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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토픽] 필름 블랙스① Brown Sugar '당신은 언제 처음 힙합과 사랑에 빠졌습니까?'
    rhythmer | 2010-12-27 | 11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필름 블랙스는 리드머의 새로운 필진에 합류한 조성호님이 앞으로 흑인음악, 혹은 힙합문화와 관련한 영화들을 소개하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갈 연재 기사입니다.  

    모든 힙합 팬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은 '힙합이 죽었다.’라고 말하고, ‘힙합이 변했다.’라고 말한다. 물론, 일정 부분 그런 의견도 일리는 있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힙합은 죽지도 않았으며, 변하지도 않았다. 새로운 스타일이 등장해 '변신', 혹은 '진화'했다면 모를까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부정적인 의미로 변했다고 너무 쉽게 말하곤 한다.

    지금 소개하려는 영화 [브라운 슈가Brown Sugar](2002)도 위의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브라운 슈가]는 힙합과 사랑에 빠진 한 여성이 힙합에게 연애편지를 보내는 영화인 동시에 'HIP HOP' 그 자체를 말하고 있는 작품이다.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힙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힙합을 이야기하며, 한 여성의 성장을 보여준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상당히 강렬하다. 처음 화면에 보이는 기차의 모습, 스크래치된 화면, 색감은 힙합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훌륭한 장면이다. 그리고 화면 위에 덧입혀지는 더 루츠(The Roots)의 "ACT Too(Love Of My Life)"로 영화의 문이 열린다.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사무실에서 짐을 싸고 있는 주인공 시드니(Sidney)가 보이고, 카메라는 그녀가 인터뷰했던 힙합 뮤지션들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테이프를 비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투팍(2PAC), 제이지(Jay-Z), 우탱 클랜(Wu-Tang Clan) 등 여러 힙합 뮤지션의 이름이 적힌 오디오 테이프를 훑은 카메라는 또다시 많은 LP들을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곧 시드니의 목소리가 '보이스 오버(*필자 주: 픽션 영화에서 전지적 시점의 내레이터. 여기서 내레이터는 영화의 시간과 공간을 해설. 쉽게 이야기하자면 주인공의 목소리가 관객의 귀에 들리는 것)'로 우리에게 전달되며, 모든 힙합 뮤지션들에게 항상 같은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곤 했다고 말한다.

    'When did you first fall in love with hip hop?'
    당신은 언제 처음 힙합과 사랑에 빠졌습니까?



    힙합 팬들에겐 매우 익숙한 문장. 시드니의 이 대사가 끝나자마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쿨 쥐 랩(Kool G. Rap)이 화면에 등장해서 자신의 실제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때 감독의 접근 방식은 극영화의 방식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방식의 연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감독의 의도는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과거 세대와 지금 세대가 공통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힙합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그들에게 보여주려고 한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데프 잼(Def Jam)의 수장인 러셀 시몬스(Russell Simmons)를 필두로 블랙 쏘트(Black Tought), 피트 락(Pete Rock), 데 라 소울(De La Soul), 저메인 듀프리(Jermaine Dupri), 탈립 콸리(Talib Kweli), 커먼(Common), 빅 대디 케인(Big Daddy Kane), 메쏘드 맨(Mathod man) 등 많은 힙합 뮤지션이 등장해서 자신들이 힙합과 사랑에 빠지게 된 계기를 설명한다-퀸 라티파(Queen Latifah)와 모스 데프(Mos Def)는 영화에서 조연으로 만나볼 수 있다. 그들의 눈은 빛이 났고,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그들은 당시를 아주 생생하게 기억해내고 있었다. 그것은 첫사랑에 대한 설렘이라고 말할 수 있는 동시에 또 다른 우주와 만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감독은 이 장면을 마치 힙합의 'Cut& Paste(자르고 붙이기)’ 작법처럼 교차편집 하는데, 이 장면을 보는 힙합팬들에게 약간의 흥분과 긴장감을 주기에 좋은 편집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뮤지션들이 이야기할 때 당시의 자료 화면이 함께 보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일말의 아쉬움이 들기도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 시드니와 드레

    인터뷰 영상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주인공 시드니는 [LA타임즈]에 힙합 관련 칼럼을 쓰는 기자다. 그녀는 현재 자신과 힙합에 대한 책을 집필 중이며, 지금은 미국의 유명 힙합잡지인 [XXL Magazine]으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짐을 싸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과 힙합이 처음 사랑에 빠지던 그때를 날짜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바로 힙합이 활활 타오를 준비를 시작하던 80년대 중반인 1984년 7월 18일에 시드니는 힙합과 사랑을 시작했다. 그리고 영화는 또 다른 주인공인 드레(Dre)가 시드니와 만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시드니는 드레와 함께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hood)에서 힙합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다. 동네의 형들이나 오빠나 언니, 혹은 누나들이 시멘트 바닥에 크고 두꺼운 종이를 깔고 브레이크댄스를 추고 있었고, 그 옆에서는 또 다른 동네 형들이 프리스타일 랩 배틀을 하며, 저마다 랩 스킬의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이 장면에서 우리는 80년대의 힙합 스타 세 명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슬릭 릭(Slick Rick)과 그의 친구였던 데이나 데인(Dana Dane), 그리고 최초의 휴먼 비트 박스 더기 프레쉬(Doug E. Fresh)가 그들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시드니와 드레의 기억 속에 현재의 힙합은 너무 로맨틱하지 못하다. 그리고 힙합이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상업적인 모습으로 변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에선 힙합 듀오 ‘힙합 달마시안'이라는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그들은 힙합을 매우 우스꽝스럽게 보여주고, 스스로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처럼 표현되었다. 감독은 백인과 흑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힙합 달마시안을 통해 현재 힙합 시장이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이미지화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힙합은 굉장히 커졌다. 그래서 우리는 변했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 한 명의 잘못도 아니고, 딱히 잘못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도 없다. 시장이 커지고 힙합을 접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가 버린 것이다. 그렇게 힙합이 상업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한 가운데서 지켜봐야 하는 드레의 마음도 편치 않았을 것이다. 드레는 레코드사의 프로듀서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회사의 사업이 진행될 때, 매우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힙합 달마시안이 상징하는 것이 바로 드레가 견뎌야 하는 심적 고통인 셈이다.

    보이스 오버를 통해 시드니는 말한다.

    '힙합이 메인 스트림 음악과 합쳐진다는 걸 상상하기 어려웠다. 힙합은 나만 아는 사적이고 지역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뮤지션들이 MTV에 나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는 것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 나를 힘들게 했다.'



    물론, [브라운 슈가]에서 그런 비판적인 지점(상업적으로 변해버린 모습)들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예전 것만 듣고, 그것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앞서 말했듯이 영화의 핵심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하지만, 우리 곁에서 지금의 '힙합'을 할 수 있게 해준 그들, 혹은 그 음악을 잊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RESPECT'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뿌리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그곳에서 탄생한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되고, 결론적으로 현재의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브라운 슈가]는 영화의 많은 장면과 대사를 통해 힙합에 대해 진짜(Real) 이야기를 하고 있다.

    [브라운슈가]를 보고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힙합은 폭력적이고, 과격하고, 너무 선정적이고, 여성을 폄하하는 등 부정적인 요소가 많다.'라고. 그렇다. 힙합은 갱스터 문화도 있고, 거리의 폭력적인 삶도 있다. 그것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지만, [브라운 슈가]에선 이런 요소들이 빠져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 영화의 소재는 '힙합'이고 주제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철저히 시드니에게 영향을 준 힙합(Dre)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하고, 영화의 많은 부분이 시드니의 시점에서 움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힙합의 부정적인 부분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해서 [브라운 슈가]가 저평가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영화의 빛나는 조연, 퀸 라티파와 모스 데프

    앞에서 언급했듯이 릭 파미아(Rick Famuyiwa) 감독은 '힙합'이라는 소재를 통해 '사랑'이라는 주제를 풀어보고 싶었기 때문에 영화를 이런 방식으로 전개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시드니가 자라오면서 함께 성장해 온 힙합이 너무도 변해버렸고, 시드니도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힙합을 사랑하고 그것을 지켜보면서 살아온 우리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 아니던가? 결국, 힙합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사랑을 이어가고 지켜갈 때 힙합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살면서 이렇게 '힙합감성'이 돋아나는 영화를 또 얼마나 만날 수 있을까…. [브라운 슈가]야말로 우리가 현재 접할 수 있는 최고의 '힙합다운 힙합' 영화라고 얘기하고 싶다.

    P.S
    부디 아직 [브라운 슈가]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을 안 들어보신 분들이 있다면, 꼭 들어보시라. 90년대 이후, 우후죽순 격으로 등장했던 그저 그런 짜깁기 사운드트랙과는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기사작성 / RHYTHMER.NET 조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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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hym_E (2011-01-04 00:38:16, 211.48.31.***)
      2. 아 아직 못 본 영화들 중에서 보고 싶은 영화 1순위...
      1. 브루클린 (2011-01-02 19:39:49, 119.71.203.***)
      2. 푸른공책님 무섭네여..
      1. 장지우 (2010-12-30 18:47:25, 117.123.228.**)
      2. 힙합 달마시안 잊을수 없음ㅋ
        힙합에 빠진지 얼마 안되었을때 봤던 영화였는데
        그때는 절반쫌 넘게보고 재미없다고 끄고 8마일 봤었어요ㅋㅋㅋㅋㅋㅋㅋ
        그때는 커먼이랑 모스뎁 나오는지도 몰랐는데.....
        다시한번 보고싶네요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듯

        글 읽고 OST다운받아 들었는데 좋더라구요
      1. unknownn (2010-12-29 16:30:18, 210.99.50.***)
      2. 너무 좋은 기사예염 ^^. 앞으로 어떤 영화를 다룰지가 더 기대된다는...
      1. 김정교 (2010-12-28 22:52:12, 59.9.145.**)
      2. 인터넷에서 DVD 팝니다! 지릅시다!
      1. 이재황 (2010-12-28 21:14:02, 122.32.197.*)
      2. 이거 어떻게 볼수 있는건가요? 구하려고 해도 판매도 안하고 구할수도 없던데;ㅠㅠ 가지고 계신분 godocan@nate.com으로 토렌트라도 보내주세요~ㅋ 자석 있으면 주소라도....;;
      1. 푸른공책 (2010-12-28 19:37:48, 116.121.130.***)
      2. 시체와 사랑에 빠졌다면 그 시체를 한올한올 닦으면 더 사랑해볼래요............
      1. sleepy (2010-12-28 18:32:36, 125.177.39.**)
      2. 힙합이 죽었다면 우리는 지금 시체와 사랑에 빠져있군요

        흠... 무섭네요
      1. CloudPark (2010-12-27 22:44:48, 180.67.43.**)
      2. 파이어제트 이 사람아

        반말에는 반말로 ㅋ

        그 죽을걸 자꾸 듣고 그 죽은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의견 공유하는데 와서
        자꾸 깽판을 치는 이유가 뭐니?

        죽었다고 생각하는 애들 모아서 놀으라고 쫌... 개드립 초치지말고
      1. FireZ (2010-12-27 20:15:24, 110.8.14.***)
      2. 아무리 순화된 언어로 돌려말해봤자 힙합이 오래전에 죽은건 변함없는 사실이야

        요즘 빌보드 랩,힙합차트에서 나뒹구는 그렇고그런 히트송을 함 들어봐

        이런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소음에 가까운 썩은 노래들이 예전의 심장부터 벌떡벌떡

        살아숨쉬는 거리의 소리들과 비교가 된다고 생각해?

        솔까말 힙합은 옛날에 끝장났어 ~ 힙합의 껍데기를 입은 히트팝이라면 모를까 ㅋ
      1. CloudPark (2010-12-27 17:08:12, 180.67.43.**)
      2. 오! 영화로 계속 되는 피쳐인가요! 그럼 허슬앤플로우도 꼭 써주세요!
      1. howhigh (2010-12-27 15:46:02, 124.54.125.**)
      2. 상당히 따뜻한 영화죠.....다른 부정적인 요소들로 인해 자칫 잊을수 있는 힙합의 면모들을 다시한번 일깨워주게 되는...그래서 자주 찾게되는 영화입니다
      1. 양지훈 (2010-12-27 14:48:06, 175.253.108.**)
      2. 영화에 등장했던 힙합 달마시안 보면서 수없이 웃었었는데... ㅎㅎㅎ
      1. nasty (2010-12-27 13:20:33, 58.234.238.**)
      2. 와... 브라운슈가 그냥 생각없이 봤었는데 이런 은유가 숨어져 있었군요
        나중에 다시 보면서 장면장면마다 의미를 곱씹어 봐야겠습니다
        아 글고 모스뎁 귀여워 죽는줄 알았다는ㅎㅎ
      1. 뻥카라인 (2010-12-27 11:15:30, 203.230.217.***)
      2. 보는 내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영화!! OST 역시 일품입니다!! 이 영화를 봤음에도 힙합과 사랑을 빠지지 않는다면... GG
      1. 누에군 (2010-12-27 05:37:40, 59.6.226.***)
      2. 헤드윅이 실패한 트랜스젠더를 통해
        연합군과 소비에트연방에 의해 분단된 동독과 서독을 표현한 것처럼,
        브라운 슈가는 어린시절 추억과 성인이 된 후의 애증을 통해
        힙합이라는 추상적이고 거대한 문화의 탄생과 변화 결합 등을 압축적으로 나타내죠
        common의 노래처럼 여러모로 상징적인 영화여서 참 좋게 봤던 기억이 나요
        흑인이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jay-z의 표현대로 thanks god for hip-hop 인거같네요

        힙합달마시안이 등장할때 배경음악으로 에미넴의 노래가 나오면서 듀랙쓴 백인 스타를 은근히 비꼬는 것도 재밌었습니다. west로 힙합이 떠나서 자본주의에 물들고 벗기시작했고 타락했다는 common의 노래에 ice cube가 발끈했던 거랑 오버랩도 되고 말이죠 ㅎㅎ 폭력과 마약거래가 힙합의 근본이 아니라는 점에서 보기에도 편안한 영화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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