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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토픽] 2012 ‘리드머’ 국외 힙합 앨범 베스트 20
    rhythmer | 2012-12-29 | 20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리드머 필진과 운영진이 1차 후보작 선정부터 최종 순위 선정까지 총 세 번의 투표와 회의를 거쳐 선정한 ‘2012 국외 힙합 앨범 베스트 20’를 공개합니다. 알앤비 선정 때와 마찬가지로 1위와 2위 앨범이 박빙의 승부를 벌였다는 후문을 전하면서, 아무쪼록 한해를 정리하는 좋은 가이드가 되길 바랍니다.




    20. Curren$y - The Stoned Immaculate

    Released: 2012-06-05
    Label: Jet Life Recordings, Warner Bros

    지난 몇 년간 정규 앨범과 믹스테잎을 가리지 않는 왕성한 활동을 토대로 끊임없이 질주하고 있는 커런시의 이 앨범은 우선 메이저 레이블이 유통을 맡았다는 점과 대중에게도 친숙한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에서 전작들과 차이가 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렇듯 외적으로 풍성해진 환경 속에서 오히려 돋보이는 커런시의 노련함이다. 전반적으로 돈과 여자, 마약, 스웨거 등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소재가 공간을 채우고 있지만, 커런시의 재치있는 워드플레이와 여유가 한껏 묻어나는 플로우 덕에 단점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메인스트림계의 수많은 인사가 참여했음에도 일관성과 다양함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트렌드를 그대로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커런시가 추구하는 기존 스타일에 맞게 수정하는 방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본작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접근을 하면서도 구성 자체는 안정감을 확보하고 있으며, 상업적인 성공을 우선으로 한 여타의 메인스트림 앨범들과는 대조적이다. 그렇기에 본작은 자신의 색을 많은 부분 고수하면서 메인스트림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인디 뮤지션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앨범이다.

    추천곡 베스트 3: What It Look Like, Sunroof, Chandelier


    19. Strong Arm Steady & Statik Selektah - Stereo Type

    Released: 2012-08-14
    Label: Stones Throw

    혀를 내두를 정도의 다작으로 유명한 프로듀서 스태틱 셀렉타와 웨스트 코스트의 베테랑이 뭉친 트리오 스트롱 암 스테디가 합작한 이번 앨범의 완성도의 키를 쥔 건 스태틱이었다. 그는 이름값에 비해 비트의 완성도가 턱없이 낮은 탓에 줄곧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작에서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눈부신 역량을 과시하여 힙합팬들을 놀라게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샘플과 베이스, 리듬 파트가 꽉 맞물려 돌아가고 있으며, 무엇보다 전반적인 사운드의 질감이 매우 소울풀해졌다. 너무 깔끔하고 단조로워서 탈이었던 그의 이전 비트들을 떠올려보면, 본작의 프로덕션이 주는 감흥의 만족감은 배가 된다. 여기에 정치, 거리, 여자, 힙합 등등, 베테랑 랩퍼로서 능수능란하게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스트롱 암 스테디의 멋진 랩이 얹히니 탄탄하고 묵직한 힙합 앨범이 탄생했다. 본작을 한 마디로 압축한다면, ‘스태틱 셀렉타의 재발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만약, 이번 앨범이 그의 프로덕션이 변화하는 기점이라면, 앞으로 나올 ‘& Statik Selektah’ 시리즈를 대하는 힙합팬의 마음가짐은 확실히 이전과 달라질 것이다.

    추천곡 베스트 3: Classic, Married to the Game, Premium


    18. Big Boi - Vicious Lies and Dangerous Rumors

    Released: 2012-12-11
    Label: Purple Ribbon / Def Jam

    그의 대단했던 전작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 앨범은 빅 보이가 자신의 음악적 영역을 계속 확장하고 싶은 열정과 재능이 남아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특유의 하이브리드 힙합의 실험을 계속해나가면서 다양한 장르들을 엮어내고 그를 통해 묘한 분위기를 조성해내는 실력은 여전히 일품이다. 압도적인 킬러 트랙이 부족하고 때문에 단단한 중심이 없어 여러 음악적 실험이 앨범 단위에서 집중력 있게 펼쳐지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지만, 곳곳에서 여전히 빛나는 그의 창의력은 이러한 약점마저 가리기에 충분하다. 랩 퍼포먼스 역시 예전의 시니컬한 날카로움과 파워풀한 라이밍이 살아있다. 전반적인 사운드가 주는 미래적 공간감을 끌어안거나 그 분위기를 압축해 랩으로 뱉어내는 빅 보이의 장악력은 20년 가까운 커리어 동안 계속 발전 중이라는 점에서 칭찬받아 마땅하다. 단 한 번도 ‘무슨무슨 힙합’이 아닌 ‘아웃캐스트/빅보이의 힙합’을 만들어온 장인에게 박수를!

    추천곡 베스트 3: In The A (ft. T.I. & Ludacris), She Hates Me (ft. Kid Cudi), Lines (ft.A$AP Rocky & Phantotram)


    17. Ski Beatz – Twillight

    Released: 2012-02-14
    Label: DD172 LLC

    락카펠라(Roc-A-Fella)의 공동 창립자였던 대이먼 대쉬(Damon Dash)와 스키 비츠를 주축으로 조직된 문화 창작 공동체 DD17의 별칭 ’24 Hour Karate School’을 타이틀로 내세웠던 지난 두 장의 앨범에서는 앞으로 부각된 기타 리프와 날 것 같은 사운드가 특징이었다. 스키 비츠 특유의 멜로디컬함과 소울풀했던 사운드는 이전보다 상당 부분 거세됐었지만, 전반적인 비트의 구성이 워낙 탄탄했기에 그 아쉬움을 상쇄시켰는데, 이번 앨범에서는 바로 그 지점마저 살아난다. 그야말로 90년대의 스키 비츠와 2000년대의 스키 비츠가 만나 화합의 장을 열고 있다고 할만하다. 무서운 창작욕을 바탕으로 양질의 비트가 담긴 앨범을 계속 쏟아내고 있는 스키 비츠는 이번에도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았고, 스키의 2000년대 랩 페르소나라 해도 과언이 아닐 커런시를 비롯한 스탤리(Stalley), 맥 밀러(Mac Miller), 스모크 디자(Smoke DZA), 그리고 다수의 신인 랩퍼들 역시 비트와 잘 맞물리는 랩핑을 선보였다. 무엇보다 새롭게 구축된 그의 비트 위에 예전의 멜로디 감각이 더해졌다는 점에서 본작은 그동안 발표된 스키의 솔로 앨범 중 가장 깊은 여운과 인상을 남긴다.

    추천곡 베스트 3: Fly High, City Light, Time Goes


    16. The Alchemist - Russian Roulette

    Released: 2012-07-17
    Label: Decon, ALC, E1, Shady Records

    프로듀서 앨범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은 무엇일까. 평소 랩퍼들에게 제공하던 것과 비슷한 비트들을 그저 한데 모아놓고 게스트들을 불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풀어놓는 것으로 갈채를 받기는 어려울 것임은 분명하다. 이번에 알케미스트는 오로지 프로듀서의 주도로 탄생할 수 있는 멋진 앨범을 완성했다. 우선 앨범에서는 리듬 부보다는 사용한 샘플들로 연출되는 독특한 분위기와 인상이 음악의 핵심을 이루는데, 예측하기 어려운 비트 전개 아래에서 샘플들은 절묘하게 레이어드되고 거기에 적절한 랩의 배치가 더해지며, 귀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전체적인 무드와 샘플의 소스 및 내러티브에 이르기까지 확실하게 러시아 문화의 그것들을 가져다 만든 이 컨셉트 앨범은 다양하고 새로운 음악을 샘플의 소스로 활용하며 발전과 변용을 거듭해온 힙합 음악 특유의 흐름 안에서 오늘날 발견할 수 있는 아주 멋지고 생생한 감동을 선사한다.

    추천곡 베스트 3: Flight Confirmation (ft. Danny Brown & Schoolboy Q), Junkyard Fight Scene (ft. Durag Dynasty), Moscow Mornings - Sunrise


    15. Tech N9ne – Klusterfuk

    Released: 2012-03-13
    Label: Strange Music

    정신을 혼미하게 할 정도의 현란한 머신 건 랩핑, 복잡한 구조로 짠 라임과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독특한 세계관, 양질의 앨범을 계속 쏟아내는 왕성한 창작욕, 공연 현장을 초토화시키는 엄청난 관객 장악력 등등,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의 컬트 아이콘 테크 나인의 이번 EP는 그의 커리어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일명 ‘호러 랩(Horror Rap)’ 구사와 매우 추상적이고 기괴한 세계관을 랩에 투영해오던 것과 달리, 개인사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이야기를 좀 더 잘 전달하기 위해 은유적인 표현의 수위를 적절히 조절하고, 내레이션으로 벌스를 꾸미거나 주제에 대해 직접 설명을 해주기까지 한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전작들과 비교일 뿐, 그의 살인적인 플로우는 여전히 놀랍고, 예사롭지 않은 메타포 역시 감상을 만만치 않게 한다. 힙합 그룹 메이데이!(¡Mayday!)의 멤버에게 전곡의 프로듀싱을 일임함으로써 기존의 그로테스크하고 날카로운 신스가 부각되는 비트에서 벗어나 단출하고 라이브 성향이 가미된 힙합음악으로 변화를 준 점도 특징이다. 본작은 그가 어찌하여 현재 인디 힙합 씬에서 가장 많은 돈과 명예를 쓸어모으고 있으며, 그토록 수많은 매체와 힙합 팬으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얻는 랩퍼로 군림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반드시 감상해야 할 앨범 중 하나다.

    추천곡 베스트 3: Klusterfuk, Blur, Awkward


    14. Lupe Fiasco - Food & Liquor 2: The Great American Rap Album Pt. 1

    Released: 2012-9-25
    Label: 1st & 15th / Atlantic

    루페 피애스코의 지난 앨범 석장의 사운드를 섞은 뒤, 지난 시절보다 더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루페의 태도를 합친 결과물이다. 창의적인 날카로움이 부족한 프로덕션 때문에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완벽하게 집대성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Food & Liquor 2: The Great American Rap Album Pt. 1]의 진정한 가치는 루페의 고집이 그대로 살아있는 폭넓은 주제와 탁월한 스토리텔링, 이를 포장하는 화려한 라이밍에 있다. “Bitch Bad”처럼 그의 전매특허인 날 선 컨셔스 랩에서는 물론, “Battle Scars”와 같은 팝 랩에서도 대단한 비유와 표현을 통해 고삐 풀린 그의 재능을 마음껏 펼쳐 보이며 팬들을 열광케 한다. 그의 커리어를 지탱하는 지적인 힙합 아티스트이자 사회적 리릭시스트, 재기 넘치는 메인스트림 뮤지션으로 여겨지는 그의 다중적 면모가 그대로 살아있어 루페의 커리어를 효과적으로 압축한 동시에 좀 더 격앙된 메시지와 파워풀한 랩 퍼포먼스 덕분에 이전의 앨범들과 차별화된 수작이다.

    추천곡 베스트 3: Bitch Bad, Lamborghini Angels, Battle Scars (ft. Guy Sebastian)


    13. Death Grips - The Money Store

    Released: 2012-04-21
    Label: Epic

    비범한 재능을 지녔지만, 결코 메이저 레이블의 다스림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새크라멘토에서 뭉친 MC 라이드(MC Ride)와 프로듀서 잭 힐(Zach Hill)이 주축이 된 밴드 데스 그립스는 올해 2월 에픽 레코드와 계약했지만, 결국, 1년도 버티지 못한 채 한 장의 앨범으로 메이저 리그를 청산했다. 그리고 바로 이 한 장의 앨범에는 그들이 얼마나 상대하기 어려운가와 동시에 당연히 그럴 자격이 있음을 알리는 실험적인 사운드와 거친 랩핑 스타일, 그리고 격정적인 순간들이 응축되어 담겨있다. 커버아트에서부터 도무지 심상치 않은 데스 그립스는 올해 나온 가장 참신한 음악의 주인공이다. 장르의 경계가 무참하게 무너지고, 불안정하고 변칙적인 기운이 가득한 그들의 순도 높은 익스퍼리멘틀 힙합 사운드는 향후 몇 년간 음악팬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잡아 끌기에 충분할 것이다. 참고로 이후, 준비 중이던 앨범 [No Love Deep Web]은 무료로 공개했는데, 비아그라를 삼킨 듯한 사상 최고의 발칙한 커버아트 덕분에 쉽게 추천하기 어렵다.

    추천곡 베스트 3: Get Got, Hustle Bones, Punk Weight


    12. Aesop Rock - Skelethon

    Released: 2012-07-10
    Label: Rhymesayers Entertainment

    언어유희에 능통함과 동시에 훌륭한 프로덕션 능력까지 갖춘 라임 세이어즈의 간판 애이솝 록은 언제나 앨범을 통해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왔다. 전통적인 힙합 스타일의 원형을 어느 정도 고려하면서 거침없는 실험을 감행하는 그의 비트는 간혹 비슷한 범주에서 비교하곤 하는 엘-피의 음악과 함께 즐거운 연구 대상이 되었으며, 웬만해서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그의 가사 역시 힙합 백팩커들의 지적 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해왔다. 이번 여섯 번째 정규작에서도 이러한 애이솝 록의 관록은 고스란히 전해진다. 특히, 일렉 기타 리프와 브라스 샘플 등, 비교적 기승전결을 갖춘 소스들을 비롯하여 디지털 샘플러를 통해 가공된 온갖 다채로운 소리들이 해체와 합체를 거듭하며 어우러지는 사운드적 유희에는 도저히 감탄을 자아내지 않을 수가 없다. 더불어 라임과 메타포를 몇 겹씩 쌓아 올려서 가사에 대한 청자의 쉬운 접근은 불허하면서도, 빈틈을 찾을 수 없이 타이트하게 뱉어대는 랩을 통해 청자를 끌어들이는 마력은 얄미울 정도로 놀랍다. 기존 힙합의 틀 안에만 있기는 거부하지만, 프로덕션, 가사, 랩핑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을 과시하는 [Skelethon]은 오늘날 (작법적으로) 힙합의 최첨단에 있으면서도, 힙합 고유의 미덕을 잃지 않은 참으로 오묘한 작품이다.

    추천곡 베스트 3: ZZZ Top (ft. Allyson Baker), Zero Dark Thirty (ft. Rob Sonic), Racing Stripes (feat. Kimya Dawson)


    11. Murs X Fashawn - This Generation

    Released: 2012-09-25
    Lable: Duck Down Music

    데뷔 후 꾸준하게 활동하면서 동시에 여러 파트너와 콜라보 앨범으로 신선함(?)을 유지하는 베테랑 언더그라운드 랩퍼 머스가 이번에는 딱 10살 차이 나는 실력파 언더그라운드 신예 패숀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다. LA라는 지역과 힙합으로 이어진 둘은 앨범의 타이틀처럼 마치 한 세대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손발이 척척 맞는다. 특히, 비트닉 & 케이-살람(Beatnick & K-Salaam)이 책임진 펑키한 프로덕션 위에서 머스와 패숀이 다양한 주제로 주거니 받거니 쉴새 없이 펼쳐내는 수준급의 랩은 이 앨범의 백미다. 올해 나온 어떤 랩/힙합 앨범보다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작품이다.

    추천곡 베스트 3: 64’ Impala, Reina De Barrio (Ghetto Queen) (ft. Adrian), Slash Gordon


    10. Ab-Soul - Control System

    Released: 2012-05-11
    Label: Top Dawg Entertainment

    사실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괴물 같은 앨범이 없었다면, 올해 블랙 히피(Black Hippy)의 성취를 이어가며 대표할 이는 앱소울(Ab-Soul)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 앨범을 통해 지금도 충분히 인상적인 평가를 이끌어내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는 여태껏 블랙 히피 멤버들의 발매작들에서 이어지던 몇 가지 장점을 –성찰적이면서도 재치있는 가사의 힘과 유려하게 펼쳐지는 랩핑- 바탕으로 매우 고집스럽고 집중력 있게 앨범을 완성해냈다. 태연하게 대마초 이야기를 하고, 차분히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다가도 때로는 정치와 사회에 관한 독특한 시선을 표현하며 날카로운 선동가로 변신하기도 하는 그의 랩이 일관되게 비장함이나 음울함을 표현하고 있는 거친 비트와 함께 만들어내는 조화가 그의 개성과 취향을 설득력 있게 포장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추천곡 베스트 3: Terrorist Threats (ft. Danny Brown & Jhene Aiko), Mixed Emotions, Lust Demons (ft. Jay Rock & BJ The Chicago Kid)


    9. Rick Ross - God Forgives, I Don't

    Released: 2012-07-31
    Lable: The Island Def Jam Music Group

    릭 로스를 싫어하는 사람은 있어도 이제 그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것이 점점 더 견고해지는 게 앨범 덕분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로덕션, 랩 실력, 고유한 세계관 모두 그 완성도가 매번 꾸준히 발전해왔으며, [God forgives, I don’t]는 그 흐름의 끝에 서 있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적절한 구간에 긴장감을 조성하는 특유의 호흡, 섬세한 라이밍 설계와 깊이를 더 한 이야기로 완성형에 이른 그의 랩이 흠잡기 어려운 레이드-백(Laid-Back) 스타일의 비트 위에 올라갔을 때 그려지는 마피아 판타지는 손에 잡힐 듯 뚜렷해진다. 토니 몬타나(Tony Montana)처럼 거리에서 시작했지만, 돈 콜리오네(Don Corleone)의 기품과 낭만을 탐닉했던 릭키는 존 가티에게서 그 간극을 메우고 난폭한 열정과 독특한 품위를 지닌 새로운 캐릭터를 발견했을 것이다. 비로소 릭 로스의 갱스터 랩 판타지는 완성되었다. 당연히 [God Forgives, I Don’t]는 릭 로스의 최고작이다. 현재까지는.

    추천곡 베스트 3: 3 Kings (ft. Dr. Dre & Jay-Z), Maybach Music IV (ft. Ne-Yo), Ten Jesus Pieces (ft. St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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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EL-P - Cancer 4 Cure

    Released: 2012-05-22
    Lable: Fat Possum Records

    프로듀서 겸 랩퍼 엘-피는 5년 만에 발표한 이 솔로 앨범에서도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여준다. 그는 킬러 마이크(Killer Mike)의 앨범에 힘을 쏟는 와중에도 본인의 앨범은 기존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틈새를 찾기 힘들 정도의 촘촘한 비트도 여전하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랩 스타일도 변하지 않았다. 앨범의 중반부는 프로듀서 엘-피의 실력 과시용 구간이다. 그가 "Oh Hail No"와 "Tougher Colder Killer"로 이어지는 부분에 게스트들을 의도적으로 집중 배치하고 빠른 비트를 전개시키며 박진감을 최고로 끌어올리는 순간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5년 전, 그리고 10년 전에 보여줬던 것처럼 이번에도 독특한 그루브를 양산하며 우리를 앱스트랙 힙합(Abstract Hip Hop)의 세계로 인도하는 그에게서 허점을 찾기란 여전히 어렵다.

    추천곡 베스트 3: The Full Retard, Oh Hail No, Tougher Colder Killer


    7. Nas - Life Is Good

    Released: 2012-11-19
    Label: Def Jam

    메인스트림에서 거의 유일한 하드코어 힙합의 수호자라 할 수 있는 나스의 기념비적 10번째 정규 앨범이다. 과거 골든 에이지 힙합의 향수를 재현하는 빛나는 랩과 타이트한 비트는 그의 커리어와 이 앨범의 성과를 자축하며 청자의 귀에 축복을 내린다. 특히, 나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개인적인 앨범 속 가사들은 청자를 그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끌어들이며 감정적 동화를 유발한다. 고통의 상황 속에서 과거를 반추할 계기를 찾아내고, 그 속에서 삶의 진정한 가르침을 얻는 과정을 그린 이 앨범의 여정을 끝까지 함께 하다 보면, 더는 [Illmatic]에 대한 투정을 부리기 어렵다. 물론, 중간 중간 20여 년 전의 내스티 나스(nasty Nas)로 돌아가 가짜들을 응징하고 거리를 지배하는 위대한 라임 마스터의 모습을 재확인할 때마다 느끼는 전율과 자극도 여전하다. 예전에 누군가의 댓글을 봤던 기억이 난다. “나스 한물갔어요.” 응? 진짜?

    추천곡 베스트 3: Loco-Motive (ft. Large Professor), Cherry Wine (ft. Amy Winehouse), The Don


    6. Roc Marciano – Reloaded

    Released: 2012-11-13
    Lable: Decon

    2010년에 발표했던 첫 솔로작 [Marcberg]에서 상당한 수준의 워드 플레이와 특유의 거리형 힙합 무드를 선보이며, 뒤늦게 언더그라운드 힙합팬의 가시권에 진입한 그는 이번 두 번째 앨범에서 여전히 수준 높은 라이밍과 한층 무르익은 프로덕션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전작보다 더욱 어두워진 [Reloaded]는 흡사 한 편의 잘 만들어진 필름 느와르, 혹은 블랙스플로이테이션(Blaxploitation) 걸작과도 같다. 마르시아노가 앨범 대부분에서 할애하는 거리와 갱스터리즘(Gangsterism)에 관한 주제들은 표면적으로 여느 하드코어 랩과 별다른 지점이 없지만, 그 주제를 이끌어가는 힘을 놓고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는 치밀하게 구조를 짠 라임을 바탕으로 잔뜩 거친 분위기를 형성하는 가운데, 순간순간 번뜩이는 펀치라인의 유머를 가미하며 자신만의 연출 스타일을 과시한다. 랩뿐만 아니라 마르시아노의 프로덕션도 굉장하다. 90년대 이스트코스트 힙합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붐 뱁(Boom-Bap) 식의 드럼을 극도로 배제하면서 리듬 파트를 부각시키기보다는 샘플과 베이스 라인만으로 비트를 주도하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유난히 탁월한 앨범이 많이 쏟아져 나왔던 올해 힙합 풍년 속에서 본작은 한동안 잊혔던 뉴욕 거리 힙합의 결정판으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었다.

    추천곡 베스트 3: Tek to a Mack, The Man, Emeralds


    5. Apollo Brown & O.C. – Trophies

    Released: 2012-05-01
    Lable: Mello Music Group

    이미 한 시대를 풍미한 힙합 집단 D.I.T.C.의 멤버이자 탁월한 랩 실력으로 유명한 진짜배기 베테랑과 오늘날 활약 중인 몇몇 샘플링 작법의 달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존재의 결합으로 탄생한 본작은 샘플링과 루핑, 그리고 랩핑의 전통적인 미학이 절정에 이른 앨범이다. 90년대 붐 뱁 스타일에서 영향받은 둔탁한 드럼, 그 위로 얹힌 (차핑과 순 창작의 병행을 통해 나온) 멜로디컬한 루핑, 그리고 완성의 매듭을 짓는 적당히 로-파이(Lo-Fi)하고 소울풀한 질감의 사운드는 힙합음악의 가장 전형적이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뿌려대고, O.C.는 후배가 정성껏 깔아놓은 비트의 주단 위에서 단 한 명의 랩 피처링과 보컬 후렴 없이 16트랙의 마디를 탁월한 플로우로 빼곡히 채우며, 이 게임의 선배로서 위엄을 과시한다. 자, 주의하자. 단순히 메인스트림의 흐름에 반하거나 샘플링 작법에 근거한 음악이 담겼다고 해서 후한 평가를 내리는 것을 말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본작처럼 그 정수를 제대로 담아낸 앨범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칠 수도 있을 테니까. 취향은 타겠지만, 완성도만큼은 빈틈을 찾기 어려운 비트, 더는 따로 증명할 필요가 없는 베테랑의 차지고 꽉 조이는 랩, 그 안에 살아서 꿈틀대는 다양한 이야기들...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그냥 엄지 번쩍이다.

    추천곡 베스트 3: Prove Me Wrong, The First 48, Just Walk


    4. Chino XL – Ricanstruction

    Released: 2012-09-25
    Lable: Messiah Music

    엄청 오랜만에 정규 앨범으로 돌아온 치노 엑셀이 선택한 것은 정공법이다. 자신의 강점이 현란한 랩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를 십 분 활용하며 두 장의 CD를 빽빽하게 채웠다. 가끔은 하드코어 랩을 좋아하는 이들조차 지치게 만들 정도의 남성미 넘치고 빈틈없이 강인한 랩으로 청자를 압도한다. 코러스 없이 90마디를 달리는 "90 Bars of Intervention", 유출됐을 때부터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았던 "Buried in Vocabulary", 리얼 드럼과 빠른 랩의 조화를 통해 타이트한 분위기를 유도한 "Have 2", 테크 나인(Tech N9ne)과 불꽃 튀는 라임 대결이 압권인 "Hell Song" 등 랩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두 말 할 나위 없이 2012년 최고의 '랩 스킬 집대성 앨범'이며, 하드코어 랩 애호가들은 향후 몇 년 동안 본 작에 필적하는 랩 앨범을 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추천곡 베스트 3: Hell Song, Buried in Vocabulary, N.I.C.E.


    3. Killer Mike – R.A.P. Music

    Released: 2012-05-15
    Lable: Williams Street, Grand Hustle, Adult Swim

    ‘킬러 마이크+ 엘-피’… 얼핏 보기에는 참으로 뜬금없는 조합 같지만, 이들은 예상치 못한 대박을 터뜨렸다. 킬러 마이크는 탄탄한 랩 스킬을 바탕으로 아무나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정치적 화두를 끊임없이 표면화하고, 엘-피는 자신의 솔로 앨범에서 보여주던 실험적이고 폭발하는 사운드의 향연을 잠시 접어둔 채, '80 ~ '90년대 힙합 사운드에 가까운 모습으로 주인공을 도왔다. 특히, 서던 랩 올스타 트랙 "Big Beast"는 2012년 발매된 모든 힙합 앨범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첫 곡으로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레이건 전 대통령에 대한 견해를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Reagan"처럼 정치적인 메시지도 여전하며, "R.A.P. Music"을 통해 아프로-아메리칸이 만든 모든 음악과 자신이 현재 실천하고 있는 랩 음악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정치적인 견해를 거침없고 진중하게 담아내는 이 시대 몇 남지 않은 랩 스타 킬러 마이크의 예상치 못한 (프로덕션적) 실험은 대성공이었고, 팬들의 신뢰는 더욱 두터워졌다.

    추천곡 베스트 3: Big Beast, Southern Fried, R.A.P. Music


    2. Big K.R.I.T. - Live From The Underground

    Released: 2012-06-05
    Lable: The Island Def Jam Music Group

    이 앨범이 높게 평가받고, 나아가 힙합 장르 애호가들에게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사실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good kid, m.A.A.d city]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태동한 특정 시기의 장르 음악이 담고 있는 내외부의 성질을 완벽하게 이해한 후, 그것을 전혀 해하지 않으면서, 고유의 스타일을 첨가해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던지 끝내주는 힙합 앨범을 만들어 낸 것이다. 무엇보다 그가 한때 이스트 코스트/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탁월한 완성도와 강렬한 스타일, 그리고 그 두 세력 간의 대결 구도로 인해 그 가치를 격하 당했던 90년대 초•중반의 서던 힙합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건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리고 당시의 서던 힙합이 지닌 미학을 제대로 구현해 낸 완벽에 가까운 견고한 프로덕션과 세련미를 더한 랩은 [Live from the underground]를 앞으로 수십 년은 족히 기억될 걸작으로 만들었다.

    추천곡 베스트 3: Live from the underground, I got this, What U mean (ft. Ludacris)


    1. Kendrick Lamar - Good Kid m.A.A.d City

    Released: 2012-11-19
    Label: Top Dawg, Aftermath, Interscope

    켄드릭 라마의 이 메이저 데뷔작은 올해 발매된 그 어떤 앨범보다 강렬한 개성과 독특한 카리스마를 가진 앨범이며, 그의 새 앨범이 발매되기 전까지는 당신의 아이팟에서 지워지지 않을 만큼 중독적이다. 특유의 공간감과 톤을 간직한 채 전체적으로 기묘한 분위기를 생성하는 프로덕션은 둘째치고, 이 앨범을 준비한 켄드릭의 컨셉트와 그 컨셉트를 지탱하는 독특한 구조, 디테일을 묘사하는 켄드릭의 라임과 가사들이 거대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며, 젊은 컴튼 MC의 메인스트림 데뷔를 위대함의 영역으로 이끌었다. 많은 동료 뮤지션이 자신이 살아왔던 공간을 배경으로 현실에 적당한 판타지를 섞으면서 드라마를 만들어냈다면, 켄드릭은 철저히 현실 세계와 그 영향력에 초점을 맞춘다. 실존하는 세계의 직접적인 위험을 차치하고서라도, 그 공간이 만들어내는 영향력에서 비롯된 내적인 갈등과 위협, 외적인 환경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상황의 인과 관계는 청자들로 하여금 더 큰 감정적 공감을 이끌어내게 했다. 듣는 내내 놀라움과 만족으로 가득한, 2012년은 물론, 21세기에 발매된 최고의 힙합 앨범 가운데 한 장이다.

    추천곡 베스트 3: Compton, Swimming Pools (Drank), m.A.A.d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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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힙합전도사 (2013-01-01 18:57:28, 112.152.129.**)
      2. 상위권 앨범들은 대체로공감이가네요 저는 나스를 3등으로 올리고싶고, 또 joey bada$$도 순위권에 넣고싶네요 암튼 역시올해최고는 켄드릭라마!
      1. NamZee (2012-12-31 00:36:55, 112.184.52.***)
      2. 나스 이번 앨범을 설명하는 곡은
        No Introduction 이거 하나로 가능하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이번년도 최고의 곡이었는데
      1. Messlit (2012-12-30 00:32:42, 110.70.57.***)
      2. 전 Dopesick이 참 좋았는데
      1. D.toun (2012-12-29 22:32:20, 112.149.60.**)
      2. 저는 lupe 앨범에서 15번 트랙 Unforgivable Youth를 제일 많이 듣고, 인상 깊었던 트랙 중 하나였는데 후반부가 아쉽다는 의견이 많더라고요.
        개인적으로(이거 꼭 붙이는 거에요?ㅋㅋ) lupe앨범을 제일 좋게들었습니다.
      1. 박상현 (2012-12-29 14:39:59, 1.247.186.***)
      2. 개인적으로 Nas의 앨범은 별점 4.5점을 주고 순위를 더 올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을 정도로 잘 들었습니다. 그나저나 올해 발매된 힙합앨범들은 정말 ㅎㄷㄷ하군요;;; 여기에 A$AP Rocky가 포함되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궁금합니다. (물론 아직 앨범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싱글컷된 곡들부터 1Train이라는 곡도 사실 어느 앨범에서나 킬링트랙이 될만한 퀄리티라서 기대가 큽니다) 그런데 올해는 참 부지런히도 들었군요!! 안들어본 앨범이 몇장 안되네요;;;작년에 비해 메인스트림쪽에서 많이 터져준것도 주목할만한점
      1. 윤정준 (2012-12-29 10:31:27, 61.102.77.***)
      2. 개인적으로 Lupe Fiasco 앨범은 아주 약간 아쉽더라구요. 후반부가.

        Rick Ross의 케릭터 자체는 비호감일지 몰라도 음악은 감탄스러워요.
        특히나 저스티스리그와의 작품들은 정말 치명적이에요.

        Nas, Big K.R.I.T. 의 앨범들도 너무나도 좋았고,

        역시나 작년의 Section.80 에 이어 good kid, m.A.A.d city 까지
        Kendrick Lamar는 이렇게 완벽한 앨범을 연속으로...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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