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토픽] 실험적인 힙합의 선두주자들 1부
- rhythmer | 2015-05-12 | 20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힙합 음악에서도 원칙이라 여겨지던 것들이 붕괴될 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또 다른 혁신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작금의 많은 힙합 뮤지션들은 유행과 트렌드에 과하게 의존하고 있으며, 뚜렷한 자기 색깔이 아닌, 메인스트림에서 통용되는 관습에 지나치게 얽매어 있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발상을 통해 인정받고자 하는 아티스트들에 의해 틀에 박힌 낡은 방식에서 벗어나려는 창의적인 시도와 실험은 언더그라운드를 중심으로 왕성하게 이뤄지고 있다.비록, 그들 대부분이 거둔 상업적인 성과는 매우 제한적이었지만, 온갖 장르를 버무린 퓨전 사운드와 개성, 즉흥성을 중시하는 태도,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자유분방함은 소수의 열광적인 추종자들을 낳았다. 더불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이들의 근성과 집요함은 힙합뿐만 아니라 음악계 전반에 걸쳐 신선한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최근 그러한 실험적인 힙합 음악은 양과 질 모든 면에서 큰 성과를 올리며,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차원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국외 익스페리멘틀 힙합(Experimental Hip Hop) 씬을 주도하고 있는 뮤지션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 거론되는 뮤지션과 음악을 통해 힙합의 또 다른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1. 블랙키(Blackie a.k.a B L A C K I E... In All Caps, With Spaces)
휴스턴 출신의 래퍼 겸 프로듀서 블랙키는 언제나 야성미가 넘친다. 노이즈 랩(Noise Rap)이라는 명칭으로 따로 분류될 만큼 개성이 확실한 그의 음악에선 대부분 난잡함을 극도로 강조한 인더스트리얼(Industrial) 비트와 맹렬한 하드코어 펑크(Hardcore Punk) 연주, 그리고 무거운 분위기의 거친 전자음이 전면에 등장하여 혼란을 가중시키고, 그 위에 날카롭고 저돌적인 블랙키의 보컬이 얹히며 긴장을 더욱 고조시킨다. 그는 안정적인 리듬이나 음정, 또는 규칙적인 구조에 결코 의존하지 않고 변화무쌍한 사운드와 자유롭게 전개되는 즉흥적인 양식만을 고집하며, 이 같은 방향성은 음악을 무기 삼아 세상의 온갖 부정의를 향해 격노를 터뜨리고자 한 블랙키의 의도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물론, 기존 어법에 익숙한 이들에겐 블랙키의 음악이 다소 이질적으로 들리겠지만, 실험성과 신념을 두루 갖춘 그의 노래는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훌륭한 영감이 될 것으로 보인다.
2. 블루 데이지(Blue Daisy)
영국 힙합을 대표하던 그라임(Grime) 씬이 그 파괴력을 상실한 이후에도 언더그라운드를 중심으로 한 다수의 영국 랩 뮤지션들은 그들만의 방식을 통해 힙합을 끊임없이 재해석해왔다. 런던 출신의 래퍼 블루 데이지 역시 그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다. 지난 2009년 발매된 데뷔 싱글 “Space Ex”를 통해 일찍이 음악성을 인정받은 이후에도 독특한 상상력과 타고난 재능을 기반삼아 참신하고 신선한 감각이 돋보이는 곡들을 쉴 새 없이 쏟아내며, 전 세계의 수많은 팬들을 매료시켰다. 그의 곡 대부분은 어둡고 서늘한 분위기가 주를 이루지만, 각종 장르가 혼재된 다채로운 전자음과 몽환적인 멜로디, 그리고 의도적인 잡음 등이 변화무쌍하게 뒤섞이며 극적인 반전이 거듭되고 흥미로운 전개가 이어진다. 사운드 못지않게 블루 데이지의 가사 역시 상당히 인상적인데, 그는 다양하고 독창적인 비유를 통해 주변 현실을 생동감 넘치게 그려내고 때로는 초현실적인 노랫말을 활용해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본인의 감정까지도 탁월하게 묘사하며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3. 사울 윌리엄스(Saul Williams)
사울 윌리엄스가 추구하는 음악은 그 어떠한 고정 관념에도 기대지 않는다. '90년대에 데뷔한 이래 한결같이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던 그는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쌓아온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음악 재료를 선정하고 그것들을 배합하며,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사운드 실험에 있어 빼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그 덕에 빠르게 변화하는 음악 팬들의 취향과 메인스트림 시장의 획일화된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앨범마다 젊은 감수성을 자극하는 독특한 감각과 남다른 스타일로 대중과 평단의 이목을 동시에 집중시켰던 그는 지금까지도 타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통한 창조적 교류를 쉼 없이 도모하고 제 3세계 음악 등, 미개척 분야에 대해서도 꾸준히 연구하며 본인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20대 초반 작가로 등단해 현재 시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사울 윌리엄스는 세련되고 간결한 언어들을 활용해 가사를 구성하는데 천부적인 소질을 보이고 있으며, 이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그의 육중한 보이스 역시 탁월한 전달력을 지닌다. 다섯 번째 정규 앨범 [Martyr Loser King] 준비에 막바지 비지땀을 쏟고 있는 그는 지난 4월 수준급의 새 싱글 “Burundi”를 공개하며 또 한 번 팬들을 설레게 했다.
4. 시티스 아비브(Cities Aviv)
캅왓치(Copwatch)라는 이름의 펑크(Punk) 밴드로 음악계에 처음 발을 들인 멤피스 출신의 시티스 아비브는 만 22살이 되던 2011년,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첫 믹스테입 [Digital Lows]를 발매하며 힙합 뮤지션으로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이미 어릴 적부터 음향학과 각종 실험 음악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장르와 시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통해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하고자 부단히 노력해왔으며, 그 결과 그의 노래에선 세련미나 화려함보다는 자유로움이 더욱 물씬 풍긴다. 특히, 통통 튀는 드럼 비트와 소울풀한 보컬 샘플, 그리고 단순한 멜로디의 몽롱한 전자음 등이 다채롭게 버무려진 독특한 칠웨이브(Chillwave) 사운드는 고전적인 멋과 진보적인 감각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하나의 고정된 스타일로는 결코 규정할 수 없는 시티스 아비브만의 음악 세계를 명확히 대변한다. 또한, 르자(RZA)나 데스 그립스(Death Grips)의 MC 라이드(MC Ride)와도 종종 비교되는 그의 투박한 플로우는 어떠한 비트 위에서도 묵직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다소 난해하지만, 진중한 주제의식을 가진 그의 가사 역시 강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시티스 아비브는 올해 5월 초 그 특유의 미래지향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새 정규 앨범 [Your Discretion Is Trust]를 발매하며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했다.
5. 랫킹 (Ratking)
촉망받는 두 명의 신예 래퍼 위키(Wiki)와 학(Hak), 그리고 프로듀서 스포팅 라이프(Sporting Life)로 구성된 뉴욕 출신의 힙합 트리오 랫킹(Ratking)은 이미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밝혔듯이 기존 힙합의 관행과 방법론을 탈피하겠다는 뚜렷한 지향을 갖고 있다. 그룹이 지금껏 내놓은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그 목표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014년 발매된 그룹의 첫 정규작 [So It Goes]는 이를 여실히 증명하는데, 독창적인 보컬 샘플과 변칙적인 드럼 연주, 그리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효과음 등이 역동적으로 버무려진 독특한 사운드는 스포팅 라이프의 우수한 감각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난해하고 추상적인 단어들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도 핵심은 결코 놓치지 않는 위키와 학의 랩핑 역시 짜릿한 희열을 안겼다. 멤버들은 특정 양식에 구애받지 않는 과감한 실험 정신을 추구함으로써 프로듀싱과 메시지 모든 면에서 보편적인 힙합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었고 이는 많은 이들에게 창조적 영감이 되었다. 랫킹은 지난 3월 깜짝 발매한 EP [700 Fill]에서도 이러한 지조와 신념을 변함없이 이어갔으며, 현재까지도 독자적 영역을 확고히 하고자 정진하고 있다.
2부에서 계속20
-
-
- 신숭털 (2015-05-14 14:52:21, 121.130.227.**)
- 세상은 넓고 좋은 아티스트는 많다. 시티스 아비브 좋네요. 제가 너무 좋아하는 사운드~
-
- asym (2015-05-12 19:38:33, 210.0.57.***)
- 영양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