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토픽] 힙합을 알기 위해 꼭 봐야 할 다큐멘터리 15 (1)
- rhythmer | 2014-10-29 | 17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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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일권
오늘날 그 경계가 많은 부분 허물어지긴 했지만, 탄생의 배경은 물론, 여러모로 인종과 환경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힙합(Hip Hop)을 해당 범위에서 벗어나 있는 이들이 온전히 이해하기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우리처럼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살고 있다면 더더욱 말이다. 다행인 것은 간접적으로나마 이를 경험하고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Documentary)가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 단순히 즐기는 음악 이상의 것을 담고 있는 힙합의 맛을 좀 더 제대로 알고 느끼고 싶다면, 다큐멘터리 필름만큼 좋은 매개체도 없다.
하지만 40여 년에 이르는 역사만큼이나 많은 수의 다큐들 중에서 무엇부터 봐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힙합 팬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여기, 힙합을 알기 위해 꼭 봐야 할 다큐멘터리 15편을 뽑아서 소개해본다.미국의 많은 매체들도 뽑은 유명 작품들과 별로 거론되지 않은 작품들을 총망라하여 주관적인 관점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작품들을 엄선하였으며, 특정 뮤지션이나 레이블을 다룬 작품보다는 힙합 문화 전반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을 선정하는 데 주력했다.
덧붙여서 힙합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필름이라 일컬어지는 [Wild Style]은 많은 이가 인식하고 있는 것과 달리 다큐가 아닌 극영화이므로 본 리스트에선 제외했으며, 스크롤 압박을 최대한 줄이고자 두 개의 파트로 나누어 게재함을 밝힌다.
Part. 1
Style Wars (1983)
가장 추앙받는 힙합 관련 필름을 뽑는다고 했을 때 이견의 여지 없이 많은 이가 거론하는 두 개의 작품이 있다. 바로 찰리 에이헌(Charlie Ahearn) 감독의 영화 [와일드 스타일, Wild Style]과 토니 실버(Tony Silver) 감독이 연출한 본작 [스타일 워즈, Style Wars]다. 이 다큐는 힙합의 4대 요소 중 하나인 그래피티 (Grafitti)를 주제로 다룬다. 당대 뉴욕 브롱스의 빈민가와 거리를 배경으로 그래피티가 젊은 흑인들에게 의미하던 바와 끼친 영향, 그리고 힙합 문화의 중요한 요소이자 예술 형태로서의 가치를 70여분의 시간 동안 역동적인 편집과 차분한 편집을 절묘하게 교차하며 담아내었다.특히, 어렴풋이 알고 있던 당시의 상황, 그러니까 ‘거리 낙서’이자 불법행위로 치부되던 그때의 그래피티 예술과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처했던 열악한 상황을 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오늘날 이 작품을 볼 힙합 팬들이 가장 흥미로워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일례로 기차를 주대상으로 했던 그래피티 행위를 막기 위해 두 개의 벽을 세우고 상단 철조망을 친 뒤, 벽과 벽 사이에 경비견까지 배치하는 강수를 둔 시의 대응은 당대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대변한다.
더불어 전설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당시 모습과 인터뷰, 작업 장면 등을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어릴 적 열차 사고로 한 쪽 팔을 잃게 되면서 기차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기차에 그래피티를 해나간 케이스투(Kase2)의 영상들은 특히 인상 깊다. 지난 2011년 사망한 그는 그래피티 레터링(lettering: 특정한 서체로 쓰는 글자, 시각적 효과 등을 고려하여 문자를 도안하는 것)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일명 ‘컴퓨터 락(Computer rock)’ 스타일의 창시자이다. 그야말로 [Style Wars]는 랩과 음악만이 힙합의 전부가 아니라는, 우리가 종종 잊곤 하는 이 기본적인 사실을 다시금 확실하게 일깨워준다.
Big Fun in the Big Town (1986)
1980년대 중반은 런 디엠씨(Run DMC), 엘엘 쿨 제이(LL Cool J),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 등이 랩스타로 등극하면서 힙합이 본격적으로 대중음악 씬 한복판에 진입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네덜란드 출신의 감독 브람 반 스플런트레(Bram Van Splunteren)가 연출한 본작은 바로 이 시기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약 40여 분의 시간 동안 뉴욕을 주무대로 힙합 음악이 블랙 커뮤니티 속 젊은 흑인들에게 의미하는 바와 인기를 얻게 된 배경 등이 진지한 시선을 통해 펼쳐진다.[Big Fun in the Big Town]에서 매우 인상적인 부분은 연출 방향이다. 유럽계 감독이 연출한 작품답게 전반적으로 다른 힙합 다큐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이다. 컷 편집의 호흡이 긴 편이고, 유럽 영화 특유의 정적이고 사색적인 정서가 곳곳에서 느껴지는데, 뉴욕 빈민가와 거리의 풍경을 담아낼 때 특히 도드라진다. 그래서인지 힙합 문화권 밖에 있는 이로서 힙합 문화와 그것이 가진 힘을 이해하고 알리려는 의도가 더욱 잘 전달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또한, 성장을 거듭하며, 전성기를 향해 나아가던 초기적 데프 잼(Def Jam) 사무실과 수장 러셀 시몬스(Russell Simmons), 스타가 되어 구입한 고급 캐딜락을 자랑하던 런 디엠씨의 디엠씨(DMC),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소리 낼 수 있다며 비트박스(Beatbox)를 선보이는 덕 이 프레쉬(Doug E. Fresh), 러셀 시몬스의 주의를 끌어 계약을 하고 싶은 맘에 데프 잼 앞에서 열정적인 랩 퍼포먼스를 펼치던 듀오 미스터리 크루(The Mystery Crew) 등의 모습이 담긴 본작은 그야말로 올드스쿨 힙합의 전성기가 시작되던 당대의 소중한 기록 그 자체다.
The Show (1995)
극영화와 드라마를 모두 아우르는 감독이자 제작자 브라이언 로빈슨(Brian Robbins)이 연출한 이 다큐는 힙합 문화를 좀 더 엔터테인먼트적인 방향에서 접근하여 다룬다. 그 중심에 놓이는 것은 제목처럼 '쇼(Show)'다. 로빈슨 감독은 데프 잼(Def Jam)의 수장 러셀 시몬스(Russell Simmon)를 제외하곤 자신은 물론, 뮤지션이 아닌 인물들의 시선이나 설명을 최대한 배제한 채, 철저히 뮤지션의 목소리와 무대를 통해서만 힙합을 전달한다.감독의 이력답게 영상미도 훌륭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큰 영향력을 과시하던 레이블 데프 잼 소속, 혹은 유통 뮤지션이 주가 되는 가운데, 스눕 독(Snoop Dogg)과 노토리어스 비아이쥐(The Notorious B.I.G) 같은 데프 잼 외 랩퍼들의 인터뷰와 공연 장면이 작품 내내 교차되며 이어지는데, 무대로 전환될 때마다 세련된 모노톤으로 연출한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는 열정적인 공연 무대를 통해 힙합의 매력과 멋을 전하고자 한 본작의 연출 의도를 더욱 잘 살려냈다.
여담으로 타이틀 시퀀스 이후, 러셀 시몬스가 수감 중인 슬릭 릭(Slick Rick)을 면회하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작품의 도입부는 영상을 통해 뿜어나오던 무대의 열기와 함께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지점이다.
Rhyme & Reason (1997)
피터 스파이럴(Peter Spirer) 감독이 연출한 이 다큐는 [The Show]와 함께 힙합의 황금기 한복판에서 등장했다. 스파이럴은 수많은 랩퍼들의 인터뷰를 통해 힙합 음악이 범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음반 산업계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기까지의 역사를 되짚는다. 랩/힙합의 음악적, 문화적 요소 대부분을 다루고 있기에 타 장르보다 후발 주자였던 힙합이 미 대중음악 씬에서 자생력을 갖추고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 과정을 살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이다.특히, 본작이 인상적인 건 이를 특별한 미화 없이 그러내는 와중에 장르를 둘러싸고 논란이 됐던 주요 이슈들, 이를테면, 힙합이 조장하는 폭력성이라든지 가사에 내포된 여성 비하 등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도심 빈민가의 모습과 랩퍼들의 증언을 통해 그곳의 아이들과 젊은 흑인들이 얼마나 각종 범죄와 위험에 쉽게 노출되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랩 가사 속에서 'Grindin'', 'Hustle' 등의 키워드를 자주 발견할 수 있는 이유를 대변하기도 한다.
사실 [라임 앤 리즌, Rhyme & Reason]은 무려 80여명에 이르는 당대 유명 랩퍼들의 인터뷰를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데, 그중에서도 '흑인이나 백인이나 범죄를 두려워하는 건 마찬가지다. 우리도 보호가 필요하다.'라고 역설하는 투팍(2Pac)의 인터뷰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Freestyle: The Art of Rhyme (2000)
랩이 레코드에 담기기 이전부터 오늘날까지 여전히 수많은 힙합 팬을 열광하게 하는 프리스타일 랩핑은 힙합의 중요한 성질 중 하나인 즉흥성이 예술로 승화된 대표적인 예다. 케빈 피츠제럴드(Kevin Fitzgerald)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프리스타일의 기술적, 예술적 측면을 깊이 있게 파고들며, 그 놀라운 세계로 우릴 안내한다.
초기 아프리칸-아메리칸 설교자들의 발화 방식, 자메이카의 전통적인 즉흥 보컬 기술 토스팅(Toasting), 랩의 초기 형태로 거론되는 스포큰 워드(Spoken Word) 등을 통해 프리스타일의 기원을 찾는 작업, 크레이그 쥐(Craig G), 슈퍼내츄럴(Supernatural), 엠씨 주스(MC Juice) 같은 프리스타일 거성들이 이야기하는 프리스타일 랩핑의 정수와 그들만의 방식 등은 상당히 흥미롭다.
더불어 영상 속 랩퍼들의 프리스타일 퍼포먼스는 때때로 경이로움마저 들 정도로 인상적인데, 특히, 17살의 노토리어스 비아이쥐(The Notorious B.I.G)가 브루클린 거리에서 프리스타일 랩을 선보이는 장면과 전설적인 랩 배틀로 기록되는 '크레이그 쥐 대 슈퍼내츄럴(Supernatural vs Craig G)' 배틀 씬은 전율 그 자체다. 한 마디로 본작은 프리스타일에 대한 모든 것이 축약되어 있는 다큐다.
Scratch (2001)
덕 프레이(Doug Pray) 감독이 연출한 [스크래치, Scratch]는 힙합 다큐멘터리 대부분이 랩과 비트메이킹을 중심으로 제작되던 가운데 디제이의 세계를 심도 깊게 다루며 주목받았다. 힙합의 탄생 시점부터 2000년대에 접어들 무렵까지의 힙합 씬 안에서 디제이의 존재감과 역할의 변천사가 쫙 펼쳐지는데, 그랜드 위자드 띠어도어(Grand Wizard Theodore), 믹스 마스터 마이크(Mix Master Mike), 엑스큐셔너스(X-ecutioners), 그랜드 마스터 플래시(Grand Master Flash), 디제이 큐벗(DJ Qbert), 디제이 바부(DJ Babu), 지-트립(Z-Trip), 디제이 크레이즈(DJ Craze) 등등, 수많은 거대한 이름들의 인터뷰가 이를 뒷받침한다.이 작품은 등장하는 전설적인 디제이들의 신기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전율을 일게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디제잉을 단순히 힙합의 4대 요소 중 하나로써가 아니라 턴테이블리즘(Turntablism)이라는 독자적인 예술 형태로써 바라보고자 했다는 점이다. 실제 작품 속에서 큐벗을 비롯한 몇몇 디제이들은 더 이상 디제잉을 힙합의 일부로만 볼 순 없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여기엔 랩 음악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점점 디제이가 랩퍼의 보조 역할로 치부되는 현실 및 디제잉 기술이 이제는 전통적인 힙합 프로덕션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 복잡하고 다양하게 진화했다는 사실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본작은 바로 이 지점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그야말로 [Scratch]는 힙합을 탄생시킨 디제이에 대한 덕 프레이 감독의 진심 어린 헌정이자 그들의 존재를 소홀하게 여겨온 세계의 힙합 팬들에게 보내는 묵직한 메시지다.
Beef (2003)
앞서 언급한 [Rhyme & Reason]을 연출했던 피터 스파이럴 감독이 힙합 문화가 안고 있는 위험한 부분 중 하나이면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한 디스전에 카메라를 들이댄 작품이다. 제작은 퀸시 존스(Quincy Jones)의 아들이자 프로듀서 큐디 쓰리(QDIII)가 맡았다. 스파이럴은 주관적인 시선으로 비프(Beef)의 양면을 다루기보다 비프의 역사와 행위 자체를 부각하는 데 주력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동시에 선사한다.
공식적인 랩퍼 간의 첫 번째 비프로 기록된 '쿨 모 디(Kool Moe Dee) 대 비지 비(Busy Bee)'부터 '케이알에스 원(KRS-One) 대 엠씨 샨(MC Shan), '닥터 드레(Dr .Dre) 대 이지 이(Eazy-E)', '투팍(2Pac) 대 노토리어스 비아이쥐(The Notorious B.I.G)', '제이 지(Jay-Z) 대 나스(Nas)', '피프티 센트(50 Cent) 대 자 룰(Ja Rule)' 등등, 힙합 역사 속에서 본작이 공개된 2003년 이전까지 있었던 주요 디스전이 총망라되어 있다. 비프를 벌인 당사자들과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동료 뮤지션, 그리고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드러나는 비화도 흥미롭지만, 가장 가치 있는 건 힙합 뮤지션들 사이에서 비프가 생겨나는 배경을 비롯하여 비프와 음악 사이의 연결 고리에 관해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점이다.특히, 본작엔 그동안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몇몇 희귀 영상들이 수록되어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닥터 드레 사단과 이지 이 사단 사이의 갈등이 최고조였던 당시 네잇 독(Nate Dogg)과 비쥐 낙 아웃(B.G Knocc Out), 드레스타(Dresta)가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장면은 그 대표적인 예다. 한편, 다큐의 성공으로 이후, 2,3편도 제작되었지만, 이 1편만큼의 인상은 남기지 못한다.
Part. 2에서 계속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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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ulgang (2014-11-08 01:30:05, 218.37.198.**)
- 아마존을 비롯한 국외 판매 사이트에서 DVD 구입, 혹은 아이튠즈에서 검색해보시면 다운로드로 가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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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호 (2014-11-05 05:31:59, 121.159.72.**)
- 이 영상들 어디서 찾아볼 수 있나요
보고싶은데 찾아도 나오질 안네요 혹시 아시는 분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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