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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토픽] 필름 블랙스④ 8 Mile '디트로이트 원더 보이의 작은 희망'
    rhythmer | 2011-03-23 | 12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담기엔 1시간50분의 러닝타임은 짧다. 때문에 어떤 관점에서 영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8마일, 8mile](2002)은 좋은 영화일 수도 나쁜 영화일 수도 있다. 힙합을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영화를 상찬할 수는 없지만, 커티스 핸슨(Curtis Hanson)이 만든 [8마일]이 좋은 영화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랩(힙합보다는 랩이라고 하겠다.)을 소재로 청춘들의 꿈을 그리고 있는 [8마일]은 계급적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영화지만, 진실된 영화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힙합 영화라기보다는 청춘(성장) 영화라고 생각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8마일]에서 힙합=랩은 소재에 불과하다. 물론, 이 소재가 영화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는 점도 무시 할 순 없지만 말이다. [8마일]에서 인종(계급)문제도 자연스럽게 드러나지만, 커티스 핸슨은 그것을 직접적(혹은 정치적)으로 다루려 하지 않는다. 랩을 통해서 끊임없이 백인과 흑인의 모습이 반복될 뿐이다.

    에미넴(Eminem)이라는 랩스타의 과거에서 [8마일] 이야기의 얼개를 끌어왔고, 영화의 내용은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일주일 간 있었던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으로 각색해서 촬영한 것이다. [8마일]에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백인우월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말들을 내뱉곤 했는데, 그것은 그저 노파심 때문에 나온 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백인이 승리하는 결론으로 영화는 끝을 내지만, 에미넴 과거의 실제 삶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라는 점에서 영화는 진실되고 중심을 잃지 않는다. 처음부터 계급적인(인종차별의 모습) 모습을 영화에 그리려 했다면, 그리고 힙합을 이용해 돈을 벌려 했다면 이런 식으로 영화가 전개되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가 누누이 보아왔던 뻔한 승리공식을 따랐을 것이다. 커티스 핸슨은 [요람을 흔드는 손], [L.A 컨피덴셜], [원더보이즈]에 이어 이번에도 장르를 비틀 줄 아는 명민한 감독이라는 걸 또 한번 증명했다.

    영화 제목으로 쓰인 '8마일'은 디트로이트 지역의 흑인과 백인 거주지역을 경계하는 도로의 이름인 동시에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나뉘어있는 상징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영화에선 부자 흑인의 모습도 보이고, 가난한 백인의 모습도 보인다. 무대에 올라온 가난한 무명의 백인 엠씨(MC)를 상대하는 래퍼들이 그에게 '너희 동네'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것이 그렇다. 영화의 주인공 '지미 스미스 주니어'(래빗)는 백인 거주지역에 살고 있지만, 문제가 많은 젊은 엄마와 어린 동생이 있고, 트레일러의 고단한 삶을 전전하는 동시에 자동차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한다. 그가 처한 현실이 3D(danger, dirt, difficult) 그 자체라는 사실은 누가 봐도 분명하다.

    영화에서 래빗은 말한다.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하지만, 랩을 사랑하고 자신을 응원해 주는 친구들이 있어 그는 랩으로 답답한 현실을 탈출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 문제도 쉽지가 않다. 주말에 있는 랩 배틀에서 그는 유일한 백인 선수이고 소심하기까지 하다. 그를 조롱하는 파파 독(papa doc)과 그의 크루(Leaders of the Free World Squad)는 래빗을 '엘비스'에 비유하면서 비하하고 자신들이 오랜 세월 동안 받아왔던 인종차별을 그에게 돌려준다.

    에미넴이 [8마일]을 찍기 전까지 발매했던 여러 앨범 속의 곡은 거의 다 폭력적이고 엽기적인 내용들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미국에선 에미넴이 얼마나 또 폭력적인 영화를 만들어냈을지 걱정했다고 한다. 그 점 또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영화는 매우 모범적인 형태로 전개되며 이야기 구조는 탄탄하고, 랩이 가지고 있었던 부정적인 모습들과 가난한 사람들도 누구나 꿈을 꾸고 살아간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저명한 영화 평론지의 평론가들은 에미넴의 연기와 영화를 칭찬했고, 에미넴을 안 좋게 보던 기성세대들도 자녀의 손을 잡고 [8마일]을 관람했다. 그 결과 [8마일]은 R등급으로 분류된 영화 중에 2위를 기록하며,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한다(2002.11월8일).

    과거 할리우드 영화에 많은 가수들이 자신들의 인기에 힘입어 관객들의 호주머니를 강탈하려고 어설픈 기력으로 영화를 찍고 유치한 내용으로 영화를 만들었을 때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에미넴이 연기한 '래빗'은 관객들이 온전히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자신의 과거에 초점을 맞춘 캐릭터이기 때문에 신선함은 다소 떨어졌지만, 카메라 앞에 서 있는 에미넴은 세상의 어떤 배우보다 진정성 있는 연기를 선보이며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에미넴은 좋은 연기, 관객들이 집중할 수 있는 박력있는 연기로 매력적인 청춘 아이콘을 보여주었다.

    영화의 뻔한 상투성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이 균형을 잃고 더 앞으로 나가서 전형적인 할리우드 엔딩이 되었다면, [8마일] 결코 많은 칭찬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랩에 대한 기록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랩스타가 되는 것을 어떤 고민 없이 찍었다면, 그리고 그가 슈퍼스타가 되는 것을 세세하게 다 보여주었다면 영화의 결에 흠이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온전히 랩을 위한 영화를 보려면 차라리 힙합 문화를 다룬 유명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게 나을 것이다. [8마일]은 음악계 슈퍼스타의 영화 데뷔작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상업영화로 시작하여 마지막에는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에미넴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하려 했던 것에 방점을 찍은 영화이기에 힙합의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구질구질한 게토(Ghetto)에 사는 청춘의 분노와 희망에 더 초점을 맞춘 것이 효과적이었다. 존 싱글턴(John Singleton)과 스파이크 리(Spike Lee)가 말하는 인종문제가 [8마일]에는 없다. 그들은 그 문제를 맨 앞에 놓고 여러 플롯으로 자신들이 말하는 주제를 인종문제와 더불어 심도 있게 파고 들지만, 커티스 핸슨은 처음부터 그것을 배제하고 영화를 만든 게 아닌가 생각된다.

    [8마일]은 값싼 영웅주의를 말하려는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라 ‘랩’을 소재로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울리려는 청춘영화가 맞을 것이다. 래빗은 '프리스타일 랩 배틀'(Freestyle Rap Battle)에서 승리했고, 어두운 밤거리를 지나 다시 공장으로 돌아갔다. 에미넴의 자전적인 이야기라서 세상의 모든 (상징적인 의미에서) 래빗이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아직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많은 래빗이 양극화(계급) 세상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그들의 꿈이 랩일 수도 있고 다른 그 무언가라고 말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에미넴은 [8마일]의 주제곡 “Lose Yourself”에서 '네 자신을 음악에 맡겨(You better lose yourself in the music)’라고 말하는 동시에 ‘네 마음이 원한다면 넌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 친구야(You can do anything you set your mind to, man)’라고 말한다.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이렇게 힘든 백인 쓰레기(White Trash)도 있으니 너희도 할 수 있다 라고 말이다. 그것은 커티스 핸슨과 에미넴의 공통된 생각이었을 것이다. [8마일]이 말하려는 핵심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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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독버섯전성시대 (2011-03-24 21:38:23, 218.238.45.**)
      2. 글 잘읽었다 ㅋ 나도 다시 봐야지 ㅎㅎ
      1. djyd (2011-03-24 15:47:59, 118.42.94.***)
      2. ㄴ여담이지만 키즈리턴도 전율오죠ㅋ기타노 영화들은 처절하면서 조그마한 동심의 희망이 남아있달까?
        기쿠지로의 여름도 추천
      1. 뮤직쿤 (2011-03-24 13:28:10, 220.122.244.**)
      2. 캬... 글 너무 좋아요!

        키즈 리턴 꼭 보겠습니다. ㅋㅋㅋ

        저 사진 키즈 리턴 맞죠? ㅋㅋㅋ
      1. howhigh (2011-03-24 09:24:52, 124.54.125.**)
      2. 개인적으로 영화의 가장 멋있는 장면은 마지막 랩배틀에서 이기고 그의 친구들이
        들떠있을때...유유히 자신이 일하는 공장으로 돌아가는 장면...그 장면이 가장 멋지지
        않나 싶음...
      1. SRE (2011-03-24 00:09:33, 49.17.154.**)
      2. 정말 좋은 글이군요.. 잘읽었습니다..
      1. 에히 워럽 (2011-03-23 23:56:16, 118.217.138.***)
      2. 진짜 시간이 이렇게나 전 예전에 이 영화볼려고 극장에 갔었는데 일주일만에 막내리고

        못보고 왔었다는 기억이 나내요 지금은 DVD로 소장 하고 있다는...
      1. Popeye (2011-03-23 23:49:45, 180.180.208.***)
      2. 제가 본 흑인영화중 첫번째 영화...진짜 재밌었어요..아직도 가끔봐요 ㅎ
      1. yseman (2011-03-23 23:18:57, 115.86.151.***)
      2. 오히려 에미넴이라는 슈퍼스타의 상업성에만 의존했다는 편견떄문에 과소평과된 영화죠. 정말 작품성도 좋고 꽤 훌륭한 영화인데. 작품성을 인정 못받았다는건 아니지만 작품성에 비해 너무 에미넴의 자전적인 영화라는데에만 초점이 맞춰진게 좀 아쉬운점. 에미넴 팬으로서 프리스타일 가사까지 외웠었는데
      1. 삼성동 (2011-03-23 23:02:36, 211.108.46.***)
      2. 하도 많이 봐서 랩배틀을 다 외워버렸네요ㅎㅎ
        하 영화관에서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
      1. Gerome (2011-03-23 22:45:42, 222.109.121.***)
      2. R.I.P 브리트니 머피

        이 영화 참 재밌게 봤죠. 에미넴의 인생이라는 소재를 참 재밌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풀어낸 영화죠.
      1. 강동균 (2011-03-23 22:27:16, 121.133.5.**)
      2. 리뷰보자마자 다시 또 다운 받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때 생각나네요
      1. nasty (2011-03-23 20:02:34, 112.145.238.***)
      2. 한 8번은 본거 같네요 이 영화... 아직도 lose yourself를 들으면 가슴이 뜁니다
      1. unknownn (2011-03-23 19:40:47, 112.154.228.**)
      2. 이 영화가 나온지도 10년이 다 되어 가는군요. 에미넴에 기댄 팬덤영화가 될 거라는 추측을 완전히 비웃어버린 멋진 작품. 제 아는 형은 이 영화보고 랩에 빠졌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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