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토픽] 2017 상반기, 이 앨범들도 놓치지 마오
- rhythmer | 2017-07-30 | 28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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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더 정확하게는 CD로 대표되는 피지컬 음반 판매량이 심각하게 줄어든 건 비단 한국대중음악계만의 상황이 아닙니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죠. 하지만 앨범의 가치마저 함께 떨어진 한국과 달리 여전히 미국과 유럽대중음악계에서 앨범의 위상은 다를 바 없습니다.창작 활동의 구심점으로 삼는 건 여전히 앨범이며, 무엇보다 아티스트 대부분이 앨범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그렇기에 매년 그렇게 많은 앨범이 쏟아지는 것 아닐까 싶네요. 그중에서도 정규작은 물론, 무료 앨범과 믹스테입(Mixtape) 등이 하루에도 몇 장씩 발표되는 힙합, 알앤비 씬은 오히려 피지컬 음반이 힘을 발휘하던 시대보다 더 활발해진 모습입니다.
리드머에선 매년 국내 앨범뿐만 아니라 국외 블랙뮤직 신보 또한 부지런히 다루려고 노력 중입니다. 앨범에 관한 담론이 워낙 빠르게 사라지는 요즘이라 보통 발매된 지 한 달 반 안에 게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죠. 그러나 인력과 시간의 한계 탓에 리뷰하지 못하는 작품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래서 저희 필진들이 정식 리뷰로 다루진 못했지만, 올해 상반기에 모르고 지나치면 아쉬울만한 앨범들을 엄선해봤습니다. 그러니까 R 점수 4 이상의 작품들이 되겠습니다.
여전히 눈에 밟히는 작품들이 많으나 정식 리뷰란과 함께 이 기사가 좋은 가이드가 되길 바라며....
Matt Martians - The Drum Chord Theory (2017.01.26)
완성도 높은 앨범을 연속으로 발표하며 ‘믿고 듣는’ 반열에 오른 밴드 인터넷(The Internet)의 프로덕션의 중심에는 키보디스트이자 프로듀서인 맷 마션즈(Matt Martians)가 있다. 그런 그가 올해 1월 처음으로 발표한 솔로 앨범 [The Drum Chord Theory]는 밴드에선 들을 수 없었던 그만의 사운드로 가득하다. 밴드의 앨범처럼 트립 합, 네오 소울, 힙합, 일렉트로닉 등등, 다양한 장르들이 섞여 있다. 그러나 전보다 사이키델릭한 소스가 많이 사용되었으며, 훨씬 밝고 청량하면서 꿈결을 거니는 듯한 무드로 마감되었다. 과장된 베이스라인과 리얼 드럼 소스가 어우러진 네오 소울 트랙 “What Love Is”나 트랙 전반에 깔린 몽환적인 신시사이저가 인상적인 사이키델릭 알앤비 “Dent Jusay” 등은 앨범의 성격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트랙들이다. 사랑과 여인을 주제로 단순하지만, 마음을 건드리는 시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가사도 프로덕션과 어우러져 진한 여운을 남긴다. 다만, 상대적으로 평범한 음색을 커버하기 위해 코러스를 잔뜩 쌓은 보컬은 흐릿한 멜로디 라인과 맞물려 그다지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어쨌든 [The Drum Chord Theory]는 밴드의 보컬인 시드에 가려져 있던 맷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황두하)
Syd - Fin. (2017.02.03)
시드(Syd)는 밴드 인터넷(The Internet)의 보컬로서 팀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2015년에 발표한 블랙뮤직 앨범 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히는 세 번째 정규 앨범 [Ego Death]는 밴드의 만개한 음악적 역량과 시드의 매력적인 캐릭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올해 2월 발표한 시드의 첫 번째 솔로 앨범 [Fin.]은 그녀의 매력이 더욱 극대화된 작품이다. 앨범의 프로덕션은 밴드 때와 다르게 미국 메인스트림 힙합/알앤비 사운드에 더욱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는데, 나긋나긋한 톤의 보컬과 캐릭터로 인해 기존 결과물과 다른 색깔을 보여준다는 점은 특기할만하다. 강렬한 신시사이저가 주도하는 트랩 비트 위로 자기과시 가득한 가사를 내뱉는 “All About Me”는 대표적. 본인이 직접 프로듀싱에도 참여했다는 점에서 더욱 고무적이다. 또한, 곡마다 캐치한 라인을 배치하여 시종일관 귀를 잡아끄는 지점에선 이전보다 노련해진 시드의 멜로디 메이킹을 체감할 수 있다.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전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성공, 사랑, 이별 등, 개인적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가사들 역시 흥미롭다. [Fin.]에는 현 미국 블랙뮤직 씬에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 중 한 명인 시드라는 인물이 오롯이 담겨있다. (황두하)
L's - Funkfornia (2017.02.07)
아마도 많은 이에게 생소할 아티스트 엘스(L's)는 롱비치 출신의 프로듀서다. 지난 2005년, 래스 캐스(Ras Kass), 트윈즈(The Twinz), 포썸(Foesum), RBX(알비엑스), 슬라이 부기(Sly Boogy) 등, '90년대 웨스트코스트 힙합 전성기의 한복판에서 활약했던 랩퍼들을 초빙한 앨범 [Long Beach City Limits Vol.1]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참여 진과 타이틀이 심어준 기대에 부흥하지 못했던 이 앨범의 'Vol.2'는 나오지 않았고, 자연스레 엘스란 이름도 묻혔다. [Funkfornia]는 그로부터 12년 만에 나온 새 솔로 앨범이다. 합작 앨범을 내기도 했던 랩퍼 테크닉(Techniec/LBC Crew)이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한 가운데, AMG, 보락(Bo-Roc of The Dove Shack), RBX 등, 쥐펑크 시대(G-Funk Era)를 경험한 이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참여 진이 눈에 띈다. 전작부터 함께한 서부 언더그라운드의 재능 블루(Blu)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다만, 완성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엘스가 디지털 작법과 라이브 연주를 병행하여 주조한 프로덕션은 이른바 로우라이딩(Lowriding) 바운스와 레이드-백(Laid-Back)한 그루브를 넘나들며 회전 없는 롤러코스터처럼 짜릿한 흐름을 형성한다. '90년대 캘리포니아 컴튼을 중심으로 한 쥐펑크 프로덕션과 이를 오늘날 댐펑크(Dam-Funk)가 발전적으로 계승한 모던 펑크(Modern Funk) 사운드가 한데 펼쳐지며 적잖은 여운을 남긴다. 코드, 리듬, 베이스, 멜로디, 모든 부분에서 [Funkfornia]는 ' G-Funk Era'를 성공적으로 재현해냈다. (강일권)
Roc Marciano - Rosebudd's Revenge (2017.02.24)
2000년대 힙합에서 마피아 콘텐츠를 담은 마피오소 랩(Mafioso Rap, 혹은 범죄 랩)은 '90년대에 비해 비중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아마 제이-지(Jay-Z)가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던 [American Gangster] 정도가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마피아 랩 앨범일 것이다. 올해 네 번째 솔로 앨범으로 돌아온 락 마르시아노(Roc Marciano) 이처럼 주류에서 보기 어려워진 마피아 랩 스타일만 꾸준히 고집하는 아티스트다. 랩보다 프로덕션에 힘을 집중했던 3집과 달리 외부 프로듀서의 초대가 늘었을 뿐, 그리 빠르지 않은 랩과 음산한 분위기를 즐기는 성향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마르시아노는 현악 음으로 주도하는 비트와 읊조리듯 연발하는 랩 속에서 라임을 연사하고("History"), 싱어 루 코트니(Lou Courtney)의 소울 넘버를 샘플링하며("Killing Time"), 프로듀서 애니모스(Animoss)와 함께 중독적인 피아노 루프로 귀를 사로잡기도 한다("Burkina Faso"). 총기와 각종 범죄를 의미하는 기가막힌 비유는 이번 앨범도 예외가 아니어서, 언제나 그랬듯이 마르시아노의 앨범은 무궁무진한 콘텐츠 덩어리로 보인다. 직유와 은유를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즐기는 듯한 마르시아노의 랩은 여전히 매력적이며, 묘한 중독성을 갖고 있다. 쿨 쥐 랩(Kool G Rap)과 래퀀(Raekwon)처럼 마피아 랩에서 떠오르는 인물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올해 새 앨범을 만들었지만, 락 마르시아노의 앨범보다 강한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그래서인지 마르시아노가 본작을 통해 진정한 마피아 랩의 적자는 본인뿐이라고 외치는 듯도 하다. (양지훈)
Stormzy – Gang Signs & Prayer (2017.02.24)
시대의 변화와 함께 곧 사라질 것처럼 보였던 그라임(Grime) 씬은 패기와 재능을 두루 갖춘 젊은 래퍼들의 등장으로 다시금 빛을 보고 있다. 날 선 가사와 역동적인 래핑으로 데뷔 초부터 두각을 드러낸 스톰지(Stormzy) 역시 이 흐름에 일조해 왔으며, 올해 발매된 첫 정규작 [Gang Signs & Prayer]는 한층 발전된 그의 음악적 역량을 여실히 보여준다. 앨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단연 사운드다. 맹렬하게 휘몰아치는 전통적인 그라임 비트는 물론, 깔끔하게 정제된 알앤비 리듬과 드라마틱한 가스펠 사운드, 그리고 독특한 느낌의 보컬 샘플까지, 여러 요소가 다채롭게 어우러져 시너지를 만들어 낸다. 그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흥미롭게 전개하는 스톰지의 탄력적인 플로우는 여전히 강한 흡인력을 발휘하고, 자신의 가치관과 믿음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진솔한 노랫말 역시 한 차원 높은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스톰지는 랩 씬의 모순과 그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뱉어내며 한없이 날카롭다가도(“Big For Your Boots”, “Shut Up”), 때론 과거를 반추하며 사색에 잠기고(“100 Bags”, “Don't Cry For Me”), 나아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Blinded by Your Grace, Pt. 2”). 이렇게 다양한 모습이 앨범 곳곳에 산재함에도 전체적인 감상이 방해받지 않는 이유는 이야기를 극적으로 풀어내는 그의 탁월한 내러티브 덕이다. 본작은 이러한 성과들에 힘입어 그라임 앨범으론 처음으로 영국 앨범 차트 1위에 올랐으며, 걸출한 신예의 등장과 동시에 영국 힙합의 새로운 도약을 알렸다. (지준규)
J.I.D. – The Never Story (2017.03.10)
메인스트림으로만 한정하자면, 붐뱁 힙합은 매해 트렌드에 밀려 소멸되었다가 새로운 인물의 등장을 통해 재탄생하길 반복한다. 그런 의미에서 금년에 붐뱁 사운드를 재조명한 인물은 제이아이디라고 단언할 수 있다(J.I.D. *지드라고 발음하기도 한다). 그는 제이 콜(J. Cole)의 레이블인 드림빌(Dreamville)이 심혈을 기울여 지원해주고 있는 신인으로, 흥미롭게도 트랩 사운드의 고향인 애틀랜타 토박이 출신이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본작에는 전통적인 붐뱁 트랙뿐만 아니라 트랩요소를 가미한 트랙들(“Never”, “Underwear”)과 노래 실력을 한껏 뽐낸 발라드 트랙(“Hereditary”, “All Bad”)도 존재한다. 그러나 앨범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는 단연 지드의 랩이다. 앤더슨 팩(Anderson. Paak)이 연상되는 가늘면서도 소울풀한 목소리로 변화무쌍한 플로우 변화를 들려준다. 드림빌 출신답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도 수준급이다. 과거 그가 행한 실수와 음악적 포부, 그리고 그 외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야기가 본작을 아우르는 주제들이다. 무엇보다 그 평범함 속에 숨겨진 비범함을 발견할 때 진한 감흥이 느껴진다. (조성민)
Devin the Dude - Acoustic Levitation (2017.03.10)
비록 상업적으로 큰 성공은 이루지 못했지만, 데빈 더 듀드(Devin the Dude)는 꾸준한 언더그라운드 활동과 앨범 발표, 그리고 변하지 않는 스타일로 인정받는다. 특히, 닥터 드레(Dr. Dre)의 [2001]에서 특유의 간드러지는 랩과 보컬로 전 세계 힙합 팬들에게 큰 인상을 남긴 바 있다. 나른한 무드가 바로 떠오르는 타이틀 [Acoustic Levitation]에서도 데빈 더 듀드의 스타일이 주는 감흥은 여전하다. 첫 트랙 "Can I"에서부터 그 정수를 맛 볼 수 있다. 늘어지듯 흘러가는 베이스 멜로디 사이로 랩과 보컬을 오가며 능글맞게 추파를 던지는 모습이 만든 무드는 오로지 그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프로덕션 또한 앨범의 마지막까지 특유의 바이브를 유지하면서도 지겹지 않게 강약 조절이 잘 잡혀있다. 더불어 효과적인 정석적 라이밍을 비롯하여 말을 건네듯 다가와 뛰어난 스토리텔링을 선보이는 가사는 데빈 더 듀드가 얼마나 뚜렷한 비전을 바탕으로 자신의 음악과 앨범을 완성하는 아티스트인지를 보여준다. (남성훈)
Murs - Captain California (2017.03.10)
오랜 시간 꾸준히 활동해온 베테랑이자 지금은 테크나인(Tech N9ne)의 레이블 스트레인지 뮤직(Strange Music)에 둥지를 튼 머스(Murs)는 아니나 다를까, 올해도 정규 단위의 결과물을 내놓았다. 합작 앨범과 EP를 합치면 30여 장에 달하는 방대한 커리어 이상으로 놀라운 건, 이 어마어마한 작업량 속에서도 작품의 완성도가 거의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열 번째 솔로 앨범 [Captain California]에선 머스의 다채로운 면모를 가감 없이 즐길 수 있다. 첫 트랙 “Lemon juice”에선 레이블 동료 커티스 킹(Curtiss King)과 익살스레 벌스를 주고받는가 하면, “GBKW(God Bless Kanye West)”에선 진중한 어조로 사회문제를 다루기도 한다. 이외에도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식으로 풀어낸 “Shakespeare On The Low”, 만화 [심슨 가족, The Simpsons]의 캐릭터 바트 심슨의 대사를 가져온 “Ay Caramba” 등,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앨범을 이끌어간다. 데뷔한 지 어느덧 20년이 넘어가지만, 머스의 퍼포먼스와 날카로운 스토리텔링은 여전히 건재하다. (이진석)
Otis Junior & Dr Dundiff - Hemispheres (2017.03.17)
생소한 아티스트의 인상적인 결과물을 접할 땐 언제나 짜릿하다. 알앤비/소울 듀오 오티스 주니어(Otis Junior)와 닥터 던디프(Dr Dundiff)의 첫 번째 앨범 [Hemispheres]처럼 말이다. 미국 켄터키 주에 있는 도시 루이빌에서 열린 알앤비 콘테스트에서 DJ와 참가자로 만난 이들은 우아하고 달콤하며, 소울풀한 곡들로 앨범을 채웠다. '70년대 소울은 물론, '90년대 네오 소울의 영향과 자유분방한 기운이 보기 좋게 어우러진다. "The Ballad"란 곡은 이 같은 앨범의 음악적인 성향과 듀오의 역량을 체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다. 미려하게 흐르는 피아노 연주가 곡을 주도하는 가운데, 잔뜩 몸을 사린 현악기가 가미되는가 싶더니 이내 은근슬쩍 치고 들어온 색소폰이 현악을 밀어내고 재지한 무드를 조성한다. 이후, 절반에 이를 때 즈음 리듬을 강조한 변주가 이루어지며, 분위기를 환기하더니 다시 처음의 차분한 무드로 돌아와 끝을 맺는다. 그 여운에 방점을 찍는 건 오티스 주니어의 보컬이다. 앨범의 전반적인 사운드는 보컬과 인스트루멘탈 사이의 공간이 살짝 비어있는데, 음악의 성향상 보다 윤기 있게 마감되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지만, 현 상태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오티스 주니어와 닥터 던디프는 올해 우리가 새롭게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다. (강일권)
Mike Will Made It - Ransom 2 (2017.03.24)
마이크 윌 메이드 잇(Mike Will Made It)은 2017년 주류 힙합 무대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프로듀서라 할만하다. 그리고 참여하는 앨범마다 완성도를 좌우할 만큼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 된 마이크는 바쁜 와중에도 본인의 앨범을 꾸준하게 만들고 있었다. 2014년 믹스테입 [Ransom]의 뒤를 잇는 [Ransom 2]가 바로 그것이다. [Ransom 2]는 그동안의 활약상에 견줄 만큼 많은 게스트를 초대해서 자칫하면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중심을 잘 잡았다는 인상이 강하다. 트랩 프로덕션을 주축으로 하면서도 피아노 루프를 적당히 섞거나("W Y O"), 박진감 넘치는 진행을 주도하며("Hasselhoff") 인상적인 감흥을 선사한다. 때로는 미고스(Migos)와 와이쥐(YG), 그리고 투에니원 새비지(21 Savage)를 초빙하여 전형적인 중독성 트랩 넘버로 승부하기도 하며("Gucci on My"),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와 구찌 메인(Gucci Mane)의 힘을 빌려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Perfect Pink"). 무엇보다 앨범 전반에 걸쳐서 프로듀서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부각했다는 점이 [Ransom 2]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이다. 프로듀서가 이끄는 드럼의 힘이 그만큼 강렬했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하다. 자칫하면 겉치장만 화려한 컴필레이션 앨범이 될 수도 있었지만, 마이크는 흔들리지 않았다. (양지훈)
Homeboy Sandman – Veins (2017.03.31)
홈보이 샌드맨(Homeboy Sandman)의 음악엔 언제나 자유로움이 넘친다. 주제를 넘나드는 통찰력 있는 가사와 독창적인 비유, 그리고 눈에 띌 만한 기교는 없을지언정 어떠한 비트와도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정교한 플로우는 그의 음악 세계를 규정짓는 대표적인 요소들이다. 전작들을 통해 매번 색다른 매력을 발산해온 홈보이 샌드맨의 일곱 번째 정규작 [Veins] 역시 그의 녹슬지 않은 감각과 다재다능함을 가감 없이 대변하며 뚜렷한 인상을 남긴다. 본인의 불안정한 심리를 여러 시각과 예리한 관점으로 진솔하게 풀어내는 지점은 어느 때보다 깊은 울림을 선사하고, 고민의 흔적이 엿보이는 섬세한 라임과 창의적인 표현들 또한 짜릿한 쾌감을 안긴다. 민감한 주제를 이야기하면서도 결코 열을 올리지 않은 채 담담하게 흐르는 그의 플로우 또한, 각양각색의 사운드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수준급의 완성도를 가진 이번 앨범은 30분이 채 안 되는 짧은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간의 숨 가쁜 커리어를 통해 홈보이 샌드맨이 얼마나 성장하고 성숙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지준규)
Ill Camille - Heirloom (2017.04.25)
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여성 랩퍼 일 카밀(Ill Camille)은 사실 그다지 존재감 있는 아티스트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전작인 [Illustrated] 이후, 약 5년여 만에 발표한 [Heirloom]은 더욱 놀랍다. 그녀는 앨범을 통해 랩 퍼포먼스와 콘텐츠를 비롯한 프로덕션 등, 모든 면에서 매우 발전한 면모를 과시한다. 가보를 뜻하는 앨범의 타이틀은 꽤 직관적으로 작품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일 카밀은 자신의 조상과 가족에 관해 이야기하고, 개인사를 꺼냄과 동시에 이를 여성, 혹은 인종적 문제로 자연스레 확장시킨다. 또한, 퀸 라티파(Queen Latifah)의 샘플을 가져와 리메이크하거나(“Lighters”), 로린 힐(Lauryn Hill)을 향한 존경을 표하는 등(“Sao Paulo”), 그녀에게 영향을 끼친 뮤지션들을 한 명씩 기리기도 한다. 소울풀한 분위기의 프로덕션도 매우 훌륭하지만, 그 위로 얹힌 랩핑은 그야말로 백미다. 구성 전체에 걸쳐 비슷한 무드를 이어가면서도, 템포에 따라 완급을 주며 치열하게 따라붙는다. [Heirloom]은 일 카밀의 재능을 완벽하게 집약해놓은 빼어난 작품이자, 올해를 돌아볼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결과물 중 하나다. (이진석)
BROCKHAMPTON – Saturation (2017.06.09)
충격적인 등장이자 올해 최고의 발견이다. 칸예 웨스트(Kanye West) 온라인 팬 포럼의 회원들이 결성한 이 텍사스 출신 집단은 케빈 앱스트랙트(Kevin Abstract)라는 중추적 인물이 이끌고 있다. 앱스트랙트를 포함한 일곱 명의 랩퍼 및 보컬들과 다수의 전속 프로듀서들, 사진사와 기획자, 그리고 매니저가 한 팀이 되어 각자 도맡은 역할을 실행하는 획기적인 크루다. 이들의 역할은 뚜렷하게 분배되어 있지만, 멤버들 사이의 조화와 팀워크가 트랙에 엄청난 에너지를 부여한다. 소수의 특정 멤버들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돌아가지 않게끔 공산적이면서도 유기적인 진행과 구성, 저마다의 개성을 적극적으로 살려주는 연출과 배합, 절묘하게 맞물려 떨어지는 랩과 보컬의 조화, 기복 없이 탄탄하면서도 의외성이 가미된 프로덕션이 어우러지며 쉼 없이 폭발한다. 뚜렷한 서사나 컨셉트 없이 곡마다 개별적인 퀄리티로 승부하는 점도 눈에 띈다. 이런 경우, 치명적인 상황으로 귀결 될 수도 있는 구성에서의 기복도 없다. 그만큼 쉬어갈 곡이 없을 정도로 랩과 프로듀싱의 완성도가 출중하다. 하드코어 뱅어든, 실험적인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진취적인 트랙이든, 말랑한 알앤비 넘버든 본 성격과 의도에 백발백중 적중한다. 빡빡하게 치고 나갈 때는 화력을 배가시켰다가 어느새 작위적으로 여백을 창출해내는 미덕도 선보인다. 완숙미와 신선함을 동시에 잡은 해당 작품은 힙합이 앞으로 나가야 할 길마저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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