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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토픽] 한국 힙합 속 국산차 앤썸(Anthem)
    rhythmer | 2017-10-14 | 12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글: 남성훈


    /힙합 음악과 자동차의 관계는 매우 긴밀하다. 힙합 태동기부터 그랬다. 슈거힐 갱(Sugarhill Gang) 1979년 발표한 최초의 랩 레코드 "Rapper's Delight"에서 이미 난 보디가드들이 있고, 큰 자동차를 두 대 가지고 있어, 그리고 그건 절대 싸구려가 아냐. 나는 링컨 컨티넨털과 선루프가 달린 캐딜락을 갖고 있거든(I got bodyguards, I got two big cars, that definitely ain't the whack, I got a Lincoln continental and a sunroof Cadillac)’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소형차부터 초고가의 슈퍼카까지 그 종류가 다양한 자동차는 소유자의 상태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속성이 있다. 당연히 자신의 이야기를 베이스로 하는 랩 가사의 단골 주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 힙합에서는 2010년대 이후 고가의 자동차로 랩스타 이미지를 구축한 일리네어 레코드의 도끼(Dok2)에 의해 본격적으로 부각됐다. 그 영향력이 상당했기에 이후 한국 힙합에서 주로 성공과 부의 직관적 과시로 고착화되었다.

     

    그렇다 보니 가사적 희열도 빠르게 희석됐다. 경제적 한계가 명확했던 흑인 거주지역에서 자동차가 가졌던 복합적 존재감과 그것을 랩으로 전달했던 일종의 쾌감과 같은 과정을 한국 힙합에서 바랄 순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 종착점이라 할 수 있는 천문학적인 부를 갖게 된 힙합 아티스트들의 과시 문법이 그대로 차용되었기에 쾌감만큼 한계도 명확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과정을 거꾸로 채워 나가는 힙합 트랙이 꽤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은 흥미롭게도 국산차를 내세운 트랙들이다. 차종만 듣고도 많은 이가 해당 차를 둘러싼 다양한 정서와 이야기를 떠올릴 법하다. 검색을 통해서가 아니라 각자의 경험을 통해서 말이다. 당연히 가사가 담고 있는 풍성한 이야기에 더욱 귀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국산차를 아예 제목으로 내 건 인상적인 다섯 곡을 소개한다.


     

    차붐 - 에쿠스 (Feat. 팔로알토, 스윙스, 딥플로우) (2017)

     

    ‘I drive fuckin 에쿠스 에쿠스 에쿠스 사장님 포스 move b#!ch hell yeah Im the boss brah 에쿠스 올껌 EQ 900 물광보닛 Jag, Porche fuck that AMG, M Series, RS fuck that 난 사장님 차 타 앞자리 말고 시트 쭉 뉘여 뒤에 딱 가스 게이지는 만땅 지미 페이지 stairway to heavens door knock knock’

     

    1994년 출시된 현대 에쿠스는 2015년 제네시스에 편입될 때까지 국산차 중 최고급 세단의 자리를 지켜왔다. 체어맨과 함께 국산차 1억 원 시대를 열기도 했다. 자연스레 '사장님 차'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실제로 기업체 사장의 법인차량으로 크게 사랑받기도 했다.

     

    차붐이 2017년 발표한 [Sour]에 수록된 "에쿠스"는 실제로 아이돌 기획사 사장이었던 자신을 '사장님 차'인 에쿠스를 통해 과시하는 트랙이다. 그리고 한국 힙합의 대표 레이블들인 하이라이트 레코즈와 저스트 뮤직, 그리고 VMC의 사장님들인 팔로알토, 스윙스, 딥플로우가 피처링했기에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트랙이 되었다.


     

    제이호(Jayho) - 르망 (Feat. 서사무엘) (2016)

     

    우리 아버지 첫차 르망93 나 뭣도 모르고 그냥 어렸을 때 그 작은 집에 삼촌이 둘, 셋 남자만 여섯인 집안에 우리 사랑은 tough, man 그중에서 막내 그 꼬맹이 뭘하던 내비둬 뭐 어때 밖에서 한 대 맞고 입술이 터져도 어릴 땐 다 그렇게 야 괜찮어

     

    1986년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대우자동차에서 출시한 르망은 내수와 수출을 합쳐100만대 이상이 판매된 히트 차량이었다. 비록, 단종되긴 했지만, 현대자동차의 소나타와 함께 국산 세단의 전성기를 열었었다.

     

    크루 리짓군즈의 제이호는 첫 앨범 [르망]에 수록된 동명의 곡르망에서우리 아버지 첫차 르망93’이라는 가사로 단숨에 청자를 ‘90년대 초·중반의 한 가운데로 데려다 놓는다. 이후 낭만을 잃은 자신을 바라보며 뱉는 가사우리 아버지 내 나이 때 첫차 르망93’이 주는 여운은 상당하다.


     

    개코 - 은색 소나타 (feat. 크러쉬) (2014)

     

    ‘drivin down a highway 시선은 각자 다른 곳을 향해 보네 오래 오래된 은색 소나타 언젠가 좋아질 거라고 믿어 서로를 이해할거라고 믿어 보네 오래된 은색 소나타

     

    소나타는1985년 출시 후 현재까지 현대자동차의 대표차량이자 국산 중형 세단의 상징처럼 자리잡고 있는 차량이다. 지금은 좀 약해졌지만, 꽤 오랜 기간 국민차로 여겨지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서 소나타를 사는 것이 중산층으로 막 진입했다는 신호였던 시절이 있었으니 말이다.

     

    개코의 은색 소타나는 이런 정서를 제대로 활용한 곡이다. 개코는 한국 사회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그 시절을 함께했던 은색 소타나를 덩그러니 배치한다. 깊은 감정을 끌어내는 장치다.


     

    저스트뮤직(Just Music) – 카니발갱 (2017)

     

    키로 수만큼 늘어나는 은행잔고 man 쉬지 말고 밟아 요즘 가지 않아 방송국엔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다시 서울행 ac만땅 틀면 버벅거려 뜨거운 여름엔 진호 hit the gas 낭비해 낭비해줘 날 위해 섭이 자기 전에 시간 땡겨서 내려줘 날 집에 성영 hit the gas 다신 하지 말아줘요 역주행 SKRT’

     

    카니발은 기아 자동차에서 1988년 출시한 대형 미니밴이다. 많은 인원은 물론, 각종 장비를 채울 수 있는 넓은 공간 덕에 행사를 뛰는 연예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차이기도 하다.

     

    스윙스가 이끄는 레이블 저스트뮤직의 컴필레이션 앨범 [우리효과 (We Effect)]에 수록된 카니발갱은 바로 이런 부분을 기가 막히게 담은 곡이다. 저스트뮤직 멤버들이 카니발을 타고 전국을 돌며 행사를 뛰는 모습을 마치 카니발 안에서 그들을 보듯 생생하게 랩으로 그려낸다. 올해 가장 신선한 힙합 트랙 중 하나다.

     

    카니발갱 MV: https://www.youtube.com/watch?v=CJdOUxMAkME


     

    야밤그루브구형코란도 (2015)

     

    대문을 발로 차지 내가 첫박 들어가는 방식 싹 다 털어 갈 기세 안방까지 들어왔지 니 정신을 뺐고 큰불이 모는 차에 탑승 음량은 최대치로 락큰롤 코란도 범퍼는 땅을 긁어대며 불꽃놀이 올림픽대로에서 진짜 올림픽을 열지

     

    코란도는 쌍용자동차의 장수하고 있는 SUV브랜드다. 특유의 투박한 라인과 'Korean Can Do'란 의미로 알려진 이름 때문에 다소 촌스럽지만, 마초적인 이미지를 가진 차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 때문에 코믹한 이미지 또한 약간 가미되어 있기도 하다.

     

    리짓군즈의 래퍼 뱃사공과 비트메이커 빅라이트비츠(Biglightbeatz)로 구성된 야밤그루브 역시 구형코란도에서 가진 것은 없지만, 열정적으로 달리는 청춘을 그리고 있다. 가사의 마지막에 말하는영원히 멋이 나는코란도는 리짓군즈가 표방하는 한량의 기운이 넘실대는 낭만이라는 코드와 잘 어우러진다.

     

    구형코란도 MV: https://www.youtube.com/watch?v=Zu2nOY6na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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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연준 (2017-11-15 15:13:22, 166.104.159.***)
      2.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은색소나타 설명 부분에 소타나 라는 오타가 몇군데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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