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토픽] ?uestionlove: '트랩 뮤직(Trap Music)'의 세계
- rhythmer | 2013-05-20 | 27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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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일권
들어가기 전에: 현재 트랩 뮤직은 힙합뿐만 아니라 일렉트로니카 음악과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일명 ‘EDM Trap’이라고도 하죠. 본 글에서는 힙합 음악으로서 트랩 뮤직만을 다룹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씬의 주도권을 쥐기 시작한 서던 힙합(Southern Hip Hop)은 장르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알앤비와 팝 음악 전반에 깊숙이 파고들기 시작했고, 근래에는 작법적으로나 스타일적으로 어느 때보다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던 힙합의 울타리 안에서 태어난 ‘트랩 뮤직(Trap Music)’은 작금의 힙합 씬을 이야기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장르이자 키워드죠.남부의 힙합 뮤지션들을 중심으로 탄생한 트랩 뮤직은 ‘잡다한 사운드 소스를 최대한 배제하고 단출하고 잘게 쪼갠 808드럼 + 때로는 과용이다 싶을 정도의 부각이 느껴지기도 하는 진중한 연출의 신시사이저’를 배합하여 ‘클럽 뱅어와 공격적이고 하드한 비트의 중간 즈음에 위치하는’ 음악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클럽에서 신나게 리듬을 타며 즐기기에도 최적인 음악임과 동시에 거리 어디엔가 앉아서 어깨에 힘 팍 주고 들썩이며 듣기에도 안성맞춤인 음악이라는 얘기에요. 곧잘 비교되던 ‘크렁크 뮤직(Crunk Music)’과 차별화되는 게 이 지점이기도 합니다. 크렁크 뮤직은 보다 클럽용에 최적화되어 있거든요. 더불어 여기에 일렉트로니카 댄스 음악, 특히, 덥스텦 요소가 종종 가미되기도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하이브리드 음악 열풍의 선두에 있는 장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또 한 가지 특징적인 건 가사적 측면이에요. 시간이 흐르면서 폭이 약간 넓어지긴 했지만, 트랩 뮤직에서 주로 다뤄지는 소재는 마약과 총기 관련이었습니다. ‘Trap’이라는 단어에 담긴 ‘덫’, ‘올가미’ 등의 뜻처럼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마약은 여러모로 트랩 뮤직 안에서 상징적인 소재로 쓰이곤 했던 것이죠(프로덕션적으로 그만큼 중독적인 음악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고요.).
‘트랩 뮤직’의 전성기를 이끈 랩퍼들
트랩 뮤직이 처음 이목을 끌고 인기를 얻은 건 2003년 여름부터 2005년 정도까지였습니다. ‘서던 힙합의 제왕’이라 불리는 티아이(T.I.)는 두 번째 정규작 [Trap Muzik]에서 트랩 뮤직이란 단어를 앨범 타이틀로 내세운 것을 비롯하여 특유의 밀고 당기는 비트와 마약류와 관련 있는 소재를 다룬 랩핑을 선보이며, 인기몰이의 선봉에 섰죠. 이어서 독보적이라고 할만큼 걸걸한 음색의 랩핑을 자랑하는 랩퍼 영 지지(Young Jeezy)의 솔로 데뷔작 [Let's Get It: Thug Motivation 101]과 힙합계 최고의 막가파 악당 캐릭터로 유명세를 얻은 구찌 메인(Gucci Mane)이 독립적으로 낸 첫 앨범 [Trap House] 등이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키면서 음악계가 트랩 뮤직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상 랩퍼들과 함께 쇼티 레드(Shawty Redd), 드러머 보이(Drumma Boy), 디제이 툼(DJ Toomp) 등은 이 장르의 인기를 이끈 초기적 프로듀서들로 손꼽히곤 하고요.
그런데 이처럼 트랩 뮤직을 담은 앨범과 싱글이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당시의 상황을 전성기라고 보기엔 파급력 면에서 다소 부족했어요. 실제 트랩 뮤직은 잠깐의 인기 끝에 한동안 ‘더티 사우스 클럽튠’이라는 큰 울타리 안으로 편입되어 자취를 감추는가 싶었는데, 다시 ‘트랩’이라는 키워드가 밖으로 꺼내어져 펄떡대기 시작한 게 바로 2010년에 이르러서입니다. 무엇보다 이때부터 휘몰아친 트랩 뮤직의 거센 바람이 힙합 씬을 넘어 팝계에 끼친 영향은 이전과 차원이 다른 것이었어요. 미니멀한 구성과 자극적인 사운드 소스들을 극대화시킨 트랩 뮤직의 비트는 이제 막 힙합에 빠져들기 시작한 십 대들과 포화 상태에 이른 기존 클럽튠에 점점 시큰둥해지던 클러버들을 빠르게 사로잡았습니다. 당시 서던 힙합 씬에서 쏟아지던 클럽튠과 궤를 같이 하면서도 앞서 언급한 트랩 뮤직만의 몇몇 특징들이 그들에게 색다른 감흥을 안겼던 덕이죠. 또한, 힙합 속 그 어떤 서브 장르 음악들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단순하면서도 중독적인 후렴구들 역시 많은 이가 트랩 뮤직에 열광하게 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해당 뮤지션들은 뮤직비디오와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믹스테잎을 계속 공개하면서 주기적으로 청자들의 귀를 공략했고, 어느 샌가 트랩 뮤직은 클럽은 물론, 각종 힙합 라디오 방송국과 빌보드 싱글 차트를 휩쓸며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장르로 자리매김했지요(필자 주: 미국의 대중음악계에서 라디오 방송의 영향력은 여전히 상당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와카 플라카 플래임(Waka Flocka Flame), 릭 로스(Rick Ross), 투 체인즈(2 Chainz) 등의 랩퍼들과 렉스 루거(Lex Luger), 영 찹(Young Chop) 등의 프로듀서들이 있었습니다. 모두 새로운 세력으로 급부상하던 이들이었어요. 특히, 와카 플라카의 정규 데뷔앨범 [Flockaveli]와 싱글 “No Hands”, 릭 로스의 네 번째 앨범 [Teflon Don]과 싱글 "B.M.F. (Blowin' Money Fast)", 투 체인즈의 솔로 데뷔작 [Based on a T.R.U. Story]와 싱글 "Birthday Song" 등은 트랩 뮤직이 전성기를 누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작품들입니다.
특히, 이중에서 투 체인즈의 활약은 그의 음악에 대한 완성도 논란을 떠나 매우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작년 한해 동안 그가 참여했던 빼곡한 피처링 트랙 리스트와 지난 2월 10일(미국 현지 시각) LA에서 열린 ‘55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Based on a T.R.U. Story]가 ‘베스트 랩 앨범’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은 단순히 투 체인즈라는 랩퍼의 인기 여부를 넘어 트랩 뮤직의 인기를 적나라하게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트랩 뮤직’의 전성기 얼마나 갈까?
솔직히 작금의 트랩 뮤직 전성기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근 몇 년 사이 정말 많은 트랩 뮤직 트랙들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슬슬 질려가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힙합 종주국 미국만큼은 아니더라도 세계 각지의 힙합 커뮤니티에서 트랩은 여전히 핵심 키워드이며, 팝이나 일렉트로니카 댄스 음악과 적잖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세계 대중음악계의 트렌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르로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트랩 뮤직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힙합의 황금기’라 불리는 1990년대, 이스트코스트와 웨스트코스트 힙합 씬 간 세력 대결 속에서 천대받았으나 클럽에 최적화된 음악으로 2000년대 ‘힙합 대세’가 된 서던 힙합은 이렇게 트랩 뮤직을 앞세워 ‘서던 힙합 천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힙합/알앤비 음악과 관련하여 평소 궁금하거나 모호하게 생각했던 점들이 있다면, 리드머 트위터(@mediarhythmer), 혹은 강일권 편집장의 트위터(@soulgang78)로 질문해주세요~ 퀘스쳔러브(?uestionlove)에서 가능한 궁금증을 해결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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