세, 다시 말해, 우리가 만들어 가고 있는 'billions of free MP3 music online, why buy CD?'와 같은 사회 문화적 현상에 대한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다. 현시대의 음악적 가치는 인간 본연의 권리와 존중을 되찾기 위한 ‘목적가치’의 외침이라기보다는 삶의 일부분을 예쁘게 포장하는 액세서리와도 같은 ‘도구가치’의 선전포고에 더 중점을 두고 있기에 이 같은 비극을 초래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 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뛰어나게 공부를 잘하거나 운동을 잘했던 아니었지만, 적어도 기초의 중요성 및 매사에 그 어떤 것도 맹목적으로 받아드리지 않고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해 할 줄 아는 습관을 가지려고 잘 훈련해온 것 같다. 하지만,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었다. 필자 역시도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에 대한 의혹, 혹은 그들의 원초적 의도를 의심 하는 것에서부터 모든 게 출발했던 것 같다. 단순히 ‘의심’이라기 보단 ‘신기한 호기심’ 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밥그릇을 꽉꽉 채우려는 뚱보들로 가득한 세상에 남의 그릇을 먼저 채워주려고 하는 마음가짐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런 위대한 습관을 지닌 사람들은 실로 존재하고 있고 필자에겐 큰 영감이 되어왔다. 운 좋게도, 필자는 어깨 넘어 그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마음이 담긴 작은 습관 하나하나를 예의주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들의 모습에 가까워진 필자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을 통해 필자는 매 순간을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받은 것이 있다면, 언제나 보답할 것이며, 때로는 먼저 베풀며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좋은 습관 역시 기르게 된 것 같다. 철부지 필자로선, 익숙하지 않은 행동 양식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필자가 이곳에 서있기까지 좋은 길로 인도해준 ‘승리의 습관(Winning Attitude)’이었던 셈이다.
Easy come easy go. 쉽게 터득한 건 쉽게 잃는 법. 물론, 쉽게 터득해서 그것으로 오래 장수를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만, 쉽게 얻어진다는 건, 본연의 가치를 온전히 이해하고 경험해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지 못했음을 뜻하기에 그만큼 애정의 깊이도 깊어 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을 것 같다. 어쨌든 필자가 음악을 시작했을 당시엔 우리가 원하던 원치 않던 매일 고된 ‘Hard Knock Life(고군분투의 삶)’의 연속이었다. '리소스의 가뭄'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가 원하는 리소스를 얻기 위해선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다. 수입되는 힙합음반 역시도 가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일체의 거짓 보탬 없이 필자는 하루에 한끼는 참아가며, 일주일에 수입음반 한 장씩을 압구정 역 상아레코드 오프라인매장에서 구입해왔었다. 힙합잡지들이었던 ‘Bounce’는 신나라 레코드, ‘Source’와 ‘XXL’ 매거진은 압구정 리어카에서….그만큼 기초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기에, 흔들림 앞에서도 건재한 것일까? 필자를 이토록 열광하게 만드는 'Hip-Hop(힙합)', 마치 프랑스 로맨틱 코미디 영화 [Love Me If You Dare(사랑해도 될까요?)]의 마지막 장면-경찰차 추격 씬에서 남자 주인공이 극도의 희열을 느끼며, '내기를 하는 것만큼 날 미치도록 흥분케 하는 건 없어!'라고 외치며 왜 그것이 그를 그토록 미치게 하는지 별난 이유들을 남발하는 장면-처럼 필자에게는 힙합이 그 무엇보다 좋고 사랑스러우며 재미있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힙합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고픈 욕구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I’m a SUCKA 4 OLDSCHOOL. 필자는 '올드 스쿨(1970's 1980's를 대표하는 힙합문화')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올드 스쿨에 대한 필자의 사랑의 범위는 그들의 일반적인 생활습관서 묻어 나오는 눈빛 손짓 하나하나까지 포함한다. 그들의 작은 습관 하나하나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뿐더러 어떤 때는 신성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니, 그들로부터 얻는 영감은 과히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힙합이 탄생되기까지, 그리고 탄생 이후, 한 번도 쓰이지 않은 역사를 써 내려가는 과정을 지나오며, 여러 시행착오들을 겪어왔다고 하지만, 음악을 대하는 그들만의 순수한 접근법과 가공 되지 않은 생생한 움직임들은 점점 체계화 되어가는 밀레니엄 힙합시대에 어쩌면 따끔한 일침을 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2009년 7월 19일, 필자는 네덜란드에서 펼쳐지는 세계 비보이 대회 ‘WORLDBBOYCLASSIC(이하 WBC)’의 메인 호스트로 초청을 받게 되었다. 사실상, 이번 초청은 작년에 이은 두 번째라지만,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콩닥거리는 건 어쩔 수 없는 가보다. 작년의 고마움과 영광을 잊지 못하기 때문일까. 필자는 더더욱 감사 드리는 마음으로 필자의 힙합을 나누고 와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굳게 다지던 도중, 힙합의 아버지 쿨 허크(Kool Herc)와 힙합의 어머니 마사 쿠퍼(Martha Cooper) 또한, 초청되었다는 소식을 접해 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한국에서 무수히 많은 비보이 대회의 호스트를 해오며 많은 ‘Hip-Hop Legend’들과 교감을 나누어왔지만, 외국에서 그들과 교감을 나누는 기분은 그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고귀한 진실의 순간들이다. 어쩌면, 필자가 밤낮으로 연구에 매진하며 음악여행을 떠나는 것 또한, 뿌리로부터 더욱 가까워질 수밖에 없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하기도 했다. 동양인으로서 최초로 국제적인 힙합 페스티벌의 진행을 맡는 것도 유례없는 일이라 그 주인공이 필자라는 것에 두근거려 잠을 청하기 힘들었지만, 무엇보다도 필자를 두근거리게 한 건 앞으로 다가올 '아버지와의 첫만남'이었다.
그리고 ‘D-Day’는 다가왔다. 한국에서 배출한 세계적인 비보이 TIP 크루의 비보이 디퍼(Differ), 그리고 2008 코리아 스파클링 R-16 우승의 쾌거를 이룬 겜블러 크루의 비보이 씩(Sick)과 함께 네덜란드 여행길에 올랐다. 네덜란드 스키폴(Schiphol) 공항 도착. 이번 페스티벌을 위해 공항에선 이미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Hip-Hop Head’들이 도시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필자 역시도 픽업하러 나온 이벤트 관계자들을 만나 페스티벌 베뉴로 이동했다.네덜란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로테르담(Rotterdam)에서 3일 동안 펼쳐지는 힙합 페스티벌의 첫 날은 '길거리 과학(Street Science)'이라는 테마아래 여러 힙합 워크숍 및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었고, 필자가 베뉴에 도착 했을 때 때마침 '스타일 워즈(Style Wars)'의 디렉터 헨리 샬펜트(Henry Chalfant)의 워크숍이 한창이었다. 베뉴는 역시나 올드 스쿨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몰려든 유럽 ‘Hip-Hop Head’들이 빼곡히 메워주고 있었다. 그때서야 축제 한마당에 들어섰음을 실감 할 수 있었다. 헨리 삼촌은 세미나 내내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Graffiti Art’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 중이었다. '스타일워즈 그리고 그 이후...Style Wars and after...)'라는 타이틀아래 80년대 당시의 억압된 사회환경적 여건 속에서 ‘Train Wreckin'(기차에 바밍- Bombingㆍ도둑그림-하는 것을 일컬음)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던 그래피티 라이터들의 고충과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에피소드들, 그리고 점점 강도 높아지는 시행 법을 통해 생겨난 크고 작은 변화들, 마지막으로 그래피티 아트의 대안 및 미래에 대한 헨리 삼촌의 진중한 열변은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고도 남았다. 공연 문화와는 다르게 아티스트가 아닌 일반인들도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자유롭게 토스하며 참여 할 수 있는 세미나 문화가 잘 형성되어있다는 점이 참 아름다워 보였고, 서울이 만들어가는 움직임 '서울시티락커스'도 올드 스쿨 원로들을 초청하여 그분들의 말씀을 직접 전해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왔지만, 앞으로 더욱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세미나가 끝남과 동시에 파티로 이어지기까지 약간의 휴식시간 동안 이번 페스티벌을 위해 모이기로 약속한 줄루(Zulu)형제들과 ‘catch-up time(밀린 얘기들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고, 필자는 이번에 새로 발매한 앨범들을 건네줬다. 서울의 나쁜 엉덩이 이야기서부터 시작해서 밀려있던 안부를 넉넉히 주고 받다 보니, 어느새 대망의 파티타임이 찾아왔다.모든 이가 고대했던 아버지 쿨 허크의 ‘spinnin'(음악을 틀다)’ 시간!!! 베뉴였던 클럽 ‘Watt(왓)’에 들어서자 문 앞서부터 어머니 마사 쿠퍼의 반가운 사진들이 클럽 안으로 들어오기를 환영하고 있었고, 어머니의 베스트 셀러인 '서브웨이 아트(Subway Art)', 그리고 '힙합 문서들(Hip-Hop Files)'에서는 볼 수 없었던 레어한 사진들도 전시되어 즐거움을 더했다. 필자는 얌전히 잠들어 있던 카메라를 깨워 정신 없이 셔터를 누르기 시작하며, 서서히 메인 플로어로 다가섰고 그 중심에 들어 섰을 때 아버지께서는 이미 액션을 취하고 계셨다. 시나리오가 순차적으로 전개되듯, 사각공간을 메운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기 시작했다. 댄서들은 여러 개의 서클을 만들어 사이퍼(Cypher-프리스타일 서클과 동일한 표현-)를 즐기기 시작했고, 순수하게 아버지의 음악을 감상하러 온 친구들은 아버지의 온기를 조금이라도 더 느끼기 위해 아버지께서 플레이하는 테이블 가까이로 다가서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터지는 카메라 라이트 가운데, 아버지께서는 1970년대 부기 다운 블락 파티(Boogie Down Block Party/1970년대 브롱스 길거리 파티를 뜻함)를 연상케 할 만큼 이미 우리들의 영혼 깊숙이 스며든 올드 스쿨 클래식들을 플레이 해주셨다. 인크레더블 봉고 밴드(Incredible Bongo Band)의 “Apache”, 지미 캐스터 번치(Jimmy Castor Bunch)의 “It's Just Begun”,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Give It Up Or Turnit A loose” 등 ‘Old-time music lover(올드스쿨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들을 위한 팬 서비스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정도로 클래식한 노래들의 연속이었다. 다소 식상한 플레이리스트일수도 있었겠지만, 현재 우리가 가스펠처럼 신성하게 다루고 있는 브레이크 비트 음악들 대부분을 아버지 쿨 허크께서 가장 먼저 디깅했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걸 알기에, 남다르게 심금을 울렸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겠는가?! 필자는 그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플레이를 감상했다. 마냥 신기했다. 허크 아버지께서 현재 필자의 눈앞에 계신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 어떤 힙합 관련 음반, 서적, 다큐멘터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어쩌면 힙합 안에서 절대적인 존재가 필자 앞에 우두커니 서 계시다니... 지나친 환타지를 가져온 건 아니었지만, 매일 자료로만 보아오던 분을 실제로 접하게 되니, 좋기도 했지만, 사실 조금 어리둥절했다. 현실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달콤해서일까?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스스로에게 몇 가지 테스트를 해봐야만 했다. 그 결과… 실제였다. 필자만 스스로에게 기이한 행동을 하고 있는 줄 알았더니,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한 행동들을 취하고 있어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오히려 필자보다 심한 리액션으로 그 진실의 순간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어서 그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모두가 힙합답게, 자신만의 표현방식으로 아버지의 음악이 전해주는 뜨거움에 흠뻑 젖어 들고 있었다.
고백하건대, 아버지 쿨 허크의 플레이가 뛰어났던 건 아니다. 어긋나는 비트들이 오히려 오늘 행사가 잘 마무리 될지 조금 염려케 했지만, 필자의 한 인생을 바칠 정도로 매 순간 극도의 흥분세계로 초대하는 문화를 탄생시킨 장본인이 현재 우리를 위해 음악을 플레이해주신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이것이 진정 ‘The Father of Hip-Hop’ 의 힘인가?성큼 다가섰다. 더욱 가까이서 뵙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해가며 무리를 비집고 들어가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중국무협영화 [영웅]을 보면, 주인공 이연걸이 진시황을 살해하기 위해 수년간의 고된 연마 끝에 필살 권법을 완성하고, 일체의 실수 없이 왕의 숨통을 끊을 수 있게 그를 사정권 안으로 들어오게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현재 필자도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수년의 세월이 걸렸고, 그 세월을 꿋꿋이 이겨내며 뿌리에게로 다가가는, 투철한 인내심이 만들어낸 승리자의 기쁨이라고 할까. 천국을 가본적은 없지만, 천국의 땅을 밟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경건해지기 시작했다. 뜨겁게 끓어오르는 이 느낌, 주체 할 수 없는 기쁨이 결국, 눈물을 낳고 말았다. 현재의 필자가 있기까지 그 동안 스쳐간 모든 사람에게 마음속으로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만 했다. 아! 힙합과 사랑에 빠진 지 13년 만에 드디어 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불과 2년 전만해도 “Hypnotize”라는 노래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동경을 노래했었는데, 그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리라고 과연 누가 상상했을까. 울컥 이는 눈물이 거짓말 같았지만, 수년간 맞서 싸워온 시련과 아픔들을 보상 받는 기분이 들어, 남자답게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로 했다. 필자가 걷는 길이 결코 잘못된 길이 아님을 재 확인 하는 순간 때문이었는지, 고생하는 아들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격려 해주시는 것만 같아 눈물샘이 자극되었던 모양이다.
더욱 앞으로 다가서기로 했다. 필자의 카잘 글레스 렌즈를 거쳐 나오는 비젼으로 더욱 가까이서 뵙고 싶었다. 이젠 정말 바로 내 앞에서 음악을 틀고 계신다. 헉. 근데 이게 왠걸. 아버지의 거인과 같은 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984년 BBC 힙합다큐멘터리 [BEAT THIS]만 보아도 판타스틱 파이브(Fantastic 5)의 멜리 멜(Melle Mel)의 육중한 몸과 버금 갈 정도로 덩치가 크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태어나서 그렇게 두껍고 큰 손은 처음 본 것 같다. 정확한 표현을 찾기 힘들었지만, 진정 거인 손의 소유자셨다.
우린 그렇게 거대한 손으로부터 플레이되는 레코드들을 즐기며 밤은 서서히 깊어갔다. 어떻게든 뿌리로 다가서려고 하는 자들의 이마엔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인종, 성별, 스타일, 종교. 우리가 태어나 자라온 모든 조건이 제각기 달랐지만, 아빠의 포근한 품 안에서 주위를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멋에 취해 ‘do my own thang(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다)' 놀 줄 아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필자 역시도 마침내 스스로가 된 기분이라고 할까. 어쩌면 한국에서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눈치 보며 살아 온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지만, 다시 돌아가면 필자가 하고 싶은 것에 더욱더 집중해서 몰두해야겠다는 다짐 역시 하게 되었다. 남들이 필자를 어떻게 바라보던 간에 말이다. 어차피 우린 같은 태양아래 모두가 다르게 태어났고,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지금보단 더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역시도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첫 날 밤은 사랑과 평화의 색감으로 짙게 물들어 진실 안에서 평온을 찾고 있었다.
기사작성 / RHYTHMER.NET JAZ(Contribu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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