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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토픽] 2025 상반기 놓치면 아쉬울 블랙 뮤직 앨범
    rhythmer | 2025-07-03 | 8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2025
    년의 반이 지난 시점에서, 리드머가 모종의 이유로 미처 리뷰로 다루지 못한 작품이 있었다. 정식 리뷰를 했다면 R 4개 이상은 받았을 완성도 높은 작품 중, 놓치기엔 너무 아쉬울 국외 블랙 뮤직 앨범을 엄선했다.

    각자의 플레이리스트에 담지 못한 앨범이라면, 한 번씩 체크해 보기를 권한다. 혹시 이미 알고 있다면, 반가운 마음으로 다시 한번 들을 기회가 되길 바란다. 

     

     

    Eddie Chacon – Lay Low (2025-01-31)

     

    에디 샤콘(Eddie Chacon)은 1990년대 중반 찰스 앤 에디(Charles & Eddie)라는 이름의 알앤비 듀오로 활동한 바 있는 인물이다. 단 두 장의 완성도 높은 앨범을 발표하며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종종 회자된다. 팀 활동 이후, 에디는 수년간 종적을 감췄다. 그러다가 2020년에 첫 솔로 앨범 [Pleasure, Joy and Happiness]를 발표하며 음악계에 복귀했다.

     

    [Lay Low]는 복귀 후 세 번째로 발표한 앨범이다. 닉 하킴(Nick Hakim)의 주도 아래 완성된 프로덕션은 몽환적이면서도 침잠된 분위기를 자아내며, 마치 꿈속을 유영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로파이(Lo-Fi)한 질감의 악기와 잘게 부서지는 듯한 드럼으로 시종일관 축축한 사운드가 이어진다. 그래서 "Empire"처럼 상대적으로 템포가 빠른 곡도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부드럽고 가녀린 보컬은 멜로디를 착실히 밟아나가다도 끝을 흐리며 사운드와 매우 잘 어우러진다.

     

    에디는 절제된 언어로 사랑과 삶의 고통을 노래한다. 인생의 모퉁이에 다다라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End of The World"에 이르면 마음속 깊숙한 곳이 저릿한 느낌이 든다. 구체적인 상황 설명이나 묘사는 없지만, 목소리 자체가 그의 살아온 세월을 방증하는 것 같다. 얼터너티브 알앤비를 세련되게 정제한 사운드와 노장의 관록이 자연스레 융화된 작품이다. (황두하)

     

     

    Durand Bernarr – Bloom (2025-02-18)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듀랜드 버나르(Durand Bernarr)는 팬데믹 시대에 들어서면서 유독 활동을 활발히 이어왔다. 첫 믹스테입을 발매한 이후로 15년이 훌쩍 넘는 동안, 대부분의 EP와 정규가 근 5년 사이에 발매된 것이 이를 방증한다.

     

    [En Route](2024)와 찰리 베투노(Charlie Vettuno)와 함께한 [Charlie Vettuno Presents... Where in the World is Carmen Randiego?!](2024)로 근사한 한 해를 보낸 버나르는 이번엔 정규로 돌아왔다. 네오 소울과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영역에서 결과물을 가득 담아냈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답답함 사이의 감정을 능숙한 가창을 통해 표현한 "Overqualified", 팔세토 창법을 앞세워 네오 소울의 진수를 들려주는 "PSST!", 갓(GAWD)과 함께 그루브 넘치는 순간을 연출한 "Flounce", 특유의 중저음과 펑키한 베이스를 함께 병치시켜 고음과는 상반된 매력을 뿜어낸 "Blast!"가 그렇다.

     

    최근 짧은 시간에 많은 작품을 쏟아냈으면서도, 매번 밀도 높은 알앤비를 들려주는 저력이 굉장하다. 그 중심엔 다양한 프로듀서와 함께 보컬리스트로서 수준 높은 가창을 들려주는 퍼포먼스 때문임을 잊어선 안 된다. 버나르는 아티스트로서 만개한 시점에 [Bloom]을 통해 자신만의 농향(濃香)을 풍긴다. (장준영)



     

    Saba & No I.D. – From the Private Collection of Saba and No I.D. (2025-03-18)

     

    사바(Saba)와 노아이디(No I.D.)의 만남은 예상치 못했지만, 그 결과물은 기대 이상이다. [From the Private Collection of Saba and No I.D.]에서 노아이디는 사바가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최선의 판을 깔아줬고, 사바는 이에 부응하는 활약을 보여줬다.

     

    샘플링과 다양한 악기 연주를 더해 재즈 랩(Jazz Rap)의 가장 현대화된 모습을 들려주는 프로덕션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즐길 만하다. 자넷 잭슨(Janet Jackson)의 "I Got Lonely"에서 브라스 파트를 샘플링한 "Breakdown"이나 중독적인 베이스라인으로 도입부터 단숨에 집중하게 만드는 "Crash", "Acts 1.5" 같은 곡에서는 단출한 구성으로도 흡입력을 자아내는 노아이디의 베테랑다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사바의 랩 역시 인상적이다. 느릿느릿하게 플로우를 이어가며 그루브를 자아내는 "Woes of The World"나 변주되는 비트에 맞춰 자연스레 플로우를 전환하는 노련함이 돋보이는 "Westside Bound Pt. 4"는 대표적.

     

    사바는 전작과 달리 여러 가지 주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과정을 헤어스타일의 변화로 비유한 "Head.rap", 물질적 성공보다 더 높은 차원의 것을 갈망하는 "How to Impress God" 등은 그의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을 엿볼 수 있는 곡이다.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아티스트의 만남은 언제나 새롭다. 그 만남이 비범한 결과물로 이어졌을 때는 짜릿하다. [From the Private Collection of Saba and No I.D.]는 오랜만에 짜릿한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황두하)

     

     

    Butcher Brown – Letters From The Atlantic (2025-03-28)

     

    벌써 결성한 지 10년이 훌쩍 넘은 퀸텟 부처 브라운(Butcher Brown)은 오롯이 재즈만으로 포장하기엔 밴드가 다루는 영역이 방대하다. 분명히 "Dinorah Dinorah"와 "Ibiza"만 들어도 알 수 있듯이, 멤버들의 탄탄한 연주 스타일과 곡의 구성, 접근 방식에서 재즈 밴드라는 점은 명확하다. 그러나 단순히 재즈만으로 이들을 한정 짓는 것은 너무 안일한 접근이다.

     

    리드미컬한 드럼과 펑키한 신시사이저로 근사한 바이브를 완성한 "Something New About You", 붐뱁 비트에 멤버 테니수(Tennishu)의 쫀득한 랩과 은은히 퍼지는 향기처럼 아름다운 리너 울프(Leanor Wolf)의 보컬이 조화로운 "Right Here", 속도감 있는 전개로 밴드 특유의 활력이 느껴지는 "Unwind", 야야 베이(Yaya Bey)를 참여시켜 소울의 농도를 진하게 한 "I Remember" 등등, 특정 곡에 국한되지 않고 앨범 내내 부처 브라운의 개성이 진득이 녹아 있다.

     

    수준급의 연주와 뛰어난 합, 적재적소로 사용한 피처링 아티스트, 그리고 수려히 진행되는 구성까지, 앨범을 이루는 많은 것이 굳이 장르와 무관하게 탁월하다는 점은 이번 역시 명확하다. 재즈를 사랑하는 이도, 재즈에 조금 익숙하지 않은 블랙 뮤직 애호가도, [Letters From The Atlantic]만큼은 모두 좋아할 것이라 확신한다. (장준영)



     

    Wu-Tang & Mathematics – Black Samson, the Bastard Swordsman (2025-04-25)

     

    우탱 클랜(Wu-Tang Clan)의 디스코그래피는 아무래도 복잡하다. 그중 클랜을 뺴고 '우탱'으로만 나온 앨범들이 있는데, 이는 그룹의 정규 앨범과는 좀 다르다. 우탱 클랜 멤버를 주축으로 한 컴필레이션 앨범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Black Samson, the Bastard Swordsman]은 2017년의 [The Saga Continues]에 이어 프로듀서 매쓰매틱스(Mathematics)가 전 곡을 프로듀싱한 우탱 앨범이다. 그런데, 현재 우탱 클랜의 멤버들이 전부 참여했기 때문에 정규 앨범과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어쨌든 [Black Samson, the Bastard Swordsman]은 3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우탱 클랜 브랜드가 여전히 강력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앨범이다. 커럽(Kurupt)이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독 파운드 갱스터(DPG)와 우탱 클랜을 함께 나열하는 인트로를 지나면, 우리에게 익숙한 우탱 클랜의 정수가 끝까지 쏟아져 나온다. 우탱 클랜의 처음부터 함께 했던 매쓰매틱스는 특유의 보이스 샘플 활용부터, 빈티지한 사운드 루프까지, 이제는 르자(The RZA)보다 그룹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비트를 선사했다. 멤버들 역시 누구 하나 기량의 노쇠함 없이 각자의 무공을 뽐내는 듯한 모습을 잘 보여줬다.

    우탱 클랜의 등장은 힙합 역사의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지만, 힙합 장르에 큰 영향을 줬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여전히 그 자체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Black Samson, the Bastard Swordsman]으로 2025년에도 그 사실은 변함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남성훈)



     

    Lunchbox – L.B. Cooper (2025-04-25)

     

    레이지(Rage)의 매력 중 하나는 '무질서함'이다. 끝이 없는 것처럼 이어지는 신시사이저와 스피커를 찢고 나올 듯 울리는 808 베이스가 어우러진 거친 사운드는 장르가 가진 가장 큰 특징이다. 런치박스(Lunchbox)는 레이지 사운드를 잘 표현하는 래퍼 중 하나다.


    [L.B. Cooper]는 런치박스가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높다는 것을 방증하는 작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케이드 게임 느낌의 과장된 신시사이저가 어지럽게 울려 퍼지며 순식간에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이동한 듯한 착각을 들게 한다. 그중에서도 "Luv", "Goin Bed", "Bilingualll" 등은 프로덕션의 완성도가 매우 뛰어나다. 런치박스는 한 곡 안에서 한 가지 플로우를 쭉 밀고 나가며 약간씩 변화를 취하는 싱잉 랩을 고수하는데, 워낙 멜로디 라인이 중독적인 덕분에 단숨에 집중하게 만든다. 대부분 짧은 벌스 하나에 후렴을 반복하는 단출한 구성과 짧은 재생 시간을 가지고 있어, 분위기의 고저 없이 일정하게 흘러감에도 지루하지 않다.

    [L.B. Cooper]는 레이지가 힙합의 하위 장르로서 일정한 형태를 갖추게 됐다는 것을 들려주는 작품이다. 비슷한 사운드가 죽 이어지는 탓에 앨범 전체가 마치 한 곡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장르의 특정한 면을 앨범 단위로 확장했기 때문이다. 집중해서 들어보면, 런치박스의 감각적인 싱잉 랩에 자연스레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황두하)



     

    Felix Ames – Cruel, Cruel World (2025-06-06)

     

    데프 잼(Def Jam Recordings)의 신예 필릭스 에임스(Felix Ames)는 데뷔작 [Jena](2023)을 통해 네오 소울의 틀에서 흥미로운 작품을 들려주었다. 2년 만에 새로 내놓은 [Cruel, Cruel World]에선 짧아진 곡 수와 러닝타임에도 한층 깊어진 소리로 또 한 번 주목하게 만든다. 

     

    칼빈 발렌타인(Calvin Valentine)이 주도하는 프로덕션은 일관된 톤을 유지하며 에임스가 소리를 발휘할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한다. 앨범 내내 차분한 비트로 결을 유지하고, 신스와 이펙터, 다양한 소스를 활용해 풍성한 사운드를 만든다. 펑키한 신스가 느린 비트에도 리드미컬하게 공간을 뒤흔드는 "Magic", 호전적인 기타를 필두로 네오 소울의 특징을 명확하게 들려주는 "What's Don't You Remember"가 대표적인 예다.

     

    프로덕션을 한층 아름답게 만드는 것엔 에임스의 힘이 크다. 고음과 저음 사이를 유려히 넘나들고, 음을 빠르고 느리게 조절하며 곡에 어울리는 최적의 소리를 가꾼다. "Give It To The Earth"에서 여운 남는 가사와 함께 경탄하게 되는 퍼포먼스를 들어보자. 더불어 모든 곡이 뇌리에 박힐 정도로 명료한 멜로디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주목할 또 하나의 이유다. 정말 잔인할 정도로 훌륭한 앨범이다. (장준영)


     

    Slick Rick – Victory (2025-06-13)

     

    슬릭 릭(Slick Rick)은 1988년 데뷔 앨범 [The Great Adventures Of Slick Rick] 발표 후 여러 세대에 걸쳐 추앙받고 있는 래퍼다. 하지만 여러 범죄 혐의로 감옥에 갇혔고, 추방도 당하며 성공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결국 주요 범죄 혐의를 벗고, 2016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기도 했지만, 1999년 [The Art of Storytelling] 이후 앨범은 없었다. 슬릭 릭은 왜 26년 만에 앨범을 발표했을까? 제작진을 보면 답이 나온다. 여러 레이블을 운영할 정도로 음악 애호가이자, 힙합 마니아인 배우 이드리스 엘바(Idris Elba)가 나스(Nas)와 함께 제작했고, 레이블 매쓰 어필(Mass Appeal)이 추진하는 힙합 레전드의 앨범 프로젝트인 [Legend Has It..]의 시작이다.

     

    슬릭 릭의 현재를 아쉬워한 이들이 그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낸 것이다. 이런 의도 덕분에 슬릭 릭은 별다른 상업적 간섭 없이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Victory]에 잘 담아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전혀 녹슬지 않은 실력과 감각이다. 슬릭 릭의 부드럽고 나긋나긋하지만, 긴장감을 잃지 않는 랩은 다채로운 곡을 하나로 묶어내는데, 다양한 주제를 쉽게 지나치기 힘든 이야기로 풀어내는 솜씨가 여전하다. 그의 오랜 팬들이 반길 "Angelic"과 "Landlord", 나스와 제임스 본드를 변주한 "Documents"가 대표적이다. "I Did That"에서 그는 자신이 이룬 것을 나열한다. [Victory]를 통해 슬릭 릭은 떨어져 보면 비극이었을지도 모를 자신의 삶이 승리였다고 말한다. 60세가 넘은 노장의 멋진 선물이다. (남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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