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키 힙합의 개척자들

 

지난 2002년, 디제이 혼다(DJ Honda)와 함께 내한한 바 있는 듀오 EPMD(이피엠디)는 힙합 역사를 논할 때마다 절대 빠지지 않는 살아 있는 전설 중 하나다. 또한, 그들이 발표한 정규 1집부터 5집까지 연속으로 골드(50만 장 이상 판매)를 기록했을 정도로 초기 힙합 씬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팀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비록, 가벼운 가사 탓에 동시대 활약한 그룹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와 N.W.A에 비해 많이 회자되지는 않았지만, 두 멤버 에릭 셔먼(Erick Sermon a.k.a E-Double)과 패리쉬 스미스(Parrish Smith a.k.a PMD)가 힙합을 음악 비즈니스의 중심으로 옮겨오고자 한 시도는 또 다른 면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이었다.

 

초기시절 ~ '92년

 

뉴욕 출신의 '68년생 동갑내기 에릭 셔먼과 패리쉬 스미스(이하 'PMD')가 EPMD(필자 주: 'Erick and Parrish Making Dollars'의 약자)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부터이다. 그리고 '88년 슬리핑 백(Sleeping Bag) 레이블과 계약하고 만들어낸 데뷔작 [Strictly Business]는 EPMD를 논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앨범으로 손꼽히곤 한다. 그들은 쿨 앤 더 갱(Kool & The Gang), 릭 제임스(Rick James), 잽 밴드(Zapp Band),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등의 음원을 적극 활용하며 데뷔 시절부터 완성도 높은 펑키 힙합 스타일을 선보였다. 쿨 앤 더 갱의 "Jungle Boogie"를 샘플링한 "You Gots to Chill"이나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의 "Rock Steady"를 활용한 "I'm Housin'" 등은 히트 싱글이자 당대의 명곡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곡이었다. 이어진 '89년의 정규 두 번째 앨범 [Unfinished Business]는 데뷔작과 마찬가지로 빌보드 'R&B/Hiphop 차트' 1위를 석권하며 흥행몰이를 이어갔는데, 당시 슬리핑 백 레이블이 재정난을 겪으면서 EPMD는 힙합의 성지라 일컫는 데프 잼(Def Jam)으로 적을 옮기게 된다.



데프 잼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90년대 초반에 만들어낸 [Business as Usual]과 [Business Never Personal] 또한 1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명작으로 일컬어지곤 한다(참고로 이 시절부터는 앨범 크레딧에서 DJ Scratch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Business as Usual]엔 엘엘 쿨 제이(LL Cool J)와 함께한 불후의 명곡 "Rampage", 레드맨(Redman)의 데뷔앨범에도 중복 수록된 "Hardcore" 등 양질의 곡들이 대거 담겨 있었고, 성적 발언이나 형편없는 랩퍼(Wack MC)를 향한 서슴없는 비난 등등, 거침없는 가사가 주를 이뤘다. 그리고 그들이 발표한 6장의 앨범 가운데 유일하게 절판되어 현재 중고 앨범 사이트에서 고가에 거래되고 있는 [Business Never Personal]에는 "Crossover"와 "Head Banger"와 같은 걸출한 싱글들이 포함되어 흥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EPMD, 케이-솔로(K-Solo), 다스 이펙스(Das EFX), 레드맨, 허리케인 쥐(Hurricane G) 등으로 구성된 히트 스쿼드(Hit Squad) 패밀리가 탄생한 시기도 이 무렵이었다.

해체와 재결합

 

그런데 한창 잘나가던 EPMD는 '93년 초 돌연 해체를 선언했다. 몇 해 전 유명 힙합 잡지 소스(The Source)에서 열거한 '힙합 씬 150대 사건'에 이들의 해체가 기록됐을 정도로 당시 그들의 결별 선언은 큰 사건이었다. 이후, 에릭과 패리쉬는 각각 두 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타 뮤지션의 앨범 작업을 병행하며 활발한 행보를 이어갔는데, EPMD 시절만큼의 상업적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프로듀서로서 괜찮은 커리어를 이어갔는데, 에릭 셔먼은 레드맨과 키스 머레이(Keith Murray), PMD는 다스 이펙스의 앨범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러던 이들이 다시 EPMD의 포맷으로 귀환한 게 1997년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컴백 앨범 [Back in Business]는 "Never Seen Before", "Da Joint", 1집의 "You Gots to Chill"의 후속곡 격인 "You Gots to Chill '97" 등등, 그야말로 'EPMD 다운 트랙'으로 중무장하여 성공적인 컴백을 알렸다. 그리고 2년 뒤, 'EPMD - Erick and Parrish Millenium Ducats'라는 또 하나의 재미난 약자를 만들어내며, "Symphony 2000"이라는 멋진 곡을 싱글 컷한 [Out of Business]를 끝으로, 그들은 '폐업(Out of Business)'이란 타이틀처럼 EPMD로서 활동을 다시 마감하는 듯했다.

 

또 한 번의 재결합

 

[Out of Business] 이후, 둘은 또다시 솔로 활동과 외부 작업에 전념했다. 에릭은 제이 레코드(J Record)와 모타운(Motown)에서 무려 석 장의 앨범을 발매하고 레드맨, 키스 머레이와 함께 데프  스쿼드(Def Squad)의 앨범을 만들기도 했으며, PMD는 솔로 앨범 [The Awakening]의 제작과 디제이 혼다와 합작에 주력하곤 했다. 그렇게 각자의 길을 걷는 것으로 일단락된 것 같았던 듀오가 또 한 번 재결합한다는 소식이 들려온 건 2006년 말이었다. 에릭과 패리쉬, 그리고 디제이 스크래치는 그해 10월, 세계 최대 힙합 페스티벌 '락 더 벨스(Rock The Bells)' 투어에서 함께하며 EPMD의 재결합을 알렸고, 12월엔 키스 머레이까지 합세하여 EPMD의 이름으로 "The Main Event"라는 신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2008년에 새 앨범 [We Mean Business]를 발표하며 'Business' 시리즈를 이어갔다. 비록, 이전처럼 상업적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힙합 씬에 한 획을 그은 두 거성의 재결합은 올드 스쿨 힙합팬의 향수를 강하게 자극했다.

 

88년 데뷔 이래 끈끈한 결속력을 바탕으로 활동해오며, 힙합음악이 대중의 가시권에 진입하는데 큰 역할을 한 그룹 EPMD.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들의 음악은 여전히 힙합팬의 어깨와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들이 힙합 역사 속 성공적인 비즈니스 그 자체인 이유다.

 

※이모저모

1. 그룹 이름 때문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EPMD를 에릭 서먼과 패리쉬 스미스만으로 이루어진 2인조 랩 그룹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초창기 시절엔 디제이 다이아몬드 제이(Diamond J)와 케이 라 보스(K La Boss)가 멤버에 포함되어 있었고, '9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객원 멤버인 디제이 스크래치를 포함한 3명의 그룹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2. EPMD 1집의 "I'm Housin'"은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이 [Renegades](2000, Epic) 앨범에서 커버한 곡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3. [Out of Business]의 2번째 CD인 'Limited Edition' 앨범은 EPMD의 베스트 앨범이라 할 수 있는데, 단순한 'Greatest Hits'가 아니라 오리지널 버전을 재각색한 버전의 곡들이 6개나 수록된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