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음악을 들을 때 단체곡을 듣는 맛이 또 일품이다. 한 곡 안에서 어우러지는 여러 랩퍼의 랩 심포니는 많은 힙합팬의 지지를 얻어왔다. 이번에 리드머에서는 한국 힙합 역사 속에서 꼭 한 번 들어봐야 할 단체곡 베스트 일레븐을 뽑아보았다. 아슬아슬하게 11곡에 들지 못한 몇몇 의미 있는 트랙들도 눈에 밟히지만, 어쨌든 이 리스트는 리드머 필진/운영진의 투표를 통해 곡의 완성도, 곡이 지니는 의미 등을 바탕으로 선정했음을 밝힌다.

*순서는 발매연도순 (진행: 리드머, 리뷰: 남성훈, 이경화)

 

1. 흑열가(黑熱歌) from [완전(完全) HipHop/2000]

D.O(이현도) feat. 레바스, DJ 렉스, 조PD, DJ 샤인, 타이거 JK, 사이드-비, t 윤미래, 진원 aka 마스타 우, 갱거스, 세븐

 

다른 건 몰라도 곡 이름만큼은 이 리스트 중 최고다. ‘흑’, ‘열’, ‘가’ 곡 제목에 이 중 한 글자만 첨가하면 멋을 내는 세 글자를 모아놨으니, 그야말로 멋이 터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장미를 잃지 않는 곡의 무드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듣기엔 다소 민망한 가사가 존재하지만, 시기를 고려하여 넘어갈 수도 있는 사항이다. 조PD의 가사는 후에 포워드(4WD)에 의해 패러디된 것이 자꾸 떠올라 집중하기가 힘들기도 하다. 당시 언더그라운드 클럽 MP 소속의 랩퍼들이 참여하면서 힙합 마니아들 사이에선 큰 화제를 일으켰다.

 

2. 초 from [MP Hip-Hop Project 2000 超/2000]

MP 올스타즈 (페니, 리오, 대팔, 테이크, 주석, DJ 렉스)

 

2000년 클럽 마스터플랜에서 발매한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된 단체 곡으로 DJ 렉스(DJ Wreckx)의 정석적인 스크래칭과 서정성이 가득 담긴 편곡의 조화가 돋보였던 곡이다. 랩이 지금 듣기엔 다소 민망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한국 힙합 초기적 랩퍼들이 어떻게 박자를 타고 라임을 맞추어 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겠다. 발표됐을 당시 힙합 팬들 사이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곡이기도 하다. 한국 힙합의 역사를 살피려고 하는 이나 당시의 추억에 젖으며 미소 짓고 싶은 나이 든 힙합 팬에겐 여전히 유효한 감흥을 줄 듯하다.

 

3. Movement III from [CB Mass-Matics/2001]

CB매스 feat. 드렁큰 타이거, 미키 아이즈, 셔니슬로우, t 윤미래

 

‘무브먼트’는 한국 힙합의 믿고 듣는 단체 곡 시리즈다. 드렁큰 타이거 2집에 최초 버전이 실린 후 CB매스 1, 2집과 비지의 앨범까지 총 4편이 나왔다. 각 랩퍼들을 경주마에 비유한 인세인 디지의 인트로 후 펼쳐지는 개코의 ‘이 정도면 반칙’ 랩이 청자를 완전히 압도한 후 시작한다. 중간에 팬이 이벤트에 당첨돼 참여한 듯한 커빈의 랩만 빼면 언제나 즐겁게 들을 수 있는 단체 곡이다.

 

4. 아에이오우어?! from [The Bangerz/2004]

소울 컴퍼니(제리케이, 화나, 플래닛 블랙, 키비, 더 콰이엇, 칼날, 메익센스, MC 메타)

 

소울 컴퍼니의 컴필레이션 앨범 [The Bangerz]에 수록되었던 곡이다. 당시 멤버들의 멘토 격이었던 MC 메타가 호스트 역할로 각 멤버들을 소개하는 듯한 구성이 흥미롭다. 마치 가리온 콘서트가 끝난 후, 오픈 마이크 시간에 올라온 신인들 같은 느낌이다. 아직 목소리에 여유보다는 힘이 더 들어가 있지만, 정해진 모음을 이용해 라임을 이어가는 실험적인 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통해 소울 컴퍼니가 괜히 한국 힙합의 대세가 된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5. Hiphop for Respect from [More Than Music/2006]

I.F.(인피닛 플로우) feat. MC 메타, 버벌진트, 각나그네, TBNY, 바스코, 사이먼 도미닉, 나찰, 도끼, 셔니슬로우, MC 성천

 

브라스 중심의 루핑이 돋보이는 트랙으로 왠지 모르게 벅찬 국내 힙합의 낭만이 몰아치는 트랙이다. 비록, 후에 비지니즈가 넋업샨을 참으로 의미도 재미도 없게 디스하는 바람에, 왠지 모르게 추천하긴 힘든 곡이 되었지만, 여전히 존경/존중(Respect)에 관한 곡 중 가장 큰 사랑을 받는 트랙이다. 일부 리스너들은 곡이 발표된 후에 항상 그랬듯 MC성천의 가사를 해석하는데 온 힘을 쏟기도….

 

6. Deal With Us from [Never Sold Out]/2007]
마일드 비츠 feat. 데드피, 딥플로우, 넥스트플랜, 다이나마이트, 이그니토, 마르코, 어드스피치

 

빅딜 스쿼드의 전신이자 국내 하드코어 힙합의 역사를 장식했던 빅딜레코드의 단체 곡이다. 참여 랩퍼들이 지금은 뭉쳐 있지 않지만, 곡만큼은 마일드 비츠의 쫀득한 붐뱁 비트 아래 빅딜 특유의 태도가 똘똘 뭉쳐 있다. 발표 후 6년이 지난 지금 몇 라인이 보여주는 ‘X까’ 정신은 오히려 더 유효하다. 물론, 이 곡도 그 대상을 가사에서 명확히 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아무도 언더그라운드 출신 아티스트가 ‘힙합’ 가지고 장난치는 멋 없는 현상에 이런 곡을 날리지 않는 것에 더욱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트랙이다. 응원보단 싸움이 더 필요한 날이 올 줄이야.

 

7. 동전한닢(Remix) 무료공개/2007

다이나믹 듀오 feat. 셔니슬로우, TBNY, 쿤타, 타블로, 미쓰라, 가리온, 더블 K, 비지, 버벌진트, 각나그네, 리오 케이코아, 도끼, 팔로알토, 비즈니즈, 넋업샨, MYK, 더 콰이엇, 키비, 화나, 피-타입, 딥플로우, 어드스피치, 이그니토, 사이먼 도미닉, 이센스, 매니악, 조 브라운

 

다이나믹 듀오 3집에 원곡이 실린 후, 무려 31명의 랩퍼가 참여하여 무료로 배포된 리믹스 트랙이다. 비록, 절반 이상의 랩퍼의 입에선 우리말과 영어가 끝없이 섞여 나오지만, 수많은 랩퍼가 참여한 만큼 마치 한국 랩퍼 카탈로그 같은 느낌을 준다. 비지니즈의 ‘하얀거↓탑↑’, 피타입의 ‘븅신’랩, 조브라운의 ‘다듀 3집 참여한 것도 안 한 것도 아냐’, 더 콰이엇의 ‘초강력 라임’ 등등, 많은 인상적인 구절이 등장했으며, 랩의 품질 편차는 크지만, 대단한 물량공세로 한국 힙합의 중요 기록물 중 한 곡으로 자리매김했다.

 

8. Punch Line 놀이 from [Upgrade]/2008]

스윙스 feat. 버벌진트, 더 콰이엇, 웜맨, 딥플로우

 

‘펀치라인킹’이라는 자기 수식어가 이제 자연스러운 스윙스의 등장을 본격적으로 알린 곡이다. 곡의 제목처럼 스윙스는 ‘넌 Tiger J와 다르게 미래가 없지.’ 같은 재치 넘치는 멋진 랩을 선사했다. 당시만 해도 감성 넘치는 훈남 팝 가수가 아닌 힙합 팬 사이에서 유명했던 ‘IP 조작사건’을 소재로 ‘힙합 지진아’ 박멸에 힘쓰고 있는 버벌진트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으며, 더 콰이엇의 랩에서는 최근 밀고 있는 ‘랩 슈퍼스타’의 힌트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비스메이저를 이끄는 딥플로우는 이 곡의 피해자라 부를만하다. 다른 참여자들에 비해 떨어지는 랩을 당황스러울 정도로 오랫동안 하는 웜맨 때문에 많은 이들이 직후 매력적인 하드코어 랩을 뽐내는 딥플로우를 만나지 못하고 곡을 넘겨버렸기 때문이다.

 

9. 8 by 8, pt.2 from [魂: Map The Soul/2009]

에픽하이 feat. MYK, 마이노스, 팔로알토, 더 콰이엇, 버벌진트, 키비, 이센스, 사이먼 도미닉

 

분명 에픽하이와 8명의 피처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쓰여 있는 곡이지만, 벌스는 모두 피처링 진의 몫인 리믹스 트랙이다. 대신 원곡의 랩 일부가 곡의 후렴구를 대체한다. 한창 ‘랩 괴물’로 이름을 알려가던 이센스와 사이먼도미닉의 패기 넘치는 랩을 확인할 수 있지만, 이 곡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키비의 깨알 같은 ‘3집 발매 임박’ 홍보 랩이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원곡이 더 좋을 수 있겠지만… 아니, 사실 파트2를 뽑은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다. 두 곡을 이어서 들을 때 더 맛깔 난다.

 

10. Airplane Music from [Quiet Storm：A Night Record/2010]
더 콰이엇 feat. 배이식, 리미, 빈지노, 화나, 산이

 

지금은 그 부문이 사라졌지만, 온라인 시상식과 이어보려다가 트로피엔 ‘제6회’라고 찍혀 있는 ‘제1회 리드머어워드 - 올해의 콜라보’ 상을 받았던 단체 곡이다. 더 콰이엇의 노련한 프로듀싱과 지휘 아래 당시 한랩하는 사람들이 모여 펼친 황홀함을 느낄 수 있다. 경력이 꽤 있던 화나를 제외하고는 비슷한 수준의 주목을 받고 있던 신인 중 오직 빈지노만 이 곡의 주인인 더 콰이엇과 같은 레이블에서 현재 그 기대에 걸맞은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흥미로운 가운데... 지금 내 눈엔 습기인가?

 

11. Man In Black (Remix) from [Man In Black/2011]

허클베리 피 feat. 제리케이, 바스코, 마이노스, 팔로알토

 

만장일치의 호평은 얻지 못했지만, 허클베리 피의 첫 솔로 앨범의 타이틀 곡이었던 “Man In Black”은 오리지널 버전보다 리믹스가 훨씬 좋다. 언더그라운드 랩퍼를 ‘맨 인 블랙’으로 비유한 컨셉트도 이런 단체 곡에 훨씬 잘 어울린다. 적당한 신선함과 노련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참여 진이 가사를 통해 깨알 같이 자신들의 경력을 알리는 것을 전부 잡아낸다면, 당신은 이들을 팔로우하고 있다는데 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