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토픽] ?uestionlove: 랩과 힙합 사이의 오묘한 관계
- rhythmer | 2013-10-14 | 20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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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과 힙합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랩을 하면 힙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힙합과 알앤비의 구분이 궁금해요. 자이언티 같은 사람의 노래를 들으면 헷갈려요.', '꼭 랩이 있어야 힙합인가요?'
이상은 얼마 전 SNS를 통해 받은 질문들입니다. 얼핏 '당연한 걸 물어보고 그래.'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거 충분히 궁금하고 헷갈릴만한 부분이에요. 아마 여전히 많은 이의 의식 속에는 '랩 = 힙합'이라는 공식이 은연중에 박혀있을 겁니다. 무리는 아니에요. 실제로 이 공식은 힙합의 고향인 미국에서도 90년대 중·후반까지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었으니까요. 무엇보다 우리가 알다시피 랩은 힙합의 4대 요소 중 하나이고 말이죠.
그런데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랩 = 힙합'은 틀린 공식입니다. 즉, '꼭 랩이 있어야 힙합은 아니다.'라는 얘기에요. 다르게 말하면, '랩이어도 힙합이 아닐 수 있고, 노래여도 힙합이 될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구분하는 기준은 뜻밖에 간단해요. 음악 장르적으로 힙합은 프로덕션(비트, 혹은 인스트루멘탈) 면에서, 랩은 보컬 형식 면에서 구분합니다. 그래서 보통 힙합 외 랩이 들어간 음악의 장르명을 표기할 땐 '랩'을 병행 표기하곤 합니다. 다만, 앞서 언급한대로 랩은 힙합 문화 속에서 태어나 후에 독자적인 장르로서도 존재하게 된 것이기에 프로덕션적으로 힙합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경우에는 '랩, 힙합'이 아닌, 그냥 '힙합'으로 표기하는 게 일반적이죠.만약 데이비드 게타(David Guetta)의 "Play Hard" 위에 랩이 얹혔다면, 장르적으론 'EDM'이 될 것이고, 갱스타(Gang Starr)의 "Full Clip" 위에 보컬이 얹혔다면, 장르적으로 '힙합'이 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에이샙 록키(A$AP Rocky)의 히트곡 "Wild for the Night"이 좋은 예가 되겠네요. 에이샙 록키는 힙합 뮤지션이고, 랩이 주도하는 곡이지만, 스크릴렉스(Skrillex)와 버디 남남(Birdy Nam Nam)이 맡은 프로덕션에 기반하여 이 곡은 힙합이 아닌 EDM으로 분류합니다. 싸이(Psy)의 "강남 스타일"도 같은 경우예요. 이 곡은 빌보드 차트(Billboard) 장르 부문에서 '랩 송 차트'에는 올랐지만, '알앤비/힙합 차트'에는 오르지 않았거든요. 랩 음악이지만, 힙합 음악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사실 대표적인 상위 장르만을 기준으로 나누어 놓은 빌보드의 장르 구분은 현 상황에서 가장 보편적인 구분법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랩/힙합'과 '알앤비'가 아니라 '랩'과 '알앤비/힙합'으로 나뉘어 있다는 부분에 주목해야 합니다. 앞서 설명한 내용에 기반을 둔 구분이 고스란히 적용된 케이스거든요. 그리고 이러한 구분법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게 바로 로린 힐(Lauryn Hill)과 그녀의 데뷔 클래식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였어요. 이 앨범에서 모든 벌스(Verse)가 랩으로 된 곡은 단 두 곡뿐이었으며, 노래와 병행한 벌스를 포함하더라도 랩이 차지하는 지분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은 엄연히 힙합 앨범으로 분류되었죠. 샘플링과 루핑에 기반한 프로덕션, 그리고 비단 사랑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적인 부분에 시선을 들이댄 가사가 랩퍼로 대변되던 힙합 뮤지션의 음악과 일맥상통했기 때문입니다.자, 그런데 여기서 몇몇 분들은 또 한 가지 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습니다.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은 알앤비 앨범이기도 하니까요. 랩과 힙합의 경계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니 힙합과 알앤비의 경계와 맞닥뜨리게 되는 거죠. 하지만 이 역시 간단합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노래로 이루어진 힙합 음악은 큰 범주에서 알앤비에도 속해왔거든요. 최초 힙합 리듬을 차용하여 알앤비 보컬과 결합시켰던 뉴 잭 스윙(New Jack Swing)이나 이를 좀 더 세련되고 그루브하게 다듬으면서 샘플링 작법을 더욱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완성한 힙합 소울도 모두 알앤비의 하위 장르였습니다. 한 마디로 로린 힐의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은 힙합 앨범임과 동시에 알앤비 앨범인 셈이죠. 메리 제이 블라이즈(Mary J. Blige)와 그녀의 결과물도 대표적인 예이고요. 질문에서 언급된 국내 뮤지션 자이언티의 경우도 마찬가지에요. 자이언티는 그동안 발표한 싱글이나 앨범을 통해 힙합 프로덕션 위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줬습니다. 그러니 그는 힙합 뮤지션이자 알앤비 뮤지션으로 부를 수 있겠습니다. 둘 중 어느 하나의 장르만으로 구분 지을 필요가 없는 거죠.
사실 오늘날처럼 장르의 해체와 결합이 빈번하고 경계가 흐릿해진 음악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여러 정보 매체와 기획사들은 최소 2개 이상의 장르를 함께 표기하는 게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혹자들은 '음악을 즐기는데 굳이 장르를 따질 필요가 뭐가 있느냐'라고 하지만, 이러한 장르 구분은 다양한 음악 스타일이 나오고 발전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한, 구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감상의 묘미가 있는데다가 대중음악의 역사를 기록하는 매체나 평단 사이에서는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음악을 즐기면서 장르에 관한 궁금증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말이죠.
*힙합/알앤비 음악과 관련하여 평소 궁금하거나 모호하게 생각했던 점들이 있다면, 리드머 트위터(@mediarhythmer), 혹은 강일권 편집장의 트위터(@soulgang78)로 질문해주세요~ 퀘스쳔러브(?uestionlove)에서 가능한 궁금증을 해결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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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듬을 타는 렉스 (2013-10-15 18:57:00, 110.70.52.***)
- 명쾌한 설명 감사합니다! 머리에 쏙 들어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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