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토픽] 힙합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17가지 트렌드
- rhythmer | 2010-07-19 | 19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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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스트는 어디까지나 흥미 위주로 선정한 것이며, 리드머 필진과 전체 회의는 전혀 거치지 않은 지극히 개인적인 리스트로 공정성, 정당성, 객관성, 권위는 일절 없으니 참고하시라. 부디 해당 시기를 거친 팬들께서는 공감하며 킬킬대시고, 그 시기엔 힙합과 담쌓고 지내시다가 후일 우연한 계기로 걸쭉한 욕과 희한한 간지에 이끌려 힙합 팬이 되신 분들은 ‘아, 저런 것도 있었구나.’하면서 발견의 기쁨을 만끽하시길….17. 리믹스 앨범
2000년대 초반의 랩 게임은 여러 가지 유행이 뒤섞여 정말 요란하고 시끄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꽤 재미있는 시기였다. 갖가지 현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는데, 그중에서도 리믹스(Remix) 열풍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전에는 팬 서비스 혹은 뮤지션의 자기만족 목적이 강했던 리믹스는 2000년대 초반, 전에 없던 강력한 커머셜 파워를 손에 쥐게 되었다. 아마 이 유행의 시작은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의 리믹스곡들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점령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이후, 리믹스곡들을 모아 앨범으로 내는 뮤지션들이 많아지면서 점차 대대적인 유행으로 확대되더니 2002년 제니퍼 로페즈의 [J To Tha L-O!: The Remixes]가 리믹스 앨범으로는 역사상 최초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면서 마침내 그 열기가 폭발했다. 이 외에도 디디(Diddy)의 히트작인 [We Invented The Remix]를 비롯해 자 룰(Ja Rule)이 이끌던 머더 Inc(Murder Inc.) 레이블의 리믹스 앨범, 알 켈리(R. Kelly) 등 많은 아티스트들이 리믹스 앨범을 발표했다. 한편, 나스(Nas)는 뜬금없는 리믹스 앨범을 발표해 팬들의 원성을 샀다.16. Swagger
한마디로 말해 ‘간지’다-대부분 ‘랩’으로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거나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것을 ‘Swag’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진정한 의미에서 ‘Swagger’는 랩을 포함, 패션, 라이프 스타일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일컫는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예전에도 힙합 패션은 힙합 음악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오늘날 힙합 스웨거는 명품을 선호한다. 헐렁한 배기 바지와 축 늘어진 티셔츠로 대표되던 힙합 패션은 지난 10여 년간 구찌와 프라다, 돌체&가바나로 교체되었다. 이제는 그 누구도 뮤직비디오에 다 찢어진 주황색 죄수복이나 한쪽 발만 걷은 아디다스 트레이닝 팬츠 속에 메리야스를 넣고 등장하지 않는다. 캉골 벙거지 모자는 뉴에라로 변했음은 물론이다. 요즘 뮤직비디오 속의 뮤지션들은 경찰을 따돌릴 때도 뛰어서 도망가지 않는다. 신형 포르쉐를 타고 분노의 질주를 벌이거나 아예 경찰들이 랩퍼가 탄 벤틀리를 경호하는 세상이다.
15. A.K.A.(As Known As)
사실 이 유행은 제목을 ‘Alter Ego’로 지으려고 했지만, 그랬더니 대상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어 유행이라는 구색에 맞추고자 범위를 대폭 확대한 것이 위의 제목이 되었다. 옛날부터 이거 없는 랩퍼들은 범생이었다. Makaveli, Frank White, Escobar, Young Gotti, Slim Shady, Hova, Loso, Snow Man, Tical, H.N.I.C. 등등… 참 잘도 지어낸다. 잘나가는 랩퍼라면, 명함에 이름이 3개 이상은 적혀 있어야 하는 거다.14. 더블 앨범
이건 사실 유행이라기보단 좀 호사스러운 취향에 가깝겠다. 투팍(2Pac)이 전설적인 작품 [All Eyez On Me]를 96년에 발매했는데, 이 앨범은 힙합 역사상 최초의 더블 앨범이었으며, 미국에서만 합계 9백만 장이 팔린 전설적인 대작인 동시에 투팍이라는 아이콘의 유작이었다. 바로 그 뒤를 이은 게 비기(Biggie)의 [Life After Death]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후, 내공 좀 되고 상업적, 음악적 업적을 좀 쌓아놔서 레이블에 고집 좀 부릴만한 짬밥이 되는 뮤지션들은 자기 커리어가 만렙 찍으려면 더블 앨범이라는 퀘스트를 꼭 거쳐야 한다고 느낀 듯할 정도로 더블 앨범이 쏟아져 나왔다. 본 떡스 앤 하모니(Bone Thugs-N-Harmony)부터 스카페이스(Scarface), 크레이지 본(Krayzie Bone), 아웃캐스트(Outkast), 제이-지(Jay-Z), 나스, UGK 등등 많은 전설적인 뮤지션이 이 흐름에 동참했으며, 신기하게도 더블 앨범은 큰 리스크가 따른다는 통념과는 반대로 대부분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예외적으로 남부 힙합의 거목인 에잇볼(8-Ball)은 무려 3CD 앨범인 [Lost]를 발매했으나 앨범 타이틀대로 제작비를 상실하긴 했지만….13. 클럽 튠
90년대 초반에도 힙합 클럽은 있었고 사람들은 랩으로 된 노래에 춤을 췄다. 그런데 몇몇 영화에서도 볼 수 있겠지만, 당시의 클럽에서 나오는 노래들은 신나는 노래들뿐만이 아니었다. ‘그루브’한 음악이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춤을 출 수 있었고 덕분에 당시의 클럽에는 팝, 디스코, 훵크, 댄스와 결합한 랩 음악은 물론, 심지어 갱스터 랩도 빈번히 흘러 나왔다(‘8 Mile’을 보라. 클럽에서 “Shook Ones Pt.2” 등 온갖 하드코어 명곡이 다 튀어나온다. 정말 쩐다!). 그런데 90년대 중•후반부터 클럽은 이른바 ‘클럽 튠’이라는 춤추기에 최적화된 랩 음악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 곡들은 음악의 순수함을 울부짖는 고결한 이들에게는 천박하고 상업적인 타락의 결과물로 비치기도 했는데, 이런 곡들이 히트를 기록하고 돈이 되기 시작하자 비트 좀 만진다는 명인들이 다 달라붙었고 그 결과 혁신적인 결과물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쯤 되자 반대파들도 말을 바꿨다. 힙합은 디스코 파티에서 시작되었고 원초적인 목적은 춤추는 사람들의 흥을 돋우기 위함이었다는 주장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갈아탄 것이다. 그 후 랩퍼들이 뮤직비디오에서 자기 유행가의 댄스도 가르쳐주는 세상이 되었다.
12. 뮤지션의 레이블 설립
과장을 조금, 아주 조금만 보태면 내 기억에 플래티넘을 기록한 랩퍼 가운데 80%는 자기 레이블 이름을 지어보거나 실제로 운영도 했다. 멀티 플래티넘도 필요 없고 그래미도 필요 없다. 레이블을 설립하고 싶으면 플래티넘만 따면 된다. 플래티넘만 따면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을 다 불러모아서 랩 시킬 수 있다. 때때론 골드 레코드도 충분하다. 예를 들어볼까? Shady, Ill Will, Fo’ Reel, Grand Hustle, Alumni, DPG, G-Unit, Black Wall Street, young Money 등등. 부족하다고? DTP, Ice H2O, Diplomats, Corporate Thugz 등등. 부족하다고? Maybach Music Group, Dynasty, Lench Mob 등등. 그래도 부족하다고? 말만 해라, 밤도 샐 수 있다.11. 릴 웨인(Lil Wayne)
한 백 년쯤 후에 어떤 위대한 역사학자가 힙합 역사를 연도별로 정리해서 쓴다고 치자. 그럼 그는 2008년에서 2009년 사이의 힙합 역사를 정리하기가 정말 편할 것이다. 그때도 A4 용지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분량의 3분의 2는 릴 웨인에 대해서만 적어 넣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 두 해 동안 릴 웨인은 그야말로 수백 곡에 참여하거나 직접 작업했으며 백여 곡이 넘는 피처링 참여곡 가운데 40여 곡이 싱글컷 되었고 5곡의 탑 텐 싱글과 1곡의 넘버원 싱글, 3곡의 플래티넘 싱글을 배출했다. 다른 순위권은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며, 순전히 피처링 참여만 이 정도다. 정규작으로 넘어가보자. [Tha Carter 3]는 아마도 음반 사업 역사상 최후의 ‘첫째 주 플래티넘 앨범’으로 기록될 것이 유력해 보이며, 부록으로 넘버원 싱글 하나와 탑 텐 싱글 3곡, 플래티넘 싱글 4곡을 배출한 앨범이 되었다. 그의 싱글 “A Milli”는 미국에서만 20여 명의 뮤지션이 프리스타일을 뱉어내면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경쟁과 화합의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의 이전에도 랩 슈퍼스타는 있었고 릴 웨인만큼의 스타파워를 자랑하는 뮤지션은 몇 명 있었으나 그 누구도 릴 웨인만큼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불타오르지는 못했다.10. (하이 피치) 소울 샘플링
[Blueprint] 이전에도 소울 샘플링은 있었다. 있었던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게 많았다. 그런데 이 앨범이 발매된 이후, 메인스트림은 소울 샘플링이 장악했다. 칸예 웨스트(Kanye West)와 저스트 블레이즈(Just Blaze)는 차트를 지배했고 그 틈새시장은 그들의 아류, 혹은 추종자들이 파고들었다. 언더그라운드는 이전부터 소울 샘플을 따서 써왔지만, 저 앨범 이후로는 모두 소울 샘플을 ‘칸예처럼’ 따내는 것에 집중했다. 언더고 오버고 무조건 땄다 하면 소울 샘플이고 들어보면 하이 피치였다. 오죽하면 아야톨라(Ayatollah) 같은 기존부터 소울 샘플링을 장기로 삼아왔던 명인들이 국내 커뮤니티에서 칸예의 아류로 전락하는 촌극까지 벌어졌으며, 2002~2004년 정도까지는 국제 정상회담 결과, 정말 모든 샘플 소스는 소울로 고정하고 작법은 하이 피치로 통일한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제이-지는 자신이 창조한 유행을 자신이 따라 할 정도였으니까. 여담이지만, 국내는 지금도 소울 샘플링이 절반은 되는 듯하다.
9. R&B Thug
LL 쿨 J(LL Cool J)를 떠올렸다면, 당신, 실수한 거다. 그건 너무 뻔하지 않은가? 나는 패볼러스(Fabolous)와 자 룰(Ja Rule), 룬(Loon)과 넬리(Nelly)를 말하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또 다른 트렌드는 힙합과 알앤비의 적극적인 결합이었다. 90년대 태아생성용 배경음악이었던 슬로우 잼은 신세기에 접어들며 위력을 잃어갔는데 대신 말랑한 랩과 말랑한 보컬, 말랑한 멜로디와 말랑한 비트의 랩 앤 블루스 트랙이 그 대안으로 떠오르며 수많은 커플들의 애청곡이 되었고, 이는 침구류 회사들의 열렬한 환호를 이끌어냈다. 이전에도 수많은 랩 발라드들이 존재했지만, 이 시기와 차별화되는 점은 흡사 모양새는 알앤비 트랙에 피처링 랩 곡과 비슷한데 랩의 분량을 엄청나게 늘려놓은 구성이 많았다는 점과 의외로 살벌한 갱스터 랩의 가사와 더욱 적나라한 표현들이 많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여어 베이비, 나 총 잘 쏘고 잘나가는 갱스턴데 나랑 밤새도록 다이어트 해보자.” 이런 방식의 가사 말이다. 피프티 센트(50 Cent)는 이 분야의 현존하는 최고 권위자로 “Magic Stick”, “Candy Shop”, “Amusement Park” 등 현란한 은유로 무장된 낯뜨거운 가사를 쉴 틈 없이 퍼부어대는 명곡들을 발표했다.8. 808드럼
아웃캐스트를 떠올렸다면, 당신, 실수한 거다. 이건 너무 뻔한 대사였다. 방금 써먹은 걸 또 써먹다니… 사죄의 말씀을 전한다. 어쨌든 808드럼은 올드스쿨이나 서던 랩의 전유물이 아닌 시대다. 현존하는 유행이며 지역의 벽을 허물고 유명 아티스트부터 동네 얼치기 꼬마까지 모든 이를 아우르는 유행이 되었다. 좋든 싫든, 잘 만들었든 못 만들었든 그것과는 별개다. 2007년 이후로 808드럼 위에 한 번이라도 랩을 올려놓지 못한 인물은 감히 인기 랩퍼가 아니라고 선포한다.7. Signature Shout-out
화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사인을 남긴다. 축구 선수들은 골을 넣으면 세레모니를 하고 경찰들은 범법자를 체포하면 미란다 원칙을 읊는다. 랩퍼들은 이게 부러웠다(실제로 부러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가 만나면 좀 물어봐 달라). 그래서 우리도 뭐 좀 해보자며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디제이 카아아알렛, 위이이 더 부에에스트!”, “위지 엪 베이베”, “지지지지지지, 지-유닛!”, “티카아아아알”, “머더 잉ㅋ 요~”, “ㅋ랙~!”, “왈, 왈”, “스위지!”, “저슷 블레이이이~ㅈ”, “스노오오오우 매애애앤~”, “이써니리빗”, “찌끼찌끼 기타 등등요”
6. 투팍과 비기 흉내 내기
마스터 피(Master P)는 투팍의 노골적인 바이터(Biter)였다. 그는 투팍의 가사 인용은 기본이고 투팍의 곡 제목을 따서 앨범 타이틀까지 지었다(‘Only God Can Judge Me’). 데스로우(Death Row) 출신의 눈감고 들으면 구분하기도 어려운 성대모사의 달인 리얼리스트(Tha Realest)나 투팍 덕후가 사장인 노 리밋 레코드(No Limit Records)의 크레이지(Krazy)같은 인물들은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수많은 MC들이 투팍과 비기를 흉내 냈는데 주로 투팍이 많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라임 부분의 단어를 길게 빼주면 어느 정도 흉내내기는 가능한 투팍에 비해 그냥 무지막지한 라임을 때려 박는 비기를 따라 하려니 스킬이 딸려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기 랩 스타일의 바이팅은 상대적으로 소수였으며, 주로 가사 인용이나 샘플링, (확인 불가능한) 비기 생전의 친분 과시 등을 통해 주로 바이팅이 이루어졌는데, 그 와중에 게릴라 블랙(Guerilla Black)이나 샤인(Shyne)은 보이스 톤과 플로우의 적절한 바이팅으로 주목받았으며, 릴 킴(Lil Kim), 제이지(Jay-Z) 같은 이들은 가사 인용이나 스타일 바이팅의 용의자로 꼽힌다. 투팍에 대한 추종은 2000년경에 절정이었는데 패볼러스나 캠론(Cam’Ron), 팻 조(Fat Joe), DMX, 자 룰(Ja Rule), 릴 스크래피(Lil Scrappy) 등등 동서남북 안 가리고 수많은 뮤지션이 그들을 흉내 내거나 투팍의 후계자를 자처했는데, 심지어는 나스와 제이-지도 투팍과 비기의 바이팅에 몸을 담기도 했다.5. 오토튠(Auto-Tunes)
Featuring T-Pain.
(지겹다고 욕할 필요 없다. 이것도 유행 지나면 분명히 이 시절이 그립다는 사람 나온다.)4. 언더그라운드
90년대 중•후반 퍼프 대디와 그의 일당, 그리고 추종자 무리의 득세로 말미암아 무림은 혼탁했으나 정의로운 은거 고수들이 대거 지하 세계에서 분연히 일어나 힙합계에 한 줄기 빛을 세우더라…는 주장은 좀 오버 같지만, 사실 저 시기 팬들의 인상이 실로 저러했다. 90년대 중반 팝-랩의 시대가 열리자 이른바 말하는 정통 힙합은 퇴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흔히 말하는 블록버스터 앨범과 랩 송의 흥행 레시피-클럽 뱅어(첫 싱글)+랩 발라드(세컨드 싱글)+하드코어 넘버(스크릿 크레드 수집용)로 15곡 정도 적당한 분량으로 섞고 유명한 프로듀서 향신료와 게스트 조미료 모아서 70분간 잘 저어주면 됨. 스킷으로 적당히 데코레이션하면 트랙리스트가 훨씬 풍성해 보임.-가 저 시기에 완벽하게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틀에 박힌 듯 똑같은 모양새만 계속 되는 메인스트림에 반대해 로커스(Rawkus) 레이블을 중심으로 한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반격은 엄청났는데, 실제 이 시기에 쏟아진 명작들의 양과 질은 황금기로 지칭되는 90년대 초•중반 못지않다. 당시 힙합에 입문한 친구들에게 블랙 스타(Black Star), 모스 뎁(Mos Def), 리플렉션 이터널(Reflection Eternal)의 3단 콤보는 성서였으며, 컴퍼니 플로우(Company Flow)는 그들의 신이었다. 라티릭스(Latyrx), 블랙칼리셔스(Blackalicious), 피넛 버터 울프(Peanut Butter Wolf), 언스포큰 허드(Unspoken Heard) 등등 수많은 명 아티스트의 명작이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대거 등장했다. 현지에서 열광적인 반응은 물론, 국내에서도 해외 언더그라운드 힙합 앨범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레코드 회사마저 생길 정도로 폭발적인 흐름이었다.
3. 믹스테입(Mixtape)
90년대에도 믹스테입 시장은 분명히 존재했으며, 힙합의 활성화에 큰 공헌을 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당시의 믹스테입 시장은 붓레깅 시장보다 작고 거물급 뮤지션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시장이었다고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물론, 어렴풋한 기억에 의존한 내용이라 큰 신뢰도는 없지만, 당시의 믹스테입 시장이 지금보다 컸으리라고는 상식적으로 상상이 안 된다. 하지만, 오늘날 믹스테입은 정규 음반시장 못지않은 어마어마한 시장으로 성장했으며, 이를 위한 시상식인 ‘저스토 어워즈(Justo Awards)’까지 생겨났다. 과거 DJ가 주도하던 이 시장이 지금은 거물급 뮤지션의 용돈 벌이이자 신작 홍보, 신인급 유망주의 예행연습 및 인지도 확충, 무명 뮤지션의 셀프 마케팅까지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믹스테입 시장을 지배했던 패푸즈(Papoose), 슬림 떡(Slim Thug)이나 카밀리어네어(Chamillionaire) 등의 뮤지션들은 플래티넘 랩퍼들보다 많은 돈을 믹스테입 시장에서 벌었다고 자부하는 시대다. 신인급 뮤지션의 정규 앨범보다 거물급 MC의 대작 믹스테입이 오히려 더 많은 팬들의 주목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러나 역으로 믹스테입 시장이 활성화될수록 메인스트림에서 성공하는 랩퍼들의 숫자는 해가 갈수록 적어지고 있으니 반작용 또한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2. Beef
싸움 구경은 언제나 재미있다. 싸움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오락 중의 하나일 것이다. 격투기와 전쟁, 범죄조직의 다툼마저 영화와 게임으로 오락화되어 재생산된다. 힙합은 음악으로 그 대결의 형식을 구현해 대중의 엄청난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 와중에 비극적인 참사도 있었지만, 정당한 기술의 겨룸은 언제나 팬들을 자극하며 해당 뮤지션들에게 기술적으로, 금전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투팍과 비기, 나스와 제이-지의 배틀 이후로 디스전은 힙합의 빼놓을 수 없는 흥행요소가 되었으며 에미넴과 피프티 센트, 캐니버스(Canibus), 캠론과 게임(Game), 자 룰 등의 뮤지션은 이 도구를 잘 활용해 스타덤에 올랐다. 힙합이 존재하는 한 배틀도 영원할 것이다.*참고: 디스는 단순히 랩이나 매체를 통해 설전을 벌이는 정도를, 비프는 이를 넘어 실제 물리적인 충돌까지 이르는 경우를 일컫는다.
1. g-Funk Era
힙합, 아니 현대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고 혁명적인 움직임 가운데 하나였다. 단순한 음악적인 유행 측면에서의 영향력뿐만 아니라 게토와 흑인 갱스터의 시각적 이미지 형성과 고착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이 시기 정립된 수많은 이미지가 확대/재생산되면서 블랙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거대화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나긋나긋하고 멜로디컬한 베이스와 선동적이며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리드 사운드로 대변되는 지-훵크는 랩 음악계의 후발주자였던 캘리포니아 빈민가를 한순간에 전미 음반산업계의 중심으로 옮겨놓았다. 너무 거칠고 단선적인 음악이며 역 인종차별적이고 선동적이라는 부정적 평가와 함께 음악의 가치 자체를 땅끝으로 끌어내리면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극을 이룩했고, 힙합음악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사운드의 현대화에 절대적인 기틀을 확립했다는 상반된 평가를 동시에 얻으며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다. 엄청난 상업적 파급력은 물론, 대단한 완성도의 걸작들을 쏟아낸 이 흐름 이후 발매된 거의 모든 랩 앨범은 이 시기 음악의 직간접적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사작성 / RHYTHMER.NET 예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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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소개구리 (2010-12-30 09:35:51, 119.71.79.**)
- 최고다 최고!!
"떼~쓰~로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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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온다 (2010-12-11 11:30:01, 123.141.40.***)
- 와 세번째로 강제소환 됐네.
왜 추천이 이거밖에 안되지. 다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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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히 워럽 (2010-10-16 12:48:32, 59.5.58.***)
- 역시 릴웨인은 짱이야^^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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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삿갓 (2010-10-05 13:46:38, 222.236.208.**)
- ㅎㅎㅎㅎ 잼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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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현 (2010-09-16 08:55:44, 121.137.28.**)
- 샤웃 아웃부분에서 뿜었다ㅋㅋㅋ"ㅋ랙"이랑 찌끼찌끼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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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2010-07-20 11:39:17, 74.100.101.***)
- 멋진글입니다 예동님!
하나하나 정말 재밌게 잘 써주셔서, 읽으면서 "아 이랬던적도 있었지" 하는 생각을 계속했습니다.
특히 가장 인상에 남는건 언더그라운드와 g-Funk 라고 할수 있겠네요.
음반시장이 죽어버리면서 가장 피해본 뮤지션들은 30-50 만장씩을 팔던 언더(?) 뮤지션들이라고 생각합니다. (Ex. Ras Kass 등등)
또 g-Funk는 정말 지금봐도 대단했지요, 유럽같은곳 g-Funk 매니악들은 west에 사는 사람조차 있는지 모르던 수백개의 g-funk음반들을 아직도 인터넷에 올려놓고, 또 그렇게 무명인 음반들을 들어보면 왜 무명인줄 알게되면서, g-funk의 아버지인 Dre가 왜 대단한지 알게되죠. (무명 g-funk음반들의 랩을 들어보면 정말 듣기가 괴로울 정도일떄가 많았습니다.)
다시한번 이렇게 멋진 article를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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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릭튜드 (2010-07-20 09:53:07, 175.114.24.***)
-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읽고 있으려니
해커에게 공격받기 전의 예전의 온전한 리드머 시절 때가 갑자기 그리워지네요.
그때는 진짜 주기적으로 몇 번이고 다시 꺼내 읽어도 다시 곱씹을 만한
좋은 기획기사, 리뷰, 인터뷰, 리플 토론들이 아주 많았는데...
쉽게 접하기 힘든 본토 씬 관련한 세세한 이야기나 인터뷰
꾸준히 번역해 올려주시는 유저분들도 여럿 계셨고...
그때의 데이터베이스들을 다시 온전히 복구할 수 있는지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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