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드머
스크랩
  • [리드머 토픽] 다섯 장의 앨범으로 듣는 일본 힙합의 현재
    rhythmer | 2026-10-11 | 3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글: 황두하


    일본 힙합은 일찍부터 국경 밖에서도 독자적인 색깔로 주목받았다. 누자베스(Nujabes)는 재즈와 소울의 서정성을 힙합의 리듬에 녹여 세계 각지의 팬을 확보했고, 엠플로(m-flo)는 힙합과 알앤비, 전자음악을 결합한 세련된 팝 감각으로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힙합과 접점을 지닌 시부야케이(Shibuya-kei) 역시 다양한 시대와 장르를 재조합하며 일본 음악의 독자적인 흐름을 형성했다. 그러나 2010년대를 거치며 트랩을 비롯한 미국 중심의 힙합 문법이 보편화되면서, 주류 사운드에서 이러한 지역적 색채는 점차 옅어졌다.

    그 안에서도 자신들의 스타일을 발전시켜온 아티스트들은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다. 정교한 랩과 샘플링을 기반으로 한 음악부터 알앤비, 클럽 음악, 전자음악을 넘나드는 시도까지 현재의 일본 힙합에는 다양한 흐름이 공존한다.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통해 해외 청자에게 도달하거나, 랩과 노래를 유연하게 오가며 새로운 팬층을 확보하는 스타들도 등장했다. 메건 디 스탤리언(Megan Thee Stallion)의 “Mamushi”에 참여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유키 치바(Yuki Chiba) 역시 일본어 랩의 확장된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몇 년 사이 발표된 작품 중, 일본 힙합의 다양한 매력을 담은 다섯 장의 앨범을 소개한다.

     

     

    토지(Tohji) - t-mix (2022-06-03)

     

    토지의 믹스테이프 [t-mix]는 트랜스와 댄스 팝, 일본 대중음악의 감각을 힙합 안에서 결합한다. 메카톡(Mechatok)이 참여한 “ULTRA RARE”의 밝고 인공적인 신스와 “Super Ocean Man”의 강한 추진력은 이러한 방향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토지는 발음을 늘이고 변형하며 보컬을 전자음과 어우러지는 재료로 활용한다. 짧은 구절의 반복과 가공된 음색이 리듬을 만들고, 그 위로 선율이 겹치면서 들뜬 감정을 확장한다. 랩과 비트가 함께 클럽 음악의 고조감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앨범의 매력은 고조된 분위기를 조절하는 흐름에도 있다. 후반부의 “ねるねるねるね”와 마지막 곡 “UFO”에서는 소리의 여백과 앰비언트한 질감이 두드러진다. 앞선 곡들이 만들어낸 운동감은 점차 느슨해지고, 가공된 목소리는 더 넓은 공간 안에 놓인 듯 들린다. 이러한 변화는 짧고 반복적인 구절에도 곡마다 다른 정서를 부여한다. [t-mix]는 전자음악의 형식 안에서 래퍼의 목소리가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넓히며, 토지만의 선명한 음악적 개성을 구축한다.

     

     

    제이제이제이(JJJ) - MAKTUB (2023-05-26)

     

    2025년 세상을 떠난 제이제이제이가 남긴 세 번째 정규앨범 [MAKTUB]은 프로듀서와 래퍼로서 쌓아온 감각을 함께 담고 있다. 직접 만든 비트와 여러 제작자의 작업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소리의 질감과 리듬의 세부적인 차이가 곡마다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개러지의 탄력을 품은 “Scav”, 드릴의 리듬을 절제된 형태로 가져온 “Eye Splice”는 이를 잘 보여준다. 필요한 소리를 남긴 비트에는 랩이 움직일 공간이 충분하고, 제이제이제이는 그 안에서 강세와 발음을 부드럽게 연결하며 그루브를 이어간다.

    가사는 일상의 장면과 기억, 그 순간 떠오르는 감정을 자유롭게 연결한다. 가족과 가까운 이들을 향한 마음이 담긴 “Oneluv”나 사랑을 이야기하는 “U”에서는 개인적인 감정이 과장 없이 드러난다. 일정한 결을 유지하면서도 단어의 길이와 호흡을 조절하는 랩은 이러한 이야기를 편안하게 전달한다. 곡마다 리듬이 달라져도 앨범이 흩어지지 않는 이유 역시 그의 목소리와 시선에 있다. [MAKTUB]은 절제된 비트, 유연한 플로, 구체적인 생활의 감각이 맞물리며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라나(LANA) - 20 (2024-11-13)

     

    라나의 첫 정규앨범 [20]에서는 허스키한 음색이 곡의 성격을 결정한다. 낮은 음역에서 힘 있게 밀어붙이다가 선율을 길게 뻗는 보컬은 랩과 노래 사이를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Street Princess”는 이러한 표현력과 분명한 자기주장을 앨범의 첫머리에 제시한다. 기타를 활용한 “No.5”에서는 목소리의 거친 질감이 살아나고, 왓슨(Watson)이 참여한 “Still Young More Rich”에서는 세련된 섹시 드릴(Sexy Drill)의 리듬 위로 두 사람의 다른 음색이 교차한다. 다양한 비트를 하나의 앨범으로 묶어내는 중심에 라나의 목소리가 있다.

    그 목소리에 실리는 감정도 한 가지로 정리되지 않는다. “No.5”에서 물질적인 성공과 함께 드러나는 충족되지 않는 마음, “it’s okay”의 다독이는 태도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개인의 연약함을 더한다. 과거의 히트곡 “TURN IT UP”과 “L7 Blues”를 함께 배치한 구성도 라나가 지나온 시간을 현재의 모습과 연결한다. 성공을 향한 욕망과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같은 인물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것이다. [20]은 랩과 노래를 오가는 기량에 구체적인 감정을 더하며, 라나라는 아티스트의 성격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크리피 넛츠(Creepy Nuts) - LEGION (2025-02-05)

     

    크리피 너츠가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는 과정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컸다. 그 시기에 발표한 [LEGION]에서는 저지 클럽(Jersey Club)의 분절된 박자를 활용한 비트와 알시테이(R-指定)의 유연한 랩이 맞물린다. “Bling-Bang-Bang-Born”의 엇박으로 튀는 드럼과 반복적인 선율 사이를 파고드는 랩은 음절 자체를 또 하나의 리듬으로 만든다. “オトノケ”에서도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랩과 선율적인 후렴의 전환이 곡의 속도감을 유지한다. 발음과 강세를 빠르게 바꾸면서도 귀에 남는 구절을 명확하게 만드는 능력이 두드러진다.

    디제이 마츠나가(DJ Matsunaga)의 프로덕션은 소리의 수를 줄이고, 각각의 리프와 드럼에 뚜렷한 역할을 부여한다. 덕분에 “doppelgänger”의 어둡고 압박감 있는 비트에서도 랩의 세부적인 움직임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가사에서는 성공 이후에도 이어지는 개인의 일상과 감정이 앨범을 연결한다. 특히 “通常回”는 커진 무대와 주변의 기대 속에서도 계속되는 자신의 생활을 돌아본다. 복잡한 랩 디자인과 직관적인 후렴, 개인적인 이야기가 함께 작동하며 크리피 너츠의 대중적인 성취를 음악적으로 뒷받침한다.



     

    벤재지 & 본베로 (Benjazzy & Bonbero) - B2B (2026-08-28)

     

    배드 홉(BAD HOP) 출신 벤재지와 본베로는 여러 차례의 협업을 거쳐 여덟 곡의 합작 앨범을 완성했다. [B2B]의 중심에는 두 래퍼가 서로의 리듬에 반응하는 호흡이 있다. 차키 줄루(Chaki Zulu)가 프로듀싱한 “Wagamama”는 소리를 절제한 도입부에서 시작해 비트와 랩의 밀도를 높여간다. 빠르게 쪼개지는 음절, 강세의 이동, 두 사람이 마디를 주고받는 후반부가 곡의 전개를 이끈다.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발음과 호흡에 변화를 주는 능력이 랩을 듣는 재미로 이어진다.

    이러한 기량은 UK 개러지와 투스텝을 활용한 “R2R”에서도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엇갈리는 드럼의 간격을 따라 랩을 배치하면서 두 사람은 비트의 탄력을 끌어올린다. 에이스 쿨(ACE COOL)과 진메누사기(Jinmenusagi)가 합류한 마지막 곡 “4 Walls”에서는 목소리와 플로의 차이가 마이크 릴레이의 긴장을 만든다. 객원진의 참여로 표현의 폭을 넓히면서도, 앨범을 주도하는 두 사람의 존재감은 유지된다. [B2B]는 랩의 기술이 곡의 움직임과 동료와의 호흡으로 구체화될 때 얼마나 강한 흡인력을 갖는지 보여준다.

    3

    스크랩하기

    • Share this article
    • Twitter Facebook
    • Comments
    « PREV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