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드머 토픽] Mary J. Blige 공연 후기: 우리의 여왕에게 경배를!
- rhythmer | 2011-01-24 | 14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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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 가장 추웠던 지난 2011년 1월 22일 일요일. 힙합/알앤비 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20여 년이 넘는 시간을 미국 대중음악계 중심에 서 있었던 한 여인의 공연을 보고자 경희대 평화의 전당을 찾았다. 그런데 시작은 좋지 못했다. 인간적으로 너무 추운 날씨도 모자라 입장 지연이라니…. 고생해서 도착한 많은 관객은 오프닝 공연이 끝났음에도 입장하지 못한 채 밖에서 불평을 터뜨렸다. 나 역시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공연 시작 30분 전만 해도 내 머릿속에는 실패한 내한 공연의 암울한 역사의 한 페이지가 장식되는 순간을 현장에서 지켜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로 가득했다. 잠시 후, 현장이 대충 수습되고 드디어 입장. 다행스럽게도 좀 전의 우려는 여왕의 등장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
암전 상태에서 밴드와 코러스가 자리를 잡자 “MJB Da MVP”의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오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후의 자세한 광경을 서술하는 것은 퍽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메리 제이 블라이즈(Mary J. Blige)는 엄청나다고 서술할 수밖에 없는 것이 죄스러울 정도로 멋진 공연을 펼쳤으니까. 나는 아직도 공연이 끝난 직후 일행의 감격스런 얼굴을 기억한다. 메리 제이 블라이즈는 훌륭한 노래와 훌륭한 역사를 가진 훌륭한 보컬리스트가 얼마나 황홀한 경험을 제공하는지를 직접 보여주었다.
그녀는 이미 널리 알려진 월드 투어 세트 리스트를 대부분 충실하게 재현했는데 각종 영상을 통해 줄곧 확인했었던 광경을 직접 목격하는 것은 팬으로서 매우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특히, 초•중반부에 펼쳐진 90년대 클래식 송의 향연은 그 자리를 함께했던 많은 관객의 피를 끓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특히, 관객들을 열광시켰던 “Real Love”나 “Love Is All We Need”, “Mary Jane(All Night Long)” 같은 히트곡들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 중반부의 절정이었다. 1층의 많은 관객이 일어나 한바탕 춤판을 벌였고, 각층의 외국인 관객들과 몇몇 한국인 관객들 역시 일어나 그 순간을 만끽했다. 현재로 소환된 과거의 전설적인 순간을 직접 마주하게 된 나 역시 그 순간에 한껏 취해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역시 이날 공연 최고의 순간은 “No More Drama”를 열창하는 순간이었다. 굴곡 많은 메리 제이 블라이즈의 인생사를 담은 이 노래의 도입부인 차분한 피아노 소리가 공연장에 울려 퍼진 그 순간부터 모든 관객은 숨죽인 채 그녀만을 주시하며 전율했다. 블라이즈는 한껏 감정을 담은 목소리로 때로는 속삭이고 때로는 절규하며 그녀를 주시하는 수많은 눈에 경의를 품게 했고 그들의 고막을 통해 감동이 퍼지게 했다. 정식 무대의 마지막 곡이었던 “Family Affair”는 라이브 밴드의 생생한 연주를 통해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되살아나 모든 관객을 객석에서 일어나 춤추게 만들었고, 앙코르 무대에서 그녀의 최고 히트곡인 “Be Without You” 퍼포먼스가 펼쳐지며 공연은 마무리됐다.
그녀는 두 시간이 조금 안 되는 공연 동안 거의 쉬지 않고 열창하며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옷을 갈아입는 잠깐의 시간을 제외하면 별다른 멘트, 심지어는 밴드와 크루의 소개마저 없이 쉬지 않고 팬들에게 자신의 방대한 음악을 소개하고, 그들을 자기 역사 속의 순간순간으로 초대했다. 메리 제이 블라이즈는 음악으로 인사하고, 자신의 목소리로 팬들과 대화하고, 자신의 율동으로 팬들을 춤추게 만들었다. 단순한 히트곡의 나열과 그것을 직접 시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들을 또 하나의 역사로 느끼게끔 했다.
물론, 방대한 세트 리스트에서 제외된 [Love & Life]의 곡들을 포함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녀의 노래 가운데 몇 곡을 그 자리에서 감상하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하지만, 블라이즈는 10의 감동을 기대했던 나에게 2를 빼고 4만큼을 더해주었다. 양심 있는 팬이라면 이에 대해 불평할 수 없었고 나는 양심 있는 팬이 되기로 결심했다. 사실 그런 결심은 전혀 불필요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의 남은 시간 내내 공연의 감동을 곱씹느라 불평 따위에 감정을 소비할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MJB의 데뷔 앨범인 [What’s The 411?]이 발매된 것이 92년이니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블라이즈에게 부여된 ‘힙합 소울의 여왕’이라는 칭호는 여전히 그녀에게만 허락되어 있다. 그날 모인 관객들은 그 이유를 충분히 체감했을 것이다. 세월은 그녀의 앳된 얼굴을 완숙한 중년의 얼굴로 다듬는 동시에 목소리에 깊은 울림을 더해주었다. 앞으로 그녀를 능가하는 인물이 등장할지도 모르고, 그날의 공연을 뛰어넘는 감동을 접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서 여왕으로 기억되는 건 ‘메리 제이 블라이즈’일 것이다. 우리의 여왕에게 경배를!
Set List"MJB Da MVP"
"The One"
"Enough Cryin"
"You Bring Me Joy"
"Be Happy"
"You Remind Me" (Remix)
"Real Love"
"Everyday It Rains"
"I'm The Only Woman"
"I Love U (Yes I Du)"
"Love Is All We Need"
"Reminisce" (Remix)
"Love No Limit" (Remix)
"Mary Jane (All Night Long)"
"Good Woman Down"
"Everything"
"All That I Can Say"
"I Never Wanna Live Without You"
"Seven Days"
"Your Child"
"Deep Inside"
"I Am"
"Sweet Thing"
"Not Gon' Cry"
"I'm Going Down"
"No More Drama"
"Just Fine"
"Family Affair"
"Be Without You" (Enc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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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gil (2011-01-29 20:02:31, 121.148.4.***)
- 꽁짜관객이 많아서 분위기가 좀 흐려지긴 했지만 정말 만족스러웠던 공연..just fine때 절정을 이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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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수 (2011-01-25 19:15:42, 119.71.211.***)
- 캬....못갔지만 담엔 가고싶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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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훈 (2011-01-24 21:48:08, 58.143.90.***)
- 3층에서 관람한 지인의 이야기는 3층 경사가 너무 심해서 목숨걸고 춤추면서 봤다고 하더군요 :), 전 2층에서 봤는데 (그래서 사진들이 다 2층 사진 ㅠㅠ)
사실 그렇게 기대 안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글 그대로고요. 정말 과장 하나도 없이 공연 끝나고 로비에서 만난 사람들 표정이 다.. 멍했습니다. 좋았어? 이런 물음도 없이.. 최고였다고 다들 넋이 나감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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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계소년 (2011-01-24 21:38:54, 211.47.87.**)
- 글에서 감동이 전달되내요.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녀를 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담번에 오신다면 좀더 좋은 공연장에서 만났으면 좋겠내요. 평화의 전당은 1층이외 상층들은 불편하던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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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oudPark (2011-01-24 11:40:02, 180.67.43.**)
- 내한공연은 R석이 진리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S석 앉았더니 MJB를 잘 모르거나 노래를 모르거나 하시는 분이 너무 많아서
스탠딩하는 분위기도 즐기는 분위기도 안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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