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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토픽] 우리 곁을 떠난 R&B의 별들
    Soulgang | 2010-11-10 | 18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것을 꼽으라면, 그것은 아마 인간의 운명이 아닐까? 모름지기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시작이라면, 끝은 죽음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끝은 과거 불로장생할 것만 같았던 진시황제도 막지 못했던 것이며,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죽음은 당사자를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간 위인으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프랑스의 천재 시인 아르투르 랭보가 그랬고 남미의 영웅이자 젊은이들의 우상인 체 게바라 역시 그랬다. 이외에도 수많은 위인들이 젊은 날에 불꽃처럼 아스러졌다. 알앤비의 역사에서도 이러한 사건은 적지 않은데, 여기 불꽃같이 짧고 굵은 삶을 살다간 뮤지션들을 추모하며, 그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샘 쿡(Sam Cooke)은 ‘최초’였다. 그는 최초로 알앤비라는 장르로 대중에게 파격적인 인기를 끌었던 최초의 흑인 뮤지션이었으며, 활동 기간에는 차트의 맨 윗부분을 독식하다시피 했다. “You Send Me”, “Only Sixteen”과 같은 주옥같은 클래식들을 남겼으며, 미국의 공민권 운동(Civil Rights Movement)에도 참여하는 등 흑인을 위한 사회 운동에도 상당 부분 힘썼다. 또한, 후배 양성에도 물심양면으로 힘썼는데, 그는 당시 자기가 번 돈의 대부분과 남는 시간을 모두 투자하여 최초의 흑인 음악 전문 레이블인 ‘SAR Records'를 창립하였다. 이 레이블에는 훗날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젊은 바비 워맥(Bobby Womack), 루 롤스(Lou Rawls) 등이 소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순조롭게 인생의 모든 것이 잘 풀리는 것만 같던 샘 쿡은 안타깝게도 3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로스앤젤레스 의 어느 모텔에서 매니저의 총에 맞아 숨지고 말았다. 현재까지도 이 사건은 투팍(2Pac)의 사망에 관련한 음모설 만큼이나 많은 가설들이 돌고 있으나 여전히 정확하게 확인된 바는 없다. 법정은 추후 이 사건에 대해 샘 쿡이 여자 매니저를 위협하려고 하자 여자 매니저가 어쩔 수 없이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총을 사용했다는, 정당방위 사고라고 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샘 쿡이 사망한 뒤 불과 두 달 뒤에 말콤 엑스(Malcolm X)도 암살당하고 말았는데, 이 때문에 당시 흑인 사회는 가장 어리고 전도유망한 두 지도자를 잃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담으로 이후, 흑인 사회는 새로운 영웅 두 명을 만들어내며 이 둘을 잃은 슬픔을 극복하였는데, 바로 그 인물들이 바로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와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이었다.



    저 유명한 클래식 "Lovin' You"의 주인공, 미니 리퍼튼(Minnie Riperton). 그녀는 천상의 목소리를 지녔었으며, 음역대를 무려 5옥타브 반까지 올릴 수 있는 등 보컬 실력도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70년도에 발매된 데뷔 앨범 [Come To My Garden]은 그렇게 커다란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특출한 재능은 결국, 3년이 지난 뒤 인정을 받게 된다. 당시 그녀는 아이 둘을 낳고 평범한 가정생활을 영위해나가려 했으나 뜻하지 않게 에픽 레코즈(Epic Records)라는 거대 레이블이 계약 제의를 함에 따라 가족 모두가 그녀를 위해 로스앤젤레스 로 이사를 하는 등 다시 한 번 천금 같은 기회를 잡게 되었다. 그리고 발표한 두 번째 앨범은 그녀의 남편이자 프로듀서인 리처드 루돌프(Richard Rudolph)와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가 총 제작하였는데 특히, 싱글 "Lovin' You"가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사랑을 받으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싱글과 정규 앨범 모두 판매량 골드(Gold)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본격적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암 진단을 받게 되는데, 이미 알게 되었을 때는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 손을 쓰기에 너무 늦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는 가족과 팬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죽기 전까지 긍정적이었으며, 힘이 닿는 데까지 무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그렇게 그녀는 1979년 6월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녀의 짧은 생애를 끝마쳤다.



    알앤비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섹슈얼한 긴장감(Sexual Tension)’이다. 그리고 이는 곧 두 뮤지션으로 상징되는데 알 켈리(R.Kelly)나 트레이 송즈(Trey Songz)도 근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지녔던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과 마빈 게이(Marvin Gaye)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중 마빈 게이는 흑인 음악의 모태인 모타운(Motown)의 전성기를 주도한 장본인이었으며, 선배 샘 쿡과 마찬가지로 음악적인 부분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공헌에도 힘썼는데,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며 인류의 안녕을 기원하는 기념비적인 곡인 "What's Going On"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 곡은 추후 마이클 잭슨의 “Human Nature", "We Are The World" 같은 곡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심지어 우리나라의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조용필에게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다. 사실, 그는 샘 쿡과 닮은 점이 상당히 많은데, 이는 그가 샘 쿡을 상당히 존경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샘 쿡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자신의 본래 이름인 ‘Marvin Gay'에서 'Sam Cooke'의 끝에 ’e‘ 스펠링을 추가하여 'Marvin Gaye'로 바꾸었을 정도다. 그러나 순조롭게 풀리는 것만 같았던 그의 장밋빛 인생은 1979년 하와이 투어 공연 도중에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그는 이 당시까지만 해도 상당히 많은 금액의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죄로 미 국세청으로부터 수배를 받고 있었는데, 본토로 돌아가면 이 세금을 차마 다 납부하지 못해 감옥살이를 하게 될 것을 염려해 이때부터 한동안 하와이에 머물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폐인처럼 지내면서 마약에 중독되기 시작하였으며, 훗날 이것은 그를 죽음으로 이끈 원인이 되었다. 이후, 새로이 유럽 투어 계약을 맺으며, 돈 문제를 해결한 마빈 게이는 계속해서 공연하다가 84년도 4월에 고향 집에 돌아와 잠깐 쉬게 되는데, 집에서 그의 부모의 싸움을 말리다 화가 난 아버지의 권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사후에 그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등 생전보다 사후에 더 큰 영광을 누렸으며 현재까지도 수많은 뮤지션과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테디 펜더그래스(Teddy Pendergrass)는 위의 뮤지션들처럼 단명한 뮤지션이 아니다. 하지만, 죽음 못지않은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눈물을 삼키고 자신의 경력을 일찌감치 마무리 지어야 했다. 그는 필라델피아 소울 계열의 최고로 꼽히는 그룹 해롤드 멜빈 & 더 블루 노츠(Harold Melvin & the Blue Notes) 출신으로서 알앤비 역사상 그 누구보다 선 굵은 목소리와 마초적인 이미지로 수많은 여성 팬에게 사랑을 받았었다. 자신의 이미지와 걸맞은 슬로우잼 "Close The Door"와 "I Can't Live Without Your Love" 같은 곡을 히트시켰으며, 데뷔 앨범부터 네 번째 앨범까지 연속으로 플래티넘(Platinum)을 기록하는 등 엄청난 저력을 보였던 뮤지션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82년 3월에 필라델피아에서 교통사고를 당하며 반신불구가 되었다. 이후, 예전처럼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었으며, 가끔씩 이벤트성으로 휠체어에 의지한 채 무대에 올라가는 것이 전부인 사람이 되어버렸다. 계속해서 앨범도 발매하였으나 활동이 동반되지 못했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판매량을 기록하지는 못하였으며, 그렇게 세간에서 잊힌 채로 올해 6월, 결장암으로 사망하였다.



    80년대 전설적인 훵크 밴드 잽(Zapp)의 리더였던 로저 트라우트먼(Roger Troutman)은 알앤비 씬에서 토크박스(Talkbox)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던 최초의 뮤지션이었으며, 마스터였다. 만약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투팍(2Pac)의 “California Love”를 한번 들어보시라. 낯익은 기계음이 들리는가? 그렇다. 바로 그 사람이 로저 트라우트먼이다. 투팍의 이 곡은 만약 그의 참여가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클래식으로 자리 잡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영광을 뒤로하고 99년 4월에 친형인 래리 트라우트먼(Larry Troutman)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고 말았다. 그리고 래리 또한, 동생인 로저를 죽이고 곧바로 자신의 차로 돌아가 자살하였다. 이 비극적인 두 형제의 장례식에는 로저 트라우트먼의 조카인 끌레 트라우트먼(Clet Troutman)이 생전에 로저 트라우트먼의 전유물이었던 토크박스로 "Amazing Garce"를 부르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90년대가 낳은 최고의 알앤비 프린세스, 알리야(Aaliyah). 그녀는 출생 때부터 그렇게 될(알앤비 프린세스가 될)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였다. 그녀가 오전 6시 50분에 세상 밖으로 처음 나올 때 바로 옆에는 알앤비 씬의 두 거목인 글래디스 나이트(Gladys Knight)과 배리 화이트(Barry White)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어머니는 전업 백업 보컬리스트(Backup Vocalist)로서 이들과 두터운 인연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머니의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알리야는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 알켈리와 염문설을 뿌리며 성공적으로 데뷔하였고, 이후에는 알켈리와 음악적, 인간적으로 완벽하게 헤어지게 되지만, 다시 팀발랜드(Timbaland)와 미씨 엘리엇(Missy Elliot)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만나 더욱더 승승장구하게 된다. 뛰어난 춤 실력과 보컬 실력 이외에도 출중한 외모를 지닌 그녀를 가만히 놔둘 리 없었던 할리우드는 그녀를 모셔가기 위해 서로들 난리였으며, 자연스럽게 그녀는 영화배우로서도 활약하였다. 그리고 2000년에 개봉한 [Romeo Must Die]와 2002년에 개봉한 [Queen Of Damned]에서 모두 주연으로 출연하며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커리어의 정점에 있던 2001년에 "Rock The Boat"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바하마 섬에 비행기로 이동하던 중에 그만 추락 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녀의 사망 시각은 태어났을 때와 시간대만 다른 오후 6시 50분이었다. 불과 22년 전에 그녀의 출산 장면을 지켜본 글래디스 나이트와 배리 화이트가 비통한 얼굴로 그녀의 장례식에 참여하였으며, 그녀의 이른 사망은 아직까지 알앤비 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남아있다.



    역사상 최고의 여성 알앤비 그룹은 과연 어느 그룹일까? 아마 답은 대개 두 개로 나뉠 것이다. 어떤 이는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를 꼽을 것이며, 어떤 이는 티엘씨(TLC)를 꼽을 것이다. 물론, 어느 그룹이 더 낫다고 우위를 가리기는 힘들겠지만, 티엘씨는 90년대 이후, 최고의 여성 그룹이라고 불리기에 손색없는 정말 완벽한 그룹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기를 끌었던 레프트 아이(Left Eye)는 티엘씨에서 성공을 바탕으로 가장 먼저 솔로 데뷔를 하였는데, 안타깝게도 데뷔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탄 승용차가 트럭과 전복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사망하고 말았다. 당시 그녀의 사망 소식은 우리나라 뉴스 속보로까지 나오는 등 전 세계적으로 알리야만큼이나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록된다.



    전설적인 알앤비 남성 그룹 더 오제이스(The O'Jays) 출신인 에디 리버트(Eddie LeVert)를 아버지로 둔 두 형제 제럴드 리버트(Gerald LeVert)와 션 리버트(Sean LeVert)는 아이러니하게도 비슷한 나이에 사망하고 말았다. 이 사이 좋은 두 형제는 마크 고든(Marc Gordon)이라는 친구를 추가하여 3인조 남성 그룹 리버트(LeVert)로 80년대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90년대에 들어서 각자 솔로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형만한 아우 없다는 옛말이 있듯이 동생인 션보다는 형인 제러드 리버트가 솔로 활동을 하며, 더욱더 큰 두각을 드러내었는데, 션은 95년에 데뷔 앨범 [The Other Side] 한 장을 발매했을 뿐, 이후에는 별다른 활동이 없었다. 하지만, 제러드는 죽는 그날까지 활발하게 활동을 펼쳤으며, 총 9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하였다. 또한, 그는 알앤비 역사상 가장 화려한 프로젝트 그룹이었던 LSG(각자의 이름에서 첫 번째 스펠링을 뽑아 만든 그룹명, Gerald Levert, Keith Sweat, Johnny Gill)의 멤버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형제 모두 과체중에 따른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젊은 나이에 사망하고 말았다.

    And so on...
    위에 나열한 뮤지션들 외에도 베이비페이스(Babyface)의 레이블인 라페이스(LaFace)와 첫 번째로 계약했던 남녀 혼성 듀오 데미안 데임(Damian Dame)이 두 번째 앨범 발매를 앞두고 오토바이 사고와 결장암으로 두 멤버 모두 사망한 비극적인 사건, 90년대 초반 보이즈투멘(Boyz II Men)과 컬러 미 베드(Color Me Badd) 등과 같이 인기 몰이를 했던 남성 그룹 에이치 타운(H-Town)의 멤버 디노(Dino)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건, 러시아 출신의 촉망받던 알앤비 뮤지션 디마(Deema) 역시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건, 호지킨 임파선 암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한 영국 출신의 촉망받던 네오-소울 뮤지션 린든 데이빗 홀(Lynden David Hall) 등 굉장히 많은 뮤지션이 젊은 나이에 비극적인 사건으로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꽃피우지도 못하고 눈을 감았다.

    때로는 섹시하게,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감미롭게 우리의 귀와 마음을 사로잡았던 알앤비의 별들이여, 부디 편히 잠들길.......




    기사작성 / RHYTHMER.NET 이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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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이 (2010-11-21 17:21:00, 121.164.196.***)
      2. 생을 마감하신 분들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죠. 저도 살짝 아이작 헤이즈옹이 없어 아쉽기는 했지만..ㅋㅋ
      1. 이용석 (2010-11-15 19:10:13, 125.130.252.***)
      2. 도니 헤더웨이는 저도 깜빡했네요. 죄송합니다 ㅠㅠ
        그분은 정신분열증으로 말년에 괴롭게 사시다가 끝내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하셨죠. rip
        하이-파이브의 토니도 깜빡했네요. 약물로 사망한 뮤지션들이 의외로 꽤 많죠. 예전의 O.V. Wright나 더 템테이션스의 David Ruffin 옹이 있죠..

        미천한 글에 덧글 하나하나 모두 감사드립니다. (--)(__)

        ps. 알리야 실수는 죄송합니다ㅋㅋ
      1. 홍준기 (2010-11-14 15:23:46, 114.200.249.**)
      2. 왜 Luther Vandross는 없나요??a
      1. 김시아 (2010-11-12 22:07:51, 58.141.227.***)
      2.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1. tical (2010-11-12 01:00:11, 219.241.185.***)
      2. Gerald Levert가 고인이었군요.. 좋은 기사 잘보았습니다
      1. s.a.s (2010-11-11 23:38:26, 175.113.194.***)
      2. 마야 루돌프의 어머니가 미니 리퍼튼이군요~ 우왕~
        역시 리드머는 유익한 음악정보가 넘쳐나서 좋아요 ㅎㅎㅎ
      1. s.a.s (2010-11-11 23:32:19, 175.113.194.***)
      2. 테디 아저씨가 죽었다구요????????????????????????????????????
        난 왜 몰랐지... ㅠㅠ
      1. mbrica (2010-11-11 18:39:19, 118.33.62.***)
      2. 글 잘 읽었습니다! 약물로 사망한 Hi-five의 리드보컬 Tony Thompson (September 2, 1975 – June 1, 2007)도 아울러 명복을 빕니다! 소년같은 보이스가 정말 좋았었더랬죠. 그래도 남는건 "음악"이죠!
      1. 민기자 (2010-11-11 18:04:38, 118.33.62.***)
      2. 사도/ 으헉, 마야 루돌프 정말 좋아하는 배우인데
        미니 리퍼튼 딸이라는거 지금 처음 알았어요 ㅠ_ㅠ!!
        어머니를 닮아서 그렇게 노래를 잘했던거군요
      1. 사도 (2010-11-11 14:44:46, 173.60.166.***)
      2. 정말 모두 음악계에 기억될 이름들입니다 ㅠㅠ, 리스트에 또 한명을 넣자면, 자살로 너무 일찍 떠나버리신 Donny Hathaway.

        Lovin' You 는 당시 아기였던 Minnie Riperton 의 딸 Maya Rudolph의 자장가로 사용되기 위해 만들어진 곡입니다. 지금 Maya는 나름 성공한 배우로 삶을 살아가는 중입니다.

        또 무도 맴버들이 예전에 All You Need Is Love 를 부른적 있는데, 참고했던 Love Actually 에 수록됬던 버전은 Lynden David Hall가 부른 버전입니다. 목소리가 참 좋은데, 너무 빨리 가버려서 아쉽죠.

        정말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
      1. 박경호 (2010-11-11 12:55:46, 166.104.7.***)
      2. 알리야 아직도 생각나네요. 초딩때지만 엄청 좋아했었는데..

        몇일 전에도 Game형이 트위터에서 언급하는 바람에 계속 생각나더니 여기서도

        기사에 나왔네요. 명복을 빕니다.
      1. Vizualiza (2010-11-11 10:14:16, 61.110.93.***)
      2. 알리야 79년생..
      1. 이강동 (2010-11-11 09:15:30, 58.120.202.**)
      2. 알리야 71년생 아닌가요?? 91년생
        ??
      1. 김정교 (2010-11-11 00:10:44, 59.9.145.**)
      2. 잘! 읽었습니다.
      1. 오이 (2010-11-10 23:59:21, 110.9.255.*)
      2. 알리야 죽던 그 순간에 저는 친구랑 농담따먹기 하면서 채팅하고 있었는데, 그 기사를 본 순간 누가 머리를 망치로 내리친것 처럼 멍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모두 RIP
      1. pinkfloyd (2010-11-10 23:39:29, 220.118.167.***)
      2. 음 리사 "레프트 아이" 롭스 가 돌아가셨었구나....

        난동만 치다 돌아가실떄도 난동치며 돌아가셨군ㅋㅋㅋㅋ 할튼 RIPㅜ
      1. 요다심 (2010-11-10 22:30:12, 118.216.38.**)
      2. 어헛! 알리야가 91년생이었던가요? ㅋ
      1. E-Dub (2010-11-10 21:36:24, 175.209.223.***)
      2. Zapp세대는 당연 아니지만 펑키사운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Roger Troutman의 죽음은 정말 안되었네요. 죽음 이후에 이 양반을 접한 저로선 뭔가 전설같은 느낌?? 아들로 기억하는데 Roger Troutman II라는 이름으로 앨범이 하나 나왔었죠. 아들도 토크박스를 수준급으로 쓰더군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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