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토픽] 불륜을 노래했지만, 낭만적인 R&B 베스트 5
- rhythmer | 2016-04-06 | 9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
얼마 전 표지에 적힌 대범한 글귀가 인상적이라 책방에서 들고 온 책이 있다. 송아람 작가의 [자꾸 생각나]라는 작품이었다. 이야기는 각자 애인이 있는 만화가 두 명이 눈이 맞아 쿵작쿵작한다는 내용이었다. 남녀 간의 심리묘사가 매우 현실적으로 표현되어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임에도 지루하지 않게 읽었다.“나 오늘 안 들어갈 건데요. 들어가기 싫다구요 오늘”
이 책을 읽고 문득 생각난 게 있어 곡들을 추려봤다. 자꾸 생각난다 해도 실행에 옮겨선 안 되는 상황, 불륜을 노래하는 곡들 중 가장 낭만적이라 생각하는 5곡이다. 혹자는 가정파탄을 불러일으킬 불륜을 노래하는데 어떻게 낭만적이란 말을 쓸 수 있느냐고 하겠지만, 일단 한 번 들어보시라. 장담하건대 듣는 순간 치명적인 낭만을 느끼게 될 것이다.
Billy Paul - Me And Mrs Jones (1972)
필리 소울(Philly Soul)의 거장 빌리 폴의 유일한 싱글 차트 1위 곡이다. 빌리 폴에겐 20여 년의 무명 설움을 날려준 곡이면서 불륜에 관한 곡 중 가장 낭만적인 곡이 아닐까 싶다. 1934년생인 빌리 폴의 첫 번째 레코딩은 1952년이었고, "Me And Mrs Jones"는 1972년에 나왔다. 만약 빌리 폴이 음악에 대한 끈기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 훌륭한 곡을 다른 이의 목소리로 들었을지도 모른다.
존스 여사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카페에서 손을 잡고 주크박스에서 흐르는 곡을 들으며, 사랑을 나누는 사이지만, 그녀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다. 그럼에도 내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또 만나자는 내용의 곡에서 빌리 폴이 후렴구인 'Me And Mrs Jones~'를 외치는 부분은 그야말로 낭만의 절정이 아닐 수 없다.
필리 소울 특유의 따뜻한 관악기 파트와 여성 코러스까지 모든 게 완벽한 곡이다. 스튜디오 버전뿐만 아니라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많은 라이브 버전 중 어떤 걸 누르더라도 애틋하고 감성 터지는 빌리 폴의 보컬을 들을 수 있다.
곡의 도입부는 바비 브라운(Bobby Brown)의 히트곡 "Girlfriend"에 샘플링으로 쓰이기도 했으며, 쿨리오(Coolio)의 히트 앨범 [Gangsta's Paradise]에 수록된 "A Thing Goin’ On"에 후렴구가 차용되기도 했다.
Atlantic Starr - Secret Lovers (1985)
알앤비 그룹 애틀랜틱 스타의 1985년 곡 "Secret Lovers"다. 당시 멤버 중 바바라 웨더스(Barbara Weathers)와 데이비드 루이스(David Lewis)가 함께 불렀으며, 싱글 차트 3위,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에선 정상을 차지했다.
각자 가정이 있으면서도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연인들을 노래한 곡으로, 특히, 배우자가 집에 도착하기 전에 애인의 전화를 걱정스럽게 기다린다는 내용의 가사가 무척이나 조심스러우면서도 애틋하게 느껴진다. 요즘 같으면 집 전화가 아닌 휴대 전화나 문자 메시지를 보내겠지만 말이다.
비록, 두 가정이 무너질 수 있는 위험한 사랑을 노래하지만, 영롱한 바바라의 목소리와 드럼, 베이스, 건반 등등, 모든 악기가 낭만적으로 어우러진다. '이게 과연 불륜을 노래하는 곡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알앤비 트랙.
Mokenstef - He's Mine (1995)
'90년대 알앤비 계의 대표적인 원히트원더 곡 중 하나다. 3인조 그룹 모켄스테프의 곡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7위까지 올랐다. 'Mokenstef'이란 팀 명을 처음 접했을 땐 ‘More, Can, Step' 같은 단어들의 조합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단순히 멤버들의 이름 앞글자인 모니파(Monifa), 케냐(Kenya), 스테파니(Stefanie)를 딴 거였다. 마치 TLC나 SES처럼 말이지.
이 곡은 설정이 독특하다.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남편의 아내인 화자가 불륜녀에게 불러주는 노래이다. 나온 지 20년이 넘은 곡이지만 유튜브 댓글에서는 여전히 바보 같은 가사라는 반응과 현실적인 가사라는 반응이 존재한다.
그도 그럴 것이 화자의 반응이 보살에 가깝기 때문이다. 당신은 겨우 하룻밤이지만, 나는 평생 그를 가진다는 후렴구('He's mine, You may of had him once, But I got him all the time')를 보시라. 혹자는 이 곡을 듣고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이 모니카 르윈스키(Monica Lewinsky)에게 불러주는 모습을 상상하기까지 했다고....
가사 자체는 우스꽝스러울지 몰라도 이 곡의 진짜 낭만은 '90년대 특유의 넘실거리는 그루브에 있다. 투팍(2Pac)의 “Keep Ya Head Up"에도 쓰였던 잽 앤 로저 (Zapp & Roger)의 "Be Alright”과 프린스(Prince)의 “Do Me, Baby"에서 리듬과 멜로디를 샘플링한 곡은 시종일관 끈적이는 흥겨움을 선사한다.
Phoebe Snow - Poetry Man (1974)
포크, 블루스에서 소울, 어덜트 컨템포러리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고 기타 치며 노래하는 포비 스노우의 대표곡이다.
발표 당시 싱글 차트 5위,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에서는 정상을 차지했다. 일단 제목부터가 낭만적이다. 'Poetry Man'이라니. 하지만 그는 아내가 있는 남자, 피비 스노우는 남자에게 집에 가지 말고 계속 얘기를 나누자고 요청한다. 이후, 블랙뮤직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선보이는 퀸 라티파(Queen Latifah)와 잽 마마(Zap Mama)가 리메이크하고, 피비 스노우는 잽 마마와 함께 무대에서 이 곡을 부르기도 했다.
특히, 이 곡은 피비 스노우가 생애 두 번째로 작곡한 곡이며, 그녀가 십 대 시절 만든 곡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곡이라고 하니 대체 피비는 그 어린 시절 어떤 아저씨를 만났던 걸까 궁금해진다. 요즘 같았으면, 아청법 같은 단어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곡엔 그런 부정적인 느낌이 아닌 그저 낭만만이 줄줄 넘쳐 흐른다. 피비 스노우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을 그 'Poetry Man'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
많은 사람이 노래 속 'Poetry Man'으로 그녀의 음악 동료 중 하나였던 잭슨 브라운(Jackson Browne)이 아닐까 추측했지만, 피비 스노우는 1989년 USA Today와 인터뷰에서 이를 부인한 바 있다.
Whitney Houston - Saving All My Love For You (1985)
역대 소울 보컬 중 가장 우아한 보컬로 평가받는 휘트니 휴스턴도 불륜을 노래했다. 남자가 화자에게 아예 도망가자고까지 한다. 싱글 차트,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 알앤비/힙합 송 차트 1위에 빛나는 "Saving All My Love For You"다.
휘트니 휴스턴의 오리지널 곡은 아니다. 1978년, 마릴린 매쿠(Marilyn McCoo)와 빌리 데이비스 주니어(Billy Davis Jr)가 함께한 앨범에 수록된 게 원곡인데, 이후, 휘트니가 원곡을 훨씬 뛰어넘는 버전으로 리메이크해버렸다. 이 정도면 죽어가던 곡에 휘트니가 심폐소생기를 댄 수준이 아니라 아예 재탄생시켰다고 봐야 할 듯하다.
작곡자인 마이클 매써(Michael Masser)가 이 곡의 리메이크를 제안했을 때 휘트니의 모친인 씨씨 휴스턴(Cissy Houston)은 딸이 불륜을 노래하는 걸 반대했지만, 휘트니는 결국 리메이크 제안을 받아들였고, "Saving All My Love For You"는 그녀의 초기 커리어에서 대표곡으로 남았다.
비록, 아내가 있는 남자와 사랑을 노래하지만, 휘트니 휴스턴의 우아하면서 시원시원한 가창력 덕에 불륜이란 소재가 품은 부정적 느낌은 완전히 희석되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지만, 이 시절의 휘트니는 그 자체로 로맨틱하다.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