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토픽] 아프리카 힙합, 그 비판과 저항의 목소리
- rhythmer | 2013-09-16 | 23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
사회를 향한 관심과 비판은 힙합의 저변에 깔려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는 국가나 인종 등 각자가 처한 환경에 따라 수준의 차이를 보인다. 그중에서도 아프리카 힙합 씬은 힙합의 태동기적 혼란스럽고 격렬했던 순간처럼 힙합을 통한 사회 변혁을 꿈꾼다. 정치, 경제, 사회, 어느 하나 만족스럽지 못한 환경에서 꾸역꾸역 삶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힙합은 유일한 발언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아프리카 힙합 씬의 특징, 힙합의 원초적 기능(사회에 대한 관심과 비판)과 문화 혼용화(혹은 현지화)가 잘 드러나는 곳이 바로 알제리와 세네갈 씬이다.힙합의 격렬한 탄생
1970년대 말, 빈민가 흑인들의 삶은 ‘고난’ 그 자체였다. 사회에서 철저하게 배제된 빈민가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했던 그들은 30세도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나기 일쑤였다. 어떠한 미래도 꿈꿀 수 없는 이들에게 현실은 냉혹하기만 했고, 그들이 느끼는 분노와 애환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당시 ‘빈민가 흑인’이 겪는 소외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었다. 빈민이라는 ‘계층’과 흑인이라는 ‘인종’. 주류 사회에서 이들은 여전히 ‘노예’였으며, ‘범죄자’였다. 빈민가 흑인들은 정신적 해방과 자유를 위해, 궁극적으로 삶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거리로 나와 음악을 즐겼고, 이것은 힙합 문화가 형성되는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초창기 힙합이 내포하고 있던 목적과 사회문제에 대한 의식, 그리고 비판정신은 빈민가 흑인의 자존감을 올려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일까? 혹자들은 당시의 힙합을 '상처 입은 자아들의 나르시시즘'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후, 미국의 힙합은 자본과 인기를 등에 업고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1980년대 중반, 많은 흑인들의 마음의 고향인 ‘아프리카 대륙’까지 당도하게 된다.
민중을 일으키는 힙합, '알제리 힙합'
1988년 10월, 알제리의 수많은 청년들이 식료품 가격 폭등과 교육체계 개선을 위해 거리로 나섰다. 생존을 위한 비폭력 투쟁에 대항해 알제리 정부는 군인들을 투입했고 민간인 사상자까지 발생했다. 알제리 힙합 그룹 앤틱(Intik)의 멤버 유세프(Youcef)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그 당시 정부가 자본과 결탁하여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던 모습을 보고 전 상당히 무서웠고 충격을 받았어요. 군인들은 일제히 사람들에게 총구를 겨눴고, 아직도 전, 국가가 국민을 대상으로 벌인 테러라고 생각해요. 이 사건은 영원히 제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겁니다.”[1]
격분한 알제리의 아티스트들은 정부에 항의의 뜻을 표현하기 위해 랩을 시작했고, 유세프 역시, 랩을 통해 사회체계와 정부를 둘러싼 수많은 의문에 관한 해명을 촉구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알제리 힙합은 현재까지도 '정치적 부당함, 테러, 전쟁' 등등, 그들의 현실을 반영한 내용을 주제로 삼고 있다.
또 다른 그룹 해마 보이즈(Hamma Boys)는 "The Algerian Fairytale(L'Algerie le conte de fées)”라는 노래를 통해 1988년 10월을 회상했다.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위해 싸웠던 그들의 윗세대들인 '11월의 순교자(November martyrs)'들을 본받아 당시 사건을 겪은 그들 자신을 '10월의 순교자(October martyrs)'라 부른다.
현재 내전이 끝난 알제리는 사상 최고치의 청년실업과 불안정한 주거환경, 끔직할 정도로 망가져있는 교육 시스템 등으로 여전히 꿈을 꾸기엔 벅찬 환경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자신들의 삶과 아팠던 기억이 알제리 청년들의 힙합을 통해 이야기되는 것이다. 알제리의 현실은 앤틱의 다른 멤버 나빌 바우쉬(Nabil Bouiche)의 설명을 통해 체감할 수 있다.
“알제리 인구 중 75%가 청년입니다. 이 정도의 숫자라면 아주 멋진 나라를 건설할 수 도 있겠죠. 그러나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반대가 더 쉬울걸요? 알제리 청년들은 살기 위해 발버둥 쳐요, 마치 지옥에서 일하는 것처럼, 대학 학위가 있어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식당 웨이터 정도니까요. 음악을 녹음하기 위한 자원도 엄청나게 부족하고, 음반 녹음을 마치려면 돈을 벌어와서 다시 투자해야 해요. 한 번은 우리 멤버 중 하나가 스튜디오 대실 요금 때문에 자기 신발을 판 적도 있어요.”[2]
이렇듯 알제리 힙합은 일상생활과 사회적 현실에 가까이 맞닿아 있다. 무엇보다 힙합 뮤지션들의적극적이고 현실적인 개입은 힙합의 현지화(Glocalisation)를 이끄는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깊숙한 현실 관여와 혼용화 '세네갈 힙합'세네갈에서는 구비 설화를 이야기나 노래로 들려주던 ‘그리오(Griot)’의 역할이 역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했다. 이들은 결혼, 장례식 등과 같은 일상에서부터 종교행사, 정치까지 사회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근대화를 거치며 그들의 역할은 예술가, 특히, 현실의 문제에 깊게 관여하는 랩퍼가 대신하고 있다.
세네갈은 아프리카 대륙 중에서도 가장 빨리 힙합이 전파된 나라이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유입된 힙합 음악이 수도 ‘다카르’의 곳곳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물론, 힙합이 유입된 초반에는 미국의 힙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었지만, 정규 교육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한 이들이 국민의 대다수인 세네갈에서 영어로 된 음악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이가 거의 없었다. 자연스레 이들은 자신의 언어(국민의 44% 정도가 사용하는 월로프어)로 표현된 삶을 담아낼 수 있도록 '힙합의 현지화’에 열을 올렸다. 이후, 세네갈에서는 랩을 ‘세네랩(Senerap)’으로, 힙합을 ‘타수(tassou)’라 부르며, 자신들의 전통문화와 힙합의 오묘한 융합에 성공하였고, 오히려 힙합을 자신들의 독자적인 문화로 인식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세네갈에서도 힙합은 사회, 정치, 경제와 관련해 어떠한 이야기라도 할 수 있는 발언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더욱이 세네갈의 힙합은 자국인의 애환을 담고 있으면서 더 나은 삶의 방향성을 이야기한다. 고로, 그들의 힙합은 현실에 더 깊숙하게 관여할 수밖에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 때의 일화다. 당시 세네갈의 청년들은 압둘라예 와데(Abdoulaye Wade) 대통령의 재선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고, 시위는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랩퍼들도 그의 독재를 비판하는 곡을 통해 반대의 뜻을 전했으며, 그중 랩퍼 레드 블랙(Red Black)은 당장 재선을 포기하고 떠나라는 가사를 담은 “Na Dem”이란 곡을 공개하기도 하였다.
최소 4명 이상이 사망한 본 시위는 12년간 장기 집권해오던 압둘라예 와데의 재선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세네갈에서 힙합은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기도 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채널로써 활용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힙합이라는 문화는 그들에게 확성기이자 칼이고 총이다.이렇게 아프리카 대륙의 힙합은 사회와 정치의 문제의식과 이를 바라보는 비판적 시각에서 시작된다. 비록, 짧은 기록이지만, 전술한 글을 통해 이를 증명하기엔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마치 1970년대 말, 희망 한 점 없던 ‘빈민가의 흑인’들처럼, 그들의 열악한 환경이 뮤지션들의 적극적인 현실 개입을 불렀을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자신들의 절박한 삶을 위해, 목숨 걸고 랩을 하는 남쪽 나라 랩퍼들의 모습은, 지구 반대편, 안락함의 권태를 느끼는 북쪽 국가 랩퍼들의 모습과 오버랩되며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알제리 힙합 그룹 MDS는 힙합의 발생지인 미국의 힙합 문화가 점점 쾌락적이고 소비 지향적이며, 폭력과 섹스에 대해 환상을 키워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우리도 한 번쯤 곱씹어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 아닌가 싶다. 군중을 움직이게 만드는 이들(Move the Crowd)은 좀 더 주체적이고 우리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나아가 비방, 비난을 뛰어넘어 부조리한 사회에 거침없이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환경은 열악하지만, 오늘날 아프리카 힙합이 그걸 보여주고 있다.
23
-
-
- 이경천동지 (2013-09-21 22:47:34, 114.200.231.***)
-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 할로윈1031 (2013-09-17 22:05:49, 175.202.126.**)
- 세네갈 대단합니다!
-
- 신사동기름양 (2013-09-17 10:04:33, 1.215.149.*)
- 캔드릭라마 기사들만 보다가 글 좋네요
잘 보고 갑니다 :D
-
- Popeye (2013-09-16 23:07:51, 121.65.11.***)
- 와 진짜 충격적이네요.
KRS-ONE이였나요?
한국힙합이 이걸 배워야해요
멋쩍은 스냅백쓰고 주절거리는것보다 ..
와 존나 멋있어요
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